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돼지 이야기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높이 떠 있었다. 미풍에 머리카락은 살랑대고, 들에는 배추가 통통하게 살쪄 있는, 어느 화창한 가을이었다. 이런 날, 집에 죽치고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좀이 쑤실뿐더러 꼼짝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일찍 늙어버린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단풍놀이니 계 모임이니 해가면서 콧바람을 쐬러 나다닌다. 어떤 이들은 자식이 된 견공을 모시고 산책에 나서기도 한다.
날씨가 좋으면 마음이 들떠, 구름이 된다. 내 기분이 좋은데, 돼지 녀석도 그렇겠지! 그 생각을 하면서 돼지한테 갔다. 돼지, 아니 ‘똔’이다. 녀석이 대단한 돼지가 될 관상이어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돼지 ‘돈’ 자에서 발전한 ‘똔’이다. 그냥 ‘똔’ 하면 무드가 없다. ‘또 온’이라고 다정스럽게 불러주어야 좋아한다. 내야 그냥 똔으로 부른다. 똔이 살고 있는 우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활짝 펴진다. 가히 운동장이다. 널찍하게 지어서 돼지우리치고는 호화스럽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갇혀 있으면 그날이 그날인 건 어쩔 수 없다.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날마다 같은 메뉴를 먹고는 나자빠져 자는 것이 일과다. 삶이 단조롭다. 오직 재미란 먹는 것뿐이다. 갇힌 동물들이 꾸는 꿈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직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갇힌 자들의 비애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옛날부터 칡덩굴처럼 꼬였다. 초원을 누비던 야생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자연 속에서 뒹굴고 지내던 네발짐승들이 인간을 의지한 것부터 잘못이다. 편하게 지내보겠다고 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 됐다. 이제와서 어쩔 것인가. 되돌릴 수 없다. 조상의 그릇된 선택이 감옥살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미래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 또한 방향이 중요하다. 조금만 삐끗하면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나 오늘같이 아름다운 날, 똔이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겠지, 변화 없는 삶에 지쳐, 희망없이 누워지내는 것이 딱해 보여서 든 생각이다.
그때만 해도, 난 돼지 관상 쟁이었다. 상판대기를 보고는, 뭘 생각하는지 알아 맞췄다. 내가 전생에 돼지 인생을 살았는지, 돼지 속마음을 아는 게 신통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뻣뻣한 내 머리털이 돼지털하고 닮이 있다! 인연은 인연끼리 만나는 가보다. 오늘따라 조용했다. 인기척만 나도 뭘 주나 싶어 일어나, 날 쳐다보던 녀석인데, 뭐가 잘못되었나? 녀석이 조용할 땐, 폭신한 짚 깔린 잠자리에서 코를 골고 있을 때였다. 팔자가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불만에 찬 얼굴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