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나는 민정수석, 시민사회 수석, 다시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을 지냈다.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들이었으나 나에게 맡겨진 책무를 다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일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처음 민정수석 직을 맡아 달라 얘기했을 때 나는 그런 제안을 하는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 내가 그 소임을 맡게 되면 그가 하려는 개혁을 도울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했다. 노 대통령은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는 말씀까지 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은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를 쓰십시오.” 그리고 덧붙였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정치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의 청와대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여정부의 첫 내각 인선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업무 특성상 민정수석실의 검증을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사실상 나의 첫 당면과제였다. 특히 내각의 사회분야 쪽엔 상당부분 깊이 관여했다. 첫 조각은 파격 그 자체였다. 나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당선인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고영구 국정원장, 이용섭 국세청장 등의 기용은 그런 내각의 성격을 잘 말해주었다.
평창동의 작은 연립에 세를 얻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마당이 100평이 넘는 부산 집을 팔아도 강남 30평 아파트 전세 값이 안 됐다. 근무 시간이 길어 사생활이 크게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이전 생활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하긴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업무 시간 외에는 내가 직접 차를 모는 것, 방이 따로 없는 대중음식점에서 밥을 먹는 것, 사람들 틈에 섞여 줄서서 기다리는 것, 비행기나 기차의 일반석을 이용하는 것,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니는 것 등, 나로서는 당연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기왕의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의 인사들은 대개가 그랬기 때문에 일요일 혼자 간 등산길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했다.
청와대 생활은 힘들고 고달팠다. 업무량이 한계용량을 늘 초과하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심지어 치과치료를 받느라 드릴이 어금니를 긁어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졸음이 쏟아졌다. 이렇게 무리를 하다 보니 민정수석 1년 만에 이를 열 개나 뽑아야 했다.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민정수석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재미있는 것은 이를 뺀 개수가 직급에 따라 차이가 났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업무연관성에 대한 분명한 증거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출처/ http://www.moonjaein.com/his_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