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 바오로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 8,18-25 루카 13,18-2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맨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지닌 힘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고, 또 누룩은 밀가루를 온통 부풀어 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시는 이유는 하느님 나라가 지닌 역동성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겨자씨가 나무가 되고 누룩이 부풀어
오르려면, 겨자씨를 땅에 심고, 누룩을 밀가루 속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이 지닌 역동성이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홀로 만들어 가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당신 나라를 완성하시는 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나라의 건설과 완성을 위하여 오늘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십니다.
겨자씨와 누룩에 역동성을 부여하시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씨앗이 심어지지 않고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것이 지닌 역동성은 결코 발휘될 수 없습니다.
부족한 신앙을 지녔지만, 하느님보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더 따르고 싶은 우리지만,
그런 우리의 손길을 하느님께서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꿈과 희망입니다.
그분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보잘것없는 힘이라도 보태고자 노력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곁에 세워지고,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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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 8,18-25 루카 13,18-21
45억 년 전에 지금부터 컸던 지구에 화성만한 행성이 충돌하였습니다.
그 충돌의 결과 지구는 회전축이 기울어졌고, 지금과 같은 환경이 되었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충돌의 결과 지구에서 떨어져나간 부분이 달이 되었습니다.
달은 지구에서 4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냅니다. 지구의 자전주기가 24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밀물과 썰물은 갯벌을 만들어 내고, 갯벌은 생명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6천 5백만 년 전에는 지름 10킬로미터의 운석이 충돌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멸종하였습니다. 그 빈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하였습니다.
7만 5천 년 전에는 인도네시아에 큰 화산 폭발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북반구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화산 폭발의 영향을 덜 받았던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넘어 네안데르탈인의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몇 번의 우연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을 설계하신 분이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표현과 방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인류의 공동체에 드러난 것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길가의 유리와 구리와 모래가 우연히 수없이 뒤섞여서
스마트 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우연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주의 나이만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문명의 시초부터 삶과 죽음을 설계하는 분이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런 인식의 과정이 신화가 되었고, 그것이 인류의 도덕과 가치와 제도로 적용된 것이 종교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믿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 주실 때도 ‘믿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가 된다면, 그런 믿음이 현실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하느님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십니다.
바로 겨자씨와 누룩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큰 결실이 맺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믿음이 강해졌고, 희망으로 고통과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갈릴래아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하느님나라는 온 세상의 밭에서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내 마음의 정원에 심고 잘 가꾸면 나의 몸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갈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겨자씨를 우리 마음의 정원에 심었습니다.
기도와 희생, 나눔과 봉사의 거름을 충분하게 주는 분들은 그 마음에 하느님 나라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에 관심을 갖고 살다보면 우리 마음에 심어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메마르고, 썩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을 잘 키워서
하느님 나라가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들 기뻐하며 거두리라.”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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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 8,18-25 루카 13,18-21
겨자씨와 같다.
미술의 역사에서, 인상파를 탈피해서 점을 찍어서 그린 그림을 점묘화법이라고 하지요.
프랑스의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 쇠라(Pierre Seurat 1851-1891)는
이 점묘 화법의 좋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후에 네델란드 출신 테오 반 리세베르그(Theo van Rysselverghe 1862-1926)도
이 화풍에 합세해서 ‘돛단배와 항구’라는 그림을 이 점묘화법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을 자세히 보면 점을 여러개 찍어서 그림을 완성한 느낌을 받습니다.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면을 이루고 그것이 원근과 공간을 표현해 주는 것이지요.
이들의 그림은 하나의 점들을 중요시하고 이것을 더 확대해서 화폭에 자신의 그림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입니다.
미술의 이 점묘화법을 우리 인생에 대입한다면 오늘 하루는 나의 전체 인생에서 하나의
점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그림에서 점이 모여 하나의 물체를 그리듯,
사실 현재의 나의 삶은 나의 전체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가 시시하고 특별한 것이 없어서 별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몰라도 사실
‘잘 지낸 하루가 잘 지낸 삶을 말해 주는 것이다.’라는 말은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잘 볼 수 없는 ‘겨자씨’는 주님의 비유 말씀으로는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작은 겨자씨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루카 13장 18절-19절)
이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밀가루 속에 들어가는 누룩에도 비유하십니다.
눈에 보이기 힘든 작은 누룩이 그 밀가루 서 말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겨자씨든 누룩이든 눈에 띄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가 땅에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되고 밀가루 반죽에 넣는 누룩이 양은 작지만 그 밀가루를 부풀어
크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 현재 작은 기도와 선행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큰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큰 것을 희망하고 거기서 결실을 이루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현실이 미소한 것이라도 가볍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당장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은 것에 희망을
두라고 당부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서 8장 24절-25절)
오늘 하루를 지내며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따뜻한 한 마디, 잔잔한 미소, 친절한 안내,
아름다운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알고 이웃에게 전합시다.
겨자씨의 비밀, 누룩의 비밀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