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법인가? 저절로 질문이 나옵니다. ‘악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이란 무엇입니까? 나쁜 것? 악(惡)이 정의되지 않는다면 그 반대를 생각하여 정의해봅니다. 악이란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착하지 않다, 옳지 않다 등. 생각을 넓히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세상에 나쁜 영향을 주거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일 등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그런 일들이 없었는가, 생각해봅니다.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돌아봅니다.
조용한 마을에 기업체가 들어옵니다. ‘글램핑’을 조성하려 한답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입니다. 설명 -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합성어랍니다. 한 마디로 ‘멋있고 매력이 넘치는 캠핑’이란 뜻이겠지요. 소위 그런 관광지 또는 휴양지를 개발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주민의 건강과 휴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지요.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만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특히 도시인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휴식? 말이 휴식이지, 사실은 자기들끼리 즐길 수 있는 공간 아니겠습니까? 방해 받지 않고 맘 놓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 말입니다.
도시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산도 있고 물도 있는 조용한 곳,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면 좋을 것입니다. 바로 그에 합당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숙제입니다. 그래서 주민회의를 소집합니다. 마을 대표와 관심 가진 주민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업체에서 두 사람이 참석합니다. 먼저 무슨 사업을 하려는지 설명해줍니다. 다음 주민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결코 동의해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삶의 터전에 해를 입게 됩니다. 당연히 자연을 훼손하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그 자연 훼손이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생존에 가장 필수요소는 바로 물입니다. 일단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어야 머물 수 있고 오래 살 수가 있습니다. 잘 알듯이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바로 강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모든 생물이 그렇고 사람 역시 물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이 동네에도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바로 그 점이 글램핑을 만들고자 하는 이 사업에 합당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몰려들면 자칫 물이 오염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결코 가만두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이용하려 하니까요. 파고 자르고 깎고 무너뜨립니다. 그대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동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이 자기 입장을 설명합니다. 물이 좋아서 도시를 떠나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이곳 주민을 대표해서 의견을 내놓기에 합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들어온 목적을 상실하게 되고 사업도 접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업에 선뜻 동의해주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캠핑장을 건설함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정화조 설치에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습니다. 업체에서는 정화조 설치 위치가 주민들이 우려하는 곳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큽니다. 또한 캠핑장 관리인 상주 문제도 들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용 문제와 결부됩니다.
업체 관계자들은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갑니다. 보고를 들은 경영주는 일단 설명회가 성공했다고 자찬합니다. 분명 실패했는데 성공이라니? 역시 사업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악한(?)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설명회를 이끌었던 관계자들은 차라리 그 업체를 떠날 생각을 합니다. 한 마디로 이런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돈과 연관되니 주민들의 입장이나 자연훼손 같은 것에는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수익성이 문제이고 어떻게든 성사시키는 것이 숙제일 뿐입니다. 자기 사업의 성공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다른 모든 일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정되고 접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야 다른 사람 쓰면 됩니다.
아주 느립니다.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느림을 배경음악이 기막히게 잘 따라가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감탄하였습니다. 이야기는 ‘타쿠미’와 그 딸 ‘하나’를 통하여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업체 설명을 하려는 관계자들 두 명이 나옵니다. 딸 하나가 하교 길에 혼자 숲으로 들어갔다가 사슴과 조우합니다. 그런데 새끼와 어미를 함께 본 것입니다. 위험을 느낀 업체 관계자가 하나를 구하려 달려들려 합니다. 그런데 타쿠미가 막아섭니다. 두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시 처음 장면처럼 느리게 숲의 나무들이 화면을 한참 지나갑니다. 사실 악이란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Evil Does Not Exist)를 보았습니다. 일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