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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2월01일(일요일) 국립중앙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관람일정
탐방지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
탐방코스: [ 이촌역~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를 관람~이촌역]
탐방일 : 2024년12월01일(일요일)
날씨 : 높은 구름이 낀 날씨 [용산구 용산동6가 최저기온 2도C, 최고기온 10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1시간59분 소요)
12:00~12:45 구산역에서 6호선을 타고 삼각지역으로 가서 4호선으로 환승하여 이촌역으로 이동 [45분 소요]
12:45~12:59 이촌역에서 탐방출발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로 이동
12:59~14:30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에서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를 관람
[전시명 : 2024년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장소 :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
전시기간 : 2024-11-26~2025-03-03
전시품 : <청자 사자모양 향로>, <청자 어룡모양 주자>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등 300여 건
전시요약 : 22, 23년 상형청자 조사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 관 대표 소장품이자 고려청자의 백미인 상형청자를 최초로 단독 조명하는 전시
전시 안내
고려가 이룩한 청자문화의 정점인 상형청자를 단독 조명하는 전시로, 상형청자의 역사와 문화사적 맥략을 짚고, 아름다운 상형청자에 담긴 고려인의 세상과 이야기를 소개한다.
천여 년 전, 고려청자는 고려인이 이루어낸 수준 높은 최첨단 제품이었다. 그중 동·식물, 인물 등의 특정 형태를 본떠 만든 상형청자는 고려청자의 수준 높은 기술과 미감을 잘 보여준다.
상형청자에는 여러 형상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푸른 유약이 더해져 생동감이 느껴진다. 최고의 제작 기술과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체인 상형청자에는 고려인이 사랑한 세상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러한 푸른 그릇에 우리의 세상을 비춰보고 우리가 담고 싶은 세상을 생각해 본다. 무한한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상형청자의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담당부서 미술부 서유리(02-2077-9487)]
[비색의 완성, 상형청자
12〜13세기 고려청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물이나 식물, 인물을 표현한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상형청자의 소재는 크게 자연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자연적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 고려시대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동‧식물이 대부분입니다. 원앙‧오리‧참외‧죽순‧표주박 등의 모양으로 병, 주자, 연적, 향로 등을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소재는 고려시대의 국교였던 불교와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룹니다.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을 청자로 만들었고, 연꽃은 연판(蓮瓣)의 형태로 그릇의 내‧외면을 뒤덮거나 몸체 밑동을 장식했습니다. 연판은 향로나 향완 뿐 아니라 대접‧접시와 같이 윗부분이 벌어지는 일상 용기에 자주 사용하였으며 연꽃잎이 활짝 벌어진 듯한 효과를 냈습니다. 도교는 불교처럼 교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종대(睿宗代, 1105〜1122)를 중심으로 고려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고려사』 「예지(禮志)」 잡사조(雜祀條)의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복숭아가 담긴 쟁반을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자를 만들기도 하고, 복숭아‧원숭이‧기린‧봉황 등 도교와 관련한 소재를 향로, 연적 등으로 제작하였습니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사물의 대표적인 특징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입체적인 형상을 본떠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물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전체 형태를 손으로 빚어 만든 점에서 주로 도범(陶範)을 사용하여 찍어냈던 중국 자기와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하여 더욱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가 가능하였으며, 비색의 맑고 투명함으로 인해 세부 표현의 정교함과 입체감이 잘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전성기의 청자는 이와 같이 상형청자로 대표되는 색(色)과 형(形)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시대에서, 점차 상감(象嵌), 철화 등 강렬한 장식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그 미감이 변화하게 됩니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61호) 청자 어룡모양 주자(靑磁魚龍形注子)
청자 어룡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높이 24.3cm, 국보 청자 어룡모양 주자는 수면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어룡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청자 어룡모양 주자는 수면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어룡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인 청자 어룡모양 주자는 모양이 독특하고 세부의 표현이 뛰어나며 유색이 아름답지만, 그 무엇보다 용과 물고기가 합쳐진 상상 속의 동물을 정교하게 형상화한 고려 사람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제작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몸체에서 뚜껑에 이르기까지 어룡(魚龍)의 모습을 잘 담아낸 이 주자는 용을 닮은 머리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하고, 몸은 둥글게 웅크린 채 꼬리를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물이 나오는 몸체 앞쪽의 주구(注口)는 얼굴의 양쪽 가장자리에 활짝 펼쳐진 지느러미를 나타내고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당당하게 응시하는 용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용의 머리 위쪽에는 연꽃 줄기가 늘어뜨려져 있습니다. 눈에는 검은 색 산화철안료(酸化鐵顔料)를 작은 점으로 찍어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표면에 백토를 칠한 날카로운 이빨은 청자의 유색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돋보입니다. 용의 머리 밑에는 날개 모양으로 된 2개의 큰 지느러미가 달려 있습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을 주는 둥근 몸체에는 전면에 크기가 작은 반원형의 장식을 음각으로 일정하게 반복하여 물고기 비늘을 가득 나타냈는데, 유약의 미묘한 두께 차이는 색의 깊이를 더해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랫부분에는 마치 어룡이 불보살상의 대좌에 앉아 있는 듯 연꽃잎을 양감 있게 장식하였습니다. 몸체의 뒤쪽에는 연꽃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달아 실용성보다는 상형청자의 높은 장식성을 보여 줍니다.
고려 중기에 제작된 이 주자는 ‘U’자형에 가깝게 꺾인 몸체와 위쪽을 향한 꼬리의 형태가 수면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어룡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중국 북방에 위치하던 요나라(遼, 916~1125)에서 유행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영성현(寧城縣) 중경박물관(中京博物館)의 <삼채연좌약리어주호(三彩蓮座躍鯉魚注壺)>를 비롯해 내몽고에서 출토된 다수의 주자에 고려청자의 어룡 장식과 매우 유사한 특징이 나타나서, 고려와 요의 교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1세기 후반부터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요 도자의 영향은, 무역으로 고려에 들어온 공예품의 영향과 더불어 현종대(재위 1009∼1031)부터 유입된 거란계 귀화인이 고려에서 금속기와 직물 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요 문화의 특성을 일정 부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96호) 청자 귀룡모양 주자(靑磁 龜龍貌樣 注子)
청자 어룡모양 주자와 더불어 대표적인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인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거북용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주자의 머리는 용을 닮은 모습이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채 포효하는 모습이 당당한 위엄을 뿜어냅니다. 머리에는 뿔이 뒤쪽으로 솟아 있습니다. 뾰족하게 튀어 나온 코는 크기가 매우 크며 눈에는 검은 색 산화철안료로 작은 점을 찍어 생동감과 활기를 더했습니다. 입에는 송곳니를 비롯해 이빨과 혀를 정교하게 묘사하여 더욱 강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몸체는 거북의 형태로 외면에는 거북의 등껍질무늬[龜甲文]를 가득 새기고 그 안에 ‘왕(王)’자를 음각기법으로 섬세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등의 위쪽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으며 그 주변에는 연잎을 장식하였습니다. 몸체의 등껍질 아래에는 네 개의 발이 드러나 보이는데 크기가 크고 두툼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발등의 비늘은 물론 발가락의 주름 하나까지도 정교하게 묘사한 점은 고려 상형청자의 높은 완성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거북의 아랫부분에는 어룡모양 주자와 마찬가지로 연꽃잎 대좌를 마련하였으며, 뒤쪽에는 연꽃 줄기를 꼬아 만든 손잡이를 달아 장식성을 더하였습니다. 품격 있는 연꽃잎 대좌 위에 앉은 귀룡은 고려시대 비석의 귀부(龜趺)에서 볼 수 있는 거북과 같은 형태인데, 청자의 발달 배경에 고려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 주자 역시 불교의 상징적인 의미를 깊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피어오른 연꽃 위에 올려진 귀룡에서는 연꽃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을 읽어낼 수 있으며, 등껍질 면마다 가늘게 음각된 글자에는 ‘왕즉불(王卽佛)’의 고려 왕실의 불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듯합니다. 이렇듯 용이나 어룡(魚龍)‧귀룡(龜龍)‧구룡(九龍) 등의 소재는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로서 왕실의 권위를 드러냈을 것입니다.]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 167호) 청자 인물형 주전자(靑磁 人物形 注子)
(Celadon Ewer in the Shape of a Human Figure)
대한민국의 국보 제167호 (1974년 7월 9일 지정)
수량 1개
시대 고려시대
소유 국유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청자 인물형 주전자(靑磁 人物形 注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상형청자로 높이 28.0cm, 밑지름 11.6cm의 주전자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만들어진 상형청자로 높이 28.0㎝, 밑지름 11.6㎝의 주전자이다.
상형청자는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으로 이 주전자는 머리에 모자(관)를 쓰고 도포를 입은 사람이 복숭아를 얹은 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모자 앞 부분에 구멍을 뚫어 물을 넣을 수 있게 하였고, 받쳐든 복숭아 앞 부분에 또다른 구멍을 내어 물을 따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람의 등 뒤에 손잡이를 붙였으며, 그 꼭대기에 작은 고리를 만들어 붙였다. 모자에 새 모양을 만들어 장식했고 모자, 옷깃, 옷고름, 복숭아에 흰색 점을 찍어 장식효과를 냈다. 맑고 광택이 나는 담록의 청자 유약을 전면에 두껍게 발랐다.
이 주전자는 1971년 대구시 교외의 한 과수원에서 발견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출토지가 분명한 13세기 전반의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이다.]
[국보 167호에서 얻은 인생교훈
논객 기사 입력 : 2020.10.15. 10:00 수정 2020.10.15. 10:41
[오피니언타임스=칼럼니스트 이장열]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살다 보면 일생에 한두 번은 큰 기회가 온다고 한다. 이미 타계한 대구골동계의 유명한 김환제씨(이하 “김씨”로 한다)가 “청자인형주전자”를 입수하게 된 것도 그런 경우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진열실 유리함 속에 조용히 앉아있는 “국보167호 청자 인물형 수주(靑磁 人物形 注子)”(이하 “인형주자”로 칭함)가 천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와서 필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다.
고려청자는 그릇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국보167호로 지정된 것과 같은 이형(異形)도 있다. 이 인형주자는 머리에 보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도사)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 용도는 주전자다. 얼굴은 아래에서 보면 약간 웃음을 띈 듯하고, 정면과 좌우에서 보면 복스러운 불룩한 볼을 하고 있다. 양손으로는 선도(仙桃)를 가슴 앞에 받쳐들고 있는데 복숭아 입 부분 뚫린 구멍을 통해서 액체를 따르도록 하였다. 정수리에 난 큰 구멍은 주입구이고 뚜껑은 없어진 상태다. 상감은 없고 요철(돋을무늬)로만 조각되어 있다.
인형주자의 숨겨진 1000년 비밀- 세상 밖으로!
이 인형주자는 팔공산에서 구묘(옛 묘지)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 혹은 칠곡의 가산에서 한 농부가 밭에서 캐낸 것이라도 했다. 그러나 이런 귀중한 유물은 민묘에서 나올 수는 없고 왕이나 고관대작의 대형 무덤밖에 없는데 그런 큰 무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대형고분이 평지밭으로 변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지만 역시 출토지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경위야 어떻든 많은 출생의 비밀을 안고 땅속 긴 잠에서 깨어난 고려시대의 보물 인형주자가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옛 유물들은 지하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끄러운 인기를 독차지 한다. 인형주자를 땅에서 파낸 사람은 원매자를 만나기 위해 대구의 골동상 장모씨를 찾아갔다. 그러나 장모씨가 가짜라면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부르는 바람에 다시 다른 골동상을 찾아갔는데 이때 “아다리”된 이가 바로 김씨였다.
그는 물건을 보자 말자 예사 물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당시에 이 물건을 살만한 돈이 없던 가난한 김씨는 급박한 마음에 사방으로 돈을 빌리러 뛰어다녔다. 돈놀이를 하는 한상희씨도 찾아갔으나 액수가 너무 많다고 거절당했다. 김씨는 결국은 돈을 마련해서 이 물건을 80만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집 한채 값인 큰돈이었다.
김씨는 곧바로 이 “물건”을 싸들고 당시 골동계의 대부 이병각 영감(이후 “영감”으로 함)을 찾아갔다. 이런 물건을 살 수 있는 재력가는 영감뿐이었다. 보따리를 풀자 영감은 물건을 찬찬이 보더니 “알마를 달라카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간도 크게 2,50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영감이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2,500만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돈은 나중에 줄터이니 물건을 놔두고 가라고 했다.
인형주자는 이렇게 영감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일이 꼬여 시끄럽게 되었다. 처음에 가짜라고 한 같은 업계의 장모씨가 이 사실을 알고는 “셈이 나서” 경찰에 고발해 버렸다. 그래서 급기야 문화재도굴과 도굴품 거래라는 형사사건화 되어 물건을 판 사람(도굴범)과 물건을 산 김씨가 같이 구속이 되었다. 재판 진행과정에서 재력가의 힘이 작용했다.
재판을 통해 '가짜로 둔갑한' 인형주자
사위들 중에 판사가 한 사람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재판과정에서 인형주자는 가짜로 둔갑했다. 결국, 도굴자는 문화재가 아닌 가짜물건을 판 사기꾼으로 기소되어 몇 달간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고, 매수자들은 사기피해자로 무죄 방면되었다. 진짜 인형주자는 멀쩡히 눈뜨고 가짜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김씨가 교도소에 한동안 갇혀 있다가 방면되어 집으로 와 있으니 어느날 S사 본부에서 왔다면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천만원을 주면서 “많이 드릴려고 했으나 (사건해결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면서 이해해 달라고 했다. 김씨는 그때 상황을 “돈이 마다리로 한 푸대였다”고 회고했다. 그때까지도 사채를 쓰면서 어렵게 살던 김씨는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면서 형편이 풀리게 되었다.
필자가 찾아간 김씨의 '그 때 그 회상'
김씨가 인형주자를 입수한 것은 그로서는 인생전환의 기회였다. 김씨는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해서 인형주자 사진이 실린 명함을 갖고 다녔다. 타계하기 얼마 전에 필자가 그의 가게를 찾았을 때는 반기면서도 건강이 안 좋은지 “이제는 술은 못한다”면서 그 명함을 건네주면서 아득히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후 영감은 인형주자를 국가에 기증하고 미련을 버렸다. 김씨는 애지중지 여겼던 인형주자에 대한 추억을 고이 간직한 채 타계했다. 모두가 떠났다. 나는 그간 형제처럼 지냈던 김씨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명함을 보면서 무척 애석했다.
'잘난 재주꾼들'이 떠난 자리엔 욕만 남아
일생에 한두 번 찾아온다는 귀한 기회가 내 인생에서도 있었던가? 이 나이에도 나를 기다리는 기회가 있을 리는 없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나간 기회였다. 그때는 젊었던 때라서 매사에 타협 없이 불의를 향해 덤벼들기만 했다. 만일 그때 내게도 노회한 지혜가 있었다면 내 위치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세상사는 재주들이 좋아서 먼저 승진한 동료, 후배들을 보면서 자책과 좌절도 했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잘난 재주꾼들도 그 자리를 떠나니 후배들의 외면과 욕밖에 남는 것이 없었다. 세상사 일이 다 부질없는 것. 오직 바른길로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임을 느낀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잘해” 하시던 선배들의 말이 생각난다.
※추기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자료에는 “이 주전자는 1971년 대구시 교외의 한 과수원에서 발견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출토지가 분명한 13세기 전반의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국보는 담당판사의 판결이 어떻든, 도굴품이 맞고 도굴지는 영원한 비밀에 붙여졌다.
이장열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문화재학, 민속학전공)
✿고려대학교 교육학석사(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한국사전공)
✿멕시코 이베로대학 사학석사 과정(2년6월), ✿스페인 교육문화부 근무연수(1년)
●現,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前, 성균관 석전교육원장
●前,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원, 문화재청 등에서 30년간 공무원으로 근무,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
●前,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위원장
●前, 대구광역시 문화재위원회 무형민속분과위원장
●前,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무형문화재 석.박사논문 지도)
✿홍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등 다수
●저서,『한국 무형문화재 정책, -역사와 진로-』(관동출판, 2005.7.10., * 2006년 문광부 선정 우수 학술도서)
●저서,『문딩이 아저씨』(수필집, 2016년)
●저서,『삿갓영감의 세상보기』(수필집, 2018년)]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와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
1123년 서긍(徐兢, 생몰년 미상)은 송 휘종이 파견한 국신사 일행 중 한 명으로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면서 공식일정을 수행하였다. 이때 고려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그에 대한 면모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이 책의 「기명(器皿)」부분에는 고려의 다양한 그릇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도로조(陶爐條)’의 내용이 흥미롭다.
“산예출향(狻掜出香)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 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요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유사하다.”
위의 내용은 고려시대 도자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산예출향(狻掜出香)'은 사자가 장식된 향로를 말하는데, 당시 서긍은 연화형(蓮花形) 향로 뚜껑 위에 사자가 장식된 것을 보고 이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색은 비색(翡色)이며 매우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졌다고 품평하고 있다.
현재까지 위 기록에 부합하는 가장 유사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 사자 장식 향로(옛 지정번호 국보 제60호)이다. 이 향로는 뚜껑 위에 사자가 올라가 있고, 향을 피우는 몸체에는 세 개의 귀면(鬼面) 모양 다리가 붙어 있다. 따라서 몸체에서 향을 피우면 뚜껑에 장식된 사자의 입을 통해 향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사자의 두 귀는 아래로 처져 있고 코는 들려 있으며 살짝 벌린 입에는 가지런하게 이빨이 드러나 있다. 목덜미의 갈기는 탐스럽고 몸통은 매끈하다. 넙적하게 만든 꼬리는 등에 착 감겨 있어 안정감을 주고, 발 또한 맹수의 것으로 손색이 없도록 다부지게 표현하였다. 특히 가슴에 방울을 달고 오른쪽 발로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모습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사자 중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최근 태안 마도 인근에서 동일한 형태의 사자 향로 2점이 인양되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목구비 형태와 전체적인 모습이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향로와 차이가 있지만 이 같은 발견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다양한 사자 장식 향로가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청자 향로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옛 지정번호 국보 제95호)는 고려청자, 더 나아가서 고려시대의 우수한 공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향로는 투각(透刻)된 구형 뚜껑과 연화형 몸체, 그리고 세 마리의 토끼가 받치고 있는 판형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형태의 상형물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완성도 높은 조형물로 승화되었다. 먼저 뚜껑을 보면, 전면에 칠보(七寶) 무늬를 투각하고 문양의 교차 지점에는 작은 점을 백상감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몸통에는 틀로 찍어낸 꽃잎들을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으로 만들고, 꽃잎에는 가늘게 잎맥을 표현하여 섬세함을 부여하였다.
특히 향로 받침을 떠받치고 있는 앙증맞은 토끼 세 마리는 향로의 조형미를 배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작은 상형물이지만 토끼의 눈에 검은 철화 점을 찍어 영특한 눈매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청자 토끼는 생명력을 얻었다. 이 향로는 음각․양각․투각․퇴화․상감․첩화․상형 등 모든 장식 기법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화려한 것으로, 12세기에 제작된 절정기 청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다양한 청자 향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향을 가까이 두고 향 문화를 즐겼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향을 피우는 목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해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고 둘째, 의복의 냄새와 좀 벌레를 예방하며 셋째, 종교의식이나 의례를 행할 때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향을 어떤 방식으로 피웠는지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없지만 몇몇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이 향유한 향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몇 편의 글을 남겼다. 쓸쓸한 암자에 향로가 놓여진 한적한 풍경을 읊은 구절이나, 향을 피우는 가운데 돌솥에 차를 달여 마시며 귤을 먹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있다. 또 술자리에서 침향(沈香) 연기 때문에 노래하는 목청이 메인다는 내용도 있다. 이 같은 기록을 통해 공식적인 의례나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여가를 즐길 때 향을 피우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한 조형과 비색의 조화로 완성된 청자 향로는 실용성과 더불어 감상용기라는 미적 성취까지 거둔 고려청자의 절정(絶頂)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강경남]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 제2집: 고려시대 상형청자2』발간
한국강사신문 기사 입력 : 2024.01.08 10:22
[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소장 도자 조사연구 사업의 최신 성과를 담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 제2집: 고려시대 상형청자2』를 2023년 12월에 발간하였다고 밝혔다. 이 도록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전시 중인 고려 상형청자 가운데 주자注子, 연적, 인장, 베개, 묵호墨壺(먹물을 담는 그릇), 승반承盤(주자를 받치는 그릇), 완盌, 필가筆架(붓꽃이) 등 9가지 기종의 24건 36점을 대상으로 개요 논고와 함께 상세한 설명, 사진, 실측도면, 컴퓨터 단층촬영(CT) 등의 과학적 조사 분석 결과를 수록한 종합 자료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2년 박물관이 소장한 도자기를 다각도로 조사하여 학계와 일반에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 시리즈 발간을 기획하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주제로 고려시대 상형청자를 선정하였다. 상형청자는 동․식물과 인물 등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으로 고려청자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비색翡色과 뛰어난 조형성을 갖추고 있어 고려청자의 백미로 주목받아 왔다.
2022년 발간한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 제1집: 고려시대 상형청자1』에서는 향로, 병, 인물상의 3가지 기종 22건 22점에 대한 연구 결과를 수록하였다. 이번에 나온 제2집은 제1집에 이은 두 번째 성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상형청자 조사의 완결편이다.
『고려시대 상형청자1, 2』은 상형 소재 중심으로 접근하던 기존의 상형청자 연구방식을 탈피하여 기종을 분류의 제1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려 상형청자가 지닌 기물 자체의 기능, 즉 쓰임을 중시하는 공예사적 관점을 견지하고 표현된 대상을 제2기준으로 하여 분류방식을 새롭게 체계화한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국립박물관 소장 상형청자를 12개의 기종으로 나누었고, 표현 대상은 동물, 식물, 인물 및 복합소재 등으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제2집에서 다룬 9개의 상형청자 기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자, 연적, 인장이다. 이 중 주자는 참외와 조롱박 형태로 제작한 것이 상당수지만, 도교道敎 인물과 함께 어룡魚龍과 새 등 동물로 형상화한 점도 주목된다. 연적의 경우 표현 소재가 다양해서, 사자, 오리, 물고기 등 실재하는 동물은 물론 귀룡龜龍, 어룡같은 상상의 동물, 그리고 죽순, 복숭아 등의 식물 형태로도 만들었다. 인장은 크기가 작지만 손잡이 부분을 상형하여 식별하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 베개는 쌍사자 모양을, 묵호는 원숭이 모양을, 승반과 완은 꽃 모양을 본떠 만든 것들이 전한다. 한편, 양 끝부분을 용의 머리로 장식한 필가와(붙임 사진4) 함께 용과 연못의 모티프를 결합하여 만든 문진文鎭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청자도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하여 수록했다.
이 도록에서는 각 대상품마다 상세한 설명문과 상세도판뿐만 아니라 3D스캔 도면, CT(컴퓨터 단층) 촬영과 3차원 형상 데이터를 수록하여 정확한 실측치와 단면 형태를 파악하도록 했다. 아울러 과학적 분석 결과를 제시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내부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태토를 다듬은 방법, 유약이 흐른 부분과 균열 형태, 결합 방식 등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제작기법의 특징을 새롭게 밝힐 수 있었다.
주자는 물레를 이용하여 한 번에 성형하는 방식,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두 종류의 제작방식이 확인되었다. 특히 동물이나 식물의 복잡한 모양을 본떠 만든 주자의 경우, 물레로 한 번에 성형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아래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청자 귀룡 모양 주자>(덕수5636)의 경우 CT 3차원 형상 데이터 사진에서 상부와 하부를 각각 따로 만들어 내부를 다듬은 후 이 두 부분을 결합한 경계선이 선명히 보인다.
<청자 퇴화 석류 모양 주자>(덕수2170)의 경우, 아랫단에 3개의 석류를 잇대어 놓고 위에 1개의 석류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3차원 형상 데이터 사진을 보면 아래쪽 3개의 석류들은 상․하부를 따로 만들어 붙였고, 위쪽 1개의 석류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두 부분을 결합한 후 통로를 내어 내부가 이어진 구조를 띤 것이 흥미롭다.
주자 손잡이의 제작방식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몸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구조적 안정성을 꾀한 점이 주목된다. 대표적인 예로 <청자 상감·동화 포도·동자무늬 조롱박 모양 주자>(덕수19)와 같이 몸체에 낸 구멍에 손잡이 윗부분을 끼워 넣어 이음새 부분을 튼튼하게 만든 방식을 들 수 있다.
연적은 안쪽에 빈 공간을 마련하고 물을 담아 출수구로 따를 수 있게 만드는데, 그 복잡한 내부 구조를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이번 조사의 성과이다. <청자 사람 모양 연적>(덕수1729)은 두 손에 든 정병淨甁이 출수구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따로 만들어 몸체와 결합한 뒤 그 사이에 물길을 냄으로써 조각의 형태미와 그릇의 기능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자연스럽게 조화시켰다. 제작자는 처음부터 연적의 내부 구조를 철저히 계산하고 실험을 거쳐 완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도록은 전통적인 도자사 연구방법을 기반으로 하되 최신 분석장비를 활용한 과학적 조사를 병행하여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고려 상형청자 제작기법의 여러 특징을 새롭게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고려 상형청자의 뛰어난 조형성과 예술성을 한층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청자 장인들은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형청자의 기능과 미적 측면 모두에서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11월『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 제1, 2집』의 성과를 바탕으로 특별전 ‘고려시대 상형청자(가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상형청자와 더불어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된 작품을 함께 선보여, 상형청자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 상형청자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미술사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상형청자의 가치에 주목하고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 도자자료에 대한 학술 조사를 지속하고 조사 결과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도자도록』로 공개할 예정이다.
* 한국도자도록은 PDF 파일로 제작되어 박물관 누리집에서 누구나 내려받아 볼 수 있다.]
14:30~14:44 이촌역으로 회귀하여 탐방 완료
14:44~14:55 이촌역에서 삼각지역으로 가는 4호선 전철 승차 대기
14:55~15:40 4호선을 타고 이촌역에서 삼각지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45분 소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1층 시설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