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16-09-11 08:49 조회 : 853 |
| | | 두 블럭만 걸어가면 아들 네 집이다. 아들이 홀로 되어 두 녀석을 데리고 대구에서 이사온지 3년이 되었다. 이웃 해 산 게 퍽이나 오래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요즘은 아들 네에 가는 일이 그다지 빈번하지 않다. 처음 얼마동안은 아들네 집에 주 3일 갔을까, 그런 다음 주 1회. 어느 날 아들 네서 나오다가 길에 쓰러지고 부터는 주말 외에는 아들 네 집에 가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널브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부축해 주어서 겨우 몸을 추스려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아들 네 집에 가면 일이 많다. 아들은 빈틈 없이 잘 해나가고 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래도 잘 보면 언제나 그만큼의 일거리가 또 있다. 우선 반찬, 음식이다. 녀석들의 외가에서 정성껏 공수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이다. 녀석들의 요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부분 마트에 들려 시장을 보아서 가기도 하고, 아들 네 냉장고에 쌓여있는 식재료를 선별하여 그 중에서 반찬을 새로 만들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버리고 하면서 잠시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게 된다.
돌아보면 몇 시간 동안 해놓은 일이 무엇이었던가 싶게 허망하다. 표가 안 나는 일이 바로 집안 일이다. 표가 안 나는, 생색도 안 나는, 게다가 평생 급료도 받지 않는 일을 20대 결혼 이후 관절이 삐그덕 거리도록 수 십 년 계속해왔다.
집안 일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중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다른 누구가 대신 해 줄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힘들면 사람을 호출할 수는 있다. 사람부리는 일, 그게 어디 용이한 일이던가. 타인이 와서 할 일이란 한정돼 있다. 그리 간단하게 해결지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새삼스럽다. 가사노동에 졸업이나 수료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긋한 나이와 약한 체력이다. 그래서 아들 네로 가는 두 블럭이 때로 몇 십리 밖 아득히 먼 곳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 것이다.
올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 역사적인 장편소설<무심의 꽃>을 창작 집필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청주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엮느라고 거의 초죽음이었다. 와중에 치아가 말썽을 부려 발치하고 치료하느라 고역도 따랐다. 전례없는 혹서에 그야말로 죽어, 죽어 였다.
9월! 갈바람이 삽상하게 불어온다. 집안에 어려운 일,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여 몇 년 쉬었던 논문을 다시 펼치고 보니 정신과 육체가 공히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숨이 가쁘다. 간신히 지탱해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녀석이 궁금하고 생각나는 순간 나는 아들네로 달려간다.
3시부터 밤 10시가 되도록 대체 나는 무엇을 했지?. 왜 이처럼 내몸은 파김치가 된 것인가. 숨 돌릴 겸 아들 방의 책상 앞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선한 성품, 좋은 계모. 다른 조건 다 그만두고 이 둘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긴히 바라는 바는 이에서 더 욕심부릴 수가 없다.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앞 뒤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좀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을 들은 것 같은데, 봐란 듯이 앞 뒤 창문을 다 열어두다니. 내가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창문을 열어놓고 달려갔더란 말인가.
제발이지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그 고전의 주인공 말고, 어질고 심덕 좋은, 현대판 우렁각시 출현을 바란다면 과욕일까. 이 밤 나의 소망은 맹랑하고 절실하다. |
| 윤행원 | 16-09-12 09:01 | | 변영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라도 소식을 들으니 기분은 좋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잡다한 가정일과 그리고 그렇게도 지독한 더위도 거뜬히 이겨내고 소설까지 한 편을 뚝딱 완성하셨다니...참으로 대단합니다. 쉬엄쉬엄 건강도 챙기면서 바깥나들이도 자주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 |
| | 임재문 | 16-09-13 01:16 | | 변영희 선생님 ! 저도 아들이 바로 인근 아파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불럭이 아니라 걸어가도 잠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에 살아갑니다. 이제는 손녀가 초등학교 3학년 손자가 올해 입학을 해서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많이도 흘러갔습니다. 가는 세월 잡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마음 다 비우고 그렇게 손자 손녀 자라는 모습 아들이 회사에서 활략하는 모습 며느리 살아가는 모습 ! 지켜보며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영희 선생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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