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글밭 농사
이병옥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 다음 날이다. 널뛰는 기온이 겁이 난 남편이 서둘러 고구마를 캐왔다. 계단에 쭉 늘어놓은 고구마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동글동글한가 하면 호미처럼 꼬부라지고 길쭉하고 뭉툭하고 크고 작고 호미질에 찍힌 상처 난 놈까지 천태만상이다. 위로는 고라니, 아래는 수시로 두더지 굼벵이 습격을 받은 고구마들이다. 고구마의 습기를 말리기 위해 신문지 위에 하나하나 펼쳐놓으며 내 글밭도 돌아보았다.
세 번째 수필집을 짓기 위해 모아둔 글감들이 보면 볼수록 못난 고구마를 닮은 것 같다. 탱글탱글한 자재들로 속이 꽉 차기보다 어딘가 부족하고 흠집투성이로 보여 주춤주춤 집짓기를 더디게 만든 글이다. 눈부신 봄날, 빈 텃밭에 달콤한 꿈을 심으며 곧고 실하게 키우고 싶었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는 따뜻한 수필집을 짓고 싶은 건 마음뿐이었다. 여름 내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건만 농사의 지지부진한 수확물과 수필집의 부실한 글들을 거두어 놓고 보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우울한 기분으로 흠집 난 고구마를 골라다 흙을 씻어내고 찜 솥에 폭 쪄 놓았다. 껍질을 벗겨내고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달큰한 맛이 제법이다. 산짐승과 각종 벌레, 극성스러운 잡초까지 어울려 살아온 100% 유기농 작물이라서 꼴에 비해 실속이 있다고나 할까. 문득, 넉넉지 못한 내 글밭 농사도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씹힐 때 간간이 이런 단맛이 났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며 손 모아 본다. 단풍 같은 마음이 갑자기 초조하고 분주해진다. 결점뿐인 수확물을 갈무리하기 위해 서둘러야겠다. 칼바람이 떼로 몰려오기 전에……. |
첫댓글 임산부가 어떤 아이가 나올까 기대하면서 순풍 순풍 아이 낳듯이 글도 잘 쓰시면서 공연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요 태어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이가 사랑 받듯이 책도 출판하면 그렇게 독자로부터 사랑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순풍순풍이 아니라 늘 끙끙 거리다 출산하는 글입니다. 에구~~ 이제 해산할 날이 다가오니 어떻게 생긴 놈이 나올지 불안 초조입니다. 이런 마음 출간해 보신 샘들은 아시겠지요. 아니, 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