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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다. 아스팔트에 섞여 있는 유리 알갱이들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하이웨이 옆으로 무수히 많은 낙엽활엽수가 붉게 물든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하지만 체 반갑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내가 운전하는 차는 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왜 그래?”
“응?”
나의 의아한 물음에 아한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깜짝 놀라 날 쳐다본다. 행동이 수상하다.
“누구하고 계속 문자하는 거야?”
“아니야...아무것도.”
그녀가 핸드폰을 서둘러 핸드백으로 갈무리 한다. 필히 켕기는 것이 있다고 나의 잘 발달된 오감이 애기해준다. 지금 만약 나의 손이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의 핸드폰을 낚아챘을 것이다. 나의 질문이 쏟아지기 전 루시가 끼어들었다.
“노예 투! 조금 더 못 밟아?! 왜 이리 굼떠?! 벌써 한 시간이나 왔는데, 반도 못 왔잖아!”
고개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고개를 빼 꼼이 내민다. 이런 우라질 같으니라고, 참자, 마음속으로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날 너무 잘 알지만 난 그녈 모른다. 절대 난 그녀를 이길 수 없는거다. 고로 참은 것이 상책이다.
“너! 루시 자꾸 그렇게 오빠한테 까불래?!”
다행이다. 아한이가 나서준다. 아한이에게 들은 바로는 루시가 세상에서 꼼짝 못하는 한 사람이, 그래 바로 나의 여자 친구이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아한이가 돌봐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왔다고 한다. 그래, 루시 또한 아한이 급에 가까운 슈퍼천재 이니 그녀를 가르칠 만한 사람은 그녀의 언니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한이는 루시에게 있어서 친 언니 이상의 부모 이자 스승인 것이다.
“급한 거 없어, 천천히 가.”
아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러자 루시가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이더니, 괜한 화풀이가 알렉스에게로 향한다.
“야! 너 저번에 가르쳐준 [푸앵카레 추론]을 수학적 공식으로 풀어 논 것 다 이해 했어?!”
“그..그게 아..아직..”
알렉스의 모기보다 작은 목소리에 루시의 고운 얼굴이 확 구겨졌다. 곧이어 그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야! 이 돌대가리야! 내가 그걸 몇 번 을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어?!”
“......”
아, 불쌍한 알렉스. 그의 작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근데 도대체 [푸앵카레 추론]이 무엇인가? 나의 아둔한 머리로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아한아. 지금 루시가 애기한 그게 뭐야?”
“뭐? 푸앵카레 추론?”
“응.”
나의 질문에 아한이가 입가에 미소를 만든다.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란 지방에 있는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자그마치 돈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건 일곱 문제 중 하나였는데 대충 말하자면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성 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은 것이란 이론을 말하는 것이 푸앵카레 추측이야."
아한이가 외계인 말을 한다. 푸앵카레인지 카레라이스인지에 대한 이론은 중요한 게 아니다.
“뭐?! 그 문제에 100만 불이 걸려 있었다고?!"
“응. 그만큼 보통 사람이 풀 수 없는 난해한 문제였어."
“그럼! 잠깐! 이었었다는 건 그 문제를 푼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리 페렐만이라는 러시아 수학자가 2002년도에 이 문제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해법을 제시했어."
"뭐야?! 그럼 그 사람이 그 상금을 타간 거야?!"
"아니, 상금은 안 받았어...은둔 생활을 즐기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기에, 거절하고..."
"흥! 돈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언니에게 면목이 없어서였겠지!"
루시의 말에 나의 시선이 그녀의 모습을 담은 백미러로 향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아한이에게 면목이 없어?!"
"흥! 사실 그 문제를 제일 먼저 푼 건 바로 우리 언니야, 그리고리가 수학과 유전체의 대한 관계성 연구 세미나 차, 우리 연구소에 왔을 때 언니가 가르쳐준 거야!"
내 눈깔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사실 언니가 말한 것에 내가 조금 더 보탠다면 푸앵카레 추측은 ‘어떤 하나의 밀폐된 3차원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돼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圓球)로 변형될 수 있다’는 추론으로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어! 근데 답에 가까운 것을 제시한 수학자들은 많았지만, 언니가 최초로 푼 사람이야."
"?!"
제길, 잠깐 까먹었다. 아한이는 수학 괴물이란 사실을 말이다. 문득 언젠가 희진이와 암산 베틀을 하며 세자라 숫자를 다섯 번 곱한 게 스쳐지나간다.
"대..대단한데?! 그럼 뭐야! 그 백만 불은?! 그 문제가 하나 뿐이야?! 아까 일곱 문제라고 했잖아! 다른 문제는 뭐야?!"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번엔 아한이의 입에서 나왔다.
"뭐, 랜던 클레이가 지난 2000년도에 한 문제당 백만 달러씩 총 칠백만 달러를 내건 '밀레니엄 난제'는 ‘리만 가설’과 ‘양-밀스 이론과 질량 간극 가설’, ‘내비어-스톡스 방정식’, ‘푸앵카레 추측’, 'P 대 NP 문제', ‘버치와 스위너톤-다이어 추측’, ‘호지 추측’ 등 지금까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7가지 미해결 수학문제로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
그녀의 보통사람들은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란 마지막 말에 내 입가에 긴 한숨이 내쉬어 졌다.
"하하하! 오빠 미쳤어?! 나도 못 푸는 문제들을 어떻게 오빠가 풀 수 있겠어?!"
제길, 꿈도 못 꿔보냐?! 그럼 로또 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겠다.
"그럼 아한이 넌 이 문제를 몇 게나 푼 거야?!"
루시가 또 끼어든다.
"언니 말로는 리만 가설과 P 대 NP 그리고 호지 추측을 제외하고는....답이 없대.”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 그거 몰라?! 단지 그 문제 자체에 이론적 모순이 많아서 그런 것이지! 이론을 보강하고 약간 수정하면 그 문제는 풀 수 있어. 뭐 말로 표현 한다면 그 문제의 개념에 대한 답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 한건 아니야, 단지 수학적 공식으로 그 이론을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삼차원 세계에선 불가능해, 차원을 바꿔서 육 차원 이상의 이론을 개입하면 모를까..."
루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의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곧이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럼! 여태껏 공식적으로 풀리지 않은 것 중 나에게 하나만 답을 알려 주면 안 돼?!"
아한이가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나를 쳐다본다.
"뭐?!"
"그..그게 아니라..네가 그 그레고린가 뭔가 하는 수학자에게도 가르쳐. 주었다며...그러니 남자친구 에게도 좀 가르쳐 주면...."
제길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가 강해지자 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리는 어느 정도 답에 근접해 있었어! 난 단지 조금 쉽게 풀어서 애기 해준 것에 불과해! 아마 내 도움 없이도, 언젠가는 풀었을 꺼야!"
"그래도...넌 내가 부자가 되면 조..좋지 않겠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또 여러모로..."
"절대 아닌데!"
제길, 그럼 말던가! 입술이 한 사발 쭉 내밀어진다. 백만 불이면 도대체 얼마인가? 멋진 스포츠카에 근사한 집에서 매주 주말마다 쭉쭉 빵빵 미녀들과.....아! 제기랄 깜박했다. 서둘러 백미러 속에 루시를 쳐다본다.
"흥! 노예 주제에...언니! 새우 오빠가 지금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우라질! 실수 했다. 또 까먹었다. 아니 솔직히 이건 까먹고 자시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도 알아. 무슨 또 좋은 차에 여자 생각이나 했겠지.."
"?!"
헉! 아한이 역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가?
"언니 어떻게 알았어?!"
"바보야, 보통 평범한 이십대 초반의 남자라면 돈 생기면 뭘 하겠냐? 여자 아니면 스포츠카지. 그건 상식이야!"
"아, 그렇구나...역시 언니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단 둘이였다면 아니라고 박박 우기겠지만 루시가 옆에 있어 그러지도 못하겠다. 때마침 눈에 무엇이 들어온다.
"앗! 휴게소다. 우리 잠깐 뭐 좀 먹고 갈까? 다들 아침 안 먹었다며?"
"그래."
다행이 화제를 바꾸었다. 루시가 또 뭐라 빈정대기 전 서두르자. 가속 페달을 밟아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소에 도착했다. 주말이라면 꽉 들어설 주차장이 주중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쉽사리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으아~ 차랏차차~!"
차에서 내린 후 오랜 시간 운전해, 굳어 있는 허리를 쭉 뻗은 다음 기지개를 크게 피어본다.
"괜찮아? 힘들지?"
아한이의 물음이다. 역시 그녀는 나의 여자 친구는 맞는 것 같다. 저리 날 걱정해 주니 말이다.
"엉? 지미 하고 쌔미는 왜 안 내려?"
다들 차에서 내렸는데 지미하고 쌔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아한이가 서둘러 차 뒷좌석 문을 열고는 퉁명스럽게 소리친다.
"지미! 쎄미! 밥 먹어야지!"
그러자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차에서 내린다. 그들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가로 저어지며 긴 한숨이 내쉬어진다. 언제나 주위에 있지만 없는 듯 지내온 그들이란 건 이해하겠지만, 어쨌든 이젠 이 여행의 일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치 있게 움직여야 하지 않은가?
"……."
차에서 모두 내린 것을 확인 한 후, 나란히 발걸음을 휴게소 안으로 향했다. 근데 무엇이 나의 신경을 거스른다. 슬며시 쳐다보니 지나쳐가는 주위 사람들이 우리 일행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 우리 일행의 범상치 않은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지미와 쌔미는 두 말할 것도 없거니와 늘씬한 각선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몸에 딱 달라붙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인정하긴 싫지만 섹시한 루시하며, 검은 계통의 깔끔한 정장 차림새로 멋을 부린 남다른 미모를 자랑하는 아한이의 모습, 그나마 가장 평범한 건 나와 알렉스뿐이다. 하물며 나 역시 오늘은 꾸민다고 정장까지 차려 입지 않았는가, 대부분의 휴게소는 편안한 옷차림의 여행객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의 모습은 일견해 보아도 절대 평범한 여행객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불편하게만 느껴지지 않은 건 왜일까,
"흐흐흐."
사람들의 시선이, 언제나 평범한 나였는데, 마치 내 자신이 평범함이란 감옥에서 일탈되어 특별한 자유를 느끼는 묘한 느낌이랄까? 난 결코 사람의 시선을 끈 적도 없었고, 끌 이유는 더욱 없었다. 그래 솔직히 처음엔 이런 기분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부담스러웠지만, 이젠 조금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한이가 혼자 실실 쪼개고 있는 날 의아한 듯 쳐다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을 혼자 의식하며 휴게소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 외로 휴게소 안은 꽤나 많은 사람들로 번잡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본 후 아한이가 묻는다.
"뭐 먹을래?"
"글쎄? 먹을 만한 게 버거퀸 밖엔 없네."
한국에 가본지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이곳 미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햄버거와 핫도그 등을 빼면 별다른 먹을거리가 없다.
"내가 알렉스와 사올 테니, 저기빈자리에 먼저 앉아있어. 알렉스 이 형 좀 도와줄래?"
나의 물음에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 다들 뭘 먹을 건지 골라봐."
"난 넘버1으로 해줘. 소다는 다이어트 코크로."
루시였다.
"난 넘버6 아이스티."
이번엔 아한이다. 이제 남은 건 지미와 쌔미다. 잠시 메뉴판을 쳐다보던 쌔미가 나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쌔미는 넘버2?"
고개를 끄덕인다. 곧이어 지미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제기랄, 그래 넘버3겠지. 근데 곧이어 주먹을 쥐더니 엄지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혹 넘버1으로 맘이 바뀐 건가?
“넘버 1으로 바꾼다고요?”
“도리도리.”
“그럼...그건 무슨...뜻이죠?"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 옆에 있던 알렉스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넘버3를 슈퍼 사이즈로 먹겠다는 것 같은데요?"
”!"
아니다 다를까, 미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댄다. 잠시 흘겨 뜬 눈으로 알렉스를 노려보았다.
"……."
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 처들은 거냐! 라 묻고 싶었지만 해 맑은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망설이게 한다.
"오케이! 그럼 갔다 올께."
제기랄, 그냥 간단하게 한가지로 통일하면 안 되는 것인가? 투덜거림도 잠시, 어쨌든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 것 같다. 햄버거 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란 줄을 만들고 있다. 알렉스와 이런저런 루시의 뒷담화를 한참을 까고 나서야, 우리 차래가 돌아왔다. 여러 점원 중 이십대 초반의 주근깨가 무수히 덮여 있는 점원이 퉁명스럽게 우리를 맞는다.
"뭘 해 드릴까욧?"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무렴 여기가 단골손님 없는, 일회용 손님들만 맞은 휴게소 패스트푸드점이라 해도 얼굴에 귀찮음이라고 대 놓고 써놓고 손님을 맞는 건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저기..넘버1 세트 두게 하고 넘버6 세트하나 그리고, 넘버2세트 하나, 넘버3세트하나....아참 넘버3는 슈퍼사이즈로 그리고...알렉스 넌 뭐 먹을래?"
나의 물음에 알렉스가 메뉴판을 쳐다보며 망설이자, 앞에 주근깨가 입술을 삐죽이며 계산대에 오른 그녀의 손가락을 탁탁탁 튕긴다. 저건 무언으로 재촉을 하는 것이다. 순간 계속된 그녀의 불친절한 행동에 매니저를 불러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애써 즐거운 여행의 시작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이빨을 갈며 참았다.
"음...나도 그냥 넘버1 먹을게 염."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주근깨를 쳐다본다.
"넘버1 세트 하나 추가요."
"드링크는 무엇으로?"
"아이스티 하나, 다이어트 코크 두게, 그리고, 지미와 쌔미는...뭐 그냥 코크로 하면 되겠지? 코크 두게 그리고..."
"난 스프라이트!"
이번엔 눈치껏 알렉스가 빠르게 거들었다. 그러자 얼굴에 있는 주근깨를 다 주워 담아 짜면 참기름 반병은 나올 것 같은 점원이 이리저리 중얼 거리며 계산대를 두드린다.
"합계, 57 달러 95전 입니다."
제기랄, 휴게소가 아니랄까봐 더럽게 비싸다. 미국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맨하탄보다 훨어어얼씨이인 비싼, 폭리에 가까운 금액이다. 괜스레 지미와 쌔미를 함께 오자고 한 게 아니었나, 하는 속 좁은 생각마저 든다. 입술을 삐죽이며 지갑을 꺼내 크레디트 카드를 꺼낼 찰나, 알렉스가 앙칼지게 외쳤다.
"계산이 이상한 데여?! 세트메뉴 다 합친, 판매세금 전의 가격이 54 달러이고 뉴저지 주의 판매세금이 5프로이니, 정확한 총액은 56 달러 70전이 되어야 하는데요? 1 달러 25 센트가 왜 추가로 붙은 거죠?"
알렉스의 물음에 주근깨의 눈매가 좁혀졌다.
"지금, 이 기계의 계산이 잘 못되었다는 거니?! "
"그럼요, 지금 누나가 말한 총액은 판매세금 5프로를 적용한 게 아니라 제 계산으로는 정확히 7.314 프로를 적용 한 것이거든요?"
"뭐...뭐라고?!"
알렉스 역시 미국 연방정부에서 주최한 여러 영재 대회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일등만을 차지한 아이다. 분명 이 노예1의 계산이 틀림없을 거다. 어쨌든 알렉스의 당돌한 물음에 주근깨가 씩씩대며 붉어진 얼굴로 알렉스를 쏘아보자 이젠 내가 나설 명분이 생긴 거다.
"이것 보세요! 지금 합리적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이상하군요!? 뉴저지 주는 판매 세금이 5프로 아닙니까?"
내가 정색한 얼굴로 물어도 표정 하나 변함없다. 솔직히 얼마 되지 않은 돈 때문에 이런 실랑이를 하고 싶진 않았다. 처음부터 웃는 얼굴은 아니더라도 친절하게만 했어도 내가 이리 따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난 모르겠으니 사고 싶으면 사고 싫으면 마세요!"
"?!"
이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말 너무 하시는 군요! 이곳 매니저를 불러 주십시오!"
"지금 안 계시는 데요!"
"그럼 부 매니저라든가, 책임자가 있을 것 아닙니까?!"
"제가 부 매니저인데요?!"
점입가경이다.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패스트 푸드점의 간부급 점원이 이따위라니, 이 점포가 돌아가는 꼴이 눈에 선하다.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안 살 거면 나가 주시죠?! 뒤에 손님들이 기다려서 말이죠? 영업방해 하지마시죠?!"
뒤를 돌아보니 아니다 다를까, 다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우릴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몇 센트 때문에 저리 따지냐는 등의 소리가 나의 귀를 거슬리게 한다. 하지만 몇 센트가 아니다, 제대로 따져보면 일 달러가 넘은 돈인 것이다.
"계산이 잘 못 되었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기계가 이 꼬마의 계산보다 덜 정확하다는 거죠?!"
제길,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솟았다. 뭐라 다시 쏘아 붙이려는 순간,
"거 돈이 없어서 깎아 달라는 건가? 정말 몇 센트에 목숨을 거는 군! 역시 차이니즈는..."
순간 뒤에서 들려온 인종차별적인 소리에 녀석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뒹굴어야 되겠다! 하고 뒤로 휙 돈 순간! 슬쩍 보게 된 녀석의 덩치에 마른침만 뻘쭘하게 삼킨다.
"뭐 봘요?! 앙?!"
"아..아닙니당."
제빨리 꽁지를 내린다, 개쪽이다. 진퇴양란이다. 앞에는 주근깨가 뒤에는 덩치가, 그리고 이렇게 물러서면 체면은 체면이지만 서도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이다.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줄기의 빛처럼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알렉스!“
고개를 돌려 보니 아한이다. 아마도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은 우리를 찾으러 온 것 같다. 근데 그녀가 생뚱맞게 싱긋 웃으며 알렉스에게 손짓 한다.
“알렉스, 이곳 안내문을 보니까, 여기 휴게소를 찾는 인구가, 하루에 평균 삼만 명 정도라고 하니, 그래 크게 인심 써서 그중 오 퍼센트의 사람들이 이 곳 햄버거 세트의 평균 가격인 구 달러를 산다고 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하루 매상은 대충 얼마지?"
난데없는 그녀의 질문에도 알렉스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녀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한다.
"만 삼천오백 달러죠."
"그래..맞아, 그럼 거기에 5프로의 판매 세금을 부과한다면?"
"만 사천백칠십오 달러인데요?"
"그래 그럼, 이번엔 5프로 말고 7.314프로의 세금을 부과한다면 얼마지?"
"정확히 만 사천사백팔십칠 달러 삼십 구 센트이네요."
하나 망설임 없이 알렉스가 잘도 내 뱉는다. 아니다 다를까, 모두가 들으란 식으로 크게 애기하는 아한이와 알렉스가 나누는 대화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조금씩 갸우뚱 해진다.
"그럼, 이 햄버거 가게에서 불법적인 과도한 세금으로 벌어드리는 하루의 수입은 얼마가 되는 거지?"
"삼백 십이 달러 삼십구 센트요."
사람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일 년이면 얼마지?"
"십일만 사천 이십이 달러 삼십오 ($114,022.35) 센트 네여."
엄청난 액수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몇 센트라고 애기 했던 그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그들이 불법적으로 걷어 들이는 수익만 1년에 1억2천만 원이 넘은 엄청난 액수인 것이다.
"지금 그 계산을 날 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주근깨가 팔짱을 낀 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다 다를까, 주위 사람들도 암산으로 계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듯 대부분 반신반의한 표정이다.
"그럼! 믿어야지! 이 주근깨 닭대가리야!"
순간 뒤에서 들려온 고함소리에 나의 고개가 빰 맞은 듯 뒤로 향했다. 그곳엔 루시가 또 언제 나타났는지 팔짱을 끼고는, 표독스런 표정으로 주근깨를 야리고....아니,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 아이가 누군 인줄 알아? 내 제자이자, 내 노예1으로써, 얼마 전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 월드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우승한 알렉스 우드슨이 바로 이아인 란 말이지! 너 같은 저질 대가리는 물론 저 멍청한 기계보다 내 제자가 더 똑똑할 껄?!"
루시의 외침을 끝으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엄마! 맞아! 어딘가에서 봤다 했더니, 저번 티브이에서 본 애야!"
"아! 그렇구먼!"
“그래! 그래! 저 아이!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왔던 바로 그 슈퍼 천재 아이 아니야?! 왜 그 열한 살에 하버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던...그 아이!”
“알렉스 우드슨! 맞아! 맞아!”
몇 몇 사람들이 알렉스를 알아보는 듯하다. 역시 녀석도 평범한 놈은 아닌 것이다. 사람의 군중 심리는 참으로 변덕이 심하며 변화 또한 빠르다. 아까 까지만 해도 짜증난 다는 듯이 보였던 그들의 얼굴이 아한이의 등장으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또 루시의 등장에 이젠 흐름은 우리에게 완전히 넘어 왔다.
"이것 보시오! 정말 그 들의 계산 대로라면, 일 년에 십 이만 불 가까이란 엄청난 세금을 부당한 수법으로 탈취 한 것이 아니요?!"
"정말 그렇구먼!"
몇 사람들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까지 질러대기 시작한다.
"야! 이건 대형 패스트푸드 점에서,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다니, 이거 신문에 확 고발해 버릴까?!"
"지금 당장 IRS(국세청)에다 신고부터 하쇼!"
"?!"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앞의 주근깨의 재수 없던 여유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서둘러 매장 안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 우! 사기 버거퀸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사람들의 야유가 계속 이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보통 점원과는 다른 파란색 셔츠가 아닌 검은색 셔츠를 입은 사내와 함께 그 주근깨가 나타났다.
"아! 여러분! 잠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매장 매니저 입니다. 아마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아까 매니저가 없다는 말은 주근깨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어쨌든 새로 등장한 매니저의 외침에 좌중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우선 먼저 짜증이 물씬 나는 소리로 내가 외쳤다.
"여기 이 부 매니저 말로는 매니저가 없다고 하는데요?!"
나의 물음에 그가 일을 어떻게 이렇게 까지 만들었냐는 듯 주근깨를 책망어린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았지만 그건 만들어진 것 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었군요. 제가 속 시원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 매장에서 추가 세금에 관한 것에 손님께서 문제를 제시 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이곳 하이웨이 휴게소에서는 주 정부의 판매 세금과 더불어 특별 휴게소이용 세금이 부과된 것 입니다."
그의 말에 우리 일행의 얼굴이 굳어졌다.
"납득할 수 없군요?! 특별 휴게소 이용 세금이라니요? 도대체 그건 어디 법이죠?!"
나의 물음에 앞의 그가 안경을 고쳐 쓰더니 차근차근 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저희 뿐 만아니라, 이곳 휴게소에 있는 모든 매점들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니..."
아한이가 말을 자른다. "뉴저지 주, 판매 세금에 관한 조항 중엔 그런 조항은 처음 들어 봅니다. 확실하신 겁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그 특별 세금에 대한 안내서나 내용을 문자로 손님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곳에다 두어야 합당한 것이겠지요."
매니저가 식은땀을 감추며 한손으로 저 멀리 매장 구석에 있는 어느 자그마한 액자를 가리킨다.
"저기 물론, 특별이 부과되는 세금에 관한 것에 내용의 골자가 있습니다만...."
우리의 시선이 그 액자를 찾았지만 글자가 돋보기를 쓰고 보아야 할 정도로 너무 작아 가독성이 좋지 않다. 하물며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손님이 그것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일 거다. 그 매니저 역시 자신도 가리키며 민망한 듯 헛기침을 삼킨다. 곧이어 아한이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 같은 게 만들어 졌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것을 두고 공지했다고 말하긴 어렵군요. 어쨌든, 이곳 하이웨이에선 toll(통행료)비를 의무적으로 납부하며, 그 toll비안에 휴게소 사용비도 포함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법률적으로 추가 세금을 걷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 이며, 주 정부는 물론 연방정부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이로 인해 IRS에서 조사가 나온다면 엄청난 벌금도 벌금이지만, 이런 대형 패스트푸드 점에 미칠 이미지 손상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 입니다."
매니저의 얼굴이 구겨졌다.
"혹시 검사나 변호사이십니까?"
"아니요."
아한이의 대답에 매니저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짜증이 치민 것이다. 곧이어 주위 사람들이 조롱 섞인 야유가 이어진다.
"버거퀸은 확실히 해라! 정말 이거 손님을 호구로 본 거 아니야?!"
"당장 신고해야겠군?!"
사람들의 민심이 흉흉해 지기 시작하자 매니저가 당황해 한다. 꼴 좋다. 그러길레 처음부터 직원 교육을 똑 바로 했다면 오늘 같은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근데 그때 사람들의 무리를 헤집으며 나온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스테이트 폴리스다. 곧이어 매니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며 그들을 맞는다.
"죄송합니다. 바쁜 시간에 오시라고 해서, 손님들께서 휴게소 특별 세금에 대해 불만족 하신 것 같아, 설명 좀...부득이 하게 연락 드렸습니다."
말투를 들어보니, 아마도 저 매니저가 이리로 오기 전 미리 경찰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문득 나타난 경찰들 중 눈에 뜨이는 자가 있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매부리코! 그래 저 경찰은 바로 아침에 지미와 나를 끈질기게 따라온 경찰들의 우두머리다. 세상도 참 좁다는 생각도 잠시, 매부리코가 좌중들 앞에 나서더니 위엄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곳 하이웨이에 있는 모든 휴게소에선 시청에서 허가하고 스테이트 폴리스가 인정한 특별 세금이 부과 됩니다. 즉 법적으로 주 정부에서도 인정한 것이니, 불만을 제기 하고 싶으신 분들은 가까운 시청에 가셔서 탄원서를 내시면 될 겁니다. 참고로 시청은 이 하이웨이를 따라 33마일 정도 가신 다음, 52번 출구로 빠지신 후 43번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됩니다.“
국어책 읽듯 그가 내 뱉었다. 말투를 보니 가끔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서 불만이 있다면 33마일 즉 55킬로 떨어진 곳까지 가서 탄원서를 제출하란다. 비꼬는 것이다. 몇 센트 때문에 그렇게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경찰까지 나서서 저리 감싸며 말하는데, 경찰의 입김이 닿은 만큼 법률적으로 처벌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아무렴 미국 경찰들의 권한과 권의가 타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독보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야속하게도 경찰의 등장으로 인해 야유를 퍼 부었던 사람들이 입을 싹 닫아버렸다. 그래 또다시 대세가 한순간에 저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것이다.
"아하! 그렇군! 알고 보니 대외적인 기부금 명목으로 경찰들이 이 매점들로부터 걷어 들이는 수입이 있었구먼!"
루시의 빈정거림이 가득한 외침에 일순간에 시위가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필히 루시가 여러 경찰들의 마음속을 헤집고 다닌 것이다, 어쨌든 매부리코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체 루시 앞으로 다가갔다.
"미스! 지금 그 말은, 근거 없는 증거로 우리 스테이트 폴리스를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고 체포 할 수도 있소!"
“물론 근거야 없지만, 뭐 내가 사람 속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 아닙니까?!”
루시의 당돌한 질문에 매부리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분명 찔리는 게 있는 거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한 번 더 그런 얼토당토한 소리를 한 다면 모욕죄로 정말 체포 하겠소!”
루시가 또다시 뭐라 소리치기 전 아한이가 급하게 외쳤다.
"체포?! 정말 어이가 없군요! 어떻게 경찰이 합리적으로 해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말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탄원서나 제출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할 수 있는 것이죠?!"
매부리코의 구겨진 얼굴에 눈썹이 휘말려져 올라갔다. 조금씩 인내가 바닥을 나타내는 것이겠지, 여태껏 경험상 자신이 나서서 이런 식으로 애기하면 대부분 알아듣고 물러나도 한참 전에 물러나야 했었다. 근데 앞의 당돌한 이 젊은 동양계의 여자들은 되묻는 것도 모자라 따지고 있는 것이다. 매부리코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두 눈을 빛내더니, 슬쩍 매니저를 쳐다보며 어금니를 꽉 깨문다.
"지금 이 아가씨들을 영업방해로 신고하시겠소?! 그럼 내 당장 체포해서 영업을 재계 할 수 있게 해 주겠소.“
이건 대 놓고 신고하라는 협박이다. 아니다 다를까, 매니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네"
"신고 접수했소. 그럼 당신들을 영업방해 와 증거 없는 근거로 스테이트 폴리스를 모욕한 죄를 물어 현행범으로 체포 하겠소!"
어이없어하는 표정도 잠시, 매부리코가 옆에 있던 경찰에게 고갯짓을 하자 그가 수갑을 허리춤에서 풀더니 아한이에게 성큼 다가왔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할 수.....!"
”휙!“
“허어어억!”
미란다 원칙을 읊으며 아한이의 손목을 잡으려는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지미가 그 젊은 경찰관의 손을 비튼 후 등 뒤로 꺾은 다음 앞으로 밀어 버렸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경찰관이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
일순간에 일어난 상황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진 건 둘째 치고, 동료로 보이는 서너 명의 경찰들이 일제히 총을 뽑아 지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다..당신은?!"
매부리코가 놀란 눈으로 지미를 응시했지만, 지미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묵묵한 표정이다.
"겁 대가리를 상실했구먼! 우리 언니의 손목을 잡으려 하다니, 경찰이니까 이정도로 봐 준거야! 보통 사람이었으면 손목뼈가 부러 졌을걸!?"
루시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실제로 이 내 두 눈으로 지미가 사람의 손을 꺾어 버리는 것을 본적이 있지 않았던가? 매부리코가 지미의 등장에 놀라 잠시 얼이 빠진 듯 보이자 옆에 있던 경찰 하나가 정신 차리라는 듯 매부리코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그의 물음에 매부리코가 숨을 짧게 몇 번 토해 낸 후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자신이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인 냥 죽느냐 사느냐의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잠깐 있어봐...."
그도 그럴 것이 앞에 있는 사람은 CIA의 간부급 요원이 아니었던가? 보통사람이었다면 총구에서 불을 뿜어 허벅지에 바람구멍 두어 개 정도 만들어도 정당방위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바로 CIA의 간부급 요원 때문이 아니라, 그 요원이 마치 보디가드처럼 지켜주는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동양 여자의 존재 때문이리라.
"뭐야?! 지미?"
매부리코의 이상한 낌새에 아한이가 저 아저씨의 반응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 그녀는 아침에 난 오줌이, 그리고 지미는 똥이 마려웠기 때문에 과속해서 저 경찰관에 걸린 것은 절대 모르는 거다.
"아하! 그랬구먼! 새우 오빤 오줌이, 그리고 지미는 똥이 마려워 과속해서 아침에 저 코붕이 경찰관에게 걸렸구먼! 어쩐지! 난 또 저, 코만 커다란 아저씨가 어떻게 지미가 CIA 요원이 란 것을 아는 가 했지!"
루시의 외침에, 지미의 얼굴에 홍조가 살며시 만들어졌다. 부끄러운 것이다. 하긴 나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는데, 똥이 마려웠던 지미는 오죽 하겠는가, 위급하게 돌아가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그나마 난 똥이 아닌 오줌이었다는 것이 지미보다 작게 보여 다행이다! 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내 쉬어진다. 아마도 난 이기적인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매부리코의 어이없는 외침이 들려 왔다.
"뭐?! 그럼 오늘 아침에, 우리를 농락한 이유가 바로 똥이 마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지미 옆에 서있던 쌔미가 고갤 살며시 돌려 ‘너 정말 그랬냐! 란 눈으로 지미를 쳐다본다.
"……."
그러자 지미의 이마에 퍼런 힘줄이 툭 불거져 나왔다. 그래 지금 지미는 여러모로 개쪽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총 내려!"
"?!"
매부리코의 말에 경찰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그러자 매부리코가 더 크게 외쳤다.
"시민들이 보고 있잖아! 어서 총 내리라고!"
"네.."
경찰들이 총을 갈무리한다. 그러자 매부리코가 명령한다.
"주위에 사람들 좀 물리게!"
그러자 경찰들이 일사분란하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이십 보 밖으로 물러나게 한다. 그에 만족한 듯 매부리코가 한걸음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 선다.
"당신들 정채가 뭐요?! CIA에서까지 나서서, 사람들이 많은 이런 공공장소에서 경찰의 팔을 꺾어 내동댕이치다니,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매부리코는 까칠하고 다혈질 같이 생긴 겉보기와는 달리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기분대로라면 지금 무력시위를 해서라도 다 체포한 다음 경찰서로 이송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고, 또한 아무리 지미가 CIA 요원이라도 경찰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 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현행범으로 체포해도 당연한 명분이 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리 신중하게 물어보는 것은 오랜 경찰 생활로 단련된 그의 무언가 불길한 직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니다 다를까 주위에 있는 동료 경찰들의 왜 빨리 체포 안하고 망설이냐는 듯 불만족스러운 눈빛이 매부리코를 향한다. 그중 유독 두 눈에 불을 내 뿜고 있는 한 경찰관은 아까 지미에게 팔을 꺾인 젊은 경찰관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쳐 드리면 그냥 보내 주실 겁니까?"
아한이의 물음에 매부리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만들어졌다.
"그건 당신들의 정체를 알고 난 다음 내가 결정 하리라, 지금 당신들 덕분에 우리 스테이트 폴리스의 명예가 땅으로 실추 했소."
"그건, 댁들이 먼저 쓸데없는 이유를 들어 언니에게 손을 대려했기 때문이죠!"
앙칼진 루시의 말이다.
"이것 보시오! 지금 난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음 하오!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 하지 마시오! 당신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면 내 망설임 없이 모두 체포해서 다 이송하겠소!"
"훗, 알고 나면 후회 할 텐데..그냥 여기서 물러나시지.."
또다시 이어진 루시의 빈정거림의 말에 매부리코의 얼굴이 신문지 구겨지듯 구겨지자 아한이가 서둘러 루시를 나무란다.
"루시! 그만해! 죄송합니다, 아직 철이 없어서, 어쨌든 폭력을 행사한건 죄송합니다. 그게 우리 지미가 행동이 워낙 빨라서..."
그녀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루시에게 철이 없다는 소리에 매부리코가 의아한 눈빛을 만들었지만 그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럼 신분 조회를 할 테니 아이디를 주십시오!"
아한이가 그녀의 핸드백에서 골드색이 감도는 카드 하나를 꺼내어 매부리코에게 건네준다. 문득 그 카드를 건네받은 매부리코의 인상이 굳어졌다. 역시 평범한 운전 면허증이 아닌 연방정부에서 발급하는 골드 아이디를 소지 하고 있다는 것은 앞의 사람이 정부 소속의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봐! 이거...아니 내가 직접 하지."
그가 허리춤에 찬 무전기를 들더니 핫라인으로 통신을 보낸다.
"Precinct 39 소속 배지넘버 7894 스티븐 잭슨 경사다. 신분 조회를 요청한다. 아이디 종류는 연방정부의 골드 아이디 TD-11311771 이름은...에이미 아이젠버그."
곧이어 무전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지직..안녕하십니까? 스티븐 경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지..지직."
잠시 묘한 정적이 흐른다. 마른침이 몇 번 목구멍으로 지나가자 무전기에서의 응답이 왔다.
"탑 클라스파이드 입니다. 지지직...제가 확인 할 수 없습니다..지지직....네게티브..이 신분에 대한 파일은 열 수 없습니다...이런,클라스파이드 7단계입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 잠시만요. 경사님... 지금...지지직...잠시만요.."
"?!"
또다시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지지직..믿을 수 없군요. 제가 이 신원 파일을 접속하자 CIA에서 이리로 연락와 저에게 이곳에 접속하게 된 이유를 묻는 군요. 무어라 대답할까요? 지..지직."
매부리코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그냥 불신 검문이라고 해!"
"지지직..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지지직."
불행하게도 매부리코의 직감이 적중한 것이다. 나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탑 클라스파이드 칠 단계는 경찰 서장은 물론 FBI고위 간부도 함부로 열수 없는 극비리의 클라스파이드 인 것이다. 근데 그런 파일을 일계 경찰서의 신원조회 컴퓨터로 접근 했으니....
"이거 재미있군요.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시기에? 7단계의 탑 클라스파이드라니?! 그것도 모자라 바로 CIA 에서 연락이 오다니..."
말은 재미있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은 아직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앞의 CIA의 간부급 요원인 지미만 해도 탑 클라스파이드 3단계 이다. 그런데 앞에 이제 이십 세 갓 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한 나라의 원수 급에 준하는 7단계의 탑 클라스파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녀의 존재가 정말 믿고 싶진 않지만 한 나라의 원수 급에 준하는 클라스파이드 인물이라면 자기는커녕 자신이 속한 경찰서 서장 급이 나온다고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꽉 쥐어진 그의 주먹이 바르르 떨려온다.
"저..정말 정체가, 누구 십니까?"
은근히 경시하던 그의 말투가 정중하게 바뀌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루시가 또 나선다. 정말 그녀는 못 말린다.
"내가 아까 그랬잖아요! 경찰이니까, 언니 손목에 손대서 팔 한번 꺾인 것으로 끝난 것이지, 아니면 죽었다고! 우리 지미와 쌔미는 언니에게 불순한 마음으로 다가선 사람은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라이센스가 있지요! 후훗."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라이센스 라니....."
아한이가 책망하는 눈빛으로 루시를 노려보자 그녀가 자신의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제스처를 한다.
“정말...당신들은.....”
매부리코의 말은 그의 품에서 들려온 핸드폰 소리에 이어질 수 없었다. 휴대폰의 발신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네. 서장님...스티븐 입니다."
서장이라면, 경찰서의 책임자 아닌가? 그렇기에 매부리코가 전화를 받으며 저리 기합이 들어간 것이겠지.
"네?! 그..그게 그러니까...아닙니다, 뭐 별건 아니고....네?!...네...저..정말입니까?! 아..그런 뜻이 아니라, 네..무슨 말씀인줄 알겠습니다. 네! 네... 아..알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시행 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의 두 눈에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의혹이 서려있었지만 그건 우리를 쳐다본 순간 재빠르게 사라졌다.
"죄송합니다.....저희가 실수를 했군요. 무례를 범했다면 부디 많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매부리코가 고개까지 숙여 보이며 정중한 태도를 보이자 나는 물론 저 멀리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과 그들의 접근을 막고 있던 경찰들까지,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권위적인 것을 넘어 거만하게까지 보인 그의 처음 태도에 비해 180도 싹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디 용서바랍니다. 미리 저희가 연락을 받았다면 호위를 해 드렸을 텐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 드립니다."
매부리코 역시 처세술이 강한 사람이다. 정말 저 말이 진심이 아닐지언정 어쨌든 겉으론 보기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러지 마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아한이는 손 사레를 치었고, 루시는 그것 보라지! 란 듯의 비웃음을 만들었으며, 역시 지미와 쌔미는 표정에 변화가 없다.
"목적지가 어디이십니까? 지금부터라도 저희 뉴저지 스테이트 폴리스가 호위를 해 드리겠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정말 저 사람이 아까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 란 사람이 맞은 것인가? 역시 사람은 빽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하는 구나란 생각에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만들어진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냥 여기서 점심 먹고 갈 겁니다. 그러니..."
"아! 점심!"
매부리코가 무엇이 생각난 듯 고개를 휙 하고 돌려 아직도 멍한 얼굴로 뻘쭘하게 서있는 매니저와 주근깨를 눈빛으로 죽일 듯 쳐다본다.
"이분들은....아니 그것까지는 당신네들은 알 필요는 없고! 어쨌든 이 분들은 택스 프리다! 즉 모든 면세다! 알겠나?!"
주근깨와 매니저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매부리코에게 물었다.
“괜찮다면, 그 서장님이란 분이 뭐라 해주셨기에, 이렇게 호의를 베푸시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매부리코가 나의 예상대로 까칠한 얼굴에 안 어울리는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도 말해준다.
“솔직히 세한건 들은 게 없습니다. 단지 전 서장님으로부터 여러분들을 빈급으로 최고의 예를 다해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모시라는 명령을 받은 게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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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이네요^^ 뭐 기다리셨다면 죄송한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 것 같습니다만;; 사실 요즘 이사 준비 때문에 조금 바쁩니다. 4년동안 살던 집을 좋은 소식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었네요. 그래서 조금 많이 늦었지만, 뭐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나시는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함 써볼까 하다, 그 시간에 아한이와 새우의 이야기를 한줄 더 쓰자 해서 말았습니다. 다음 회에선 한번 줄거리를 짤막하게 올려 보도록 노력해 봅니다. 아참! 여담이지만, 글을 쓰지 못했던 한 동안 머릿속으로 시노십스를 거의 완성했는데, 처음에 구상했던 것과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뭐 글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없지만, 아한이와 새우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러브 스토리로 끝내기엔 좀 뭐랄까, 허무? 허전? 공허? 뭐 등등등,의 이유로 인해 스토리를 완존 판타지 하게 들어 가 볼까 합니다. 뭐 아한이와 루시 그리고 지미세미 알렉스, 그리고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우리의 히든카드 휴고 6명이 차원 여행을 떠나 볼까~그래서! 아한이와 새우 까지의 이야기는 1부에서 끝내고 2부로 예정되어 있던 휴고의 이야기는 좀더 미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시놉시스는 거진 완성이 되었는데 글로 쓸려니까, 더구나 요즘 같이 바쁜 시절엔 글 쓰기도 힘이 듭니당~ 어쨌든 오늘은 여담이 길었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언제나 댓글 남겨 주시는 정포님 스페셜 땡스 입니다. ^^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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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워우워우.. 아한이 위상이 엠파이어스테이트보다 더 높아지는군용 ㅎㅎ 지미.. 쎄미앞에 창피해서 어쩐대용 ㅎㅎ 루시가 문제예요, 루시가 ㅎㅎ 그나저나 우리 노예1 군이 그렇게 대단히 머리가 좋은 녀석이란 말이지요? ㅎㅎ 어쨌든 루시 앞에선 한낯 노예일 뿐이고, 아한이 앞에선 새발의 피일 뿐인.. 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좋은 5월 되시고 언능 언능 뵈어요 ^^
위에 보니 문득 스페셜 땡스에 핑크님이 빠져있네요ㅠㅠ 분명이 어제 쓴 것 같은데....ㅎㅎ 괜히 죄송스럽네요. 정말 오햅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자주 뵙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저 또한 외계어에 눈이 커졌드랬어요. O.O 똑똑하십니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쵝오!!) 전 진짜 수학 싫거든요. ㅋㅋ
암튼, 로묘님 글 소재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것 같네요. 러브&판타지라... 더 기대가 되요. 그녀들보다 어리숙하지만, 착한
솔직남 새우가 있어서 더 잼있고요. ㅎㅎㅎ 다음편도 제 무식을 일깨워주시고, 흥미로운 에피소드 부탁해용~ ㅎㅎ^^
참! 달콤러브모드도요...ㅋㅋ '스페셜 땡스' 무지 감동받고 갑니다. 감사해요^^ 행복한 5월 되세요. *^^*
앗차! 그림 속 여인 섹시하고 너무 예뿌요.ㅎㅎ
저 역시 수학은 정말 싫어라 합니다. 공부란 단어를 떠 올리면 아쉬움이 먼저 밀려 드는건 그 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이번편은 웃음 코드는 별로 없어서 정포님 실망 시켜 드린게 아닌가 하네요. ㅎㅎ 하지만 아마도 다음 편이 역대 최강 웃음을 드리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보지만 역시 생각하는 것과 글로 쓰여지는 건 언제나 다르기 때문에 생각 만큼 웃길지는 모르겠네요. 언제나 관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