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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거가 오바마의 대승으로 그 막을 내렸다. 혼탁했던 우리나라의 대선, 특히 본선 같았던 한나라당의 경선과 비교할 때 우선 그 뒷맛이 개운하다. 경선에서부터 대선까지 치열했던 과정에 비해 잡음도 없었고 명확히 법에 위반된 몇 몇 사람이 정부 당국에 의해 기소되었을 뿐 후보들 간에 정책 대결 외에는 어떤 치사스런 설전도 네거티브도 없었다. 과연 철저한 검증을 거쳐 후보로 선출된 사람들답게 진정한 정책 대결 선거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멋진 한판의 페어플레이였다.
후보의 경력은 낱낱이 검증되고 조그만 잘못까지도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 준엄한 여론의 판정을 받았다. 무려 200년이 넘게 지켜 내려온 그 괴상한 선거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인종, 계층 간 갈등 없이 늙은이건 젊은이건 간에 자유롭게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의사표시를 떳떳이 하는 광경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케냐 같은 나라에서 오바마를 공식지원하고 그의 성공을 위해 모의 투표까지 실시하고도 뒤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공정하고 열띤 분위기가 부러웠다.
그에 비해 우리의 경선을 돌이켜 보면 새삼 분노가 치민다. 미국의 대선, 경선에 비하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사하고 더러웠던 게 대한민국의 17대 대선, 경선이다. 유력 후보의 의혹과 비위 사실은 조직적으로 덮기에 바빴고 국물 먹은 여론조사는 국민을 속이기에 바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은 간 곳이 없었고 치부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도 악착 같이 밀어붙이다 반응이 안 좋으면 타짜가 화투장 감추듯 슬그머니 사라지고 경쟁자가 개발해 놓은 정책을 들고 나와 태연히 써 먹었다.
미국 같았으면 벌써 사퇴를 선언하고 무대 밖으로 사라졌어야 할 후보가 비위 사실을 몇 번씩 고백, 사과까지 했는데도 그런 사실을 언론이나 인터넷에 알린 사람들이 도리어 그 괴상한 선거법에 걸려 범법자가 되었다. 또 경선 과정은 어떠한가? 자기들 손으로 합의해서 애써 개정한 규칙이 조금만 불리하면 생트집을 잡아 몽니를 부려 기어이 자기가 이길 때까지 개정 또 개정을 반복하는 치사한 짓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모처럼 선진 정치로 도약할 기회를 사리사욕으로 무산시킨 한나라당의 국물 족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
일찌감치 꼬리치는 사법부를 마음대로 부려먹고 금력과 이권을 미끼로 의원, 당원들을 줄 세우고 언론을 회유해서 제 편으로 만들어 어디에서도 불편부당의 정론 직필은 볼 수 없었다. 약자 편에 섰던 정치인이나 국민은 핍박을 면치 못했다. 선거 후에도 국가를 위한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국민화합의 기미조차 없다. 공천권은 반대파를 밀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집권당이 깨질 위기로까지 치달았는가 하면 조각과 비서진 임명권은 논공행상의 기회로 사용 되었을 뿐이고 지지율 만회를 위한 인기위주의 섣부른 정책은 국민 갈등만 부추겼다.
미국에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고 좋아하는 야당이나 그걸 걱정하는 현 정부나 미국이라는 나라를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족속들이다. 미국이 언제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국가 정책의 근간을 바꾼 적이 있던가? 미국은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어도 경제 정책이나 외교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나라가 아니다. 연방은행 총재, FBI 국장, CIA 국장, 그리고 대법원장은 정권과 관계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나라다.
우리 같이 대통령이 바뀌면 제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모조리 갈아 치우고 국가의 정체성과 근간을 뒤집어엎는 나라가 아니기에 우리 정부는 실망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다. 다만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이 일치하는 정책을 개발하여 새로운 미 행정부와 공동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러려면 선진국의 관료나 경제계 인사들이 보기에도 한심한 비양심적이고 무능한 관료들을 속히 교체하여 정책 수행 인물들의 면모를 일신하고 세계의 비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우리의 낙후된 민주주의를 하루 빨리 제고시켜 미국의 당당한 우방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섣부른 판단으로 올인 했던 공화당이 실패한 것만을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의 현주소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라도 과거를 반성하고 참된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대로 정신 못 차리고 우왕좌왕 하다가는 국제적으로 또라이 취급만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산지기님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