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파리인들은 카페를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의 의미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주간의 피로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그들에게 카페란 차와 음악과 낭만이 있는 곳이었다.
춘천시 낙원동 인성병원 뒤편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르트르가 사랑했던 플로르와 닮은 ‘무지카페스타’가 자리하고 있다. 차와 음악과 낭만이 있는 곳. 그곳으로 들어가 보자.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무지카페스타의 안주인 이영진(43회) 음악평론가를 만날 수 있었다.
“무지카페스타를 붙여서 읽으면 언뜻 ‘뮤직카페’ 같아서 ‘영진아 거기서 차도 마실 수 있냐?’, ‘영진아 디제이 박스도 있으니 음악도 트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무지카페스타’는 ‘무지카’와 ‘페스타’를 합한 것. 영어의 ‘뮤직’을 이태리식으로 발음하면 무지카, ‘페스티벌’은 ‘페스타’. 붙여서 ‘무지카페스타’가 된 것이다. 2014년 퇴임 직후 바로 1인 기업으로 음악 프로덕션을 차려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문득 그는 왜 퇴임 후에 쉬지도 않고 이곳을 꾸렸을까 궁금해졌다.
“남들처럼 금수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여유롭게 골프 치러 다니는 친구들, 선배들처럼 살 수도 없었다. 정서적으로도 안 맞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 정서적 공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교직을 퇴임하고 바로 이곳으로 출근을 했다.”
이번 춘천예총이 주관하는 ‘춘천예술마당 사람책’에 선정됐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을 가지고 독자들을 만날 것인지에 대해 "'청춘에게 낭만이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하는데 고민 중이다. 요즘 사람들은 직장, 직업에 몰두해 낭만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 사실 낭만이라고 하는 것도 현실과는 좀 떠난 것. 돌이켜보면 대학시절 치열하게 방황했고 또 방탕한 생활을 했다. 지금 재야 세력들에 운동권 출신이 많듯이 대학 때 2년여 정도 운동권 학생으로서 지명수배를 받아 도망도 다녔다. 그때 당시 내가 다닌 대학에 전기고난파, 후기고난파가 있었다. 대학을 정상적으로 다니지 않은 사람들의 그룹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는 당시 진보적인 신학대생들과 함께 다녔고 자취방에 모여 밤새 고민하고 얘기하고. 가난했지만 그 안에는 나눔이 있었고 어울림이 있었다. 그랬던 과거가 지금 돌아보니 낭만으로 다가왔다. ‘청춘에 낭만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은 지금의 춘천은 낭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낭만은 안 보여서 낭만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의 낭만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묻자 그는 “내면의 성숙을 가져다 줬다. 가난했지만 돈독했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전원다방’이라는 곳에서 아침에 문 여는 순간부터 가서 음악을 들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뭐하는 사람이냐’라고 묻더라.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음악을 틀어달라’고 해서 DJ를 맡게 됐다"며 "방학 때면 항상 가서 무료로 음악을 틀곤 했다. 하루는 웬 남자가 다방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길래 주인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외수 작가였고 그 만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방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줬다. 음악하는 분들도 더러 만나고. 청년 시절의 그런 추억이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이어졌다.”
낭만이 사라진 요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낭만스러웠던 그 시절이 그립다면 ‘무지카페스타’를 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