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이 셨던, 고 "육영수"님의 38주년 추념식에 바치는 글,
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단, 국립극장 광복 제29주년 기념식장 에서. 식순에 따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던 순간( 이날 상오 10시23분)식장에 잠입한 북괴 남파 간첩 문세광(文世光)이 갑자기 단상으로 접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향하여3발. 대통령 부인 육영수(陸英修)를 향하여2발을 쏘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무사 하였으나. 육영수는 저격을 당하여 이날 수도 육군병원 최장집(서울 의대 신경외과)교수의 5시간 동안 응급 수술을 하였으나 오후7시. 당 48세로 비운에 운명을 하셨다..........
본인은 육군중사로 논산 제2훈련소(현 육군 훈련소) 교도대대(육군 제1225부대) 군수과 선임하사관으로 복무중 국가의 명을 받들어. 월남전쟁 맹호 혜산진 부대 제1대대 제3중대 제1소대. 선임하사관으로 배속되어 .
상
월남국 독립전쟁에서의 프랑스군 정예1개 여단이 전멸함으로써. 월남국 독립전쟁에서의 월남 해방군들이 독립 전쟁에서의승기를 잡았다라고 하는 프엔성 동쑤안군 하쭝리 소재에 악명 높은 킬러게곡 에 연하여 있었던 홍코산 게곡 중대 장기 매복 전투에서의 네몸같이 사랑하였던, "첨병 분대장" "김하사"와 "첨병 이었던 김상병" 그리고 "무전병 전상병" 이 그현장에서의 운명을 달리 하였음에도. 소대 선임하사관으로써 시신도 수습하여 드리지도 못하고. 여섯분의 전상 소대원님들과 같이 병원 헬기로 퀴논 십자성 106후송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어. 전신 다발성 파편창과 우측다리 절단술을 받고. 혼수상태에서 육일만에 깨어나. "주월사 이세호 사령관님"과 공병참모 "맹호 정득만 사단장"님의 문병을 받고. 세분 소대원님들의 소식을 전하여 듣곤 혼절하여.
전상에 고통과 세분 소대원님들을 애통해 하면서 마약(데-메론)에 의지를 하면서..................
얼마후 미군 수송기인 C-53후송기로.나트랑 십자성 102후송 병원에서 백마 전상 전우들을 같이 싫고. 사이공 탄손누투 미 공군 병원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군의관님 들과 제1회 항공 탑승 간호 장교님 들에게 인게 되어. 대한민국의 수송기인 C-46후송기로. 필립핀 클랔크 미 공군 병원을 거쳐 대한민국의 대구 육군의무사령부 통합병원으로의 귀국을 하여..........
야간 병원 후송 열차편으로 부산 망미동 국군통합병원 정형외과 208병동으로 전원되어. 재활 치료와 사회적응 훈련 직업교육등을 받고.
1973.1.31일부. "국" "육명(을)5호(43-1)로 면역 됨으로써...........
대한미국의 "상이군경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6.25 전쟁에 참전하여 불편한 몸이되신 상이군경회 선배님들을 접하면서 그 6.25 전쟁 참전 상이군경회 선배님들의 안타깝고도 가슴앞은 사연을 전하여 듣곤 같이 가슴아파 한적이 있었다.
1951년6월25일 일요일.김일성 공산 괴뢰들이 기습 남침으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 국군을 위시하여. 소년. 소녀병. 학도의용군. 재일 학도의용군. 국민방위군. 모두모두 떨처 일어나.16개국에 UN 참전국의 도움을 받으며. 1,129일간의 피흘려 목숨받쳐 처절한 전쟁에서의 나라를 위란에서의 지켜낸 구국의 영웅 6.25 전쟁 참전 상이군경 회원님들을 ...........
자랑 스러웠어야할 그 선배 회원님들은 워낙 어려웠던 나라 경제와 혼란한 정치 여건등으로 그 누구도 신경을 써주지 않으므로. 팔다리를 잃고 두눈이 실명되고서도. 부모 형제 그리웠던 소꼽친구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의 귀향을 하지를 못하고 전국에 산재하였던 "정양원"이란곳에 불편한 몸을 의탁하면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전상의 고통과 무료함을 달래기위하여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길거리를 방황하면서.국가와 정부를 원망하면서 ...................
동낭 아닌 구걸행각 짓거리를 일삼으면서 대포집과 음식점등에서 무전취식을 일삼으며. 깔꼬리와 목발등을 휘둘러 댐으로. 국가가 위란에 쳐하였을때의 피흘려 목숨받쳐 나라를 구하였다라고 하는 국국의용사, 영웅이란 명예와 긍지는 어느순간 간곳없고 "상이군인" 하면 오히려 사회에서의 행패나 부리고 땡깡이나 부리는 이상하고도 왜곡된 "집단"으로 "회원"으로 호도되는 처참한 모습으로 전락 하였다라고 하는 가슴앞은 사연을 전해듣곤 같이 가슴앞아 한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61년 5월16일 육군"소장 박정희"장군이 이끄시는 "5.16군사 혁명"이 성공을 거두 심으로 "박정희"장군께옵서는 제일먼저 부정부패를 일삼든 정치인 들과 정치권과에 연게되어 온갖 부정과 만행을 자행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의 원성과 지탄의 제1호이었던 정치 깡패 일당들을 일망 소탕 하시면서. 그 들에 목에 명찰을 걸게 하고 시가를 행진 시키고 그 우두머리들은 신속한 "군사 혁명 재핀소"의 신속한 판결대로의 형장에 이슬로 처단을 하시면서.그 졸개 들은 "국토개발단"이란 단체에 편입시켜 국가 재건에 임하게 하면서. 각 공공기관과 각 기업체에서 병역 미필지들을 색출 추방을 하시면서. 권세가와 세도가의 자식들을 "특"이란 "빨간"도장을 찍어 별도로 관리를 하시면서. 최전방 전투사단으로 배치를 시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하시면서....,,,,
보건사회부의 유명무실하였던 "군사원호과"를 서울 퇴게로에 있었던 구 해군본부 건물에 "원호청"이란 독립된 기관으로 별도로 설치를 하시면서"원호청장"을 장관급으로 예우르를 하시면서.6.25 참전 상이군경회 선배님들을 반강제적이다 십게 각 공공기관과 각 기업체에 일지리를 마련하여 주심으로써. 비로서 어렵사리 가정을 이룰수가 있었으면서 또 그자녀들을 위하여 교육과 취업문제들을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하여 주심으로써 비로서 나라가 위란에 처하였을때에 피흘려 목숨받쳐 지켜낸. 구국의 용사. 영웅 이란 명예와 긍지가 하늘에 솟구쳐다라는 사연을 듣곤 같이 감격해한적이 있었다.
본인도 군경력 밖에 학식이나 기능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크나큰 은공으로 국영기업체에 입사되여 무난히 정년퇴임을 할수가 있었으면서 그 크나나큰 은공은 아직도 가슴깊이 간직 하면서 아마 영원할것입니다.......
1964년7월18일~1973년3월23일 까지 8년6개월간의 걸쳐 우리 국군은 연32만명의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전투수당등을 80%이상을 가난하고 어려웠던 고국 대힌민국으로 송금 함과 아울러 우리 기업체 들이 건국이래 최초로 해외인 월남국으로 진출 함으로서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 면서 경제 기반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중화학 공업 육성을 위한 기초를 다짐으로써 오늘날에 세계 경제 10위권에 경제 강대국을 이루었으며, G-20 세계 정상회담의 의장국 으로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자랑스럽게 성공리에 마추면서. UN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그리고 우리 국군이 세계 일등급 국군으로 성장 발전케 되어 지금은 세계 곳곳에 파병되어 세계 평화 유지군으로 세계 평화와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에 일조를 하면서 국격을 드높이고. 원조를 받든 나라에서 원조를 지원하는 국가로 성장 발전케 되어 한층더 강력하게 보강된 국방력과 세계 평화에 이받이 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으로 발전된점으 자랑 스럽게 생각 하면서...........
본인은 1975년도에 상이처의 재발과 몸속에 남아 있었든 몇개의 파편등의 부작용등으로. 서울 오류동 "국립원호병원" 별상 병동에 입원 가료중 8월14일 고 "영부인이셨던 육영수"닝의 첫기일을 맞이하여. 살아 생전 우리 월남전쟁 상이용사들에게 "용기를 잃치 말라"시면서 그인자 하심과 자애로운 모습으로 정감어린 손길로 각별히 보살펴 주심으로 우리들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삶에 큰힘을 보태주시던 그은혜를 잊을수가 없어 병원당국을 찾아. 국립묘지(현 국립 현충원) 육영수님의 묘소 참배를 위한 차량 지원요청을 하여. 원호병원 별상 병동에 입원가료중인 동료 환우30여 전우들과 같이. 동작동 국립 묘지 현충원앞 주차장에 도착여 근무 헌병(당시 근무자는 육군 헌병이었음)을 불러 우리들은 월남전쟁 참전 상이용사들로 지금 국립 원호병원 에 입원가료 중인 환자들로서. 팔다리를 잃고 두눈이 실명된 중 상이용사들로서 스스로 걸어갈수가 없는 환자들이니 책임자를 만나게 하여 달라고 하여. 근무 책임자를 만나 위와같은 말을 하니 괴히 승락을 하고 헌병 백차로 묘소에까지 에스코트를 하여 줌으로 육영수 님의 묘소에 도착하여 보니 묘소 참배 시민들의 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검은 양복 정장차림에 묘소 참배 진행요원들이 시민들의 묘소 참배 를 잠시 멈추게 하고 우리환우들을 일일이 업어 육영수님의 묘소 참배 행사를 끝맞이니,KBS TV. MBC TV. TBC TV(동양TV) 추재진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려. 본인은 살아 생전 우리 월남 전쟁 참전 상이용사 들에게. "용기를 잃치 말라" 시면서 우리들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삶에 큰 힘을 주시고.희망을 주시던 그 인자하심과 자애로운 모습으로 우리삶을 각별하게 도와주시던 그 크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수 있는 길은 이것 밖에 없어 이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렇게 왔노라 인터뷰에 응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 하다..............
고 "육영수"님의 38주기 추념식을 맞이하여 영원히 거룩하게 기리면서...........
부디부디 영면하소서. 부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