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고행과 오도
2천 년 전에 젊은 석가모니불은 그런 문제들을 사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설사 내가 인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된다 할지라도 2~3십 년 뒤에는 사회가 또 어지럽게 변하고 또 태평해질 수 없으니, 이것이 궁극적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 궁극적일까? 사람의 사회는 왜 그렇게 궁극적이 되지 않을까? 이것은 인성의 문제이다.” 그는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도망가 그런 문제들을 파고 들어갔는데, 이 역시 우리가 탐구하고 싶은 한 문제입니다.
그는 밤에 말을 타고 도망가 수염과 머리털을 잘라버리고 출가자로 변했습니다. 6년 동안 학문을 추구하여 많은 종교와 많은 수행 방법을 두루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그런 종교들과 수행 방법들에 대하여 모두 부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궁극이 아니며 생명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최후에 그 자신 홀로 네팔 북쪽의 히말라야산 설산의 산기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정좌하고 고행을 닦았습니다. 날마다 한 끼니만 먹었습니다. 이런 고행을 6년을 닦았습니다. 수염과 머리를 물론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막 30세가 지났지만 보기에는 이미 6~7십 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뼈는 장작처럼 말라서 수척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경력은 무엇을 말할까요? 여러분 세계를 보십시오. 오늘날 인도와 중국에는 모두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궁극을 추구하여 도를 닦고 있습니다. 혹은 채식을 하고 혹은 고행을 닦고 혹은 기공수련을 하면서 식사를 하지 않는 등 갖가지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는 다 해보았습니다. 그는 6년의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고행은 도가 아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 때 출가하여 십일이 년 동안 그렇게 고생스럽게 수행했습니다. 갖가지의 종교를 다 탐구해 보았지만 마지막에는 더 이상 갈 길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곧 설산을 떠났습니다. 이때에 그는 몹시 쇠로해졌습니다. 길을 비틀비틀 걸어가다 한 농장의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늙은이가 몹시 가련하게도 먹을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유미(乳糜)를 가져다 그에게 공양했습니다. 유미는 소젖이나 치즈로 만든 죽입니다. 그는 유미를 먹고 체력이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역사 기록에는 그가 남쪽을 향하여 가서 갠지스 강변에 이르러 한 나무 그늘에서 풀을 깔아놓고 정좌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풀을 길상초(吉祥草)라고 하는데 향모초(香毛草)입니다. 향모초는 모기나 벌레 등을 쫓아버릴 수 있으며 향료를 만드는 중요한 원료입니다.
앞에서 부처님이 설산에서 6년 고행하고 또 정좌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갖가지 기공 방법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설산에서 수행하기 전에 그도 갖가지 법문을 수증(修證)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홀로 풀을 깔고 정좌한 채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장 아가씨의 공양은 그의 신체가 회복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풀을 깔아놓고 정좌하여 맹세하였습니다. “보리를 증득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무엇이 보리일까요? 범어 발음을 번역한 것인데 중국어로는 ‘깨닫다’는 뜻입니다. 개오(開悟)․각오(覺悟)의 의미입니다. 대철대오(大徹大悟)하여 우주 최초의 내원 그리고 개인 생명의 내원을 찾아낸 것을 ‘보리 증득’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만약 대철대오하여 도를 얻어 성불하지 못하면 여기에서 죽겠다.” 불(佛)이란 범어인 불타의 약칭입니다.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그루 나무를 뒷날 ‘보리수’라고 불렀습니다. 역사상 기록에는 그가 여기서 7일 동안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자신의 깨달음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앞서 많은 선생님들의 갖가지 종교를 다 경험해보고 연구해 보았지만 모두 다 그르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7일 동안의 경과를 자세히 연구해보면 부처님은 많은 경계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마왕이 마군을 데리고 와서 방해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부처님에게 항복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물론 갖가지 신통도 증득했습니다. 천안통(天眼通)은 우주의 일체를 또렷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천이통(天耳通)은 우주의 크고 작은 소리 일체를 다 또렷이 들을 수 있습니다. 타심통(他心通)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정서․감각 등을 다 아는 것입니다. 숙명통(宿命通)은 생명의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인연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미 몇 번이나 사람이 되었고 무슨 일을 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 석가모니로 변했다는 것을 모두 알았습니다. 신족통(神足通)은 자리를 떠나 공중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신통들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정신이 합리적인 수양을 거치면 모두 이러한 기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약간의 껍데기를 접촉하고서는 자기가 특수한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통도 생명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일종의 기능으로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도를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이러한 신통들을 버렸습니다.
7일 째 이르러 날이 밝아올 무렵 부처님은 몹시 피곤해 긴장을 풀면서 홀연히 눈을 들어 밝은 별을 보고 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밝은 별을 보고 도를 깨달아 보리를 증득했다.’고 말합니다.
이상이 간단하게 여러분들에게 부처님의 일생 경력을 보고한 것입니다. 대체적인 요점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은 불학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먼저 간단명료하게 뽑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자세하게 말한다면 아주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