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전과 달리 교회생활에 소극적이던 B권사가 최근 종종 주일예배마저 빠지기도 합니다. 그는 요즈음 불면증과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급성 위출혈로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위천공'으로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위천공이라 하는 걸 보니 아마도 하루 아침에 생긴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질고는 마무래도 몇 년 전 은행 빚을 얻어 사놓은 아파트 때문인 듯합니다.본인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신도시에 7억 가까이 되는 아파트를 빚 4억을 얻어 샀는데, 요즈음 5억으로 떨어졌답니다. 모기업 간부로서 받는 월급 500만원 가운데 200만원이 매달 은행 빚 갚는데 들어가는 실정이지만, 아파트 시세는 계속 내려가는 추세이고, 집을 내놓아도 매수자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더구나 원금을 갚아야 할 시점이 코 앞으로 다가와 마음을 간장 조리 듯합니다. 내년 봄엔 아들 결혼식도 치러야하는데...
사실 B권사는 부동산 투자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아파트에 투자해 재미를 쏠쏠히 봤습니다. 그러다 주식 투자로 그만 몽땅 잃은 적이 있지요.
서울서 목회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B권사와 같은 교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소위 시세 차익(불로 소득)을 노리고,빚을 얻어 아파트를 샀다가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인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이 찔립니다. 그 이유는 본인도 본인이지만, 그 고통의 배후에 목회자들의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강단에서 기복신앙을 전파함으로써 그런 교인들을 양산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부류의 목회자로 산 적이 있습니다. 눈이 열리니, 부끄럽기 한이 없는 이전의 모습이 보여, 낯이 뜨거워집니다. 그 때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쏟던 때지요. 마침 교회건축 계획도 있던 때라서 더욱. 부동산으로인한 불로 소득을 어떻게 하면 강단 '헌금함'에까지 유도할까에 마음이 은근히 가 있던 거지요. 부동산을 가진 교인들에게 기생처럼 비위를 맞춰야 하나? 아니면 종교적 감동을 주어야 하나?하고 잔머리를 굴리는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러다 때로는 그런 돈이 벼락처럼 떨어지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기도를 한 적도 있지요. 물론 핏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를 성장시키겠다는 그럴 듯한 사명감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간절히 구했는데, 왜 응답이 없느냐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낸 적도 있고요. 원망도 안 통하면 이제는 하나님을 협박하거나 돈(헌금)으로 협상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목회자의 영혼이 혼미해지면 교인들이 동전으로 보이게 되지요. 설교는 기복과 성공신화,값싼 복음,가짜 복음으로 장식되고요. 복음으로 포장된 탐욕을 가진 목회자는 교인들의 탐심을 부채질 하게 됩니다. 물론 헌금은 '묻지마 헌금'이 됩니다. 묻지마 헌금은 그 돈의 출처를 묻지 않습니다. 어떻게 번 돈인가는 더구나 묻지 않습니다. 헌금 드리는 동기도 묻지 않습니다. 목적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액수만 많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묻지마 헌금도 목적을 설정할 때가 있습니다. 탐욕적 소원이나 목표를 걸어 놓고 헌금을 걷거나 드리는 경우지요. 이 목회에서 교인의 '영혼 살리기'는 당연히 뒷전으로 밀리게 되지요. 영혼은 수단이 될 뿐입니다. 예수 이름도 철저히 수단이 되고.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나아가 예배)에 대해 그는 묻습니다. 감찰하고 검토합니다. 헌물 드리는 자의 자세와 헌금의 성격을 문제 삼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직접 들읍시다. 선지자 이사야가 소개합니다. "무엇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수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수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 너희가 나를 보러 오는데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내 집 뜰을 짓밟으라고 하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행사와 축제들이 나는 정말로 싫다. 귀찮다,이제는 참지 못하겠구나.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 보아라. 내가 보지 아니 하리라. 빌고 또 빌어 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사1:11-17)
이 말씀은 나의 가증스런 탐욕의 목에 꽂히는 비수가 되었습니다(히4:12). 비수는 성육신 하신 예수에게서도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회중 가운데서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과 회중이 드린 헌금을 비교하시며 헌금의 성격을 평가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모습을 보시며 바리새인의 십일조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눅18장). 헌금을 드린 사람의 태도를 문제 삼으신 것이지요. 예수께서 던진 비수 중의 비수는 소위 '예루살렘성전정화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마21:12-13). 당시 그곳은 유대인들의 더러운 헌물과 예배가 드려지는 중심지였지요. 그런데 이 비수에 맞은 사람들이 예수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어 예수를 죽였지요. 비수는 초대교회로 이어집니다. 베드로는 잘못된 헌금을 드린 아나니아부부를 공개 처형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행5장).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에서도 비수를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역시 잘못된 헌금때문이지요. 시몬이란 사람이 권능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흥정하는 속셈으로 돈을 낼 때 "네가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습니다.(행8:18-24)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헌금에 대해 묻습니다! 하지만 '묻지마 헌금'이 쌓이는 교회는 아마도 높고도 두터운 돈담벼락의 옹위를 받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갈 틈이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
양식 있는 전문가들에 의하면,우리나라의 부동산버블은 포화 상태로서 이제 그 거품이 꺼질 일만 남았다고 합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버블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투기성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기업,기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피 흘리며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엄연한 경제법칙이지요. 나아가 부동산투기를 위해 묻어 놓은 막대한 자금은 이 나라의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부동산투기자금은 막대한 사교육비와 부패의 검은 돈과 더불어 나라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암적 요소입니다.
아무튼 B권사와 같은 교인들에게 이제 무슨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을까요? ......... 원하는 가격으로 아파트를 파는 기적을 위하여 전능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라고 할까요? 일천번제기도를 끈질긴 믿음으로 한 번 해보라고 할까요?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고, 십일조도 온전히 바치며, 다시 시세가 오르기를 기다리며 인내하라고 할까요? 세상사가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는 법이라며 긍정적 생각을 가지라고 할까요? 예언기도 해주는 데가 있으니 가보라고 할까요? 아니면 신유집회? 축사집회?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살피라는 권면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살피는 것이지요. 또한 탐심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묵상해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할례보다 우선 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태풍의 눈과 같은 영혼에서부터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어떤 변혁도 거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 속 깊은 지성소에서 십자가 지신 예수를 나의 주로 만나는 은총은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바울은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가르칩니다(골3:5).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준 말씀이 아닙니다. 골로새교인들에게 준 것이지요. 바울이 교인들에게 이 말씀을 준 배경에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기존의 교인임에도 불구하고(목사,장로,권사,집사 등),땅의 것을 구하고 찾고 지속적으로 몰두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위의 것을 추구해야하는 것인데. 위의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랑과 거룩입니다. 정의가 수반되는 사랑이고 거룩이지요.반면에 땅의 것은 음란,부정,사욕,악한 정욕,탐심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특히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못박아 강조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그동안 교회생활을 오래,혹은 열심히 해 온 나는 과연 우상숭배자인가,그리스도인인가를 이제는 냉정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구요? 맞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지금,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순례는 분명 믿음을 갖고 하는 여행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성격이랍니다.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리니까요.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얻을) 예수의 사람이 지속적으로 땅의 것을 추구하고 거기에 몰두해 살까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모신 사람이 돈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높이며 살까요? 자신의 육신적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부리는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과연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일까요? 입만 열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면서 실제는 제 영광을 챙기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일까요? 믿음과 행위는 과연 편의에 따라 분리될까요?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적용한다면 모를까, 신앙양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제 뜻을 이루기 위해 말씀을 도둑질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바울은 이렇게 단호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1-6)
무서운 진노가 임하기 전에, 고통을 통해 내 속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탐심을 발견하고 속히 회개한다면,그 고통은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구요.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통한 영원한 생명은 많은 물질적 댓가를 치르고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요.
B권사가 이 기회에 예수님을 진정 나의 삶의 주인으로 만나는 은총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 안에서 말씀을 따라 하는 회개는 나를 죽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은혜를 받게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어떤 행위의 고침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위대한 결단이요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부와 명예,세속적 성공,이생의 자랑 등에 초점을 맞춘 육신적 삶에서 탈출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교회 내 우상숭배자'(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가 참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지름길은 회개입니다. 참된 회개는 믿음을 교정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탐욕을 이루는 가짜 믿음이 아니라 탐욕을 죽이는 십자가의 믿음을 갖도록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불로 소득을
쫓아 다닌 근원적 요인은 내 속의 탐욕을 우상으로 높이 세운 데 있기에 무엇보다 그 탐욕 우상을 파괴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오직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은혜로만 가능하지요
진정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선물을 주십니다. 새집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받으려면 헌집은 반드시 헐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거품 위에 지은 낡은 집은 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로 헌집은 허물고 그 대신 새집을 지으십니다. 헌집은 탐욕 위에 세워진 것이지만 새집은 거룩과 사랑 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물론 이 거룩과 사랑은 정의를 먹고 자란 나무구요.
어린시절 많이 부른 구전동요가 여기서 떠오르는군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지금은 이제 십자가 아래 헌집은 묻어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마련하신 새집을 얻어야야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를 새 피조물로 만드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나를 내어 맡기는 일이지요.
거품 위에 지은 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냥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 집 주인도 함께 압사 당하지요. 하지만 그 집이 십자가 안에서 헐리면 그것은 오히려 새집의 기초가 됩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새집에서 살다보면 위천공 같은 병도 신유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생명의 주님이 좌정하시면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B권사에게 성령의 도우심이 임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제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 아침,글쓰기를 마무리하려는데, 휴대폰 소리가 다급히 울리는군요. "김목사님..." B권사의 부인입니다. 응급실이랍니다. 남편이 어젯밤 다시 119 신세를 졌답니다. 의사가 '먹지 말라'한 삽겹살을 먹고 나서, 피를 토하는 위출혈이 다시 온 겁니다.
10년 동안 몸 담았던 소위 '성령운동'하는 교회의 허구성을 본 뒤 교회를 옮겨,'평신도 제자훈련'을 9년이나 받아온 권사 부부, 그들에게 무슨 기도를 해 주면 좋을까요?
모든 것을 기도와 말씀으로 계획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우리의 세상적인 물질로 욕심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우리에게 많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구할때가 있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모든것이 사용되고 쓰임받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첫댓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속히 본질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누구하나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피할수 없는 관문인듯 합니다.
모든 믿는자에게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할 피할수 없는 물질과 탐심의 훈련을 모두가 승리함으로 넘어가길 기도합니다 ㅠㅠ
모든 것을 기도와 말씀으로 계획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우리의 세상적인 물질로 욕심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우리에게 많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구할때가 있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모든것이 사용되고 쓰임받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모든 욕심을 .재산을 축적하려고 부렸던 탐심을 회개합니다
귀한 말씀에 다시금 제자신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말씀 말미에 성령운동 교회의 훈련도...제자훈련도 우리를 바꾸지 못하는 현실이 참 씁쓸합니다. ㅠㅠ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어제 중국친구의 럭셔리한 아파트를 방문하고 아직도 내속에 있는 돈을 향한 사랑에
마음을 들켜버려서 많이 힘들었는데 오늘 꼭 필요한 말씀을 읽게되어서 감사합니다. 다시 일어나서 기도자리로 나가야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