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이별의 글씨> 신아문예대학 수필가 구연식
편지는 상대편에게 하고 싶은 말 소식 용무를 적어서 보내는 것을 말한다. 평소 쌓였던 사연을 남이 들을까 귓속말로 전하고 싶은 애틋한 소꿉장난의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성문화를 무너뜨려 인간 본연의 순애보를 맺어준 것도 편지였다. 어쩌면 편지는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맺어주는 사랑의 전서구(傳書鳩)이다.
우리나라 6.25 전쟁 중에는 국가 공공기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어서 우편 업무도 정지되거나 마비된 상태였다. 전쟁 후 몇 십 년이지나 체신관서 창고 정리에서 배달되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들의 편지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미게 했던 경우도 있었다. 소설 『장마루촌 이발사』에서 6·25 전쟁 중에 잘못 전달된 전사 통지로 순영은 행여 동진의 유골이라도 찾으려 간호장교가 되어 전쟁터로 떠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동진은 불구의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으나, 얄궂은 운명의 편지가 두 젊은 청춘을 갈라놓았던 애틋한 사연도 떠오른다.
그 옛날 남녀 간에 사랑을 나누는 은밀한 곳은 물레방앗간이 유일한 장소였다. 다 나누지 못한 사연은 서로 약속한 돌담 사이에 쪽지를 끼워 놓고 서로 읽어보고 또 설렘으로 기다리고 만남을 이어 준 유일한 사설 우체통이었다. 어린 시절 사철나무 푸른 잎사귀에 탱자나무 가시로 무어라 끄적거려 이웃집 소녀에게 좋아한다는 의미로 손에 꼭 쥐여 주며 콩닥거리는 가슴, 붉어지는 얼굴이 부끄러워 냅다 집으로 달려와 안방에서 창구멍으로 그녀의 모습을 숨어 보았던 철부지 시절의 우표 없이 보낸 사철나무 편지가 새록새록 웃음 짓게 한다.
고등학교 때 어느 가을날, 첫눈에 나의 결점을 모두 갖춘 여고생 예쁜이를 우연히 만났다. 그날 이후 예쁜이는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책장을 넘기면 책갈피에 숨어 있다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 좋고 두렵기도 하여 책장을 덮고 한참 후에 책을 펴면 또 나타나서 나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예나 지금이나 특히 여자 앞에서는 소심하고 용기 없는 성격이라 더더욱 예쁜이 앞에 나타나서 좋아한다는 말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주소와 이름을 숨기고 편지를 써서 보내면 예쁜이한테 퇴짜를 맞아도 나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전주 시내 친구한테 빵을 사주고 주소를 빌리고 예쁜이 부모님이 혹시 보아도 들키지 않게 여학생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
소심하고 용기 없는 내가 그때는 무슨 배짱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관이다.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은 없었다. 그때부터는 공연한 짓으로 불안해한 자신이 밉고 주소를 빌린 친구 외에 다른 사람도 아는 것 같아 쥐구멍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나 점심시간에 친구는 학교 매점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빵 좀 사달라고 했다. 순간 나는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친구는 빙그레 웃으면서 예쁜이의 답장 편지를 내밀었다. 그 순간 친구에게는 빵보다 더한 것도 들어줄 기분이고, 나를 억누르게 했던 불안감도 어느 사이 날아가고 세상천지가 내 것 같았다. 학교 화장실에 가서 가슴 설레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어보니,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란 시를 파란 잉크로 그대로 옮겨 적은 답장이었다. 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몇 번이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며 읽고 또 읽었다. 그 시절에는 시내에 헌책방이 많았다. 나는 전주 시내 헌책방을 뒤지기 시작하여 김소월의 시집을 사 가지고 와서 시집을 뒤적거리면서, 너무 짧으면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초혼(招魂)’을 택하여 편지지에 산뜻한 파란색 잉크로 여러 번 적어서 가장 잘 써진 것을 골랐다. 날이 밝자 길거리 우체통에 넣으면 잘못될까 봐 그 당시 가장 번화가 공보관 사거리 육서점 건너편에 있는 전주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쳤다.
편지가 오면 나는 다음 날 아침에 꼭 전주우체국에 가서 답장을 보냈다. 예쁜이의 답장은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 올 정도였지만, 그 시절처럼 삶이 즐거울 때는 없었다. 그렇게 편지는 여러 번 오갔는데, 예쁜이는 나의 정체를 알았는지, 부모님께 들켰는지, 내게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하였는지 마지막 답장은 백지로 보내온 것이 예쁜이의 마지막 파란 이별의 편지였다. 내가 질러놓은 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 방황하며 몇 개월 동안 벼랑길과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철부지 청춘이 죄이지, 사람은 무죄였다고 위안하고 싶다. 그 뒤 나에게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긴 사연의 편지를 쓰는 낭만의 청춘은 가슴에만 담았지, 그 무엇에 얽매여 그리 탐탁지 못한 청춘을 보낸 것 같다. 어린 가슴에 상처는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지며 그 무엇으로도 치유가 안 됐다. 잊을만하면 파란 이별의 글씨가 문득문득 되살아나 평생의 옹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장마루촌의 순영한테 잘못 전달된 편지처럼 예쁜이가 보낸 파란 이별의 편지가 잘못 전달되었으리라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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