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텔레비젼의 많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거실을 가득히 채우고,
여기 저기서 묻어온 주말의 이야기들은 옷과 함께 세탁기속에서 돌고,
고양이들은 창 밖을 내다보며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길은 어디에도 없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어떤 길로부터 걸어와
다시 어디인가로 향하는 길 위.
여행의 뜻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혹은 이웃과 함께.
여행은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지만
사실은 어디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 터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중에서 -
고도원의 오늘 아침 편지를 읽으며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을까... 이틀의 긴 여행을...
몽골에서 말타기 신청을 받는 중이던데,
아침에 텔레비젼으로 본 영화, 징기스칸이 생각난다.
아기를 앞에 앉히고 아기 엄마들도 말을 달리는 드넓은 몽골초원.
이젠 초원보다 사막이 더 많아지고 있다던가...
아이들이랑 몽골평원을 달리며 호연지기를 키워보는 호기도 뭐 그리 나쁘진 않을 듯.
내년쯤? 가능할까?
티벳에도 꼭 가 보고 싶은데...
실론섬, 보라보라섬, 타히티, 트리니다드토바고, 마츄피츄,티티카카호수,아마존밀림,
........
.......
아..언제 다 가 보지?
아냐...갈 수 있을 거야...언젠가는...
친구(풍경..)의 권유로 따라 나선 여행.
너무 많은 낯선 사람들속에 주눅 아닌 주눅도 들었지만
이전에 길이 아니었던 곳도 먼저 지나간 누군가의 발자욱과 함께 새로운 길이 되는 것처럼
이미 만난 이들은 이제 더이상 타인이 아니다...
선암사 승선교앞.
방생정계.란 글귀가 새겨진 빨간 목장승이 무척 반가웠다.
이제 세속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것들을 풀어 줌으로서
스스로 자유로워지리라...
돌계단 하나 하나마다 기와 한 장 한 장 마다
저마다 깊고 오랜 세월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엄마, 아빠가 아프지 말고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려다가
다른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을 무너뜨린 난감한 얼굴의 어린 꼭지가 서 있던 뒷마당.
그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낙안읍성.
성벽을 따라 늘어선 키 큰 나무의 나뭇잎들이
초여름 따가운 햇살아래 한가로이 바람을 탄다.
누각에 앉아 노래도 하고 시도 읊고
아파트 벽속에 갇힌 일상에서 사방이 트인 들판위로 순간적인 공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
멈춘 시간이 흐르는...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진 순천만 갈대밭
갈대 사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지지배배 정겨운 소리를 낸다.
좋은 계절,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꾸미는 소리이리라..
둑위로 기어올라온 게들이 둑 반대편으로 기어나간다.
강으로 돌려주려다 내버려둔다.
모든 게 있는 그대로인게 자연이리란 생각에..
삶도 죽음도...
숲속 깊은 곳의 유스호스텔.
반달과 몇몇 흐린 별들. 그리고 숲의 밤공기...
그많은 사람들이 다 마실 수 있도록 정성들여 차를 다려주시는 이들 덕분에
차맛을 모르는 나에게도 그 상큼한 삽싸름함이 전해져온다.
보리빵과 물고기로 많은 백성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일화와 연결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 먹을 만큼의 생선회가 예수님의 물고기일까?^^
정말 나눔에는 끝이 없다...
모두 잠든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그조근 소근소근 술자리.
맛있다고 큰 잔으로 두 잔이나 마셔버린 복분자술에다
이상하게 참으로 달콤하던 산소주, 거기다 맥주까지...
아..주책...
하지만,, 어쩌랴.. 술이니 酒책인게지...
말이사 되든 말든... 이미 과거지사...
보성차밭.
차밭으로 향하는 삼나무숲이 너무 좋다.
비가 내려 촉촉한 길 위로 나무들을 감싸안는 안개.
나무에서 향이 나는 듯하다.
같이 걷던 청한님의 말.
이제 향기가 안나네요.. 여자들이 없잖아요?
나무향기가 아니라 앞서 걷던 아가씨들의 화장품 냄새인 것 같다는 말을 그렇게 하신다.
헛! 나랑 친구랑 또 친구. 우리 셋은 여자가 아니구나...
그런데 여자가 아니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참 시원하다....^^
율포해변.
서슬퍼런 동해바다를 많이 보아서인지
깔끔하고 따뜻한 내 예쁜 남해바다를 많이 보아서인지 운치는 없다.
아이들이랑 함께 해수욕하기 좋은 곳.
아이들 데리고 놀러와야지...
가는 곳마다 염치없이 우리 아이들이랑...만 생각난다.
아냐, 남편은 이미 고정옵션이라 같이 오는 건 당연하단 뜻이겠지...
전어회덮밥 집들이 많다.
서울서 온 이들은 전어회무침이 맛나다고들 하는데,
싱싱한 회에 닳고 닳은 내 입맛엔 뭐, 사실은 별로였다.
맘속에는 이 사람들에게 정말 싱싱하고 맛난 회를 맛보여주고 싶단 으시댐.이 생긴다.
(잘났어..정말...)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의 부도를 보여주기 위해 여행코스를 잡았다던 대장의 의도와는 아랑곳없이
절을 둘러싼 풀밭과 산이 더 좋다.
화려한 부도와 부도비를 보노라니,
종교적인 신념으로 뭉친 석공들의 구슬땀과 순수한 종교적 열정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삶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고 작은 은덕이라도 입기를 희망하며
치성을 드리러 절로 발길을 향하는 민초들의 손에 들린 힘겨운 시주물들도 보이는 듯 하다.
글쎄.. 난 좀 삐투러졌나봐...
돌을 깨어 신앙심과 예술혼을 불태우는 멋지고 화려한 부도도 좋지만
그 시간과 비용과 정열을
헐벗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바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마도 역사에 새겨진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때론 후손들이 기릴 빛나는 역사보다
주린 배울 채울 한 끼 식사가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기가
그렇게 가끔씩 좀 힘이 든다.
나또한 그들을 위해 별반 하는 일도 없으면서...
그러하든 저러하든...
가고 오는 모든 것이 여행이다.
기차를 타고 가며 바라본 낙동강과 강변의 풀과 꽃과 나무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낡은 옷차림의 아저씨가 일행과 나누는 이야기.
"서울까지 갈려면 쌀이 한 가만데..." 어쩌고...
하동까지 나들이를 가면서 고작 무궁화 열차를 타는 걸로도 설레임이 가득한 얼굴.
그의 얼굴에 언젠가는 쌀 한가마니값을 들여 서울 나들이 할 상상만으로도
행복이 가득해 보인다.
그렇구나..쌀이 한 가마... 가슴이 저릿해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몸을 가누기만도 힘이 들 터인데,
이 사람 저 사람 중간중간 내려줄 힘든 품앗이를 자청하는 사람들.
지난 밤, 술이 잘 안취한다는 새빨간 취언속에 섞어 마신 술들이 반란을 일으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쉬이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시댁이 남해인 여자와 친정이 남해인(와니맘님) 두 여자가 쉴 새없이 수다를 떠느라
운전석과 조수석의 부부(겨울바다님과 남편님)는 집에 가서 귓속 소재를 하시지 않았을까...
길과 길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들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여행.
행복하다...
그렇게 마음은 벌써 또 다른 길 위에...
(챙겨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안내해주신 모든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려요.
편안한 휴식들을 취하셨길...)
첫댓글 공력이 만만찮으십니다! ㅎ ㅎ ㅎ ㅎ 가끔은 많은 예쁜 오리새끼들을 위해 미운오리새끼도 필요하지요^^ 억지쓰는 미운오리가 아니라 바른말하는 미운오리.....ㅎ ㅎ ㅎ ㅎ 미운오리 클럽이라도 하나 맹글까요? ㅎ ㅎ
기쁜 여행하셨네요~ 부럽슴다*^^* 여행기도.. 알콩달콩하네요~
와아~~대단하십니다..너무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그렇죠~ㅎㅎ 이제 우린 타인이 아닙니다..모놀 종족으로 편입하신걸 더불어 환영합니다..
여기서 네 글 보니 반갑다.....잠을 안 재워서 오는 길 내내 얼마나 졸리던지....거기서 청한님이 운전을 해주셨기에 망정이지 안해주셨음 더 헤매였을것 같아^^여자의 수다속에 운전해주신 청한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리고..오는 길 내내 앞에서 뒤에서 보호해준 조아님 형아님 계산님 모두 고맙고 반가웠어요..
우와 영소주님 대단한 글발입니다. 맛난 회에 닳고 닳았다니 다음에 기횔 함주시지요.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아침 차에서 듣던 아이들 상담이야기도 유익했고요...
이제 우린 타인이 아닌 지인...모놀님들은 왜 이리 글재주가 많으신지^^ 개별차량으로 오신 분들과는 제대로 인사도 못나누었지만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며 함께 해서 반가웠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모놀의 큰 수확이시네요. 대장님 행복에겨운 표정이 아~~~련하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빙그레...이번 답사는 글쓰는 사람만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참 좋습니다..모놀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는건 첫째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하던데..무척 아름다울것 같습니다.
'야밤의 수다' 잠깐 우리끼리의 나눔이 재미있었지요...글발이 만만찮네요...ㅎㅎㅎ
퉁명한 후기에 화답들을 해주셔서 민망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무척 즐거웠고, 마음속 깊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눈 여행이었어요. 개성과 따뜻함으로 가득한 많은 분들을 만나서 더욱 좋았구요. 성격이 곰살맞지 못해 고마운 분 일일히 호명하며 감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행의 설레임이 아직도 가슴에 남네요.^^
또 다른 길 위에서 또 뵙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