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로차竹露茶 (외 1편)
―윤두서 자화상
정복선
대숲에 비바람 치고 뇌성 번개 인다
한 사람이 북극성을 응시하고 있다
어디선가 가지들 함부로 찢어지고 텃새 떼 달아난다
한 사람이 듣고 있다
세필細筆에 어둠을 찍어 수만 가닥의 울음소리를 그린다
뿔뿔이 흩어지고 일어서는 소리 끝자락마다
숨차 오르는 묵향 빛, 시위가 팽팽히 당겨져 있다
언제고 허깨비 과녁을 부수어 버릴,
투두둑, 몇 세기의 서릿발을 거침없이 건너와서
댓잎, 이슬, 을 꿰뚫는 눈빛!
시詩 줄게. 꽃 다오
장바닥 한구석에 봄나물 몇 움큼씩 펼쳐 놓은 아낙처럼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닌 허술한 좌판
부질없다, 쓰다 버린 이름 하나씩 덤으로 얹어 볼까
시詩나물, 여름비에 겁 없이 담을 넘고
가을비는 이파리 낱낱이 못 견디게 켜 대더니
총총 은구슬로 맺힌 겨울비를 보것네
치마 훌훌 털고 은빛 된 것들 거두어서
이제 초원에 돌아가야겠다 풀꽃들에게 눈 맞추며
“시詩 줄게, 꽃 다오, 시詩 줄게, 꽃 다오.”
노래나 불러야겠다
—시집 『변주, 청평의 저쪽』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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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선 / 1948년 전주 출생. 전북대 영문학과, 성신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작은 섬 하나 수놓으며』 『맨발로 떠나는 사람』 『등불 아래 서울』 『시간의 칼은 녹슬고』 『여유당 시편』 『마음여행』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변주, 청평의 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