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106]전직 고위관료와 현 총리의 우리말사랑
한 친구가 1월 20일(그러니까 한 달 전) 3분 17초짜리 동영상을 보내온 것을 오늘에사 애써 찾아 보았다. MBC와 함께 ‘굥정부’로부터 탄압을 받는다는 YTN의 <돌발부록>인데, 제목이 ‘총리의 영어 사랑’이다. 한마디로 경약을 했다. 아무리 어쩐다해도 한 나라의 총리(옛날로 치면 영의정인가?)가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왜 그리 흥분하여 핏대를 올리느냐고 말하지 말라. 작년 10월 9일 총리(너무나 불쾌해 그 이름 석 자조차 쓰고 싶지 않다)의 한글날 기념사를 들어보시라.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 말씨는 겨레의 표현이요 생명이요, 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말과 글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그럴 듯하지 않은가. 마무리 부분은 “(이제 한글은) 세계인들이 사랑하고 배우는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였다. 말씀 한번 잘 하셨다. 그런 그가 11월 1일 이태원참사 직후 외신기자간담회에서 한 답변을 들으면 어안이 벙벙하다. 거의 모든 명사의 단어를 영어로 치환置換하고 있다. 간담회 후반에는 아예 영어로만 한다. 외신기자들이 정작 우리말로 질문을 하는데, 외신기자들을 배려한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라. 그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연결도 되지 않고 횡설수설하는 것같다. 목소리조차 아무 히말태기없이 죽어가는 듯하다. 외모로 말하면 안되지만, 언제 봐도(국회 답변 때에는 더한다) 얼굴에 ‘비굴기’가 가득하다. 그는 평소에도 대화의 절반 이상을 영어로 한다고 한다. 국내기자들과 회견은 갈수록 태산, 더욱 해괴망측하다. 이율배반二律背叛은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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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말 아니다. 나쁜 쉐끼, 정신줄을 놓은 넘같다. 미치려면 곱게나 미칠 일이지. 죽는 순간에도 영어로 할까? save my life, please. 동영상을 보다보면 욕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태원참사도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을까? 하여, 서재에서 찾은 책이 지난 1월초 선물받은 『우리말 오솔길』(최창신 지음, 230쪽, 애니빅 펴냄, 2만원)이다. ‘우리말 사랑 이야기’가 눈물겹게 가슴에 와닿는다. 저자는 한때 문광부 고위 관료였으며, 본래 체육인이라 해야 맞을 듯하다. 김운용씨와 태권도를 전세계에 알린 주역이자 공신이다. 우리 또래는 그분의 얼굴을 보면 기억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을 지낸 국제적인 인물. '의리의 사나이'인 저자는 박람강기博覽强記, 글도 잘 쓰시고 말씀도 엄청 잘 하신다. 45년생, 띠동갑 선배이신데, 2000년대초 고맙게도 인연이 되었다.
머리말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강산도 빼어났다/배달의 나라/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글날 노래임을 알 것이다. 허나, 우리의 아들, 손자들은 이 노래를 알고 있을까, 몇 번이나 부를까? 모를 것같다. 최현배 박사가 노랫말을 썼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한글은 세계 으뜸의 문화유산이다. 이 세계에서 국민을 위해 군주가 만들고, 한 나라의 공용문자로 삼은 언어는 한글이 유일할 것이다. 그런 우리말과 글일진대, 언어오염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은 왜일까? 목불인견目不忍見, 눈 뜨고 도저히 못봐줄 정도로 ‘타락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팔십이 다 되어가지만 영원한‘흰머리 문학소년’인 듯하다. 그 연세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하여 김유정의 <소낙비> 등 주옥같은 단편을 뒤적이며, 아름다운 순우리말에 취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어디 그뿐인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또 어떤가? 우리말의 보물창고가 아니던가. 그런 아름다운 말의 맥脈은 왜 끊기게 된 걸까? 그것을 너무 안타까워 하신다. 대신 우리 언중생활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쿨하다’ ‘시크하다’ ‘엣지있다’ ‘배틀하다’ ‘포스가 있다’‘헐’ 등을 하나하나 해부하며 혀를 차고 또 찬다, 짧은 글들이나마 맛깔스럽고 쏙쏙 머리에 들어온다.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거늘, 우리의 말과 글의 소중한 가치를 정녕코 모른단 말인가. 총리 자신이 우리 한글이 “세계인들이 사랑하고 배우는 언어가 되고 있다”고 하면서, 저 작태作態는 무엇인가. 외국 유학하지 않고, 영어 모르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기어코 영어를 공용화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공기空氣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에도 그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 것과 다름없을 터, 너무나 오염되어 이제 털어낼 수조차 없는 지경인 것을.
시골생활 4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글도 잘 못쓰는 할머니들이 영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는지 상상이 가시는가. ‘마인드’나 ‘카렌다’‘가이드’는 숫제 우리말인 것을. 듣다보면 무슨 뜻인지 알고 쓰시는 걸까,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시니어클럽’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노인네 일자리 조직이다. ‘주니어’는 몰라도 ‘시니어’가 늙은이라고 알고 있다. ‘포클레인’ 발음이 어려워 ‘코크린’이라고 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게 어디 어찌 총리만 비난할 일인가. ‘생활 속의 독버섯’영어(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어떻게 몰아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최근 배운 아름다운 우리말 하나 소개하며 줄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숫눈길’은 어떤 길인가? 눈이 와서 쌓인 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길이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아무도 먼저 가지 않은 길//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도/아무도 먼저 걷지 않은 길//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 태어나/동천햇살 따라 서천노을 따라/길 하나 만들며/음-음-음-음/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