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선 별이 빛나고, 도서관에선 말이 빛난다. 토요일 오전의 도서관은 책 속으로 빛을 감춘 '말(言)'들을 채집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한가하고 여유롭다. 평일 내내 이어지던 직장에서의 긴장과 분주가 주말 도서관에선 완벽하게 사라진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집을 나와 남산을 아래쪽으로 길게 두른 3km의 순환 산책로를 걷고 도심을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내려와 '서울도서관'으로 향한다. 어딘가로 숨어들 듯 넓은 서가의 조용한 구석 자리에 가방을 놓고 살포시 눈을 감는다. 이내 책 내음이 은은하게 풍겨온다. 코끝을 맴도는 기분 좋은 향기를 안내자 삼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상을 빛내주고 있는 말들에 대해 묵상한다. 세상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5000년 전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 모양의 말, 3000년 전 풀잎에 새겨진 서정과 서사의 말, 2000년 전 양가죽에 새겨진 신앙의 말, 500년 전 종이에 새겨진 과학의 말까지 우리는 늘 말과 함께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성의 말, 문학의 말, 사랑의 말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스도교 성서인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시작한다. 태초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태초에 존재한 그 말씀들이 하늘, 땅, 별, 눈, 비, 풀, 꽃, 동물, 사람을 만들어냈다. 옛사람들이 한 일종의 비유겠거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뉴턴이 발견한 중력의 법칙(F=ma)이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E=MC2)도 모두 신의 말들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한다. 사람의 유전자도 단백질을 만들 때 쓰는 '정보'라는데 그럼 인간의 존재 자체도 그 말씀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에 앉아있으니 책 속의 말들이 비범하게 느껴진다. 밤이 되면 저 서가의 책들이 둥둥 날아올라 스스로 펼쳐지고, 그 안에 빼곡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스르르 종이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을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책을 이탈한 글과 말들이 서로 부딪치고 비껴가며 이 세상 사물을 만들고 생명을 조합하는 풍경을 몽상한다. 다양한 판형의 책 속에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인 글씨들은 어쩌면 수십억 년에 걸쳐 우주와 생명을 만들어낸 뒤 지쳐 가라앉은 말들의 잔해일 수도 있겠다. 맑은 시냇물 바닥에 침전한 고운 흙처럼 지금은 책 속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세상이 곤경에 처하면 문자들은 다시 꿈틀거리며 책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태초에 우주를 빚던 말씀으로 살아나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고풍스러운 서울도서관의 원목 문이 열리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마치 산부인과 병동의 인큐베이터처럼 아늑한 시간도 잠시, 책을 검색하고, 서가 사이를 오가고, 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들의 수런거림에 묵상과 몽상을 중단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향한 곳은 도서 분류 번호 200번 대의 서가. 그곳엔 종교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다. 신성한 책들 사이 좁은 회랑을 거닐고 있자면 은총과 축복의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나는 불교의 선(禪)을 다룬 책들 앞에서 멈칫했다. 그 앞에서 팔만대장경을 떠올렸다. 앞뒤로 한자들을 빽빽하게 채운 나무판이 팔만 개여서 팔만대장경이라 불리게 된 말씀. 그곳에 새겨진 전체 글자수는 자그마치 5,000만 개가 넘는다. 조선왕조실록 전체 글자 수에 버금가는,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한 왕조 국가가 500여 년간 펼친 역사의 폭과 깊이를 견줄만하다니! 함축적인 뜻글자인 한자도 그럴진대 한글로 풀어썼다면 도대체 얼마나 됐을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불교는 참 희한한 종교다. 우주의 팽창처럼 늘어나 방대해진 말들을 어느 순간 방향을 돌려 응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770자의 <화엄경 법성계>가 나오고, 584 자의 <신심명>이 나오고, 260자의 <반야심경>이 나온다. 모두 바다처럼 널리 퍼진 불교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1,000자 이내로 요약하겠다는 야심찬 기획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글자도 필요 없다'라고 선언하며 선으로 가는 길을 튼다. 언젠가 팽창을 끝내고 빅뱅 이전의 한 점으로 수축할지 모를 우주의 길을 예비라도 하는 걸까. 그러나 다시 말씀의 욕구를 참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선서(禪書)'의 범람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묻는다. 말들은, 책들은, 도서관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까. 며칠 전 괜한 일로 마음이 상해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지칠 때면 한 번씩 찾는 곳이다. 그곳엔 세상에서 손꼽힐 만큼 외롭고, 고즈넉하고, 적막하고, 충만한 공간이 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말없이 앉아있는 '사유의 방' 이다. 그곳에는 가벼운 뺨을 가냘픈 손가락 하나로 받치고 생각에 잠겨있는 반가사유상이 나를 반겨준다. 우주의 삼라만상에 인간의 생로병사까지 고뇌하는 듯 하지만 얼굴은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다. 파도가 멈춘 바다처럼 맑고 잔잔해야 비로소 세상을 담을 수 있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우주의 중력장처럼 주위를 휘감으며 보통 사람들의 번뇌를 녹여버리는 사유의 장(場)엔 청년 붓다의 숭고한 세계가 흘러넘치는 중이다. 나는 그저 그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시름을 떨쳐버린다. 도서관이 내게는 반가사유상이 없어도 또 하나의 사유의 방이 된다. 말은 곧 사유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세상을 떠돈 말들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나는 무엇을 사유하는 것일까. 주말 이른 아침에 한가히 도서관에 앉아 나는 어쩌면 2,500년 전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반가사유'하던 젊은 붓다를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태초부터 하늘에서 쏟아져 세상을 헤매다 이제 책 속에 둥지를 튼 말들을, 한쪽 무릎을 접어 올린 채 책상에 기대어 앉아 생각하는 적멸의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어쩌면 오늘 도서관에 가득 찬 말들은 아주 먼 옛날 하늘 위에서 빛나던 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이지형(에세이스트)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대불교조각’ 전에 함께 나온 국보 78호(왼쪽), 83호 금동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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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희망 가득한 11월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
감기 유의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동트는아침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