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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한산대첩 제51회 통영한산대첩 축제 마지막을 알리는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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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영. 강구안. 동피랑. 경남 통영지역에서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토영은 통영, 강구안은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입구 그리고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란 뜻이다. 지난 18일. 이 세 단어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통영항을 찾았다. 때 맞춰 제51회 통영한산대첩 축제가 막을 내리는 가장행렬로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토영. 어딘가 촌 때가 듬뿍 묻은 꾀죄죄한 모습이 연상되지만, 역경을 견뎌내고 열심히 살아온 조상의 삶과 혼이 느껴져 좋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것만 좋은 것은 아닐 터. 어쩌면, 투박한 이런 단어에서 인간의 진정한 삶을 느끼리라. 그걸 증명하는 곳이 있다.
▲ 중앙시장 통영시 동호동 통영활어시장. 이 시장에는 매일 같이 치열한 삶의 전쟁이 치뤄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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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동호동에 위치한 중앙시장. 중앙시장 하면,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강한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이 있다면 그건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사람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곳이다. 이른 새벽에 장을 열고, 늦은 저녁에 문을 닫는 시간 내내 삶과의 전쟁이 펼쳐지는 곳이다.
구수한 사투리는 강렬한 톤을 타고, 손님을 자극하며, 횟감을 골라 지갑을 열게 한다. 이어지는 빠른 손놀림은 단번에 고기를 손질하고, 횟감을 다듬어 그릇에 담긴다. '능수능란'이란 말은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 활어 통영 중앙시장에서 거래되는 싱싱한 활어. 왼쪽은 광어, 참돔 그리고 우럭 세 마리에 4만 원, 오른쪽은 전어 1kg에 1만 원. 물론, 시세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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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협박 조로도 손님을 유혹한다. 그런데 가히 기분이 나쁘지가 않은 것은 왜일까.
"아이씨(아저씨). 좋은 말할 때, 고기 사이소~. 딴 데 가봐야 별수 없다 카이."
이곳 중앙시장은 횟감이 비교적 싼 편이다. 그래서 거제에서 일부러 통영까지 고기를 사러 가기도 한다. 덩치가 큰 광어와 참돔 각각 한 마리와 우럭 몇 마리를 더 얹어 3~4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어는 1kg에 1만 원, 금값이라 할 정도의 낙지도 타지역보다 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횟감은 당연히 시세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시장 바로 옆에는 초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는데, 여기에서 사람 수대로 초장 값만 내고 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치열한 삶은 현장을 느끼고 싶다면 통영 중앙시장으로
▲ 중앙시장 통영 중앙시장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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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중앙시장은 생각보다는 컸다. 각 지자체의 재래시장 활성화로 오래전에 각인됐던, 그런 재래시장의 모습이 아닌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멸치를 비롯한 건어물을 파는 가게를 지나 빵집, 떡집을 거치면서 보는 시장터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이야기로 가득하다. 할머니 노점상은 텃밭에서 손수 딴 호박잎과 깻잎을 천 원짜리 몇 장 값으로 판다. 이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동피랑 통영시 동호동 동피랑 벽화마을 안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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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 등의 지위나 신분을 말할 때 '스타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통영의 동피랑은, 예전 도시개발계획 철거대상의 마을이 아닌, 여행자들에게 스타덤에 오른 최고의 관광명소로 대접받고 있다.
동피랑은 통영항을 뜻하는 강구안 뒤쪽으로 하늘에 닿을 듯 맞닿아 있는 오래된 산동네의 이름이다. 피랑은 '벼랑'을 뜻하는 경남지역 사투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라는 뜻으로, 처음엔 동비랑으로 불리다 자연스레 동피랑이라 불렸다고 한다.
마을로 접어들자, 뉴스나 다른 매체로 보아왔던 벽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형형색색이 아름답고, 동화 같은 그림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후덥지근한 날씨임에도 많은 여행자가 골목길에 진을 치고 추억 담기에 정신이 없다. 천사를 그린 그림에 자신이 천사인 양 포즈를 취하는 여행자는 그 순간만큼 천사였으리.
▲ 동피랑벽화 통영 동피랑벽화마을의 벽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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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는 방증이 곳곳에 작은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이곳도 엄연히 사람 사는 곳으로, 개인적인 삶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시로 들이대는 카메라로 주민이 불편해하고, 허락도 없이 집을 방문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곳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삶의 터전이지, 동물원 나들이하듯 해서는 안 되리라는 것은, 꼭 명심해야 하리라.
"제발, 조용히 다니세요. 사람 사는 곳입니다."
▲ 동피랑 동피랑 언덕길을 많은 여행자가 오르고 있다. 동피랑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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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은 원래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약 5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시에서는 동포루 복원을 위해 집 몇 채만 철거하고 그대로 보존했는데, 이때 전국에서 미술대학 18개 팀이 벽화를 그리면서 새롭게 탄생한 마을이 이곳 동피랑.
앞서 중앙시장과 마찬가지로, 동피랑에도 우리 조상의 삶이 녹아 있고,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사이 사이로, 작은 사랑이야기도 있고, 꿈도 미래도 희망도 있으리라.
동피랑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강구안은 예향 통영의 정신적 고향
▲ 토영 통영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 부른다. 동피랑 벽화마을 바닥에 새겨진 '토영 이야기 길' 안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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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 건물을 이어주는 전선이 헝클어져 하늘을 가른다. 복잡한 우리네 삶을 표현한 설치예술이 따로 없다.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 '우울한' 뜻을 가졌다는 푸른색이지만, '하늘', '바다', '미지의 세계'라는 뜻도 함께 가진 푸른 바다에서 분명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동피랑 최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통영항. 남망산에 자리 잡은 통영시민문화회관은 예향 통영을 대변하는 듯하고, 통영항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는 토영사람의 삶을 노래하는 것만 같다. 돌아 나오는 길 벽면에 새겨진 사투리에서 토영사람들의 진한 삶을 느꼈다.
"중앙시장서 폴딱거리는 괴기로 회도 떠묵고, 써언한 매운탕에 밥도 마이 무~서 배도 부린께 다리품을 팔아감서로여, 저, 댕기 보거로!"(중앙시장에서 싱싱한 회도 먹고, 시원한 매운탕에 밥도 많이 먹고 배도 부르니 다리품을 팔아가면서 여기저기 다녀보게.)
"쌔기 오이소! 동피랑 몬당꺼지 온다꼬 욕 봤지예! 짜다리 벨 볼끼 엄서도 모실 댕기드끼 어정거리다 가이소."(어서 오세요! 동피랑 언덕까지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별 볼거리가 없어도 마실 다니듯이 천천히 둘러보셔요.)
▲ 통영항 동피랑 제일 높은 언덕에서 바라 본 통영항. 왼쪽 산 기슭에 자리한 통영시민문화회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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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벽면에 쓰인 어느 글귀에서 발길이 멈춰진다. '동피르뜨'. 무슨 뜻일까 감이 잡히지지 않는다.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물어도 신통한 답을 들을 수가 없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동피랑을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에 비유해서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동피랑의 '동피'와 몽마르뜨의 '르뜨'를 딴 합성어라는 것. 개인적으로는 동피랑이 훨씬 더 정감이 가고, 부르기도 쉽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굳이 '동피르뜨'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다.
▲ 통영거리 통영은 요즘 꿀빵이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거리는 충무김밥과 꿀빵가게가 즐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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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으로 이름나 있다. 여기에는 강구안이 있고, 동피랑과 중앙시장이 함께 있다. 치열한 삶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통영항은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고, 동피랑은 한국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부른다.
시간과 경비가 넉넉하지 못한 여행자라면, 굳이 이태리나 프랑스로 해외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도시 토영에서 이태리와 프랑스의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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