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나 학교에서 존경받기는 쉬우나 자기 가족들에게 존경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자기와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존경받는 일이 역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것도 가족들에게 존경받기가 어려운 일과 같은 이치이다. 쉽게 바꿔서 말하면 가족들끼리는 평생을 함께 살아야만 하기에 미묘한 경쟁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어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기에 존경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다툼이 눈에 보이는 지경으로 확대되면 이혼이나 폭력 사건까지 비화가 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가장 존경받기 어려운 것은 윗사람들을 상대로 했을 때이나(나의 경우, 직장에서는 윗사람들에게도 존경의 언어를 들어본 적이 적지 않다. 집안의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존경을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데 나의 고모님 한 분은 나를 존경한다고 틈만 나면 말씀하신다.) 이는 논제에서 벗어나니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라서 세상에서 가장 화목한 집안 중 하나를 만들었다고 자부하지만, 아내와 딸에게 좋은 아버지나 남편임에는 확실하지만 존경에 해당하는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하고 산다. 불화에 빠지지 않은 거의 모든 집안처럼 '남편(아버지)의 인간적 약점도 내가 이해해주고 산다.'가 아내와 딸의 본 마음이다. 심지어 나의 아내는 병든 남편이랑 살아주니 자기가 더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조차한다.
우리 딸의 경우엔 엄마보다도 더 나를 좋아하고 따르기는 하지만 존경의 표현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토론을 할 때에는 나를 이기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정우성과 나를 비교하면 당연히 정우성이 더 존경에 가깝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 중의 하나인데다 난민들을 위한 발언을 하고 미혼모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들에 반한 우리 딸은 그가 어딘가에서 팬들과 만난다는 소식이 들리면 없는 시간도 쪼개어 내서 달려가고야 만다. 따라서 이번 정우성의 혼외자 뉴스는 딸 아이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나는 이번 기회를 아빠 홍보의 절호의 기회로 활용한다.
"봐라! 정우성의 세상 사랑은 자신의 돈과 명예를 위한 것이었지만 아빠의 세상 사랑은 위선이 거의 없는 진정한 사랑이잖니? 정우성은 미혼모를 위한다면서도 정작 자기 아이까지 낳을 정도로 사랑했던 여성을 믿지 못해서 친자 검사까지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친자로 밝혀졌음에도 자기가 만든 미혼모인 여성이랑 결혼을 못하겠다고 하지 않니? 반면 네 아빠는 댓가는 커녕 내 돈 써가면서 칭송은 커녕 미친 사람 소리까지 들어가며 세상을 위하지 않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인데 세상에는 정우성처럼 장난으로 여자를 만나고 진심으로 사랑했더라도 단순한 변심으로 죄없는 여자를 배신하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더라도 나는 이미 망한 거라고 본다. 반면 네 아빠는 너를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하고만 사는 불행한 아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혼할 상황에서도 이혼을 하지 않고 바람도 피지 않고 술집 여자에 의존하지도 않고 그 힘든 고난의 시절을 정신의 힘으로 버텨내지 않았니? 아빠같은 남자는 세상에 없다고 보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