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장엄정토분>에 나오는 <응무소주이생기심>은...
경전에서 해당 글자의 뜻은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일으켜라)'>입니다.
경전공부를 하신다면 장엄정토분을 읽으셨을테니, 글자 뜻은 이미 아실 겁니다.
장엄정토분의 앞의 내용은 "수행의 성취"라는 것이 이름임을 밝히고 있으며,
장엄정토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론 "부처님의 불국토(열반)" 조차 이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법무아"이니 '얻을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는 뜻입니다.
'얻을 바'나 '얻은 바'가 있다면 취하고 소유했다는 뜻인데, 취하고 소유했다는 '판단(이름,산냐)'은 "내가 있다는 견해"와 함께 할 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있다는 견해"가 있을 때 "얻을 바 혹은 얻은 바"가 있다는 연기를 설명한 겁니다.
"내가 있다는 견해"는 "산냐(상온,동일시,간주,이름)입니다. "얻을 바 혹은 얻은 바"도 산냐입니다.
"이름이 있을 때 이름이 있다"는 연기를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연기에 따라 드러나는 이름은 무상하며 실체가 없어 제법무아이니...
수행의 성취는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까지 더 나아가 "열반"조차...'얻을 바'도 아니고 '얻은 바'도 아니라고 설명한 겁니다.
이러한 이치를 밝혔으니 이제 이러한 이치에 따라 수행을 해야 할 겁니다.
그 수행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응무소주이생기심>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알아 가는 방법인거죠.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는 총론격이며...그것을 구체화한 각론격으로 <색,성,향,미,촉,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색,성,향,미,촉,법>은 '여섯가지 감각기관(과 식온)'의 대상으로...행자에게 드러난 일체를 말합니다.
우리는 여섯가지 감각기관 밖에 없기에 <색,성,향,미,촉,법>이 아닌 그 무엇이 드러나지 않거든요.
<드러난 일체에 "사로잡히지 말라">에서 "사로잡히지 말라"의 의미가 문제가 됩니다.
"사로잡히지 말라"의 뜻을..."제거"로 해석을 하면 '삼매(지법:사마따)'를 의미하겠지만...
"계속 붙잡으려는 의도를 내지 않음"으로 해석하면 자각(관법:사띠)을 의미하게 됩니다.
대승정종분에서 "일체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리라"는 마음을 내어라고 하지만 그 말의 의미 역시 삼매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자각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대승정종분에서 열거하는 '일체 중생'은 삼매의 경계들의 이름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해석의차이에서 소위 비파싸나(관법)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고 소위 선정(지법)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은...자신만의 수행으로서 상대적으로 지법을 강조하고 있으며, 보살행으로서 상대적으로 관법을 강조하고 있다고...평가할 수 있습니다.
육조 혜능의 금강경강론에선...상대적으로 관법의 측면을 내세우면서 그러한 보살행이 곧 스스로의 수행임을 천명하고 있다고 볼수 있어요.
이는 육조 혜능의 어록인 육조단경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육조단경에서도 "삼매에 든 사리푸타를 무정"이라고 평가하는 유마경의내용을 인용하며 서술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오늘날한국 선불교의 선풍이 육조 혜능의 견해와 부합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조 혜능의 견해는 대승기신론보다 보살행(관법)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 줍니다. 견해를 세움에 대승의 본지를 잘 살린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선불교의 선풍은 그 주류가 대승기신론보다 '자기 수행(지법)'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거든요. 또 육조혜능께선 '달과 손가락'의 비유에서 '열반경'을 해설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경>의 해설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하나의 방편으로 제시하는 작업입니다.
저의 입장에선 선불교가 선불교에 의해서 왜곡되는 현상을 곧잘 보게 됩니다.
저는 <금강경 장엄정토분>의 <응무소주이생기심>은 일차적으로 관법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응무소주이생심>을 구체화함에 <색,성,향,미,촉,법>이라는 대상을 열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대상이라는 것에서 끝은 아니죠. <대상>은 <마음:식온>과 연기하니까요.
위에서 <..."제법무아"이니 '얻을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는 뜻입니다...>라는 이치를 알아 가는 방법이라 했지요?
소위 <관법>은...<연기의 이치>에 따라...<지법(止法)>을 함유합니다.
결국 일차적으로 <관법>으로 해석되지만, 그 <관법>은 <'지법'을 함유한 '관법'>임을 <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화엄교학의 입장에서도 육조 혜능의 금강경강론은 탁월한 저술입니다. <정>과 <혜>의 연기를 놓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분들은 너무나 바르기에 흡사 부처님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저의 조건에서 나름 대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 분들 이상으로 바르게드러낼 수 없으니 그럴 수 밖에요. 저는 죽을테지만 수행은 끝이 보이지 않죠.
"수행의 성취"에 대해 논하는 장엄정토분의 앞의 내용까지 고려한다면...
<응무소주이생기심>은 <경>에서 이미 일차적으로도 <정정진>이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속원융>이기에...<응무소주이생기심>은 그 자체가 <제법무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위 <속>이라는 것에서 드러나는 <제법무아>가 바로 <응무소주이생기심>인 겁니다.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면 <머무르지 않는마음을 내어라>보다는 <머무는 바 없지만 마음은 있네>라는 뜻입니다.
<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이란 글귀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본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경>의 해당 내용은 <머무는 바 없지만 마음은 드러난다. 그러니 "색,성,향,미,촉,법"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고 해석이 됩니다.
저명한 번역본이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고 해석 했을 뿐입니다.
<경>을 읽는 작업 역시 산냐를 일으키는 겁니다.
스스로의 조건에서 나름 대로 살펴 알아 가는 것뿐이지...참으로 <경>을 읽는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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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적 의미나마 간략히 적어 보았습니다. 님이 원한 것보다 많이 적은 듯 합니다. 저의 욕심이지요. 꿈이구요.
아래 <일미진중함시방>도 그렇고 경전 글귀 하나를 떼어 묻는 경우 참 어렵습니다. 고려할게 너무 많죠...
첫댓글 꼬리말로 적었던 내용이라...문맥상, 대충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보고...글자수 맞춘다고 축약이 된 듯 한데요...
별 뜻은 없구요. 육조 혜능도 경전의 해설을 하겠다고 했고, '경전의 해설'이 곧 '교학'이니...경전과 교학 공부 좀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선불교가...삼매수행에만 치중하거나, [경]과 교학을 등한시하는 종파인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참고로, 불교가 아닌 요가의 스쿨에서도요. 교학을 공부합니다. 교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본격적인 요가수행 단계로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삼매' 내지 소위 '문자 배격'만 강조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삼매수행이 뭔지도 모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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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정진"으로 해석할 수도 있구요. 소위 "사심(놓는 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예요. [경]은 원음이거든요... 원래 그 의미가 한량 없지만...법을 드러내는 그때 그때의 조건에서의 필요에 따라, 행자의 조건에서의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조건지어진) 의미를 밝히거나 파악하는 겁니다.
"머무르지 않는 마음"의 의미를 "사심"으로 본다면, 역설적인 측면이 있어요... 어떤 점이, 역설적이냐 하면요. 사심은 머무르지 않는 것인데, 대상을 취하여 자신으로 삼지 않는 것인데...사심 자체는, "부동"이거든요.
소위 법의 분류에서요... "부동(움직이지 않음, 평등함)"은 무위법으로 거론되는데요. "사심"이 바로, "부동"입니다. '제행(일체의 조건지어진 것)'은 무상할 수 밖에 없기에, 제행에서 사심은 부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제행에서는) "머무르지 않음"은 머문다]는 식의 말이 가능해지는 거죠...
위와 같은 역설의 문제에서, 주의할 것은요... 위의 내용은 일반적 서술이지, 구체적 서술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로...그냥 "사심"이라고만 하면, "사심"이라 이름할 고정된 어떤 마음이 있는 것으로 파악할 위험성이 있으므로...A의 드러남에서의 사심은, A에서의 사심일 뿐, B에서의 사심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눈꽃님 수고 많으십니다._()_
위 본글을 보면요. [... ... 그렇게 본다면 <경>의 해당 내용은 <머무는 바 없지만 마음은 드러난다. 그러니 "색,성,향,미,촉,법"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고 해석이 됩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는데다가, 뒤의 문장에 비춰 혼동이 발생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사심"은, [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또한 위에서 적어 놓은 꼬리말 내용을 모두 살펴볼 때, 뜻을 그르칠 위험도 없다고 봅니다.
감사히 읽고, 펌하고 감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