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10월 한국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관심이 있다는 소식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이 일로 히딩크 감독 재부임을 요구하는 이들이 온라인상의 모임을 조직하기도 했고 여론도 뒤흔들렸다. 신태용 감독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히딩크 감독이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절차상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지도자 생명을 걸고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신태용 감독의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데도 그를 내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해프닝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았다.
히딩크 논란의 장본인 노제호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을 배척하고 협회 입맛에 맞는 신태용 감독과 함께 가기로 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협회를 적폐로 규정했다. 시간이 흘러 잦아들긴 했지만 히딩크 감독을 신처럼 떠받들며 여전히 그의 재부임을 외치는 이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축사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댓글창에 협회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과 히딩크 감독 찬양 글을 조직적으로 남긴다. 최근에는 히딩크 감독의 생일인 11월 8일에서 따와 118명이 네덜란드에 가 히딩크 감독을 만나겠다고 계획했지만 성대했던 그들의 계획은 두 차례나 무산되고 말았다.
이 모든 논란의 시작과 중심에는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인 노제호다. 에이전트를 그만두고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제호 총장은 이 ‘히딩크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그로부터 “한국이 본선 진출하면 ‘헌신(dedication)’하겠다”라는 답을 들은 뒤 이를 본인 뜻대로 해석해 협회와 한국 언론에는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고 전달한 게 바로 노제호 총장이다. 그는 이후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 진출 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하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노제호 총장의 방식은 다 잘못됐다. 히딩크 감독의 의지와는 다른 의미를 전달해 히딩크 감독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협회 또한 히딩크 감독의 제안을 거절한 적폐 세력이 됐다. 이뿐 아니다. 공식 문서라고 할 수도 없는 개인적인 ‘카톡’으로 기술위원장에게 충고까지 했고 이를 여론에 공개해 여론몰이를 했다. 지금도 ‘축사국’을 비롯한 일부 팬들은 反협회 감정으로 뭉쳐 히딩크 감독을 추앙한다. 처음부터 대표팀 감독 선임에 아무런 자격도 없는 이가 협회를 들었다 놨다 했다. 노제호 총장은 대표팀 뿌리를 흔들었고 이제 이 여파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노제호 총장은 어느새 조금씩 잊혀 가게 됐다.
전세진이 갑자기 해외로 떠난 이유는?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최근 전혀 다른 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원 삼성 18세 이하(U-18) 팀 매탄고 공격수 전세진이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입단 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고교 3학년인 전세진은 수원의 우선지명을 받고 내년 입단하기로 했지만 구단과 상의 없이 해외 진출을 추진해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6년 동안 전세진을 키워온 수원삼성 측은 동의 없는 해외 진출 시도에 화가 났다. 선수에게도 이런 이적은 크나큰 모험이다. K리그로 복귀할 경우 수원삼성의 동의가 필요한데 감정싸움이 커지면 K리그로 돌아올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이적 시도다.
이는 축구계에서 금기시되는 행위다. 포항 산하 유소년팀 출신 황희찬은 3년 전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포항에 합류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입단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유소년팀 출신이더라도 프로팀과 성인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선수는 어떤 팀과도 계약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축구계에서는 “그러면 유소년 선수를 키울 명분이 사라진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이후 나름대로 개선안이 나왔다. 바이에른 뮌헨 입단 예정인 인천 유나이티드 U-18 정우영(인천대건고)과 잘츠부르크로 이적하는 광주FC U-18 김정민(금호고)은 내년 소속 프로 구단과 먼저 계약한 뒤 해외로 이적하기로 했다. 친정팀에 이적료를 안겨주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네덜란드로 떠난 전세진의 행보는 잘못됐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수원삼성 측에서는 지난 달 PSV 에인트호벤 측 제안서를 들고 온 에이전트에게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6년간 키운 전세진을 성인 무대에서 기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 해외로 나가고 싶다면 수원삼성과 계약을 맺은 뒤 임대 또는 완전이적 형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게 도리였다. 정우영이 그랬고 김정민이 그랬다. 수원에는 권창훈이라는 좋은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전세진 측은 수원삼성과 아무런 상의 없이 네덜란드로 출국해 입단 테스트를 진행했다. 불과 두 달 전 “이제는 수원삼성 선수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뛰겠다”던 그가 돌연 수원삼성의 거부 의사가 분명했음에도 일방적으로 네덜란드에 가 PSV 에인트호벤 입단을 타진하는 건 의아한 일이다.
여론전의 시작, 그리고 공문 공개까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전세진의 PSV 에인트호벤 테스트 소식이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난 1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내용을 상세하게 담은 글이 올라온 것이었다. 이 글은 수원삼성이 어린 유망주의 꿈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 꿈을 막고 있다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이 어린 선수가 국제 미아가 될 위기에 빠졌다면서 전세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글은 전세진이 수원삼성 구단의 반대로 PSV 에인트호벤 테스트에 임하지 못하고 현재 벨기에 브뤼셀에서 자체적으로 운동하고 있다며 측근만 알법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유럽에 내보내야 한다. 수원삼성에 말하고 싶다. 끝까지 예와 의를 지키며 순리를 따르려는 전세진 선수를 이제 그만 보내달라.”
이 글만 보면 마치 한 선수를 거대기업에서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전세진의 유럽 출국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시점에서 세세하게 수원삼성을 헐뜯고 전세진을 피해자로 만든 글은 어떻게 올라왔을까. 정보력이 좋은 언론에서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개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 글에는 전세진 이적을 논하기 위해 PSV 에인트호벤에서 수원삼성 측에 보낸 공문까지도 첨부돼 있었다는 점이다. 당사자와 에이전트 등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문서였다. 지금도 수 많은 이적 루머가 퍼지고 있지만 이렇게 공문까지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선수를 피해자로 만들고 구단을 악덕업주로 내몰고 거기에 공문까지 공개했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이 글이 최초로 올라온 커뮤니티가 어딘지 알게 된다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바로 ‘축사국’이었다.
‘축사국’은 히딩크 감독을 추종하는 단체다. 정확히 말하면 히딩크 감독의 의견이 아닌 노제호 사무총장의 의견을 따르는 곳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고 한 적이 없지만 ‘축사국’은 노제호 사무총장의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여 여전히 히딩크 감독을 대표팀에 모셔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축사국’이 전세진 관련 상황을 최초로 자세히 보도하면서 공문까지 공개한 건 굉장히 미심쩍은 부분이다.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 그리고 노제호 사무총장과 ‘축사국’이 얽혀 있는 이번 일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축사국’은 이 글과 문서를 삭제했다. 축구계에서는 최근 들어 “이번 전세진 논란의 배후에는 노제호 총장이 있다. 하지만 그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내기란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네덜란드와 PSV, 그리고 여론전… 누가 봐도 노제호의 작품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입증하겠느냐”고 했다.
‘Jay’는 누구인가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발견됐다. ‘축사국’이 공개했던 전세진의 상황을 담은 글과 공문 외에도 한 가지 첨부된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단서였다. 대화를 나눈 두 명 중 한 쪽에서 캡처해 ‘축사국’에 제공한 것이었다. 이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전세진의 현재 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전세진이 투비즈에 있는데 지금 당장 수원삼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세진은 PSV를 포함한 다른 구단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말한 대로 수원은 전세진을 강제로 한국에 돌아오게 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이 둘은 전세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왕립축구협회(KNVB)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먼저 이 편지를 들고 KNVB의 결정을 뒤집으러 가려고 한다”는 내용이 있는 걸로 봐 KNVB와의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축사국’ 측에서 전세진의 피해자로 만들고 수원삼성을 악덕기업으로 모는 글과 공문을 올릴 때 같이 올린 대화 내용이다. 이 대화를 공개한 이유는 전세진이 처한 상황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고 진실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대화 내용 중 이름이 드러난 ‘Roland Vroomans’는 실제로 히딩크 감독의 최측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히딩크 감독의 요청에 의해 PSV 에인트호벤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사한 인물이다. 전세진이 수원삼성의 의견을 묵살한 채 PSV 에인트호벤 입단을 타진하는 건 히딩크 관련 인물과 엮여 있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과연 이 대화를 나누면서 이번 논란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누군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황상 짐작 가는 이는 딱 한 명이었다. 바로 노제호 총장이었다.
그리고 여러 방면으로 ‘텔레그램’ 내용을 분석하다가 이 ‘Roland Vroomans’와 대화를 나눈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을 찾았다. 아무리 대화 내용을 들여다봐도 알 수 없던 사건의 단서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대화 내용 맨 처음, 그러니까 이번 대화와 상관없이 근황을 물으며 ‘Best regards, Jay’라는 문구가 바로 그 단서였다. 어떤 대화 내용이 오갔는지는 몰라도 ‘Best regards’라는 영문 편지의 끝인사를 통해 이 둘이 사전에 한 번 더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텔레그램’이 전달된 건 오후 6시 32분이었고 본격적으로 전세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건 5시간이 지난 이후 11시 6분부터 11시 25분까지였다. 그리고 이는 오후 11시 30분 캡쳐돼 누군가에게 전달됐고 곧 ‘축사국’으로 퍼졌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건 안부 인사를 보낸 뒤 쓴 ‘Jay’다. 바로 이 ‘Jay’가 노제호 사무총장의 영어 이름이기 때문이다.
‘전세진 논란’ 배후에는 노제호가 있었다
노제호 사무총장은 과거 대한축구협회 인증 에이전트로 등록돼 있었다. 에이전트로 등록하려면 영문 성명도 반드시 기입해야 하는데 2007년 당시 등록된 92명의 에이전트 중 한글을 그대로 영문화 해 쓴 인물이 90명이었고 아예 새로운 영어 이름을 기입한 이는 딱 두 명 뿐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노제호였다. 그의 영문 이름은 놀랍게도 ‘Jay Roh’였다. 이는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노제호 사무총장은 거스 히딩크 재단 영문 소개 페이지에도 ‘Jay Roh’라는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그는 영어로 이름을 써야할 때는 ‘Je-ho Roh’대신 ‘Jay Roh’를 쓴다. 히딩크 감독 지인과 대화한 내용을 캡쳐해 노제호 사무총장 편에 선 ‘축사국’에 제공한 ‘Jay’가 노제호 사무총장이 아닌 다른 ‘Jay’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니 두 달 전 사건과 많이 닮아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 보낸 ‘카톡’을 캡쳐해 언론에 공개했던 노제호 사무총장의 행동은 지금의 전세진 논란과 너무 닮았다. 노제호 사무총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이번 전세진 논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축구계 관계자의 말이 대단히 신빙성 있게 들린다.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채 여론전을 펼쳐 협회를 적폐로 몰고 히딩크 감독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웠던 두 달 전 노제호 사무총장은 또 한 번 일을 꾸미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수원삼성이 어린 선수의 꿈을 짓밝는다는 여론전으로 시작됐다. 언론도 몰랐던 한 유망주의 출국을 ‘축사국’이 세세하게 보도했고 당사자가 아니면 보기도 어려운 공문까지 등장했다. 거기에 네덜란드 현지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까지 공개해 여론전에 힘을 더 싣고 있다. 그러면 수원삼성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손을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세진의 에이전트는 다른 곳이다. 노제호 총장은 에이전트의 권한도 없다.
두 달 전 멍든 한국 축구 팬들의 가슴을 한 번 더 후벼 파는 논란을 일으켰던 이가 이번에는 한 어린 선수를 흔들고 있다.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현재도 수원삼성 측은 “어린 선수가 한 번은 실수할 수도 있으니 그런 실수라고 믿는다. 하루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죄 없는 어린 선수를 손가락질 받게 만드는 게 누구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뒤에 꽁꽁 숨어 일을 벌이며 모든 비난의 화살을 어린 선수에게 떠넘기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돈만 된다면 여기저기 편을 갈라 여론전을 펼치며 논란을 일으키는 ‘Jay’가 한국 축구를 멍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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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 축사국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