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보트피플 ▣
1973년 1월 베트남 전쟁휴전을 위한 파리평화협정체결이 이루어지고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은 60일 이내에 베트남에서 완전철수 하기에 이르렀다.
2년후 남베트남에서 티우政權이 자중지란에 빠져 국가붕괴에 처하게 되었고
1975년 4월 30일 마침내 월맹군에게 사이공이 함락되고 베트남은 공산화 되었다.
공산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많은 남부 베트남인들은
즉각 해외로의 탈출을 시도하였다.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망명길에 올랐던
1세대 탈출자들은 미국 등 서방으로 이주하여 비교적 쉽게 그곳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탈출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안전한 이주 및 재정착의 보장없이
무작정 국경을 넘거나, 배를 타고 공산베트남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이들중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동남아 일대의 바다를 정처없이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이 바로 보트피플(Boat Peaple)이라 불리우는 베트남 난민들이었다.
베트남으로부터의 탈출 행렬은 1975년의 베트남 공산화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70년대 말까지 벌어진 인도차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계속되었다.
즉 캄보디아 내전에 대한 베트남의 개입과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그리고 이를 응징하기 위한 중국의 베트남 침공으로 인하여 수십만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하였다.
당시 특히 북부 베트남에 살고 있던 약 25만명의 중국계 베트남인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인도차이나반도는
전쟁의 혼란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치적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공산베트남 치하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탈출
보트피플의 행열은 계속되었다.
▣ 국제미아로 전락한 보트피플 ▣
베트남 난민은 주로 남부 베트남에서 중산층을 차지하고 있었던
중국계(화교) 베트남인들과 기능공, 그리고 농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70년대 베트남 난민들의 60%는 중국계 베트남인들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베트남의 패망 이듬해인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간 공산베트남을 떠난 자들은
십중팔구 불법적인 방법으로 즉 베트남정부의 승인을 득하지 않고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채 도망한 자들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1979년 7월까지 20만명 이상의 보트피플들이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난민수용소에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베트남으로부터의 불법적 탈출이 계속 증가하였다.
베트남 탈출자의 대부분은 정치적 박해가 아닌 경제적 동기에 의한 탈출자들이었다.
탈출자들의 행렬이 끊어지지 않자 유엔난민 고등판무관(UNHCR)는 물론
그동안 베트남 탈출자들에게 난민수용소를 제공하고 호의적으로 처우한
동남아국가들, 그리고 망명처를 제공해 왔던 서구국가들마저도 이들을 더이상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보호하거나 망명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베트남 탈출자들은 그들이 망명을 신청한 영토국(현지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입국자 내지 불법체류자로서 간주되었다.
그래서 베트남 탈출자들에게는 신변안전과 안정된 삶의 정착은 더이상 보장되지 않았다.
반면 그들의 탈출행위는 본국에서는 불법적인 반역죄로 간주되어
이들은 갈 곳 없는 국제 미아(迷兒)의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점차 다수의 국가들이 베트남 탈출자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베트남 탈출자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통해 보트피플의 양산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베트남 탈출자들의 숫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1976년부터 1992년말까지 동남아지역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수는
총 792,89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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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CR의 통계에 의하면 동남아국가들에 분산.수용된
베트남 탈출자들의 수는 1986년의 경우 31,694명이었는데,
1989년에는 무려 배나 증가되어 65,349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1979년부터 1992년말까지
동남아국가들의 난민 수용소(refugee camp)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자격(refugee status)을 인정받아 서방 등 |
제3국에 정착한 난민수는 438,436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1995년 3월 현재 난민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채, 동남아의 난민수용소에
체류하고 있었던 베트남 탈출자의 수는 홍콩 23,334명, 인도네시아 5,290명,
말레이지아 4,867명, 태국 4,754명, 필리핀 2,739명 등이었다.
▣ 보트피플 난민캠프 ▣
난민캠프는 작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같은데, 이 난민캠프는 3가지 종류로 대별된다.
첫째는
열린 캠프(open camp)이다.
이 캠프에서는 자기가 원하면 나갈 수 있으나
통금이 되면 반드시 돌아와야하는 수용소를 말한다.
둘째는
폐쇄된 캠프(closed camp)이다.
이 캠프의 경우 정부로부터 허가 받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셋째는
가족난민 캠프(house camp)이다.
이것은 난민수용국에 가족이 있을 때 가족이 수용소에 신청등록하면
캠프내에서 가족이 모두 함께 생활할 수 캠프를 말한다.
난민캠프에는 상 하수도 시설과 병원시설 등 필요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총칭해서
난민구호계획(care program)이라고 한다.
난민구호계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들에게 도피처, 의약품 등을 주는 것이며,
이것이 난민발생시 긴급구호 차원에서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UNHCR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임무는
베트남 출신의 정치적 망명요청자들이 난민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심사하고,
난민으로 판정된 자들에 대해 적절한 구호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1995년경부터는 이전에 난민으로 판정받았던 베트남 탈출자들도
그들이 피난해 간 국가들에서 더이상 난민이 아니라고 분류되기 시작하였다.
UNHCR은 난민이 아니라고 판정받아 그 나라로부터 강제퇴거당한 사람들이
다시 난민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UNHCR은 망명했던 나라에서 현재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거나
망명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경우 그러한 자들을 돕고 있다.
▣ 보트피플 본국송환 ▣
1980년대 말부터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이라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극심한 경제난에서 벗어나 경제도약을 위한 국가적인 노력을 가시적인 시작한다.
시간이 감에 따라 베트남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하게 되고 국제사회는 베트남의
경제발전에 주목하게 된다. 이에 따라 베트남 난민문제의 처리는 제3국에서의
재정착이 아니라 본국귀환이라는 방식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베트남 난민들이 귀환하게 되는데, 귀환의 유형은 세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CPA의 일환으로 추진된 자발적 귀환(voluntary repatration),
둘째,
순차적 귀환계획(Orderly Repatriation Programme: ORP)에 의한 귀환,
셋째,
난민수용국의 추방(deportation)에 의한 비자발적 귀환이 그것이다.
UNHCR은 자발적 귀환을 적극 유도하는 한편,
귀환자들에 귀환 및 정착을 위해 필요한 재정지원을 하였다.
또한 UNHCR은 CPA는 물론 ORP의 실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부응하여 베트남 정부도 난민 방출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난민수용국들과 1995년 말까지 난민을 모두 송환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상당수 난민들은 강제송환을 거부하고
수용소내에서 분신위협 및 자해소동 등에 의해 송환에 저항하였다.
따라서 베트남 난민중에는 강제로 추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오는 일도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베트남 난민들은 난민발생지국을 떠났다가 후에 다시 출발지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러한 예는 난민처리의 경험상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히 귀환자들에 대한 지원방식과 내용은 그 이전의 베트남 탈출난민이나
또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탈출난민들의 경우와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베트남 난민들중 귀환을 희망하는 자들의 지원프로그램 때문이다.
베트남 난민들의 귀환지원프로그램은 UNHCR의 지원과 NGO의 지원으로 대별된다.
전자의 지원은 외국에서 베트남으로 귀환하여 정착하는 전 과정에 걸친 것이나,
후자는 주로 베트남 귀환후 귀환난민들의 재정착과 자활 및 자립을 위한
지원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 난민의 본국귀환은 1989년 3월부터 실시되었는데,
이 때부터 UNHCR은 귀환자들에게 필요한 물질적.정신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자발적 귀환이 실시된 초기에는 100명 정도가 귀환을 신청했었다.
베트남 귀환과 관련하여 UNHCR은 난민이 희망할 때 본국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본인에게 확신시켜 주는 일을 담당한다.
이와 관련, UNHCR은 자발적 귀환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베트남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핵심적인 합의사항의 하나는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으로 귀환하기 원하는 자들에게 부당한 박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을 팔고 베트남을 탈출한 자들이 가족단위로 돌아오게 되면 정착금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 UNHCR은 귀환자들에 대해 긴급생활비로 성인 1인당 50$과
15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25$씩을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매월 생활비로 30$씩 해서 귀환 첫년도에 년 360달러를 한 번에 지급한다.
그 이후 추가적인 지원은 제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인의 경우 1인당 지원금은 모두 410$이 된다.
베트남의 GNP수준이나 귀환자들의 거주지가 대부분 농촌지역임을 감안하면
1인당 400$ 내외의 귀환 및 정착 지원은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다.
난민들의 본래 출신지에 다시 정착하는 데에는 충분한 액수이며 실제로도 재정착에
별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귀환자들의 50%는 탈출전 보다 잘 살고,
25% 정도는 비슷한 수준이며 나머지 25% 정도는 전보다 못 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UNHCR이 베트남 난민들에 대해 현금을 지원하는 일에 관해
Su Ping씨는 UNHCR이 다른 나라 난민들의 경우 돈을 주지 않고 옷가지 등
기본 일용품을 제공하고 있는데, 베트남 난민의 경우 베트남에 돌아오자마자
전국각지로 흩어지게 되는 점을 감안하여 일시불로 현금을 주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UNHCR은 베트남 난민이 베트남으로 귀환한 후 귀환자들에 대해 필요한 재정지원을
해주며, 이들의 정착상황을 계속 모니터하고 있다.
▣ 한국은 난민문제에서 자유로운가? ▣
베트남 난민문제는 냉전시대에 베트남의 패망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베트남 난민문제는 전쟁종식 이후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난민문제에서 우리는 난민문제라는 것이 전쟁이나 경제적 궁핍 등
의도되지 않는 위기적 한계상황에서 쉽게(?) 발생하지만,
이미 벌어진 난민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극히 어렵고 또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난민문제의 해결은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우며,
당사국은 물론 UNHCR과 같은 국제기구와 NGO와 같은 민간단체 등을 포함하여
국제사회의 통합적인 해결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제 탈냉전시대에 들어와서 한반도가 새롭게 국제사회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기아선상에서 헤메고 있고,
상당수 북한주민들이 탈북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트남의 난민사례에서 보듯이 탈북자는 가능한 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도와 정책방향과는 무관하게 예상치 않은 시기에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돌발사태가 발생할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비상대비 계획(contingency plan)의 마련은 필요하다.
우리는 베트남 보트피플의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