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말 / 박분필
푸른 들판을 종일 떠돌던 하얀 말 한 마리 뜨거운
방황의 숨결이 내게로 손을 뻗는다
하얀 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푸른 말이
좋아 푸른 말을 그려 거절당했다는 고갱의 그림에서
탈출한 푸른 말일까
무명베에 푸른 풀물이 배어들 듯 하얀 말이
푸른 말로 변해가는 저 한 폭의 명화
슬픔을 지닌 슬픔
슬픔을 삭여낸 슬픔
가지고 있던 많은 조건들을 다 버리고 떠나온 그 길과
저 길을 잠시 더듬어 보는 듯, 그는 마치 눈만 커다랗게
살아있는 것처럼, 뻣뻣하고 긴 속눈썹을 꿈틀거린다
해질녘 으슴푸레한 빛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찬 기운을 견디며 넓은 초원의
풍경을 굶주린 듯 응시하는 저 갈망은 아마도 증오나
욕망이 아닌 새롭고도 강렬한 호기심일 것이다
-- <애지>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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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분필 시인
울산 울주 출생.
1996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창포 잎에 바람이 흔들릴 때』 『산고양이를 보다』 『바다의 골목』 등.
동화집 『하얀 전설의 날개』 『홍수와 땟쥐』.
2011년 KB동화공모전 대상 수상. 2020년 《문학청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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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인간과 아주 가까운 동물이며, 아름다운 머리와 갈기와 그 건강하고 튼튼한 두 다리는
하룻밤에도 천리를 달린다.
옛이야기와 신화 속에서의 말은 날개가 달렸고, 그 천마를 탄 인간은 천하무적의 영웅으로
만인들의 존경과 찬양의 대상이 된다.
비록, 옛이야기와 신화 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백마를 탄 기사는 우리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줄 영웅이며,
모든 연애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검은 말이나 갈색의 말보다 하얀 말이 더 우월하고 우수한 종일는지는 모르지만,
하얀 말은 순수함과 정결함의 상징이며, 모든 고귀하고 위대한 영웅들이 좋아했던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박분필 시인의 [푸른 말]이란 어떤 말이란 말인가?
실제로 폴 고갱이 푸른 말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말은 젊고 건강하고 영원한 청춘의 말이며,
푸르고 푸른 초원의 야성을 지닌 말이라고 생각된다.
“푸른 들판을 종일 떠돌던 하얀 말 한 마리 뜨거운/ 방황의 숨결이 내게로 손을” 뻗고, “하얀 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푸른 말이/ 좋아 푸른 말을 그려 거절당했다는 고갱의 그림에서/ 탈출한 푸른 말”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러나 “무명베에 푸른 풀물이 배어들 듯 하얀 말이/ 푸른 말로 변해가는 저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은 상상 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슬픔을 지닌 슬픔/ 슬픔을 삭여낸 슬픔”으로 박분필 시인은
이 [푸른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쨌든, 하얀 말로서의 미모와 건강과 영광과 찬사, 즉, 수많은 조건들을 다 버리고 떠나온 푸른 말,
그가 떠나온 길을 잠시 더듬어 보는 것처럼 큰눈의 긴 속눈썹을 꿈틀거리는 푸른 말----,
박분필 시인은 그 푸른 말을 바라보면서 “해질녘 으슴푸레한 빛”과 함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인간과 짐승의 생애는 단 한 순간이며, 그 짧은 순간임을 깨달았을 때는 깊고 깊은 회한이 남는다.
아차, 하고 잘못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삶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매우 어리석고 우매하게 살았다는
자기 책망과 질책이 하얀 말의 삶을 버리고 푸른 말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찬 기운을 견디며”가 그것을 말해주고, “넓은 초원의/ 풍경을 굶주린 듯 응시하는
저 갈망은 아마도 증오나/ 욕망이 아닌 새롭고도 강렬한 호기심일 것이다”가 그것을 말해준다.
강렬한 호기심은 [푸른 말]의 꿈의 원동력이고, 그 꿈이 해질녘의 으슴푸레한 빛으로 타오르며,
내일의 아침을 약속한다.
[푸른 말]의 기사는 꿈이 큰 자이며, 꿈이 큰 자는 그 어떤 고통도 다 받아들여 그의 충신으로 삼는다.
“슬픔을 지닌 슬픔”을 “슬픔을 삭여낸 슬픔”으로 발효시키고,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땅과 하늘을 천마 페가수스처럼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나 자신의 주연배우이고, ‘나’의 행복의 연주자이다.
우리 시인들은 모두가 다같이 짧고 슬픈 인생을 영원하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모시키기 위하여
고통을 충신(호위무사)으로 거느리며,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시바이고 마호메트이며, 나는 부처이고 예수이고, 나는 호머이고 셰익스피어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을 타고,
넓고 넓은 초원과 이 우주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가정 속의 존재이고, 사회 속의 존재이다. 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의 존재이고, 국가 속의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을 타고 가야지만,
그 모든 점에서 솔선수범하고 사회 속의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유한하고 인간은 영원하다.
시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고, 우리는 아름다운 삶과 행복한 죽음을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