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그날도 내 고무신을 사오시기로 하셨는데 전날부터 재어 놓은 지푸라기 끈을 청마루에다 놓고 그냥
가신게 아닌가.
나는 그 끈을 들고 선창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무정한 객선은 하얀 물살을 가르며 떠나가고 있었다.
오후 4시경에 그 객선은 장꾼들을 싣고 마을로 다시 돌아 왔는데, 선창가에는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내가 선창가로 엄마를 마중을 가는 때는, 제삿날이나 명절 때 뿐이었다. 그때는 먹을
것과 옷 등을 사오시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제삿날도 명절 때도 아니었지만 새 신발을 사오시기로 하였기 때문에 달려가서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던 다라이를 얼른 받아서 들었다.
집에 와서 신발을 신어보니 발이 헐렁하였다. 문수를 보니 10문7이었다.
“어무이, 왜 고무신을 큰 걸로 사왔습니까예?”
“말표 신발집에 갔더만 조선 사람들은 대부분 십문칠을 신으몬 된다꼬 그냥 십문칠로 가져 가라카데.
그래서 갖고 왔는기라.”
“발이 안 맞으몬 다음 장날에 가서 십문오로 바까오께.”
“아, 아닙니더예. 발은 금방 자란다 아닙니꺼.”
나는 닷새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신겠다고 우겼다.
“이거 보이소 어무이. 신이 별로 안 크다 아닙니꺼.”
나는 억지로 발을 뒤꿈치로 옮기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슬리퍼처럼 고무신을 끌면서 신고 다녔다.(후략)
-김장주의 「십문칠」
설 추석 명절에 맞춰서 부모님이 사 주시는 고무신을 머리맡에 고이 모셔놓고 잠들었던 일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님은 늘 한 치수 큰 신발을 골라 오셨다. 지금의 발 보다는 자꾸 클수록 맞아야 한다면서. 1,2년이
지나 내 몸은 크게 변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너덜너덜해서 더 이상 착용할 수가 없었다.
신발 사이즈를 현재는 ‘mm’단위로 계산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던 5-60년대에는 ‘문’단위로 크기를 정했다.
문(文)이란 길이의 단위로 1문은 약 2.4센티미터라고 한다. 당시 성인 남자들이 신발을 구입할 때 ‘십문칠’사이즈를
선택하면 대충 다 맞았다. 그런 연유로 ‘십문칠’은 ‘잘 맞다’는 경상도 사람들의 사투리로 발전했다. 신발이 아니더라도
크기나 길이가 맞으면 ‘십문칠’이라고 했다. 너무나 익숙했던 말인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첫댓글 십문 칠 딱 맞네요..감사.
친구들, 코로나와 무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허어! 오랜만에 친구덕에 정겨운 말을 듣네그려.
어제 오후 친구 고 영조 빈소에 친구들과 문상하고,
근처 식당에서 소주잔 기우리며 고인에 대한 추억 한 토막씩 꺼집어 내었는데,왜그리 소주가 쓴지...
다들 건강관리 단디하입시더.
이 더운 여름을 어찌 지내시오?
건강 관리 잘 하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