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9에 쓴 글입니다. 18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 사이 장기판은 완전히 기울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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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 ( 계명산 추야월에 구슬픈 옥퉁소 소리 )
매미 소리가 낮잠을 깨우면 김 노인과 이 노인이 장기를 둔다. 둘은 논두렁을 이웃한 사이라 두렁의 경계나 물꼬 때문에 자주 다툰다. 둘이 두는 장기판에는 그래서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 노인은 이제 갓 장기를 익혔다. 말이 가는 길만 알 뿐이고 전략이나 전술은 아예 개념조차도 없다. 김 노인은 느티나무 아래서 잔뼈가 굵은, 열 수 앞을 내다본다는 동네 최고의 고수다. 둘이 장기 두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 노인은 말을 먼저 옮기고 나서 생각하고, 김 노인은 상대 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서 말을 옮긴다.
김 노인이 홍(漢)이고 이 노인이 청(楚)이다. 청이 먼저 졸(卒)을 안으로 쓸어 넣는다. 졸(卒)을 밀어 넣는 이유는 차(車)의 길을 내기 위함이란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김 노인이 마(馬)를 옮긴다. 포(包)를 쓰려 것이다. 이 노인은 김 노인이 왜 마(馬)를 움직이는지 모른다. 공격에는 차(車)가 최고지만 양쪽 말들의 기세가 등등할 때는 붕붕 건너뛰며 적진을 교란시키는 포(包)가 더 났다.
이 노인도 마(馬)를 앞으로 움직인다. 김 노인이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따라 한 것이다. 포를 많이 쓰면 군(君)이 허 해진다. 군(君) 단속이 필요하다. 이 노인은 중포(中包)를 세우면서 포가 움직이면 김 노인의 군(君)을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은 상(象)을 전방으로 내 보낸다. 눈앞에 보이는 졸(卒)을 잡으려는 것이다.
포를 자유자재로 쓰고 싶은 김 노인은 자기 군(君)부터 튼튼히 하려고 상(象)을 궁(宮)으로 들여앉힌다. 일명 면상장기다. 이 노인은 김 노인이 왜 면상장기를 두는지 조차도 모른다.
김 노인은 고수다. 이 노인의 한 수는 그냥 한 수 일 뿐이지만 김 노인의 한 수는 열 수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열 수 앞을 내다보고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 하면서 움직인다.
이 노인이 상(象)으로 김 노인의 졸(卒)을 잡는다. 김 노인이 졸로써 상(象)을 낚아채리라 여겼는데 그냥 둔다. 대신 김 노인은 포를 넘겨 이 노인의 차(車)를 달라고 한다. 이 노인의 차가 피 할 곳이 없다. 차(車)가 먹히고 나면, 마(馬)가 먹히고, 포(包)가 먹히고 -.
이 노인과 김 노인의 장기는 늘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리고 만다.
새 정부가 들어 선 이후 북한의 “핵 재처리 시설 냉각탑 폭파 ”,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한미 FTA체결 늑장”, “국제석유 값 폭등”, “외국인 투자자금의 증시 이탈”, “금강산 관광객 피격”, 일본의 “독도분쟁 야기”, 미국의 “독도 한국영토 표기삭제” 등등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우리가 대체 말을 어떻게 움직였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저들은 무슨 수를 쓰려는 것인가.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시골 느티나무 아래서 어른들이 장기를 두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외교판과 경제판에는 장기판 보다 더 많은 말들이 움직인다. 다양한 변수가 무한급수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최소한 서너 수라도 내다보고 행마를 해야 제 집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동북공정과 고구려, 발해 역사 말살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올림픽이 끝나면 또 무엇을 들고 나올지 지레 겁이 난다.
' 계명산 추야월에 구슬픈 옥퉁소 소리- '
고수는 상대가 무슨 수를 썼는지도 모르게 수를 쓴다고 한다. 나라가 차(車), 포(包), 마(馬), 상(象)에 몰려 사면이 초가(楚歌)인데 필부가 걱정을 다 하며 훈수를 두니 더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중복이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수박이나 깨어 먹으며 마음 통하는 벗과 장기나 한판 두고 싶다.
"에잇, 장이야! 장 받아라!"
예나 지금이나 장기는 훈수꾼에게 더 잘 보인다. 장기야 다시두면 되지만 손상된 국익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인가.( 200자 원고지 11.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