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벗님들께 아룁니다.
제가 7년 전 몇몇 벗님들에게만 보낸 부끄러운 글이 최근 제목만 ‘避世靜念’으로 바뀌어 어느 불교신자에 의해 매우 넓게 공유되었습니다. 기왕에 세상에 공유된 글이라 벗님 모두께 다시 한 번 보내드립니다. ‘빈무덤’(虛壙)은 제가 필명으로 쓰는 별호입니다.
장기풍 스테파노 올림
칠층산에서 얻은 깨우침/ 빈무덤
나는 지난 8월 하순부터 이달 10일까지 보름동안 남부 숲속마을에서 개인 피정을 했다. 어느 친지가 자신의 여벌 숙소를 제공했기에 가능했다. 나는 매일 아침15킬로 씩 숲속을 걷고 영적독서와 염경기도로 보름을 지냈다. 내가 매일 걷던 숲속에는 멧돼지와 사슴 등 온갖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야생 버섯과 깻잎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버섯은 구별할 능력이 없어 손대지 못했으나 산책 후 숲길에서 매일 깻잎을 따서 된장에 찍어 먹으니 그야말로 선식이 따로 없었다. 가톨릭이나 성공회 신자들에게는 친숙한 ‘피정’이라는 말은 피세정념(避世靜念)에서 비롯된 말이다. 문자 그대로 세상을 피해 고요히 기도한다는 뜻이다. 즉 일상의 잡다함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성찰과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당이나 수도원 또는 특별히 마련된 피정의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다. 잡다함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일종의 방어기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피정은 원래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동양에서는 불교와 도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들이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수도했으며, 서양에서도 ‘사막의 은수자‘로 불리우는 수도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했던 일(마태 4:1-2)을 모범삼아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예수께서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던 사실이 성경 곳곳에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올라가셔서 기도를 드리셨다.”(루가 5:1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6:31) 이밖에도 마지막 수난 전날 게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던 것은 매우 특별한 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가진 피정이 공식적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 체계화된 것은 한창 종교개혁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던 16세기로 교회 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영신수련’이라는 체계적인 피정 방법을 제시하여 발전시켰으며, 지금도 널리 실시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법으로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해 정기적인 피정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평신도들에게도 피정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와 방법의 피정이 여러 계층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피정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기도와 묵상 영적독서(Lectio Divina), 강의 등으로 이루어지지만 요즘에는 특수한 분야의 강의와 토론, 대화 등 다양한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교회의 공식적인 피정과 함께 나이 들어서는 혼자 하는 개인피정을 즐기는 편이다. 스스로 시간표를 작성하여 매일매일 성무일도와 염경기도, 영적독서, 산책 등을 하면서 잡다한 생각들을 단순화시키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이번 피정에서는 화두를 정하는 불교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에 매달려 특히 나의 내면의 상처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성찰했다. 매일 새벽 동트기 전 밖에 나가 유난히 밝은 금성과 기울어져가는 달의 조합을 지켜보노라면 어느 새 마음이 맑아짐을 느낀다.
이번 피정은 여러 외적 환경은 불편했지만 이러한 불편도 피정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려면 그 옛날 사막의 은수자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사실 이러한 피정을 하기에는 뉴욕주 북부 제네스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최적의 장소이다. 그곳에서는 새벽 2시에 깨어 수도자들의 독서기도에 참가하고 잠시 새우잠을 부치다가 다시 5시 30분 아침기도와 미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다. 새벽안개를 가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상쾌한 아침공기와 함께 가슴 속 환희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워하는 수도자와 면담을 청해 상담할 수도 있고 오전에는 이분들의 강의도 있지만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종일 원하는 대로 독서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 피정장소는 여러 불편함에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도서관과 성당이 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나는 영적독서로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을 거의 4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젊었을 때 어렵게 읽혔던 칠층산은 몇 년 전 정진석 추기경의 새 번역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이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사제품 받기까지의 자서전인 칠층산으로 그분의 일생이나 영성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품면에서도 칠층산은 당시 수도회의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통제 아래 쓰여진 것이기에 불완전한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은 칠층산이 쓰여진 1948년 이후 1968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고장난 선풍기 감전사고로 58세의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의 20년이 그분의 영성을 드러낸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층산은 무신론자에 가깝던 토마스 머튼이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고 수도자가 될 때까지의 자신의 심적 변화와 성소에 대한 강한 부르심의 느낌을 담담하게 기술한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다. 그런데 이번 칠층산 독서가 나에게 뜻밖의 깨우침을 주었다.
나는 70평생 되도록 내 자신이 오랫동안 시달려 온 내면의 상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왔다. 이번 피정에서도 이를 화두로 삼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은 칠층산을 통해 나의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을 준다. “진실로 많은 이가 너무나 늦게까지 깨닫지 못하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피하려고 애쓸수록 더 큰 고통을 당한다는 진리다. 상처 입을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더 작고 더 사소한 것에서 조차 괴로움을 당하게 마련이다. 고통을 피하려고 바둥거리는 사람이 결국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오는 까닭에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바로 자기 고통의 주체요, 원천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와 의식은 가장 지겨운 고통이다.” (P 188)
그랬다. 나는 그동안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 왔지만 날이 갈수록 치유는커녕 더욱 더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그런데 70년 전 토마스 머튼은 나에게 고통을 피하려하지 말고 고통과 친구 되어 살라고 충고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느끼는 순간 거짓말처럼 내 안에 끼어있던 불투명한 안개가 걷히고 마음의 평화가 느껴지는 것이다. 너무나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나이 70이 되도록 숱하게 헤매왔던 내 인생의 숙제를 불편한 환경의 피세정념을 통해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나는 마치 오랜 수행 끝에 득도한 스님처럼 속으로 부르짖었다. “고통이여 얼마든지 오라, 내 너를 끌어안고 생의 마지막 날 함께 죽으리라”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인 것을, 그 넓은 바다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리며 살아 온 그동안의 삶이 얼마나 바보스럽고 부끄러운지. Thank God!
(2015. 9.14 뉴욕에서 虛壙)
첫댓글 천주교와 불교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 자체가 고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요. 피정을 통해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천주교가 너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