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소금강, 운악산 눈꽃산행과 경건한 시산제 행사
* 일시 : 2024. 2. 25(일) * 장소 : 운악산(雲岳山,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 인원 : 48명 * 코스 : 주차장~출렁다리~눈썹바위~병풍바위~망경대~정상(935m) ~절고개~코끼리바위~현등사~주차장 |
오늘은 매우 뜻깊은 날이다. 우리 동서남북산우회는 가평군에 위치한 운악산 산행을 마친 후 시산제(始山祭)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운악산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시산제 준비 관계로 몇몇 인원만 남고 보무당당(步武堂堂) 산을 오른다. 운악산(雲岳山)은 포천군과 가평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릴 만큼 산세와 기암괴석, 계곡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입춘, 우수도 지나고 낼모레면 꽃피는 춘삼월 – 새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아침부터 눈발이 가볍게 흩날리고 있다. 아마도 올겨울 마지막 내리는 서설(瑞雪)이리라.
현등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30분 정도 오르니 좌측으로 출렁다리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지그재그식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르면 요즘 운악산의 떠오르는 명물 출렁다리가 등장한다. 작년 그러니까 2023년 7월 개통한 다리로 길이 210m, 높이 50m, 폭 1.5m 규모로 조성된 다리이다. 최근에 설치한 따끈따끈한 시설물로 가장 인기를 끌고 있음은 당연하다. 이름은 '출렁다리'인데 출렁거리지는 않는다. 강철 소재로 워낙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실로 압권(壓卷)이다. 저 멀리 눈 덮인 주변 산들의 첩첩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출렁다리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는데 줄곧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눈도 제법 많이 쌓여 있어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한다. 멋스러운 눈썹바위를 통과하여 계속 오르고 또 오른다. 눈밭에는 산짐승 발자국도 더러 찍혀있고, 높은 나뭇가지에는 푸르싱싱 초록빛 겨우살이가 나 보란 듯이 옹기종기 걸터앉아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눈은 점점 많아지고 산길은 가파르다. 바윗길, 돌길, 계단길, 로프길 등 다양한 길을 체험한다. ‘악(岳)’자 붙은 산은 모두 고봉준령(高峰峻嶺)으로 산세가 험준하다고 했던가. 운악산 역시 결코 예외는 아니다. 경사가 급한 바윗길에 더구나 미끄러운 눈길에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라 너나없이 힘겨운 산행이다. 이마엔 땀방울도 맺힌다. 양사언의 시조(時調)가 절로 읊조려진다.
운악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산만 높다 하더라.
숨도 가쁘고 힘들긴 하지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눈부신 은빛 설경(雪景)은 더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우와! 원더풀! 투더풀!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만발한 눈꽃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뭇가지마다 목화송이처럼 하얗게 핀 눈꽃과 상고대, 그리고 바위를 덮고 있는 탐스런 눈은 포근한 솜이불과도 같다. 설국(雪國)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하며,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원없이 담고 또 담는다.
눈앞에 우람 장쾌한 병풍바위가 펼쳐진다.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水墨畵)인 양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영원한 명작 진경산수화(眞景 山水畵)가 오버랩 된다. 눈 덮인 크고 작은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은 노련한 석공이 잘 다듬어 놓은 듯 아름다운 풍광이다.
망경대를 통과하여 마침내 최정상(935m)을 접수한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시야가 확 트이며 주변 산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가 바로 지상천국! 저 높고 푸른 하늘을 보라.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노라니 천하에 부러울 게 없다.
지금 이 시각 저 아래에선 총선(總選) 공천 파동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옥신각신 각축전(角逐戰)을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시끄럽고 혼탁한 세상의 절정이지만 이곳은 신선세계나 다름없이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우린 정상 눈밭에 옹기종기 주저앉아 간식에 막걸리도 한 잔씩 곁들인다. 이 감흥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졸시 한 편을 지어본다.
장쾌한 운악산
봄으로 들어서는 길목
하늘 향해 힘차게 용틀임하는
은빛 향연의 운악산
명물로 자리매김한 출렁다리
수묵화 닮은 낙락장송 병풍바위
어느덧 환희가 샘솟는다
하늘 맞닿은 눈덮인 능선
구름 꿰뚫은 거대한 암봉
기지개 켜는 산울림 소리
저 아래 시끄럽고 혼탁한 세상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제 사명을 다하고 있다
눈꽃에 취하고 행복에 취하고
장쾌한 기백 넘쳐흐르는
위풍당당 운악산을 사랑하노라.
이제 하산 시작... 절고개에서 코끼리바위 쪽으로 하산하는데 경사가 꽤 심한 편이다. 이른바 악명 높은 코스로 소문이 나있다. 더구나 이쪽은 응달지역이라 눈이 더욱 많이 쌓여 있고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온다. 아이쿠, 엉덩방아도 제대로 찧는다. 비탈지고 미끄러운 눈길을 안전을 기하며 조심조심 내려오면서도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도 한다.
한참을 내려오니 고즈넉한 현등사가 나타난다. 현등사(懸燈寺)는 신라시대 법흥왕 때(514년) 창건하였다 하니 15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고찰이다. 뎅그렁 뎅그렁,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현등사를 뒤로 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온다. 우측 운악계곡의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마침내 원점회귀(原點回歸),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눈꽃산행으로 갑진년에 값진 보약 한 첩을 섭취하였다.
자, 이제 시산제 행사가 진행된다.
이미 행사 준비는 정갈한 모습으로 완료되어 있다. 금번 시산제 행사는 갈매산악회 포함 48명이 참석하였다. 시산제(始山祭)란 무엇인가? 매년 새해가 시작될 무렵 산악인들이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神)에게 지내는 제사로써 회원들 상호간의 사랑과 무사산행, 만사형통, 화합소통,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 자연을 항상 아끼고 사랑할 것을 기원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야루 박률 부회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한다. 사회자의 시산제 개시 선언과 함께 국민의례,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에 대한 묵념, 운산 산악총대장의 ‘산악인 선서’가 이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엄숙 경건한 분위기다. 신을 맞이하는 강신례(降神禮)에 이어 신에게 절을 하는 참신례(參神禮), 제주가 첫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회장의 축문(祝文) 낭독,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아직 잔을 올리지 못한 회원 중 희망자가 잔을 올리는 헌작(獻爵), 축문을 불태우며 소원을 비는 소지례(燒紙禮) 순으로 진행한다.
제를 마치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음식, 떡, 막걸리를 음복(飮福)하면서 행사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오늘의 이 행사를 위하여 며칠 전부터 계획, 준비, 실행에 헌신 봉사하신 나춘임 총무님을 비롯하여 일사불란하게 협조하신 동서남북산우회 여러 임원진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조금 전 올랐다 내려온 운악산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기만 하다. 심호흡을 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꿈틀꿈틀 기지개 켜는 땅울림 소리,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사뿐사뿐 봄처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희망의 봄은 바로 우리 코앞에 와있다.
오늘 운악산 눈꽃산행과 시산제 행사의 고운 추억을 한아름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길에 오른다.
여기 맹호 정정조 회장이 낭독한 '축문' 전문을 소개한다.
축 문(祝 文)
오늘은 2024년 갑진년 용의 해 하고도, 2월 스무다섯째 날
동서남북산우회원 일동은 이 땅의 산하를 굽어보시며 모든 생육을 주관하시는 신령님께 엎드려 고합니다.
저희 산우회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산과 대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매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단련해 왔으며, 이달로써 191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우리 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함께하고 있는 회원과 새롭게 저희와 인연을 맺어 가족처럼 산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지신명께서 저희 산우회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은덕이 있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저희가 오늘 이곳 경기도 가평 8대 명산의 하나인 ‘운악산’을 찾아 시산제를 올리는 것도 그간 천지신명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금년에 계획한 서리산, 지장산, 갈모산을 비롯해 여러 곳을 트래킹하는 동안 단 한 건의 불미스런 사고없이 모두가 안전한 산행, 편안한 트래킹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저희들의 작은 정성을 모았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더불어 바라옵건대, 저희들이 자연산천을 찾을 때마다 이 대자연을 한없이 사랑하는 가운데 감사한 마음과 겸허한 정신을 갖도록 늘 일깨워 주옵소서. 또한, 성현의 말씀에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하였듯이, 산을 좋아하는 우리 회원들 모두 어진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고, 산 정상에서 느끼는 감동을 통해 행복감도 만끽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산행길 예기치 않은 위험도 많은 만큼 저희들의 발걸음을 늘 지켜 주시고, 회원 상호간에도 지금처럼 한 가족과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오늘 부족하지만 저희들이 정성과 사랑으로 음식을 마련하였사오니 흔쾌히 받아주시기를 진정 바라옵나이다.
상 향(尙饗)
2024년 2월 25일
동서남북산우회원 일동
첫댓글 오 감사합니다.
그날 시산제 사회보느라 수고했어요.
깔끔한 진행~~
역시 명월님의 표현력은
대단하십니다 배울점도
너무 많구요 감사합니다 ~~
늘 유쾌하신 정훈님, 고맙습니다.♥♡
역시 울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좋은글 많이 써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송화님 고맙습니다.
24일도 우리 동서남북과 함께~~
오늘도 즐거운 하루 ~ ♪♬
청풍은 명월하고~~
명불허전 이로구나~~~
얼쑤~~~
고맙습니다 ★
와우 감사 감사 역시 수필가요 시인이요 ....
회장님이 그날 낭독한
祝文도 압권이로소이다.
@한율(청풍명월) 회장님 축문이 아주 멋져셨군요,
@등대지기 (태백,서동운) 옳소, 최고의 축문이었지요.
설산. 운악산 산행및 시산재 새해에도 안산. 즐산 모두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멋쟁이 등대님, 태백 잘 지키고 계시죠?
금년엔 얼굴도 뵐 겸
우리 함께 산행 기회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