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하알로트카
시대를 초월한 토라(Timeless Torah)
저는 믿습니다. 당신도 믿고, 우리 모두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칼럼을 읽고 계시지도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든 신자가 반드시 우리 신앙 체계의 일부인 모든 의식을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이념을 따릅니다. 기준을 함부로 바꾸자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 훌륭한 이상들을 모두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합리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인 논리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해, 우리가 스스로 밝힌 신념과는 다소 모순된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는 그런 논리 말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가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전통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판은 그것이 현대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공감되는 관습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구식”이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현대 세계와 동떨어졌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부의 검역과 통용되는 위생 기준이 있는 시대에 코셔 식생활 법규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만약 하느님께서 정말로 사람이 안식일에 걸으라고 의도하셨다면, 헨리 포드는 결코 자동차를 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했던 한 유대인 유머 작가는,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이 날기를 원하셨다면 분명 공항에 가는 길을 더 쉽게 만드셨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오늘날 우리의 성 관습은 오직 합의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으며, 서로 동의한 성인들끼리의 일이라면 사람들이 침실에서 무엇을 하든 누가 신경 쓰겠느냐고 주장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토라의 율법은 3,30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과연 우리가 현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 고대의 규율을 진정으로, 그리고 철저히 지켜야 할까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애초에 우리에게 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시나이 사막을 헤매던 그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염두에 두셨다는 말입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라는 편협한 시야를 넘어서는 것을 보지 못할 만큼 근시안적이신 것일까요? 한 랍비가 무신론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지 않는 신은 나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21세기의 세상을 예견하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도 그분을 믿지 않겠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보시며, 모쉐의 시대에 계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똑같이 편안히 계십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는 고대 가나안만큼이나 그분의 능력에 도전이 되지 않습니다.
토라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들 앞에 행진하였다”(민수기 10:33)라고 말합니다. 라시는 이 구절을,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간직하고 있던 성막이 기적적으로 그들의 향후 야영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은, 토라(돌판에 구현된)가 한발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토라는 우리보다 앞서 갑니다. 따라서 토라는 단지 시대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것입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수많은 가치관과 생활 방식 중, 토라가 수세기 동안 장려해 온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최근 타임지 표지 기사에서는 자녀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서 돌보기 위해 성공적인 경력을 잠시 미루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토라는 처음부터 여성들이 다음 세대를 기르는 더 중요한 미쯔바를 이행할 수 있도록, 테필린 착용이나 하루 세 번의 기도 같은 시간에 구애받는 미쯔바에서 여성들을 면제해 왔습니다.
가족을 잃었을 때 시바(shiva)를 지내는 유대교 전통은 오늘날 모든 종교와 문화권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훌륭한 사별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야아콥이 아버지 이쯔학을 위해 렌틸콩을 요리한 것은, 이쯔학이 아브라함을 위해 시바를 지키고 있던 애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여성들은 미크바(mikvah)를 굴욕적인 것으로 여겨 외면했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은 이를 자신의 성(性)을 인정하는 최고의 방식이자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영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사다와 성전 시대 예루살렘,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미크바는 존재했습니다.
유명 인사들과 팝 아이콘들이 카발라를 공부하는 등 영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현상은, 실로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유대 신비주의의 가르침을 입증해 줍니다.
벨보텀 바지는 유행했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고, 머지않아 또 다른 계절이 올 때 다시 사라질 것입니다. 페이즐리 넥타이는 한때 필수품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금기시됩니다. 유행과 패션은 왔다 가지만, 신성한 가치와 ‘멘슐리히케이트(menschlichkeit: 이디시어 인간성)’의 도덕, 그리고 토라의 미쯔바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신 것처럼, 그분의 계명 또한 시간을 초월합니다. 만약 그것들이 우리의 유한한 눈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바로 토라를 우리 자신의 현실과 연결하고, 그 기준에 따라 우리 삶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와 우리 세상을 위해 마련하셨으니, 분명 그것은 가능합니다.
Rabbi Yossy Gol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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