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제1장 기록론 논쟁-2
제1절 삼위일체 논쟁-2
1. 양태론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힘드니까 그냥 쉽게 하나님은 하나라고 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단일신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단일신론과 유일신론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단일신론은 여러 신 중에서 단 하나의 신만을 인정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의 단일신론은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만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일신론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점에서는 단일신론처럼 보이지만, 유일신론은 세상에 다른 신은 없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단일신론에는 양태론적 단일신론과 역동적 단일신론의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양태론적 단일신론입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란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상황에 따라 세 위격 중의 하나, 즉 세 가지 모습 중의 하나로 나타나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신 것은 분명하지만, 이 세 위격이 한 본체 안에 동시에 존재하고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삼위 중의 한 위격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부의 사역이 필요할 때는 성부의 모습으로, 성자의 사역이 필요할 때는 성자의 모습으로, 성령의 사역이 필요할 때는 성령의 모습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자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는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성령의 사역이 필요할 때는 성령의 모습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양태론은 3세기에 사벨리우스라는 이집트 출신의 신학자가 주장했습니다.
사벨리우스가 말하기를 삼위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맞는데, 그러니까 성자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 성령님도 하나님인 것은 맞는데, 보이기만 그렇게 보일 뿐이지 모두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사역에 따라서 성자로도, 성령으로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보기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실제로는 성부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받아들여서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우리나라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삼위일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교회의 김집사님이 집에서는 가장이고, 회사에서는 과장이고, 교회에서는 집사님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김 집사가 가장이고 과장이고 집사이지만, 그 세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는 과장이나 집사가 아니라 가장이기만 하고, 교회에서는 가장이나 과장이 아니라 집사일 뿐인 것처럼 집이나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는 각기 하나의 모습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이 그 목사님의 삼위일체론입니다.
이 말은 사벨리우스의 양태론과 다르지 않은 주장입니다.
자기가 말하는 것이 3세기에 사벨리우스가 주장했던 양태론이고, 이 이론은 결국 이단으로 정죄받았다는 사실을 그 목사님이 알고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양태론을 발전시킨 이단사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세대주의적 양태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삼위이신 것은 맞지만, 모든 시대에 걸쳐서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삼위 중의 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신다는 주장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신약시대에는 성자 하나님으로, 초대교회 이후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삼위이신 것은 맞지만 삼위께서 동시에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셔서 사역하신다는 것이니까 이 역시 이단사설입니다.
예전에 대규모 옥외 집회를 하기로 꽤 유명했던 어느 목사님이 전도사 교육에서 이런 세대주의적 양태론을 가르쳤는데, 그 교육을 받는 전도사 후보생에게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해도 듣지를 않아서 답답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은 하나님이 사역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고, 세대주의적 양태론은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2. 영지주의
초대교회 당시에는 영지주의가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영어로는 그노스틱스인데, 그노스틱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신비적이고 비밀스러운 지식 또는 깨달음'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4]에 “신화와 족보에 끝없이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 영지주의와 영지주의의 족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에는 자기네 신들과 신들의 계보가 있습니다. 이 계보는 감추어져 있는데, 특정한 사람에게만 이 신들과 체계에 관한 지식 즉 영적 지식을 알려주어서, 그 지식을 아는 사람들만 구원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 지식을 안다고 해서 영지주의입니다.
이들의 신들의 계보가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4]에서 말한 족보입니다.
그 족보를 보면 맨 위에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이름의 최고 신이 있고, 그 아래로 여러 신이 있습니다. 그중에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도 있는데, 그들은 여호와를 데미우르지라고 부르고 가장 악한 신으로 분류합니다.
영지주의는 왜 여호와 하나님을 악한 신으로 분류하는가?
그 이유는 영지주의는 영과 정신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데미우르지 즉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들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원론에 비춰보면 물질은 악한 것인데, 선한 신이라면 악한 물질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악한 물질을 창조한 신은 당연히 악한 신이고, 따라서 그들이 부르는 데미우르지라는 신 즉 여호와는 악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의 최고의 신은 ‘알 수 없는 신’이라고 불리는 남성신인데, 이 신이 여신과 함께 살며 둘 사이에서 낳은 것이 예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알 수 없는 신과 예수님 아래로 아이온이라고 부르는 많은 신이 있고, 그 모두의 관계를 적은 것이 앞에 사도 바울이 지적한 신화와 족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