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존귀한 나의 시간을 위해~*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을 이어간다. 매 순간순간에 ‘시간’이라는 굴레를 통하여 정해지게 된다.
어떤 사람은 금쪽같은 시간, 다른 어떤 사람은 그냥 흘러가는 하루, 또 그 외에도 각자가 처해진 상황과 여건 등으로 구분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부인 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아마도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기까지 무수한 시간적 환경을 접하게 되고 그 순간순간마다의 찰나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존재하기에 시간이 주는 여운은 각자의 삶에 곤히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주어진 상황마다의 선택의 여지와 갈등 또한 존재하고 좋으나 싫으나 맞이해야 하는 일과의 전쟁적인 삶을 살아오느라 또 한 번의 고뇌를 하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이 아이러니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게 참 묘한 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누구나 사람답게 인간구실하며 살아가길 꿈꾸지만 쉽게 되지 못하는 머피의 법칙이 존재하여 희비를 교차하게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즐거울 수도 슬플 수도 없기에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뚝심있게 자신만의 긍정적인 삶의 진리를 깨우치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진취적인 시간할애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사람으로 태어나지도 못한 짐승들도 있고 그 보다 더 못한 삶도 존재하는데 사고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소중하고 존귀한 것을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나 자신 하나만을 생각해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될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해쳐나가야 할 임무와 겪어야 하는 고통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을 얼마나 들어내고 살면서 모나지 않도록 융합을 잘 하느냐가 제일 핵심포인트 같고 아쉽게 그것을 이루기까지 쉽지 않아서 극단적인 삶을 선택하거나 비관하며 하루를 허비하는 좌절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한 사례를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접할 때면 마음 한 켠에서 아려오는 씁쓸함은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 시간들이 누적되어 한 달이 되며 일 년으로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변하는 과정에서 주변 환경이나 내적 · 외적인 모습들은 변모되어진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고 원하는 사고방식대로 변화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기반으로 한다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고 가정을 해보아도 헛으로 보내서는 안 될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뿌린 만큼 거둬들인다.’ 라는 말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로 씨앗을 뿌려 놓았을 때 그 시간들은 분명 긍정적인 파워로 내 삶과 주변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세부적인 계획은 각자의 삶의 위치와 여건을 생각 했을 때 계획해야 하겠지만, ‘시간’이라는 통념적인 어휘를 듣고 느낄 때 삶 속에서 적대적인 경향보다는 관대적인 마인드와 긍정적인 마인드로서 ‘시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조금씩 변화가 이뤄지고 어느새 누구에게나 흔한 ‘시간’의 개념에서 매일에 주어지는 값진 소중한 보물 같은 느낌으로 접할 수 있는 삶의 체험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 삶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두 번 다시 올 수 없고 존귀한 매 순간의 시간적 찰나를 즐겁고 유익한 삶의 본질을 상향시키는데 주력하고 싶다.
포기 없이 성공적이고 진취적인 나의 앞날의 시간들을 위해 용기 내어 파이팅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