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F조 2차전 경기에서 골을 넣은 FC서울의 데얀과 어경준, 몰리나가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 개의 멋진 골에 이은 3-0 승리, 조 선두로의 등극,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인다. 오늘 아침 서울 팬들은 오랜만에
웃음과 함께 축구 기사들을 클릭하고 계실 것 같다. 그러나 뭔가 아주 올바르지가 않다는 느낌도 있지 않을까?
삼겹살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그런 기분이랄까? 괜찮기는 하지만 우리는 삼겹살과 맥주의 조합이 최고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 결과로 인해 서울의 분위기가 확 바뀔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서울의
경기력이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반전의 경기력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선수들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패스를 보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를 압박할 때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항저우의 경기력이 더 나았으나 다만 그들은 골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격적인 성향을 따지자면 영국 언론이 한국 언론을 훨씬 능가하지만 팀의 위기를 말할 때는 한국 언론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반면 영국 언론은 끈질기고도 집요하게 한 주제를 갖고 물고 늘어진다.
지난 며칠 동안 ‘위기의 서울’이라는 헤드라인과 마주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이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 2경기로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다만 황보관 감독을 향한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래야만 한다. 서울은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챔피언이고 아시아 정상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는 팀이다.
챔피언과 빅클럽으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압박, 높은 기대감과도 싸워야 한다. 지난 시즌의 챔피언이
홈 개막전에서 라이벌에 완패한다면 압박과 비난이 들어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J리그 2부리그에서도 최하위에 있던 황보관 감독이 K리그 챔피언으로 수직 이동한 것 자체가 리스크라고
지적했었다. 너무 커다란 신분 상승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언론과 팬들의 눈에 비친 황보관 감독은 더욱
약한 존재로 인식될 수가 있다.
FC서울의 황보관 감독은 수원과의 홈 개막전에서 패배를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은 스스로에 부담감을 안겼다. 눈에 띄는 경력이 없는,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감독을 임명해놓고
그가 최고의 적임자라 여겼다. 이때 초반 경기력이 좋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나올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런 감독을 영입해서 출발이 좋지 못하면 정상적일 때보다도 더 복잡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무리뉴를
영입했는데 초반 2경기에서 승점 1점 밖에 얻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만족스럽지 못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리뉴에게는 성공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황보관 감독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
황보관 감독의 기록은 특별할 것이 없고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팬들이 많다. 더 위험한 것은 선수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는 상황이다. 팀에 우승컵을 안긴 빙가다 감독이 떠났을 때 선수들은 더 유명한 명장이 올 것이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감독은 자신이 팀에 적합한 리더라는 사실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K리그 팀들은 시즌이 끝날 때마다 큰 변화를 감행한다. 현재의 서울은 전혀 조직적이지 못해
하나의 팀으로 보이지 않는다. 황보관 감독은 시즌을 치르며 이러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한편 개막전에서의
수원은 더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협력 플레이를 보였다.
황보관 감독은 리더십을 발휘해 팬과 선수들이 자신을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상 선수, 그라운드 사정, 너무
수비적인 상대의 전술 등은 유효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설령 실제로 그렇더라도 이렇게 빨리 저런 변명을 내놓는
것은 조짐이 좋지 못하며, 강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서울의 경기력은 좋지 못했다. 수원전에서 데얀은 미드필드로부터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수원이 게인리흐를 활용한 모습과 대비됐다. 데얀과 몰리나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지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둘의 조합은 유기적이지 못하다.
4-4-2로의 전환이 좀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서울의 플레이에는 아직 확실성이 없다.
조직력, 유기적 플레이, 팀워크 모두 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전반에 나온 패싱들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서울의 득점은 상대의 실수와 개인 능력에 의해 나왔을 뿐, 약속되거나 준비된 플레이들로부터 창출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론과 팬들로부터 압박을 당하던 서울이 시작부터 항저우를 공격적으로 몰아칠 것으로 기대했지만 반대의
모습이 나왔다. 서울은 두 번째 골이 터지고 나서야 편안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오는 토요일 전남전에서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공격성과 적극적인 마인드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서울이 보여주는 모습은 K리그를 위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이
K리그에서 다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챔피언스리그에서 아무리 잘해도 큰 도움이 안 될 것이고,
그때는 진짜 ‘특종’들이 터져 나올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