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늙은 병사의 전장(戰場)
김상립
누가 나에게 남은 날을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만일 환경이 허락한다면 복잡한 인연 다 털어버리고 당장이라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번거로운 지경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랫동안 부대껴온 일상이 남긴 긴 그림자가 은연중에 내 발목 을 붙잡고, 복잡한 세상사와 문명의 이기들도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한 까닭이다.
초고속으로 발달한 통신망에 얽힌 내 처지도 결코 녹록하지는 않다. 마치 커다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신세 같다 할까? 내 비록 신세대는 아닐지라도 단 하루도 통신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던 적이 없다. 인터넷은 또 어떤가? 홈페이지나 카페, 이-메일 등에서 자유로운 사람 누가 있는가? 어떤 날은 나에게 온 엉뚱한 메시지 때문에 온종일 찜찜하고 불쾌하다. 요즈음은 유투브 방송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너도 나도 인기영상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 영상들 또한 내용이나 품질이 형편없는 게 많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차 인류는 고도로 진화된 인공지능이 탑재된 전자제품이나 통신기기들에 둘러싸여, 개인의 사생활을 몰래 감시당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 혼자 사는 노인들도 로보트의 도움을 받아 지낼 거라니, 과연 다정한 이웃 없어도 잘 살게 될지 의문이다. 자동차도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 할거고, 더 나아 가 곧 하늘을 날아다닐 거란다. 심지어는 특수 제작된 고글안경 만 쓰면 가상세계로 가서 놀 수도 있고, 휴대폰의 기능도 대신한단다. 노동현장에서도 힘들고 위험한 일은 아예 로보트에 맡겨버린다니, 도대체 사람은 뭘 하고 살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도 문명은 기술적으로 비대면을 더욱 확대시킬 게 분명하다. 이런 입장에 놓이면 인간의 가치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인간성의 상실 또한 촉진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다. 어쩌면 먼 훗날 신체는 빈약하고 머리만 커다란 신인류가 태어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는 궁극적 목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할 터인데, 오직 돈을 많이 벌기 위함 같다. 이러니 사람들의 마음은 욕심에 가득 차, 긴장하고 쫓기게 된다. 초조해진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면 영혼이 활동할 여지가 없어진다 한다. 만일 문명의 발달로 영혼의 진화가 멈추어 선다면, 과연 인류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생전에 이런 변화를 맛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필요한 자료를 기록하거나 작품을 쓸 때는 노트에 펜으로 적고 있다. 휴대폰도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고 있으니, 폰으로 하는 대금결제나 오락게임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 지식은 주로 종이 책을 통해 습득하고, 영화도 일부러 옛날 것만 찾아서 본다. SNS등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일부러 찾아 들어가 읽지도 않는다. 자동기계 앞에서 극장표를 사거나, 햄버거를 주문하는 일도 쪽 팔려서 안 한다. 딸아이는 해외직구가 싸다고 주문하라는데, 나는 중소상인 들은 어쩌나 싶어 들은 척도 않는다. 나 하나 내버려둔다 해서 달리 문제가 일어 날 것도 아닐 텐데, 왜 전자기기들이 펼쳐놓은 요지경 같은 세상 속으로 자꾸 밀어 넣는지 알 수가 없다.
가급적 첨단 과학기술이 내 사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덜 미쳤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덕분에 늙은 나는 포연(砲煙) 자욱한 전장(戰場)에 서있는 그런 기분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 반기를 들고 내 나름 전쟁을 시작했다. 먼저 내 메일 주소를 싹 정리 하여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 가입해있는 카페도 대부분 탈퇴했고, 휴대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도, 깔린 앱도 확 줄여버렸다. 카카오 톡 속의 대화내용이나 받은 자료들도 틈만 나면 지운다. 내가 저장한 사진이고 문서도 대략 정리를 마쳤다. 이와 함께 티브이, 신문 등 일상의 정보라인도 많이 통제 하고, 대신 CD 플레이어 하나로 클래식 음악 듣는 시간을 조금 늘렸다. 그 결과 내가 얻는 정보는 다양 하지도 않고 양마저 대폭 줄었지만, 마음은 전보다 훨씬 편안 하다.
나는 요즈음 한창 기세가 오르고 있는 수필의 새로운 이론이나 기법, 평론 그런 것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태껏 계속 써오던 대로, 기억의 한계 내에서 묵묵히 써가려고 작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이 흐르고 머리속의 자료가 더 이상 깊이도 없고 체계적이지 못하게 되면, 시처럼 짧은 산문에 도전 할 참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시대적 유행을 벗어나고 싶어 나만의 멋대로인 붓질을 할 때가 자주 생긴다. 옆에서 보는 이가 ‘이거 너무 원시적 아니냐’고 빗대도 그냥 씩 웃고 만다. 말하자면 나의 예술세계까지 미래 문명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저항이다. 부언하면 지금껏 힘들게 가꾸어왔던 내 정신세계나 인성(人性)을 문명의 충격 때문에 확 바꾸거나,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게다. 물론 이런 생활태도로 말미암아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으로 점 찍혀 무리 에서 외면당하게 되면, 차라리 방어막을 구축하고 홀로 외로움을 즐길 작정이다.
다행이 지금의 처지로 보면 더 이상 외부로부터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받지 않아도 남은 삶을 사는 데는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대신, 내게 쌓인 모든 지식을 지혜롭게 소진시켜 나가는 게 노후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가져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직도 버릴 게 너무 많고, 살면서 미진했던 부분을 정리 하는 일만해도 남아있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지경이다. 물론 디지털 문명의 눈으로 보면 나는 구제불능의 구식 영감이 틀림없을 터이다. 하지만 내 영성(靈性)의 안테나가 우주의 깊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조금씩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전쟁터에 나선 병사의 심정으로 끝까지 내 삶을 지킬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