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本文) : 창세기 46장 1~34절
주제(主題) :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요해(要解) : “내가 너와 함께...” 이는 아담 언약이후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백성에게 이행하시는 언약이며 최고의 선물이다.
그 언약대로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은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택하신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내재(來住內在) 하시며 그의 인생여정에 늘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야곱의 가족이 마침내 애굽 이주를 결심하고 이행한다(1-7절).
이것은 창세기 15장 13-17절의 횃불언약 중 "이방의 객이 되리라"는 예언의 성취임과 동시에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본향(本鄕)으로의 귀환약속이 그 중심에 있다.
따라서 야곱가족의 애굽으로의 이거(移居)사건이 주는 의의는 음란하고 추악한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숭배로부터 신앙을 보호하고, 여러 연단을 통한 언약 백성으로서의 성결성과야곱의 일가를 민족과 국가로 성장시켜서, 언약의 땅 본향으로 돌아오게 하려는데 있다.
단락구분(段落區分)
1-4 하나님의 음성과 동행언약
5-7 야곱의 이거(移居) 결정과 이행
8-27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
28-34 이스라엘과 요셉의 상봉
-註 解-
1-4 하나님의 음성과 동행언약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야곱에게 32장에서 새 이름을 주셨다.
본문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애굽으로의 이주(移住)가 개인적인 자격이나 단순히 기근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차 형성될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로서 언약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과 깊은 관계가 있는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이는 야곱이 애굽으로의 이거(移居)가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제단에 나아온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응답하신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야곱은 이미 벧엘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동행을 약속 받았으며(창28:15), 그가 기도한 대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었다(창32:9). 미지의 세계로의 이거는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조부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이주 때문에 위험을 겪었던 것과 부친 이삭에게 애굽 이거를 금지시켰던 것도 불안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창12:14-20; 26:2). ‘야곱아 야곱아’ 야곱이란 이름을 반복해서 부른 것은 야곱을 만나 주셨던 것을 상기시키고,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7 야곱의 이거(移居) 결정과 이행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지 215년이 지난 후, B.C 1876년경 야곱의 나이 130세다.
이 때 야곱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구속사의 핵심인 출애굽 사건의 전조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또한 자신이 살아왔던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나 마침내 애굽으로의 이주를 단행한 것이다.
8-27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가족의 명단이 열 두 아들을 중심으로 모계별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명단은 반드시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자들만을 가리키지는 않으며,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까지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12,21절). 그 이유는 저자의 기록 의도가 출생지 여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형성이라는 대전제(大前提)를 염두에 두고 그 명단을 제시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베냐민이 마치 밧단 아람에서 태어난 것처럼 기록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창26). 따라서 여기 제시된 야곱의 아들들 및 손자 그리고 증손자들의 명단은 모세 시대를 기점으로 살펴본 각 지파의 창설자들 내지는 독립적인 부족(部族)을 형성한 족장들의 명단이다(민26장).
성경은 세 가지 형태로 그 수효를 기록하고 있는데, 즉 26절의 66명의 숫자는 야곱과 애굽에 있었던 요셉과 그의 아들 므낫세 및 에브라임을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27절의 70명은 제외한 네 명이 포함된 숫자다.
사도행전 7장 14절은 75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70명의 수효에 후에 독립 가계를 형성한 요셉의 다선 후손을 가산한 숫자다(창50:23). 70이라는 숫자는 히브리인들의 숫자 개념에서 특별히 이주 사건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목적하에 제시된 70명이란 애굽 이주단의 숫자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된 신성성을 가진 숫자 7과 인류 발전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10의 숫자가 곱해져(7x10) 형성된 것으로 결국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근거하여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거룩한 자손으로 인친 표시이며 동시에 충만한 번영과 온전한 구원을 예표한 숫자라 할 수 있다(창12:2; 13:16; 15:5; 17:6; 22:17; 26:4; 28:14).
28-34 이스라엘과 요셉의 상봉
헤브론에서 헤어진 후 22년 만에 상봉하는 야곱과 요셉의 눈물겨운 만남과 야곱일가가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는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유다를 미리 보내어 가족들이 정착을 준비하도록 한다. 드디어 야곱과 요셉 부자의 눈물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이어 요셉은 아비 야곱이 바로를 알현 할 때 애굽인들이 꺼려하는 목축업을 강조하도록 함으로서 고센 땅 거주의 허락을 유도하도록 권고한다.
그 이유는 고센 땅은 목축하기에 적당하고, 애굽 사회와 격리된 곳이며, 따라서 애굽인들과 동화되지 않고 민족적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으며, 뿐만 아니라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후에 가나안으로 다시 이주하기에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언약을 굳게 믿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창15:14; 46:4).
※. 애굽인들이 히브리인들과 및 목축업을 천시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농경민이었기에 자신들과 다른 유목민에 대한 이질감과 배타심리 때문이며, 유목생활의 거칠고 야만적이라는 것, 그들 역사 초기에 유목민들에게 침공당한 아픈 경험의 피해의식, 그리고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짐승들을 죽이는데 대한 경멸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하며 습득된 지식으로 상대를 평가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 생활과 풍습에 대한 이해와 인간애가 먼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