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되살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적어도 30대 이상이라면 기억할 것으로 생각되는 전 서울대 교수 황우석 박사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공개 소식이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황스캔들(Hwang Scandal)이라는 명칭과 함께 과학사기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국내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믿기 어려운 인지부조화의 전형적 사안이기도 하다.
아직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과거 연구윤리 논란은) 저의 과욕 때문이었다. 그걸 가지고 누구 핑계 댈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니 다행이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선배 교수인 그의 연구실은 수의과대학 건물 6층에 있었고, 나는 7층에 있었다. 같은 대학 건물의 위아래에서 재직하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여러 모습에 대한 기억이 있다.
위아래층 근무하던 선후배 간 특별한 기억들
‘국가 연구자’라는 지위로 노벨상까지 거론되며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는 정부로부터 고급 자동차와 더불어 여러 명의 국정원 소속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였고, 외교부 고위 공직자가 대학에 파견되어 상근하며 지원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휠체어에서 일어난 이가 뛰어가는 모습까지 들어간 특별우표가 나오기도 했던, 국민 영웅이었다.
〈MBC PD수첩〉에 의해 문제점들이 제기되자 당시 야당이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병원에 있는 황 교수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 황 교수 문제까지 이념적으로 나뉘어 재단한다면 국가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모두 노골적으로 〈PD수첩〉 보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정원 역시 MBC에 알게 모르게 내내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지지 역시 정치권 못지않아 MBC 광고는 취소되고, 심지어 그의 지지자들이 학교까지 찾아와 가는 길에 진달래 꽃잎을 깔아주는 광경을 7층에서 목격했다. 그를 다룬 〈PD수첩〉 연속 기획의 첫 편에 모자이크나 음성 변조하지 않고 나간 나 역시 학내외 다양한 형태로 비난받았음을 물론이다.
그와 같이 동물 복제 연구를 했고, 황 교수가 해임된 이후에도 수의과대학에 남아 복제 연구를 계속하며 관련 연구 특허로 황우석 박사와 법적 다툼을 하던 이병천 교수 역시 여러 문제로 수의과대학을 떠났다. 그런 부침 속에 이제 황우석 박사는 먼 열사의 나라에서 석유 부호의 지원 속에 다시 동물 복제 연구자로 활동하는 듯하다. 결국 세계적 과학사기 사건임이 드러나 학교에서 해임되고 대중 눈길에서 사라졌던 인물이 다시 동물 복제 기술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마무리된 듯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이미 낡아버린 배아줄기세포 연구나 상업적인 동물 복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대는 성공하지 못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보다 더 생명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합성생물학 Synthetic biology’ 분야로 나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유전자 가위 등 유전자 조작을 위한 새로운 여러 방법도 개발되는 등 생명과학 연구는 대중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여러 논란 속에 진행 중이다.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못했던 광기의 시절
자신의 과욕이었음을 말하는 황 박사의 모습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한 건강한 비판도 국가 정책에 반대하거나 대중의 일반 통념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엄청난 여론몰이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황우석 박사도 과학적인 검증이나 근거 제시보다는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언론에 노출함으로써 대중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모든 언론은 본래의 비판 정신은커녕 오히려 대중 광기 촉발에 앞장섰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정치적 입장 차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념이 중요한 것도 아닌 일반 사회 사안에 있어서까지 다양한 입장에 대한 인정과 상호 검증보다는, 나와 다른 의견의 상대방은 무조건 타도하고 궤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 최초의 기억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여러 종교단체들도 황우석 박사가 연구팀원 중 한 여성 연구원의 난자를 채취해 본인의 난자로 실험하게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이겨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가치를 내세웠던 것은 지금도 낯이 화끈거리는 추한 모습이었다.
이제 20년 가까이 지나 G7이다 G8이다 이야기하고, 일본마저 넘어섰다는 등의 소리마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과거 황우석 박사로 인해 분열되었던 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언론은 보다 신중해지고, 비판정신을 되찾았을까? 사회 구성원들은 이념이나 정치성향에 불구하고 보다 화합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함께 나아가는 모습일까?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켜온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사회 구조는 개선되었을까? 우리 사회의 종교는 보다 공공선과 가치를 위해 기여하고 있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나설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토록 온 나라의 언론이 개인 연구자를 신격화하고, 성속의 구분 없이 옳고 그름을 도외시하고 국익에 열광하던 우리의 자화상은 아쉽게도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박사 학위 논문을 짜깁기한 것이 명명백백 드러나고, 심지어 표절당한 교수가 문제 제기를 해도 조용하다. 한반도 평화나 종전을 말하면 반국가 인물로 될 수 있다. 자식을 볼모로 잡고 부모에게 자백을 강요한다. 입을 막고 싶은 이가 정권에 불편한 발언을 하거나 혹은 정치적인 반대자나 경쟁자인 경우 과거에 이미 정리된 가족 사건마저 끄집어내 위협한다.
G7 운운하는 시대에도 여전한 광기의 모습들
반면 정치 경험이 없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어 검찰 관련 범죄에 있어서는 숫자를 조절하거나 아예 부실한 수사 내용으로 기소해서 무죄를 받게 한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은 사법부에서 확인된 바 있어도 그냥 드러내 놓고 봐준다. ‘법대로’라는 합법을 가장한 너무도 차별적인 수사와 기소는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욱 사회를 퇴행시키고, 병들게 한다. 과연 현 정부 이후에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 궤도에 이를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마음에 안 드는 대법원장은 기소 대상이 되고, 입맛에 맞으면 국가 언론 지형을 무너뜨린 주역을 다시 불러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귀환시키려 한다. 국제 무대에서 유럽 국가들이 놀랄 정도로 미국에 치우친 외교를 벌이고 일본을 제외한 주변국에 대한 호전성을 보이는 것은 안착하려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전쟁을 자초하는 격이다. 어찌 보면 국가나 국토는 자신들의 이득 확보 장소에 불과할 뿐, 미래세대는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가 사업인 고속도로 노선도 하루 아침에 대통령 일가 땅 쪽으로 변경되건만 주류 언론은 이를 정당화하고 덮기에 안간힘이다. 이런 국내 상황은 무기 수출 세계 10위권에 들어선 지금,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커녕, 심지어 착한 커피 내지 공정무역 수준의 논의마저 생겨나지 않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는 설령 그들 말대로 낮은 농도라 하더라도 단지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유전자에 미세하게 각인되어 대대손손 후손에게 대물림 되어 미래세대 삶에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미일 동맹에 연대함으로써 얻는 국익이라는 굴종적 자세를 언론들은 열심히 멋지게 포장한다. 대신 자신들에게 반대되는 국민 주장을 괴담으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무한 경쟁 속의 국익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태도와 비판 정신 잃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멋진 자화상이다.
병들어 가는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겠나
결국 황우석 박사 때 우리 사회를 휘젓던 광기의 모습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운 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는 2008년도 미국 소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주장이 과학적이자 국제기준에 부합했음에도 불구하고 괴담으로 치부하던 모습이나, 지금 주변국 모두 반대하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문제삼는 국민 주장을 괴담으로 몰아가는 지금 현실과 유사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사독재에 시달리던 우리 사회가 80년대 민주화를 거쳐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지만, 진정 건강한 사회인가 묻는다면 지금 현실에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경제적 풍요 역시 계층 양극화 및 부와 학력 세습을 고려한다면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상대적 박탈감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삶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공공선에 대한 존중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 최소한 너와 내가 함께 가는 모습을 잃고서 오직 개인과 특정 집단만의 욕망을 추구해온 우리 사회는 병들어 가고 있다. 만일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 출산율 격감이 그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첫댓글 병들어 가고 있는 사회...ㅜㅜ
너와 내가 함께 가는 모습...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