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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년 02월 05일 (음), 1370년 03월 02일 (양)
○태세(太歲)·사계(四季)·월장(月將)·풍운(風雲)·뇌우(雷雨)·악진해독(嶽鎭海瀆)·산천(山川)·성황(城隍)·기독(旗纛) 등 여러 신을 합사(合祀)하였다.
황상이 처음에는 태세·풍운·뇌우는 모두 천신(天神)이고, 악진해독·천하산천·성황은 모두 지지(地祇)라 하여 각각 단(壇)을 세우고 국성(國城)의 남쪽에서 개별로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사하는 때에 날짜와 그 물건의 품목이 각각 달라서 이때에 이르러 다시 풍운·뇌우·악진해독은 모두 음양(陰陽)의 한 기운이 차이가 없이 흐른다 하여 드디어 두 단을 합쳐 하나로 하고, 거기에 사계·월장·기독 등의 여러 신을 더하였으니, 무릇 단을 세운 것이 열아홉이었다.
태세와 춘하추동의 사계와 월장을 첫째로 하고,
다음으로 풍운·뇌우, 다음으로 오악(五嶽), 다음으로 오진(五鎭), 다음으로 사해(四海),
다음으로 사독(四瀆), 다음으로 경도(京都)의 종산(鍾山), 다음으로 강동(江東)의 산천,
다음으로 강서(江西)의 산천, 다음으로 호광(湖廣)의 산천, 다음으로 회동(淮東)·회서(淮西)의 산천,
다음으로 절동(浙東)·절서(浙西)·복건(福建)의 산천, 다음으로 광동(廣東)·광서(廣西)·해남(海南)·해북(海北)의 산천,
다음으로 산동(山東)·산서(山西)·하남(河南)·하북(河北)의 산천,
다음으로 북평(北平)·섬서(陝西)의 산천, 다음으로 좌강(左江)·우강(右江)의 산천,
다음으로 안남(安南)·고려(高麗)·점성(占城) 등 여러 나라의 산천,
다음으로 경도(京都)의 성황(城隍), 다음으로 육독(六纛)·대신기독(大神旗纛)·대장오방기신(大將五方旗神)·전선(戰船)·금고(金鼓)·총포(銃礟)·궁노(弓弩)·비창(飛鎗)·비석(飛石)·진전(陣前)·진후(陣後)의 여러 신으로 하였다.
각 단의 제사에는 모두 황상이 몸소 예를 행하였다.
제사에 앞서 예관(禮官)이 아뢰기를, 축문(祝文)에 태세 이하 사해에 이르기까지 무릇 다섯 단은 황상이 ‘신(臣)’이라고 칭하고 친히 서명할 것을 청하였으며, 종산 등의 신은 상이 ‘나[余]’라고 칭하고 예관으로 하여금 대신 서명할 것을 청하였다.
황상이 말하기를, “친구 사이에 서독(書牘)을 주고받을 때에도 친히 성명(姓名)을 쓰는데,
하물며 신명(神明)에 대해서야 반드시 모두 서명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단에 오를 때에 이르러 태상시승(太常司丞) 임이충(任以忠)이 찬례(贊禮)로서 황상이 피곤할까 걱정하여 무릎을 꿇는 의례를 대폭 간소하게 하였다.
예를 마치고 황상이 그 까닭을 물으니, 임이충이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황상이 말하기를, “신하는 도(道)로써 임금을 사랑해야 한다.
짐은 신에게 오직 성의와 공경함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 감히 노고를 꺼릴 수 있겠는가.
너는 마땅히 짐의 뜻을 모두 깨달아 이후로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合祀太歲·四季·月將·風雲·雷雨·嶽鎭海瀆·山川·城隍·旗纛諸神.
上初以太歲·風雲·雷雨皆天神, 以嶽鎭海瀆·天下山川·城隍皆地祇, 各爲壇, 專祀於國城之南. 然祭之時, 日與其品物各不同, 至是, 復以風雲·雷雨·嶽鎭海瀆皆陰陽一氣流行無間者, 遂合二壇而一之, 而增以四季·月將·旗纛諸神, 凡設壇十有九.
太歲·春夏秋冬四季·月將爲第一, 次風雲·雷雨, 次五嶽, 次五鎭, 次四海, 次四瀆, 次京都鍾山, 次江東山川, 次江西山川, 次湖廣山川, 次淮東·淮西山川, 次浙東·浙西·福建山川, 次廣東·廣西·海南·海北山川, 次山東·山西·河南·河北山川, 次北平·陝西山川, 次左江·右江山川, 次安南·高麗·占城諸國山川, 次京都城隍, 次六纛·大神旗纛·大將五方旗神·戰船·金鼓·銃礟·弓弩·飛鎗·飛石·陣前·陣後諸神. 各壇之祭, 皆上躬自行禮. 先祭, 禮官奏, 祝文, 太歲以下至四海, 凡五壇, 上稱臣者, 請親署名, 其鍾山等神, 上稱余者, 請令禮官代署.
上曰, “朋友書牘往來, 尙親題姓名, 况神明乎, 必皆親署.” 及登壇, 太常司丞任以忠贊禮慮上力倦, 頗簡薦跪之儀. 禮畢, 上問故, 以忠以實對. 上曰, “人臣愛君以道. 朕之於神, 惟恐誠敬未盡, 何敢憚勞. 汝當悉朕意, 後勿復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