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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가짜인줄 알았는데 진짜 인것도 있고, 진짜 인줄 알았는데 가짜로 판명된 사건들도 있습니다.
영국의 한 노인이 벼룩시장에서 약 10파운드(한화 약 1만 7천 원)에 구매한 반지가 알고 보니 26캐럿짜리 진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이 반지는 훗날 경매에서 약65만파운드 (한화 약 1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보석 경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생 역전' 일화 중 하나인 '테너 다이아몬드(The Tenner Diamond)' 사건입니다.
진짜 인줄 알았는데 가짜로 판명난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사우디 왕자의 루비' 사건 (2010년대)인데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한 보석 수집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부터 어렵게 구했다는 무려 서적 크기만 한 초대형 루비 원석(약 6.2kg)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진짜인 줄 알았던 이유: 국가 공인 보석감정원장을 지낸 최고 권위자가 이 루비를 감정했고, 무려 140억 원이라는 감정가를 매겨 주었습니다. 심지어 지상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초대형 희귀 루비'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주인은 이 보물을 금고에 모셔두고 금이야 옥이야 아꼈습니다.
가짜로 밝혀진 반전: 수년 후, 주인이 이 루비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판매를 하려고 다른 정밀 감정소들을 거치면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알고 보니 루비가 아니라 값싼 천연 광물(동석 등)에 붉은색 염료를 넣고 겉만 그럴싸하게 깎아 만든 가짜였습니다.
14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보석의 실제 가치는 단돈 10만 원 안팎의 모조품에 불과했습니다. 최초로 가짜 감정서를 끊어주었던 보석 전문가는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물런 이런 진품명품 사건들은 큰 손해와 왕창피로 끝나지만 가장 중요한 진품명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의 신앙은 진짜 진품인가?”
“나는 정말 바른 신앙위에 서 있는가?”
“내 믿음은 참으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인가? 아니면 실망으로 끝날믿음인가?”
“내 믿음은 내 스스로 확신인가? 아니면 참으로 주님께서 인정하실 믿음인가?”
이 문제야 말로 가장 중차대한 인생 최대의 질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운명의 최종적인 결론은 구원받은 자로 영원한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성 밖에서 울며서 통곡할 것인가로 나누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마지막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너는 진짜 나의 백성이다. 창세로 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초청을 받는 이들과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외면 당하는 무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꼴지워지든지, 빛과 진리를 거절하여 어둠의 편으로 확정지어지든지 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확정지어지는 것을 인맞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7장의 핵심 주제입니다. 인맞은 참 백성에 대한 것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1-3)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라는 표현은 온 세계에 미칠 큰 환란과 재난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전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확증하여 인치시고, 인침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나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호 10:1)라고 비유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 7:2~3).
해 돋는 데서부터 올라온 천사에 대해서 한국사람들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합니다. 해 돋는 곳, 동방예의 지국인 우리나라가 아니냐?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우리 나라에는 이런 내용을 근거로 자기가 한국에 태어난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50여 명이 넘는다. 그들에 의하면 해 돋는 곳은 한국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라는 것이다. 해 돋는 곳이 과연 한국인가? 성경에서 해 돋는 곳이란 두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특수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고, 그냥 해가 솟아오르는 동쪽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민 2:3, 3:38; 신 4:41: 수 1:15, 12:1, 19:27; 시 50:1; 사 41:25, 45:6; 말 1:11).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다. 침례 요한의 부친 사가라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기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었다고 하였다(눅 1:78~79). 동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이기도 하다(마 24:27).
그러므로 인치는 천사가 해 돋는 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동편으로부터 왔다는 말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사가 동편에서만 올 필요는 없으므로, 인치는 천사들은 하늘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파견을 받았거나 혹은 동쪽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천사로 해석하는 방법이 성경적이다. 다른 천사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의 멸망을 지연시키고 있는 네 천사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칠 때까지 전 세계적인 재앙을 붙들고 있으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인(印)이라고 하는 것은 도장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소유권을 뜻하는 낱말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을 친다고 하는 것은 실제적인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확증된다는 읨이다. “이마”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사고와 사상과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대뇌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印)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나 행동이나 삶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확정을 짓는다는 말이며, 그렇게 확정된 백성들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 일어날 큰 재난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함을 받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별하신다는 사상은 구약(겔 9:2~6)에도 나타난다. 예루살렘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4절)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죄악적인 상태나 모습에 대하여 염려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인 맞은 자의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정욕과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엡 1:13; 4:30~32 참조). 예수님도 “하나님의 인 치신 자”(요 6:27)였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성령의 인치심은 성령의 인침은 예수님은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며 동행할 때,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혼에 **"너는 내 소유(소유권)이며, 내가 끝까지 보호할 것이고(보장), 너는 진짜 내 자녀가 맞다(증명)"**라고 지워지지 않는 영적인 도장을 찍으신 은혜를 뜻합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성령의 인도하심은 지속적인 경험입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지속적인 경험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새 언약의 축복안에 온전히 거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안에 확증됩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8-10)
성령을 통한 내적 확신은 반드시 외적 증거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열매이고,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나무와 열매는 하나입니다.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통하여 참된 나무임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성령께서 우리안에 이루어주실 역사입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그 인침을 받은 자가 144,000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12지파x12,000명의 숫자의 합입니다.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5-8)
이 숫자는 실제의 수인지 혹은 상징수인지는 많은 논란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숫자가 실제수라면 12지파도 이스라엘 12지파도 실제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실제 문자적 이스라엘, 혈통적 이스라엘이라면 우리와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혈통적 이스라엘은 새언약의 대상자가 아닙니다. 12제자로 시작된 교회를 참 이스라엘로 세우신 것입니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요한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 각 지파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지상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나온 144,000이란 숫자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44,000을 (3×4)×12,000으로 보고 있다.
즉 3은 삼위 일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동서남북 4방위에 근거한 땅과 우주의 수인데 이 두 수를 곱한 12는 성경에서 완전이다. 따라서 12의 제곱인 144는 최상의 완전수를 의미하며 거기에 충만을 나타내는 10의 세제곱을 곱하여 144,000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만일 십사만 사천 명을 상징적인 수라고 보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즉 영적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성도들로부터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완전하고 충만한 수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12 = 하나님의 백성
12×12 = 완전한 언약 공동체
1000 = 충만함, 큰 수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입니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주님의 의의 옷을 입었음을 말합니다.
종려 가지를 들었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을 찬양합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10)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누구일까요?
본문 구조를 먼저 보면
① 요한이 “들은” 것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② 요한이 “본” 것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계 7:9)
바로 들은 것이, 본 것을 통하여 구체화됩니다.
계시록에는 “듣고 → 보는” 구조가 자주 나온다.
예를 들어: 요한이 들음“유다 지파의 사자” 그런데 실제로 보니 “죽임당한 어린양”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예수님을 다른 관점으로 본 것입니다.
사자 → 왕적 승리
어린양 → 희생적 구속
마찬가지로:
“들은” 14만 4천 → 영적 군대, 조직된 하나님의 백성
“본” 큰 무리 → 구원받은 백성의 실제 영광과 보편성으로 이해하는 해석이 매우 강력합니다.
왜 같은 무리라고 보는가?
둘 다 마지막 시대의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14만 4천: 하나님의 인을 받음+ 환난 전 보호받습니다.
큰 무리: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어린양의 피로 씻음
둘 다 결국: 하나님 앞에 섬기며, 어린양과 함께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중요한 질문은 144,000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맞는 백성의 특징이 무엇인가? 나는 참으로 주님께 속해 있는가?입니다. 주님께 속한 자들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https://youtu.be/3hKWvs8bBV0?list=RD3hKWvs8bBV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