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과학인가, 담론인가?
2011년 3월 일본에 삼중재난이 발생했다. 진도9의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원전사고는 최고단계인 7등급 사고였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가열된 핵 연료봉이 녹아내렸고 녹은 핵 연료가 땅을 파고 내려가는 차이나 신드롬이 발생했다. 차이나 신드롬이란 말은 녹은 핵 연료가 땅을 뚫고 지구중심을 지나 미국 반대편인 중국으로 나온다는 농담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미국에서 1979년 3월 개봉되었다. 여기에 기막힌 우연이 겹친다. 개봉 2주 후에 실제로 미국 동부 스리마일 섬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미국은 국내원전 계획을 전면 재수정 한다. 최근 캘리포니아는 전력난 속에서도 하나 남은 원전마저 폐쇄를 결정했다. 물론 동남아시아 쪽으로는 IAEA와 함께 원전기술을 장려하고 있다. 후쿠시마에는 현재 130만톤의 오염수가 거대한 탱크에 보관되어 있고, 오염수는 알프스(ALPS)라는 필터를 통해 처리된 후 바다로 방류될 계획이다. 일본총리는 IAEA의 검증을 받은 과학적 방법으로 오염수를 처리하겠다는 말로 과학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맞고, 틀리고가 확실해야 한다. 확실히 맞고, 확실히 틀릴수록 과학이다. 치과에서 흔한 질환인 충치의 예를 들어보자. 충치는 설탕에 의해 생긴다. 단맛을 내는 물질은 설탕말고도 자이리톨, 만니톨 등 많이 있다. 하지만 유독 설탕만이 세균과 결합해서 충치를 일으킨다. 이것은 확실히 맞다. 꼼짝없이 과학이다.
그렇다면 오염수 방류는 어떤가? 과학 안에서도 한 쪽은 찬성하고, 다른 쪽은 반대한다. 전에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철학자 푸코는 이런 것을 과학이 아니라 담론이라 했다. 찬성하는 쪽은 오염수를 충분히 희석하고 넓은 바다를 돌아 5년 후에나 한국해역에 도달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 한다. 반대하는 쪽은 처리된 오염수의 2/3가 오염기준을 넘으며 일본이 제공하는 샘플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인류의 공동자산인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고도 호수를 만들거나 탱크를 더 만들어 반감기가 10번 정도 지난 다음에 안전하게 농업용수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방사능 피폭과 암 등으로 인한 사망자와의 관계는 사실상 입증이 어렵다. 체르노빌 사고 후 방사능에 의한 사망자 수 발표에서 IAEA보다 그린피스는의 사망자 수가 20배 이상 많았다. 숫자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보다는 해석의 문제다. 원자력을 장려하는 IAEA는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 몸이 받는 방사선 양은 스웨덴 물리학자 이름을 따서 mSv(밀리시버트)로 표시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전세계적으로 일반인의 연간 선량한도를 1mSv로 정했다. 여기에는 자연방사선은 제외한다. 자연피폭량은 지역마다 다르며 세계평균 1인당 연간 2.4mSv이다. 이러한 자연방사선으로 인류는 유전자가 변이되고 선택되면서 진화해 왔다. 의료방사선의 경우, 최대한 적은 양의 피폭을 받아야 한다는 LNT법칙을 지켜야 한다. ICRP에서도 피폭량을 되도록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원칙이 있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보조금을 더 이상 주지 않는다는 발표로 주민들의 조기귀환을 종용했고 연간 피폭량 상한 기준을 1mSv에서 연간 20mSv, 20배로 올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20mSv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수치다. 기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준치는 언제든 변하며 국민은 생명정치에 도구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환경역학회는 후쿠시마 어린이들의 갑상선 암이 평균보다 20~50배 많다고 보고했다. 한국환경운동 연합은 연간 20mSv는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수치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과학적 합리성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몹시 불안해하고 피난생활에 지쳐있다. 후쿠시마 출신 여성들은 혼담도 깨지고 있다.
일본정부는 오염수 처리로 몇 가지 대안을 고민했지만 IAEA와 함께 최종 해양방류를 결정했다. 해양방류 비용은 34억엔으로 미국 스리마일 원전해체 시 선택했던 대기방출 비용 349억엔의 1/10수준이다. 온실가스로 열을 흡수한 바다는 지금 에너지를 잔뜩 머금고 스스로 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바다는 급격히 산성화되면서 대멸종을 겪고 있고 여기에 불을 갖고 노는 철부지 아이처럼 핵 폐기물까지 버려지고 있다. 인간은 10만종 이상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신물질의 한계선은 아직 수량화되지 않았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산업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위험사회에서 인간의 몸은 해로운 물질을 담는 그릇으로 일상에서 오염물질을 섭취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미세플라스틱도, 미세먼지도 있는데 왜 오염수만 탓하느냐고 한다. 벡이 주장한 위험사회의 본질을 잘 말해주는 멘트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위험사회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이 핵과 유전공학이다. 과학기술은 위험을 해결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위험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10여년 간격으로 일어났던 원전사고는 자연재해와 더불어 인간의 실수에 의한 인재이지만 어느 하나 사고의 원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하나의 사건에 복수의 조직이 연관된다. 완전하다는 원전은 불완전한 인간과 거대기술의 불확실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안전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오염수 방류를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사고 수습이 시작되는 셈이다. 녹아내린 핵 연료 100톤, 엉겨붙은 금속과 콘크리트 데브리가 364톤에 달한다. 도쿄전력은 아직 분명한 해결책이 없고 원전이 해체되어 주변국이 평온을 찾는데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원전 폐기물 처리과정이 잘못되면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마주하면서도 원전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위험사회에서 위험은 상대화, 관념화되고 진영논리에 빠진다. 위험사회의 특징이다. 자연과학은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경험을 비과학적, 주관적이라 비난하지만, 실험과학의 한계를 간파하는 경험의 중요성과 시민사회의 활동이 중요하다. 과학도 자기편 과학이 옳다는 파시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민주주의도 과학도 위기다. 유전공학과 거대자본의 결탁이 생물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과학도 중세 종교개혁처럼 새로운 프로테스탄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 가해 국가다. 후쿠시마 사고 역시 조직화된 무책임의 전형이었고 일본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당시 도쿄전력 사장은 사고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퇴후에 도쿄전력 자회사인 후지석유의 사외이사로 취임하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현장을 몸소 지휘하면서 방사능 피폭으로 암으로 고생한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던 날에 맞추어 자살했던 레가소프와는 대조적이다. 사고 원인과 대처, 오염수 방류까지 일본의 행태가 옛 소련보다 훨씬 못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오염수가 방출되는 30년 동안 어업은 지속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상한 물고기가 나타났다’하고 바다에서 바람과 함께 이상한 소문이 밀려오면 어민들은 또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진실은 괴담이 되고 괴담은 진실이 될 것이다.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는 한 가지를 꼭 조언한다. 북태평양을 돌아오는 회귀어류인 냉장명태, 냉장대구, 냉동고등어 등은 조심하자고 한다. 어린 학생들 학교급식, 방사선에 훨씬 민감한 임산부, 어린 여자아이들은 특히 조심하자. 방사능은 생명의 중심을 공격한다. 위험사회에서 가장 큰 반과학은 진영논리다.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내 안의 파시즘을 제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