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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선택
창세기 24: 50~67
○ 리브가를 보내는 라반과 브두엘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창31:24, 삼하13:22
51.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24:13-21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54. 이에 그들 곧 종과 종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가로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창30:25
55.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가로되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창24:40
57.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창35:8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찌어다 창22:17
61.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 리브가를 만나는 이삭
62. 때에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창16:14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시72:12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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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선택 오늘은 지난 3주 동안 살펴보았던 ‘결혼’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결혼과 선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의 마지막 단계는 ‘선택’입니다.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교제했는가’ 또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가졌는가’ 하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서로 사랑하며 기다렸지만 마지막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결혼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결혼의 과정은 놀랍게도 구원의 과정과 아주 흡사합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이듯이 우리가 받은 구원도 하나님의 특별한 예정과 섭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희생의 대가를 치르셨다고 해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고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겠다’라고 말해야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을 참 좋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라고 말해도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야만 결혼이 이루어 집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고르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결혼
결혼은 상대방을 다 알고 난 후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다 알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오늘 믿겠다고 말하십시오.
49절을 보십시오.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배우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그 여자가 누구냐’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딸을, 당신의 누이동생을 내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로 보내주십시오’라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결혼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혼은 고르거나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을 놓고 밤새도록 저울질하며 고르지 마십시오. 그러면 비극적인 결혼을 하게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고르기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종은 ‘만일 리브가를 시집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거절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늙은 종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은 비굴하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떳떳합니다. 어떤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속상해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아부하지 않습니다.
50절을 보십시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의 가족들은 굉장히 지혜로운 대답을 합니다. 그들은 ‘만약 이 결혼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문제라면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부모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의견과 자기 기준이 옳다고 믿는 실수를 합니다. 자녀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부모가 살던 시대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신들 세대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기 쉽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간섭과 지나친 주장 때문에 자녀들에게 평생동안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결혼을 반대하거나 찬성해도 결국은 상처를 주게됩니다.
‘너는 이 사람하고 꼭 결혼을 해라’라며 자녀는 싫어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부칩니다. 그 와중에 자녀는 상처를 입습니다. 이 상처를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성숙한 자녀들이라면 결혼의 선택권을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는 자녀들이라면 무조건 자녀들에게 결혼의 선택권을 맡기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판단으로 적당하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모가 막아야 합니다.
51절을 보십시오.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리브가의 부모들은 당사자만 허락한다면 자신들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문제의 선택권을 부모가 갖지 않고 자녀에게 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와 자녀의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리브가의 부모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부모였습니다.
50절을 보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라고 말하고 있고 51절에는 ‘여호와의 명대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견과 문화와 가치관이 있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이런 부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그 자녀 리브가의 모습입니다.
리브가는 부모가 결혼의 선택권을 맡길 만큼 성숙함을 인정받은 여자였습니다. 만일 리브가가 철없는 결정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자녀였다면 부모가 이렇게 쉽게 그녀에게 결정을 맡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결정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고 믿어주십시오. 또한 이렇게 성숙한 모습으로 부모님께 신뢰받는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향한 놀라운 하나님 계획
또 하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의 적령기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결혼에 대한 책임과 의미를 알고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면 결혼해도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결혼을 책임질 줄 모르고, 결혼의 의미도 모르고, 또 결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다면 그 결혼은 피해야 합니다.
52, 53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한 가지 더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종이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사고구조가 하나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리브가의 부모에게서 승낙을 받고나서 먼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그 다음에 준비한 혼수감을 여자와 부모에게 줍니다. 이 늙은 종이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리브가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에 이미 혼수감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신부감을 예정해 주셨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 무거운 혼수감을 다 준비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결혼 전에 이 믿음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내 자녀의 배우자를 준비하셨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 전에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결혼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던 부부가 불행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유 때문에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나 현재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셔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기까지 하셨다. 하나님은 나를 여러사람 중에 섞여있는 하나로 기억하지 않고 나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기억하시고 간섭하시며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혼자 살아도, 결혼해도 그렇게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이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 믿음대로 됩니다.
믿음을 갖지 않으면 표류하는 배처럼 계속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고민하고 방황합니다. 하나님은 혼자 살게도 하십니다. 혼자 사시는 분은 혼자 사셔야 되고, 결혼할 분은 결혼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고,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며 나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내 삶을 예비하여 주셨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5년 10년 후에 꼭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또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며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고 사십시오. 그리고 믿고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그런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5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 곧 종과 종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가로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아브라함의 종은 죽으나 사나 하나님의 뜻과 주인 생각만 합니다. 이런 종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어떤 보상을 해 주기 때문에 이토록 충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너스를 많이 주거나 노후를 책임져 주면 이토록 충성할까요. 이 충성은 그런 것과 다릅니다. 말 그대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 종은 빨리 주인한테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하룻밤도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가족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시집 보내기 전에 딸과 열흘 정도 함께 지내기를 원합니다. 딸을 떠나 보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열흘 정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55∼57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가로되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종의 마음은 리브가의 가족들의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종은 빨리 가서 주인에게 모든 일을 보고하고 소식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했고, 리브가의 오빠와 부모들은 그 딸과 좀더 얘기도 나누고 정리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견이 부딪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리브가의 가족들과 부모들의 현명한 선택을 보십시오. 이 일도 본인에게 맡겼습니다.
이제 어떤 남자와 여자가 중매나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결혼하기로 결정을 해놓고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결혼 날짜는 언제 잡을 것인가, 결혼식은 교회에서 할 것인가 호텔에서 할 것인가, 식사는 뭘로 할 것인가, 주례는 누가 할 것인가 등 입니다.
더 예민한 문제는 혼수감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결정할 것인지를 이야기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물건을 장만할 것이냐’, ‘집을 살 것이냐 말 것이냐’, ‘자동차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이런 문제를 가지고 처음에는 점잖게 의논을 하다가 다음에는 논쟁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자존심 싸움으로 발전합니다. 이것들은 ‘일찍 가야하느냐, 열흘을 묵고 가야하느냐’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입니다.
목사인 저도 이런 문제들로 인해 헤어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제가 주례를 서기로 했다가도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쉽게 상처받고 상처주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 성숙한 자녀
우리는 결혼의 본질 보다는 결혼의 주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에 해답은 하나입니다.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부모의 체면이나 집안의 위상 때문에 겉치레와 위선적인 행동으로 결국 자녀의 일생을 망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8절의 이 문장은 짧고 대답도 간단하지만 이 뒤에 숨어있는 의미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부모가 아주 곤란한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말을 갓 배운 아이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럴 때 똑똑한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다가 ‘엄마, 아빠 다 좋아’ 또는 ‘엄마, 아빠 다 싫어’라고 합니다.
지금 리브가가 받은 질문도 이렇게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현명하고 용기있는 결단을 합니다. 한 마디로 부모님들과 가족들의 기대를 버리고 그 순간 떠나겠다고 합니다. 리브가의 결정은 단호했습니다.
대부분의 성숙하지 못한 부모는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열흘 정도 같이 있으라는 청을 거절하고 떠난다고 하다니’라며 이런 상황에서 무척이나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59∼6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리브가에게 섭섭하다고 야단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부모는 아주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녀에게 그걸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딸을 축복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결혼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줍니까?
어떤 부모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이라고 예식장에 참석을 하지 않겠다고도 하고 ‘너희들끼리 잘 살아’라고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식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부모와 관계를 끊고 자기들끼리 살겠다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대개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고생을 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관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런 소리에 절대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부모일수록 자식에게 만족하지 못 하고 많은 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은 상처를 받으며 자라게 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대물림 하지 말아야 할 ‘상처’
대부분의 많은 자녀들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 자녀는 부모가 되어서 자기 자녀에게 다시 상처 난 사랑을 그대로 또 전해 줍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자녀는 자녀대로 너무나 큰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리브가의 부모를 보십시오. 리브가가 부모의 맘에 들지 않는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을 존중해 줍니다. 그리고 축복하고 또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비록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며 자랐을지라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잘못을 지적하거나 상처를 주지 말고, 그가 잘못되거나 미숙한 결정을 했더라도 받아주고 인정하고 축복하십시오. 그가 특별히 잘못된 선택을 해서 실수를 했을 때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모의 축복과 인정을 받지 않고 자라난 자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 때에도 그 상처를 계속 이어갑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인정받고 축복받아야 합니다.
공부 못 한다고 너무 상처주지 마십시오. 공부 못 하는 자녀에 대해서도 부모는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아프다고 야단치지 마십시오. 본인은 오죽 속상하겠습니까. 결혼 좀 늦게 하고, 학교 좀 늦게 가고, 원하는 직장을 가지 못한 것은 상처만 받지 않으면, 이 자녀는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승리하며 자랄 수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간 리브가는 드디어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이삭을 만납니다. 이삭이 밖에 나와서 묵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이삭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진짜 내 신부감은 오는 것일까?’ 이삭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멀리서 말을 타고 자기 종과 한 여자가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제 이삭은 리브가를 맞이 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만남으로 그들의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결혼생활에 이런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복은 복을 낳습니다. 상처는 상처를 낳습니다.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야단치지 마십시오. 인간의 본질은 죄를 짓는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본질은 항상 반항하는 것이고 부모의 본질은 항상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녀들에게 결혼의 문제로 상처주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님 뜻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하용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