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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일 정신병을 앓는 것처럼 속여 병역면제를 받은 혐의로 유명 비보이(B-boy) 그룹인 'T·I·P'의 리더 황모(30)씨 등 같은 그룹 비보이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비보이는 브레이크 춤을 추고 한 손으로 물구나무 서서 돌기도 하며 고난도 춤 솜씨를 선보이는 댄스그룹을 말한다.
이들이 활동한 팀은 1996년 결성된 국내 비보이계의 '1세대' 간판 그룹이다. 해외 유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해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
과거 가수 김모, 서모, 신모씨 등이 '성격 장애' 진단을 받아 군 입대 면제를 받았고, 가수 은모씨도 정신질환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비보이 그룹이 정신병을 이용해 병역면제를 시도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 2001년 8월 서울의 B병원 정신과 진료실에서 당시 21살이었던 황씨는 헝클어진 머리에 악취가 진동하는 몰골로 의사와 마주 앉았다. 눈가에는 눈곱이 껴 있었다. 의사가 "어떤 증상 때문에 왔나요"라고 물어도 황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머니가 "며칠 동안 씻지도 않고 자꾸 '환청이 들린다' '헛것이 보인다'는 말만 해서 데려왔다"고 했다. 황씨는 "누가 내 머리를 가위로 자르려고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황씨를 입원시킨 의사는 황씨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내렸다. 황씨는 2003년 11월 병무청으로부터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황씨는 2002년과 2003년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열린 2차례의 비보이(B-boy) 경연대회에서 팀원들을 이끌고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황씨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정신병자 행세를 해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다.
현역 복무 판정을 받은 황씨는 2001년 1월 군에 가지 않기 위해 정신병을 사유로 한 병역처분변경원(재신검신청원)을 병무청에 제출했다. 황씨는 그해 8월부터 정신과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며 정신병자처럼 행동했고 2003년 11월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런 황씨를 본 팀원 8명도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같은 수법으로 군을 면제받거나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인터넷을 검색해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자주 '헛것이 보인다' '환청이 들린다'고 말하는 것을 파악해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일부는 정신과 관련 서적까지 뒤지며 정신병자들의 행동을 분석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며 가족까지 속였다. 하지만 이들은 병역면제 처분을 받는 즉시 정신과 치료를 중단하고 무대 위에서 팔·다리를 꺾고, 비트는 춤을 췄다. 꼬리가 밟힐까 봐 각기 다른 병원을 이용했다.
이들은 "군에 가지 않고 계속 춤을 추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들 중 한 명을 진료한 의사는 "정신병 판정을 받으면 취업도 되지 않기 때문에 설마 정신병자로 행세했다고 의심할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고려대 정신과 조숙행 교수는 "정신질환 역시 우울증, 불안증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진단기준이 있다"며 "단순히 환자의 말에 의존해서 정신질환 판단을 내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보이는 가수처럼 자유직종이어서 별도로 취업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정신병력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본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 중 병역법 공소시효를 넘기지 않은 3명은 검찰에 송치해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병무청에서 재신검 등의 절차를 밟아 현역 등 병역의무를 다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씨 등 공소시효가 지난 나머지 6명은 다시 신체검사를 받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현역, 공익근무 등 입대 여부를 확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