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 무등산 동화사터-서석대

[범고개]

방학이다. 나 혼자 집을 지키며 책을 읽으며 노는 것이 나을까

산에 가는 것이 나을까?

밤내 눈이 내려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한다.

점심 잘 챙겨 먹으라는 말에 예 해 놓고, 얼마 되지 않아 후다닥 배낭을 챙긴다.

차를 운전하여 김대중컨벤션 역 입구에 세우고 달려 내려가 지하철을 탄다.

증심사 주차장에 내리니 벌써 11시 10분이다.

점심이 부실하여 막걸리 한잔하고 올라가고도 싶은데 괜히 맘이 바쁘다.

동화사터 오르는 길이 바람이 없어 눈이 소북할 것이라 생각하고

약수교 앞에서 토끼등으로 오르려는데 길을 막고 공단직원 둘이 서 있다.

엊그제 뵌 분이라서 인사하고 동화사터로 가려했다하니, 안된다 하시며 당산나무 쪽에서

돌아가라 하신다.

증심사 앞에서 스틱을 펴고 봉황대쪽으로 길을 잡는다.

여전히 힘들다. 이런 정도의 눈길은 토끼나 사슴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안될까?

봉황대 900m 이정표를 보고 올랐는데 한참을 가도 봉황대가 어딘지 모르겠다.

중터리 길을 만나 난 왼쪽으로 가야는데 오른쪽에 샘이 보여 들른다.

미나리꽝샘이라고 씌여있고 샘물이 흐른다.

물이 차지 않다. 한바가지를 서서히 마신다.

다시 왼쪽으로 길을 잡아 토끼등쪽으로 간다.

샘 하나를 올라 금방 토끼등이다. 토끼등은 두고 바로 하동정씨 묘지를 지나 동화사터쪽으로 오른다.

남자 일행 세사람이 날 앞질러 간다.

아이젠을 신지 않고 고집을 피우며 올라가 본다.

덕산너덜 조망터에서 사진을 핑계로 쉰다.

동화사터 아래 돌계단과 나무들은 모두 눈에 쌓이지 않았다.

오히려 춥기만 하다. 샘터 옆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벌써 한시가 다 되었다.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작은 진라면 매운맛에 부어놓고 기다리는데

손이 시리다. 젓가락이 없다. 다기능 칼에서 톱을 꺼내 나무를 잘라 젓가락을 만든다.

손이 시려 젓가락질이 안되 나뭇가지 하나로 라면 가락을 끌어댕겨 먹는다.

약밥 한덩어리에 소주를 한모금 가득 마시자 배가 든든해진다.

등산객들이 둘씩 또 혼자 내려오곤 한다.

용추봉쪽으로 가는 삼거리 아래에 눈덮힌 나무들을 찍어본다.

내가 알고 있는 무등의 눈꽃자리도 조금씩 변하는지 모른다.

10여년 전일까, 온통 하얀 나라 동화사터 아래와 서석대 아래, 장불재 아래를 걸었던 때가.

중계소의 통들은 아직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중봉 아래 전나무 몇 개를 보고 그냥 지나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서석대로 바로 오르는 길을 아주 느리게 오른다.

서석대는 까만 바위 사이 하얀 나무들이 새로 태어났다.

서석대 위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무등산 서석대 한자 글씨는 흰색이다.

승천암 지나 내려오는 길도 조망이 없다.

입석대 전망대에 올라 바위들을 본다.

카메라는 다 잡아내지 못한다.

장불재 지나 중머리재로 내려온다.

당산나무 쪽으로 반쯤 내려오다가 전화기를 켜

바보에게 전화한다. 벌써 4시 반이 지난다.

그의 퇴근 시각을 맞추느라 아이젠을 벗고 증심사로 올라간다.

5시에 증심사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5시 21분에 학동증심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5시 45분에 마륵역에서 시동을 건다.

그의 사무실 앞에는 6시 정각에 도착해 2분여 기다리자 그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