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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주일이다. 예배 드린 후에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지역에 가면 교회가 있을것 같아서, 어제 통닭집 아저씨에게 지역을 물어 메모를 해 놓았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방과 오렌지 쥬스로 아침을 해결했다. 정말 맛없는 빵이다. 숙소를 정리해 놓고 배낭하나 매고 숙소를 나섰다. 차가 없으니 이렇게 편하구나.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지역은 QUEENS지역의 FLUSHING이라는 지역이다. 같은 섬인데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곳은 BROOKLYN이라는 지역이다. 후러싱은 지하철 7번 보라색 라인의 종점이다. 일단 맨하탄으로 가서 보라색 라인으로 갈아탔다. 보라색 라인은 타임스퀘어 역에서 갈아탄다. 지하철 7호선은 깨끗하다. 실내도 실외도 깨끗한데 탑승해보니 동양인이 많이 보인다. 가만히 귀 기울여 말을 들어보니 거의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온 기분이다. 종점인 후러싱 역에 내리니 한국 사람들이 보이고, 지하철을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작은 동네가 나타난다. 길 양편에는 한인 가게들이 한글 간판을 걸고 줄지어 있다.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올라가는데 몇 개의 교회가 보인다. 큰 교회로 들어섰다. 도착 시간이 11시가 넘어 이미 예배가 시작 되었다. 후러싱 교회다. 에배당도 크다. 예배도 4부까지 드린다. 김중언 목사님이 담임이시다. 교회주차장도 꽉차고 넓다. 예배에 약간 늦어 교회본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중2층에 올라갔다. 여기도 꽉 차있다. 1500여명정도 모인 것 같다. ‘서로 사랑하자’는 제목으로 설교하셨다. 성경은 요한복은 13장 34절부터 35절까지다.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삶에서 얻어진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신다. 찬양대의 찬양도 은혜 스럽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제 홀에서는 빵과 음료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서둘러 교회를 나왔다. 한인들이 이렇게 많다니 의외다. 한글 간판을 읽으며 거리를 걸어본다. 비디오 가게, 세탁소, 식당 등 한국의 조그마한 주택가를 연상시킨다.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 들어가서 일본식 초밥 도시락을 골라서 점심을 먹었다. 입에 딱 맞는 초밥이다.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기위해 역사로 내려갔다. 깨끗한 역사가 기분 좋게 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느냐에 따라 전철의 청결도, 거리도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을 이곳 뉴욕에서는 금방 알 수 있다. 인간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는 것....... 그래야 편한가보다.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고 형성되는 마을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모인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를 생각해 하는 후러싱 마을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서 그랜드 센트럴 역에 내렸다. 지하철 역사와 중앙역은 조금 떨어져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하이야트 호텔과 크라이슬러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건너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향했다. 미드타운 한가운데 있는 역이다. 근거리, 중거리 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한다. 하루에 약 500편 이상의 열차가 오가고, 약 50만 명 정도가 이용한다. 1913년 철도의 종착역으로 지어진 이래 맨하튼의 상징이 된 역이다. 수많은 여화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칼라토>, <폴링인 러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피셔 킹>등 다양하다. 건물이 점점 노후 되어서 재개발을 했다. 3억40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쇼핑, 관광요소도 지닌 역으로 만들어 1998년 다시 문을 열었다. 건모양이 꼭 박물관 같다. 42번지 쪽에 있는 역 정면에는 날개달린 머큐리(헤르메스)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힘의 상징 헤라클레스의 조각이, 오른쪽에는 지서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네)가 시계와 함께 있다. 그 밑에는 코모도어 벤더빌트(철도 창설자)의 동상이 있다. 역내에 들어서니 중앙 홀이 넓다. 품위 있어 보인다. 중앙 홀 천장에 그려진 성좌도는 연초록색 바탕에 금색으로 되어있다. 광섬유를 사용하여 묘사한 황도 12궁이 빛나고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다. 아주 큰 성조기가 걸려 늘어져있고 우아한 상드리에 불빛으로 전체는 은은한 금빛 조명이다. 중앙의 인포메이션의시계탑은 이상하게 8시10분을 가리킨다. 오후인데....... 고장인가? 왼쪽 층계를올라가 내려다보니 아주 멋있다. 지하 1층이 다이닝 광장, 우리가 보는 곳이 메인광장, 층계를 올라가는 발코니, 3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하 2층으로 기차가 들어온다. 1902년 환경보호를 위해 증기기관차의 운행이 금지되면서 전동차로 바뀌었다. 뉴욕의 또 하나의 보물을 찾은 흐믓함을 안고 역을 나왔다. 역 위쪽에는 메트 라이프 빌딩이 버티고 있다. Met life 빌딩은 1963년에 완공된 고층 빌딩으로, 이전에는 항공회사인 팬암(PANAM)이 소유했었다. 1978년 카터 대통령이 항공 산업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항공운임이 자유화 되었고, 미국의 항공사들은 운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영향으로 팬암사는 경영이 악화되어 1981년 지금의 메트로 폴리탄 보험회사에 빌딩을 매각했으며 1991년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리는 빌딩이다. 하나의 기업이 쓰러지면서 건물의 주인이 바뀌는 역사를 본다. 특히, 이 건물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많은 건축가들이 이 빌딩을 보기위해 찾아온단다. 내가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데....... 우리는 크라이슬러 빌딩이 더 인상적이다. 이 빌딩은 아래는 단순하나, 첨탑 부분이 특이한 특징을 갖고 있다.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건물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도 꽃과같이 눈에 띄는 첨탑이다. 뉴욕의 빌딩 숲 중 가장 멋진 모습이다. 뉴욕의 고층빌딩을 대표하는 아르데코 양식의 빌딩으로 1930년에 완공했다. 이 빌딩의 상징인 첨탑은 크라일러사의 빌딩답게 볼트를 비롯한 스테인리스스틸로만 만들어서 반짝거린다. 자동차의 라디에타 그릴을 본뜬 모양이란다. 모든 재료를 자사의 자동차 공장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2008년 경제의 침체로 미국의 자동차 3사(포드, GM, 크라이슬러)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존립이 위태롭다. 3사중 크라이슬러가 없어질 가능성이 제일 높단다. 화려한 외형에 실속이, 기초가 허약한 회사인가 보다. 건물의 향방, 회사의 향방이 흥미롭다. 컨벤션센타 빌딩의 성조기들을 보며 유엔본부 빌딩으로 걸어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에는 10월 24일을 유엔데이라고 해서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여 학교를 한간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부터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보아오던 건물이다. 유엔 빌딩 앞에는 세계국기가 펄럭이고 있는것이 보통인데 국기들은 없고 빈 깃봉만 줄지어 서있다. 지금의 유엔 사무총장이 우리나라 반기문님이라는 생각을 하니 참 변화가 많은 것 같다. 빌딩을 보려 길을 건너려 하는데, 벽에 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성경말씀 이사야 2장 3,4절이다. 국제 연합의 설립취지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가을,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창설된 조직이 국제연합(UN)이다. 국제연합 본부는 42번지부터 48번지까지 이스트 강과 1번가 사이의 무려 6불럭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다. 51개 회원국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185개국이 넘게 가입되어 있다. 이 지역은 치외법권이 인정되고 있는데, 존D 록펠러 2세가 이 땅의 구입비용을 기부했다. 유엔은 4동의 빌딩과 정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빌딩 안이나 부지 곳곳에 현대 조각품들이 놓여 있다. 건물은 미국의 월리스K, 해리슨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의 합작으로 설계되어 있다. 유리로 둘러싸인 39층 건물이 사무국 빌딩, 그에 비해 낮은 둥근지붕의 건물이 국제연합 총회 빌딩이다. 이들 사이의 빌딩이 회의장 빌딩이다. 그리고 사무국 빌딩의 남쪽에 있는 하마슐드 도서관에는 40만권의 책과 8만장이 넘는 지도가 보관되어 있다. 견학투어가 매일 있다. 건물 내부와 회의실을 견학하고 핵 반대, 기아 난민 구제, 식민지 독립원조 등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건물 밖에 있는 지구모양의 조각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권총 끝을 묶은 조각상이 여기도 있다. 룩셈브르크가 기증한 평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다시 걸어서 록펠러 센타로 향했다. 좀 걸어야 한다. 오늘이 주일이라서인지 5번가에서는 차량을 통제하고 보행자 거리로 바꾸어져 있다. 사람들과 상인들로 바글바글하다. 소리도 바글바글, 냄새도 바글바글이다. 임시로 만들어진 가판대에서 각종 기념품을 팔고, 음식도 판다. 토속재래시장이 열린 것 같다. 양파를 함께 익히는 순대장사도 보인다. 각종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가게, 옥수수를 구워서 파는 사람. 재미있는 분위기다. 초 현대적 빌딩 숲속에 인간적인 진한 냄새가 풍기는 생동감 넘치는 장소다. 음료수를 한잔씩 사서 마시고 록펠러 센터로 향했다. 먼저 채널 가든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5번가를 따라 49번지와 50번지에서 북쪽에 영국빌딩, 남쪽에 프랑스 빌딩에 끼여 있는 산책길이 채널 가든이다. 주로 열대 식물이 심어져 있는 작은 직사각형정원이다. 겨울에는 어떻게 관리할까? 록펠러 센터쪽으로 걸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만나는 광장이 로어프라자다. 크리스마스에는 세계에 방영되는 호화로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며, 스케이트 링크로 유명한 광장이다. 이 곳은 여름관광객보다 겨울관광객이 더 많단다. 우리가 내려다보니 야외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중심에는 조그만 폭포 분수가 있고 그앞에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인 금빛 프로메테우스 상이 서 있다. 둘레에는 국제연합의 회원국의 국기가 3면에 펄럭이고 있다. 우리나라 태극기도 왼편에 멋지게 서있다. 시계방향으로 걸어가니 미국의 유명한 방송사인 NBC스튜디오가 보인다. 이 빌딩이 제너럴 일렉트릭 빌딩이다. 록펠러 센터는 동서로는 5번가와 7번가, 남북으로는 웨스트 51번지와 웨스트 48번지(거리)사이의 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1928년 미국에서 손꼽히는 자선가로 알려졌던 록펠러2세는 컬럼비아 대학으로부터 넓은 토지를 빌려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와 제휴하여 대규모의 오페라 하우스를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공항으로 계획이 무산되고 토지처리문제로 고심하던 그는 상업의 중심지를 지으려 결심하고 ‘도시속의 도시’라 불리는 세계최대의 다기능 복합건물을 건설했다. 21채 557층에 달하는 록펠러 센터에는 근무하는 사람이 65000명이상이란다. 방문자수는 17만명 이상 이라는데, 레스토랑이 35개에 약국, 이발소, 은행, 극장, 학교 등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점이 있다. 빌딩에 들어서니 미국의 역사를 묘사한 거대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100점이나 되는 벽화와 조각이 센터 안에 있다. 또 이 빌딩의 여러 층은 NBC 텔레비전이 사용하고 있다. 붉은 네온사인이 트레이드 마크인 빌딩이 라디오 시티 뮤직 홀이다. 해마다 공연하는 로케츠(미국 뉴욕에서 NBC 방송국 무용단 로케츠(Rockettes)의 무용수들이 '라디오 시티 크리스마스 스펙터큘러 쇼)가 인기 있단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크기의 샹들리에가 호화롭다. 그 앞에 있는 빌딩은 세포라(Sephora)인데 대규모 화장품 가게로, 세계 유명 브랜드외에 오리지날 브랜드도 취급하고 있다. 화장품에 관한 모든 브랜드가 모여 있다. 의자에 앉아서 후러싱 교회에서 나눠준 빵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겨울에는 꼭 인터넷을 열어 이곳의 츄리를 봐야지......... 47번 거리로 내려오니 다이아몬드 로우(Diamond Row)가 나온다. 5번가와 6번가 사이인데, 다이아몬드와 귀금속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이 200m길에서 미국의 다이아몬드 80%정도가 거래되고 있다. 상점 주인은 대부분 유대인이다. 유랑민족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보석으로 바꾸어 운반한 것이 보석상의 시초가 되었다. 이곳의 보석 감정은 신뢰도가 높단다. 우리는 브로드웨이 간판이 보이는 곳에 들어섰다. 타임스퀘어의 북쪽 부분이다. 극장과 호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뉴욕의 극장가 뿐 아니라 쇼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브로드웨이라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극장이 줄지어 있는 곳은 웨스트 42번 거리에서 웨스트 53번 거리 사이로 극장지구(Theater District)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배트맨‘다크시티’도 보인다. 맘마미아 홍보 간판도 보인다. 허쉬 초코렛 선전 조형물이 건물처럼 크다. 하루에 한 번씩은 타임 스퀘어에 오는 것 같다. 첫날도, 어제도, 오늘도 이곳에 왔다. 언제 와도 재미있다.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한다. 전철을 타고 그리니치 빌리지 지역으로 간다. 웨스트 14번 거리와 웨스트 하우스턴 거리, 브로드 웨이와 그리니치거리에 둘러싸인 지역이다. 중심에는 워싱턴 스퀘어가 있다. 17세기에는 짙은 녹음으로 둘러싸였던 이 지역에 영국인 이주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런던 근교의 마을인 그리니치에서 이름을 따서 불려 졌단다. 1950년대~1960년대를 정점으로 예술가들이 많이 살기 시작하여 뉴욕의 정보 발신지가 되었다. 1955년에는 뉴욕을 대표하는 정보지<빌리지 보이스>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후 땅값이 급등하여 예술가들은 그리니치 빌리지를 떠났고, 현재는 역사적인 건물과 그때의 분위기만 남아 있는 고급 주택지가 되었다. 복잡한 도로와 벽돌집이 늘어선 거리 모습은 다른 구역에서 볼 수 없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뉴욕 대학이다. 1831년 제퍼슨 대통령 때 재무장관 이었던 앨버트 갤러틴이 설립한 미국 최대의 사립대학이다. 자유로운 교풍이 특징이다. 이 대학의 지원을 받아 모스의 전신기 등이 발명 되었다. 또 스파이크 리나 올리버 스톤의 개성있는 유명인을 배출했다. 1895년에 개축한 본관은 워싱턴 스퀘어 이스트 지역에 접해 있으며, 그리스풍의 원기둥을 지닌 중후한 네오크라식 양식의 건물이다. 붉은 색 건물인 뉴욕 대학 도서관도 인상적이다. 워싱턴 스퀘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 취임식 100년을 기념하여 만든 대리석 문에서 시작된다. 재개발 공사 때, 1000개 정도의 유골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이전에는 초기 이주자들 중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묘지였으리라 추측하고 있단다. 가리발디 동상도 보이고, 키타 치며 노래하는 사람도 보인다. 귀여운 시장 동상이 있는 곳으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간다. 소호지역이다. 카페나 브티크, 선물 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뉴요커는 물론이고 여행자들에게도 인기 있는 지역이다. 고전틱한 식당들이 보이고 화가들의 그림을 길가에서 판매하고 있다. 소호(Soho)란 South of Houston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북쪽은 하우스턴 거리, 남쪽은 커낼거리의 지역으로 웨스트 브로드 웨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걸어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 보니 차이나 타운이다. 뉴욕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망가지고, 시끄럽고, 복잡하고, 혼잡하고, 무질서한 곳이 바로 차이나 타운이다. 중국인은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서있고, 덩치 큰 흑인들은 거리에서 뒤섞여 조악한 물건들을 판다. 가방, 보석류, 악세사리등....... 뉴욕의 차이나타운은 인구가 10만 명을 넘는, 미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차이나타운이다. 거리에는 영어보다 한자로 쓴 간판이 많아 꼭 중국을 연상케 한다. 코카콜라, 맥도날드 간판도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식품재료를 판매하는 노점상도 많고, 포장마차도 줄지어 있다.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한데 최근에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서 이민해 온 사람이 증가 하여 각 나라의 요리를 맛볼수 있다. 사람에 치여 밀려 걷게 된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거리다. 그러나 재미있다. 노점상에서 포도와 토마토를 샀다. 다리도 아프다. 여러 가지를 구경하며 이리저리 걷다보니 리틀 이탈리아 간판이 거리 중앙에 보인다.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 지역에는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이 살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는 그 인구가15만 명을 웃 돌 정도로 증가했다. 당시에는 마피아가 기승을 부려 소란스러운 사건도 많았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인 수가 줄어들고 중국인의 파워에 밀리고 있단다.
메인 스트리트는 멜버리 거리인데,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 초록, 하양의 3색으로 칠한 건물이나 간판이 많이 보인다. 가정적인 이탈리아 요리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이나 델리, 디저트가 맛있는 이탈리아 카페도 줄지어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중국의 분위기와 혼합되어 구별하기 어렵다. 상류보다 허름한 차림의 유색인종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정신이 없다. 밤이 되어 불빛이 들어오니 거리가 살벌해 지는 것 같다. 다시 서쪽으로 걸어가서 Canal St 전철역의 지하에서 전철을 탔다. 숙소 앞 통닭집에서 또 9조각의 메뉴를 구입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왔다. 피곤하지만 통닭과 숙소만 만나면 기운이 난다. 포도와 토마토 그리고 콜라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이제 오늘밤은 숙소에서 자는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숙소에 짐을 맡기고 종일 투어한 다음에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간다. 그동안 거의 한 달을 다녔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 잠 못 잔 날은 하루도 없다.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인해 잘 자고, 잘 먹고, 잘 구경하고 가는 것 같다. 이제 짐도 배낭이 하나 줄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