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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가 주장한 '오직 믿음', 과연 성경적인가?
(4) 놀랍게도 성경에는 더 많은 구원의 조건들이 나온다.
칭의에 요구되는 조건은 회개와 믿음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오직 믿음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이라는 말로 그것들을 구원론에서 제거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들은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회개와 믿음 안에 포함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없이 회개나 믿음이 참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것들을 강조하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1) 조나단 에드워즈의 예리한 지적
조나단 에드워즈는 『기독교 중심』이라는 책에서 세 번이나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은 구원과 칭의의 유일한 조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에 수반하고 믿음으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칭의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수많은 구절을 보면, 칭의와 구원에 관한 여러 가지 조건 명제 안에 그것들이 다양하게 조건의 자리에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 믿음에 수반하고 믿음으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것들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 형제들에 대한 사랑,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선한 자격들과 행위들입니다. 또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음 이외에도 우리가 추구하고 이행해야 할 것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직접 제시하는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이행하거나 성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우리가 그것들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성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 칭의의 유일한 조건이라면, '믿음은 칭의의 조건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라는 성경 구절의 의미를 과연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분명히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 것들도 칭의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구원과 칭의를 후건(가언적 판단에서 귀결)을 표시하는 부분으로 하는 조건 명제에서 정확히 자기 혼자만 조건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방식으로 칭의와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절대다수의 신학자와 설교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한 통찰력으로 가득한 통쾌한 지적입니다.
옳습니가! 믿음 하나가 칭의의 조건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눈이 열리는 것도 칭의의 조건입니다(행26:18). 가난한 마음도 칭의의 조건입니다(마5:3). 회개도 칭의의 조건입니다(행26:20).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들도 칭의의 조건입니다(눅14:25-33).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칭의의 조건입니다(마6:14-15, 18:35). 이처럼 성경에는 믿음 외에 여러 가지 조건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들이 없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오직 믿음이 아닙니다!
2) 은혜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 구원의 조건들!
편견을 버리고 성경을 보면, 오직 믿음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확연히 보입니다. 그런데도 절대다수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회개와 그 외 구원의 조건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조건 중에 믿음처럼 공로와 전혀 무관한 다른 조건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입니다.
흔히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믿음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와 관계가 있습니다.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 즉 긍휼히 여기심입니다(요3:16, 딛3:4-7). 이것이 구원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보혈공로입니다(롬3:24, 갈2:21). 이것이 곧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의할 점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아브라함의 복"이라 불리는 칭의뿐 아니라 "약속한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갈3:14).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이 잘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은혜)로 불리는 구원에 선한 일을 위해 성령으로 새로 지음받는 것이 포함됩니다(엡2:8, 10 참조. 딛2:11-14).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에는 칭의뿐 아니라 거듭남의 역사도 포함이 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 이 두 가지가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덧붙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행15:11). 따라서 우리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7:10)라는 계시록에 나오는 찬양처럼 오직 성부와 성자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한편, 로마서가 다루는 유럽주의든 갈라디아서가 다루는 유대주의든, 이단들은 주로 칭의의 근거를 건드립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를 건드리지요. 유대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맞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맞지만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
역시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를 건드립니다. 즉 칭의의 공로적인 근거를 부정하거나 무언가를 더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된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즉 "오직 은혜"를 강조하다가 구원의 조건을 '오직 믿음'으로 줄이고 은혜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다른 구원의 조건을까지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런데 왜 믿음을 강조해도 이단이 아닌지 아십니까? 그것은 믿음이 하나님이 지정한 수단이고 공로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믿음 외에도 하나님이 지정하셨고 공로와 무관한 조건들이 더 나옵니다. 회개, 심령의 가난, 제자가 지불해야 될 대가, 용서 등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실 때 이런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친히 지정하신 조건들로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또, 믿음처럼 은혜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주장해도 이단이 아닌 것처럼 이것들을 주장하고 강조해도 이단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실제로 믿음처럼 은혜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자주 말한 것으로, 성경 저자들이 오직 율법의 행위를 상대로만 은혜논쟁을 벌였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다음 성구들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5:10-11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로마서 3:20-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4:15-16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1:5-7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갈라디아서 2:19-21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5:4-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율법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도서 3:4-7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성경의 은혜논쟁은 항상 율법의 행위를 상대로 벌어졌습니다. 이번에 저는 이 구절들을 찾기 위해, 신약성경의 "은혜"라는 단어가 나오는 모든 구절들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인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단 한 번도 다른 것을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인 적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성경은 회개를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인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성경은 심령의 가난이나 제자가 지불해야 될 대가나 용서를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혀 은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바울은 율법의 행위를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은혜를 훼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갈라디아서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또, 바울은 믿음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은혜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믿음처럼 다른 구원의 조건들도 은혜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그중 하나라도 무시하고 배척하면 안 됩니다. 마땅히 그것들을 가르치고 강조해야 합니다. 이제, '오직 믿음' 혹은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으로 믿음 외의 다른 구원의 조건들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확실히 아시겠지요!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열두 사도도, 바울도 구원의 다른 조건들을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 루터가 그것들을 상대로 은혜논쟁을 벌였습니다. 또, 존 스토트가 벌였고, 무와 슈라이너를 비롯 절대다수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그런 논쟁을 벌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단들과 이단사냥꾼들이 병적으로 그런 논쟁을 여전히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혹은 '오직 은혜' 운운하며 회개를 강조해도 이단,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강조해도 이단,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을 강조해도 이단,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강조해도 이단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강조한 분이 바로 예수님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까? 그러므로 절대 이런 어리석은 주장에 미혹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3) 설교자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들어보셨지요! 이처럼 한 사람 안에 두 인격이 있는 다중인격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영적인 다중인격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루터를 비롯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의 책을 보거나 설교를 들을 때 자주 느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라?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네, 자기부정이고 모순이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본인은 그것을 모르네!'
무슨 말이냐면, 한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받는 존 스토트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가 믿음, 구원, 혹은 거듭남을 다룬 것을 보면, 절대 구원파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회개해야 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들이고 순종하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기독교의 기본진리』라는 책에 보면, 제자가 지불해야 될 대가를 교회들이 강조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런 식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심판이 행위심판이라는 것까지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가장 사랑한 책인 갈라디아서를 강해한 것을 보면, 참고 보아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칭의에 필요한 것은 십자가 보혈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 오직 그것뿐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합니다. 십자가 보혈공로만 믿고 의지하면 무조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회개도,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도, 믿음에 따르는 행함도 들어갈 틈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수렁에 빠진 듯 자기모순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존 스토트뿐만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을 맹신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대부분 이런 비정상적인 기이한 행태를 보입니다. 그들은 칭의에 대해 설교할 때는 믿음 외에 모든 구원의 조건들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그러다가 회개에 대한 구절을 설교할 때는 회개해야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또, 제자가 지불해야 될 대가에 대한 구절을 설교할 때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참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을 본문으로 설교할 때는 행함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한마디로, 계속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자신도 헷갈리는 모양이고, 듣는 성도들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각성했다 안심했다, 각성했다 안심했다를 반복하다가 지쳐서 편한 쪽으로 생각합니다. 설교자들이 평소에는 오직 믿음을 강조하고, 예외적으로 특정 본문을 다룰 때만 그것들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직 믿음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어릴 때부터 자주 보아왔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제강 처음 인식하고 탄식한 것이 초등학생 때인지,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주 어릴 때부터 그것을 인식했고, 그래서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다! 거의 모든 설교자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다! 마치 뱀의 혀가 둘로 갈라져 있는 것처럼 ...
희한하게 믿음을 설교할 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으니 믿기만 하면 말씀대로 살지 못해도 천국에 간다고 하다가, 행함 있는 산 믿음에 대한 본문을 설교할 때는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성도들에게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라는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한 설교자가 모순이 되는 두 말을 하고, 그러고도 그것이 모순이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런 무책임한 설교 때문에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참 복음과 진리를 옳게 깨달을 수 없어서, 믿는다고 하나 심령이 가난하지도, 죄를 회개하지도(자백은 하지만),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지불하지도, 예수님께 순종하지도 않는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들이 너무 많은 것 때문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생 속고 신앙생활하다가 결국 지옥에 던져지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이 순간도 이런 영적인 대형 참사가 수많은 교회들 안에서 끝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믿음이 얼마나 큰 미혹을 가져왔고, 또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오직 믿음은 절대로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혹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오직 믿음을 폐기처분하고 회개를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원의 조건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서 참 신자가 되고, 많은 영혼들을 참 진리와 구원으로 인도하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