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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을 쓰는 시간
최 시 한
10월 8일
이번 일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염려를 끼쳤다. 나는 지금 반성한다.
먼저 선생님들께 죄송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씩 불러다 자초지종을 묻고 꾸짖으시느라, 그리고 서류를 꾸며 교무회의에 제출하고 사태를 설명하시느라 공부도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아주 초췌해지셨다. 학생주임 선생님도 수고를 많이 하셨다. 학부형들과 몇 차례씩 면담을 하시고, 여러 곳을 드나들며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막으시기에 바빴다. 회의를 거듭하며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에 괴로우셨을 교감, 교장 선생님께도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경찰에서 먼저 알고 의심을 품었으니 상부에서 어떻게 여길지 걱정이라고 하셨다는데, 그 고충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 분위기가 쑥밭이 되는 바람에 공부에 지장을 받은 이번 일에 관련되지 않은 여러 급우들한테도 아주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들 가운데 몇은 우리 일을 조금 눈치 채고 있었는데, 걔들은 바로 그 눈치 챈 것 때문에 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처음 밝히는 것이다. 이해해주실 줄로 믿는다.)
내가 사고를 저지른 데다 주동자로까지 지목되는 바람에 제일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가장 마음 아픈 게 누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나를 키우다시피 한 누나다. 누나는 맹장 수술을 받으면서도 열었던 가게를 나 때문에 이틀씩이나 닫았다. 그리고 학교와 경찰서를 뛰어다니며 사정하고 다른 애들의 부모님께 나를 좀 좋게 보이려고(사실은 그분들이 모든 잘못을 나한테 덮어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도록 돌아다녔다. 아무 죄도 없으면서 자형* 또한 양복을 차려입고 아버지 격으로 불려 다니며 사과하고 부탁하기에 바빴다. 이제까지 나는 누나와 자형한테 얹혀살면서도 그들을 무시해왔다고 하는 게 옳은데, 이런 나쁜 일을 계기로 그들이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으니 참 묘한 일이다. 묘하기도 하지만,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일이 다 내 탓이다. 다른 애들은 모두 나 때문에 처벌을 받게된 것이다. 나보다 벌이 가볍기는 하지만, 그동안 학교와 집에서 겪은 고통은 나나 다름없을 터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도실에 줄지어 무릎을 꿇고 있었던 때나 잘못했으니 오직 선처를 바란다는 글을 쓰라고 담임선생님이 어두워가는 교실에 우리만 남겨놓으셨을 때, 무어라 사과의 말 같은 것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럴 마음조차 먹은 적이 없었다. 무척 어이없이 들릴지 모르겠으나, 설마 일이 이렇게 되고 엄한 처벌까지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누군가 나를 원망이라도 했으면 빈말로라도 사과를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누구도 그러질 않았으니 참 좋은 친구들이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아마 걔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거나 나처럼 잘못을 늦게 깨달아서 미처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든 여러모로 미안하다. 물론 애초에는 짐작도 못 했던 일이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할 말이 없다. 담임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결과가 문제지 동기나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등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이번 기회에 나 자신과 그 밖의 것들을 찬찬히 돌이켜보아 다시는 이런 일이 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10월 9일
곰곰 돌이켜보니, 나는 정말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게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알아야 할 걸 모르는 것도 큰 잘못이다.
그 노인이 경찰의 감시를 받는 사람인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낡기는 했어도 그렇게 크고 멋진 집에 노인 혼자 사는 게 좀 이상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과거가 있으리라고는 정말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줄 알았다면 그 집이 아주 달라 보였을 테고, 거기에 저녁마다 모이지도 않았을 거다. 암만 몰랐다고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아 괴로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소 믿어준 것 같아 다행스럽다.
두 사람 이상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자주 모이면 정해진 틀의 서류에 적어서나 아니면 말로라도 선생님께 알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일이 나고서야 알았다. 그런 규정이 어느 법률에 있는지 경찰서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그야말로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생활기록부라는 게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었다. 누나를 포함한 다른 학부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들까지 처벌 자체보다 거기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걸 더 심각한 일로 여겼다. 학부형들은 어떻게든 그것만은 면하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래서 ‘처벌은 하되 이번만은 생활기록부에 적지 않겠으니 각별히 유념하라’는 최종 결정에 모두가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렇게 여러 날 저녁 붙어 지냈으면서도 다른 애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아주 많았다. 나하고는 이야기를 잘하는 광식이가 집에서는 식구들과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일 때문에 알게 되었다. 게다가 걔가 학원에 간다면서 거기에 왔고 저금이라던 돈이 학원비인 줄 몰랐었다. 준태에 관해서도 그렇다. 걔의 음반과 소형 전축, 녹음기 따위는 옆집 아저씨의 것을 허락도 없이 가져온 것이었다. 성규, 현석이, 순모에 대해서도 몰랐던 점이 많다. 특히 성규네 집에서는 아무도 학교에 와보지 않았다. 광식이는 걔 말대로 ‘식구들이 너무 공부하라고 쪼아대기만 해서’ 그랬고, 준태는 그토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그것들을 살 만한 돈이 없어 그랬으며, 성규는 전에도 한 번 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어서 그랬다고는 해도, 그란 잘못을 범할 계기를 만든 사람인 셈이니까, 나는 알고 있어야 했다. 알아야 할 걸 몰랐다면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몰랐던 게 어디 그뿐인가.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찔쩔매면서 사태가 어찌 돼가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왜들 그렇게 야단인지, 뭐가 그렇게 심각한지, 도대체가 그 많은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들이 왜 그렇게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누나 말마따나 ‘음악병, 문학병이 겹쳐 꿈속을 헤엄치면서 세상이 온통 제 맘 같은 줄만 여겨온 녀석’이 바로 나였던 성싶다. 정말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는 것은 죄다.
지금 생각났는데, 이렇게 쓰면 반성문이 되는 건지도 나는 잘 모르고 있다. 틀에 좀 어긋나더라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10월 10일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면 사람마다 이상스레 쳐다보면서 대낮에 학교엔 안 가고 무얼 하느냐고 물을 것 같았다. 이게 다 ‘무기정학’ 속에 들어 있는 벌이라는 생각으로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벌의 하나라고 여겨야 할 것 같았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뜨거운 데다 귓속에서 컵 같은 게 바닥에 떨어지며 깨지는 듯한 소리가 자꾸 나는 바람에 도무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 증세도.
오후 내내 창가에 앉아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거리는 활기찼다. 내가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던 무수한 낱들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이 살았을 적에도 그랬던 것처럼.
또 하루를 결석 했지만, 여전히 나한테 결석은 결석이 아니다. 나는 출석과 결석, 우등생과 열등생, 백 점과 빵점이 모여 사는 나라의 경계선 밖에 있다. 나는 ‘무기(無期)’로 그 밖에 놓여 있다. 지난 일을 반성 할 때는 반성한다 치더라도, 지금 여기가 어디며 내가 누구인지, 이제부터는 무얼 어째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 막막하게. 이게 다 ‘무기정학’이란 말의 뜻이다. 나는 그 뜻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오늘은 이 반성문 공책 한 쪽을 다 채우지 못한다. 더 반성할 기력이 없다.
10월 11일
누나가 약을 지어다 떠맡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먹고 누워 있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보니 생각이 자꾸 한 가지 기억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모든 게 그 비 내리는 일요일 저녁 그 집에 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중심가의 공현장이나 전람회장을 기웃거리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종일 이 책 저 책 뒤적거렀다. 저녁나절이 되니까 지루하기도 하고 하루를 너무 헛되이 보낸 것 같기도 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노상 다니던 길을 일부러 피하며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큰길을 건너서 다시 골목으로 헤집고 다녔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픈 느낌, 그러지 못해 좀 서글픈 것 같은 심정이 가슴속에 고이고 있었다. 우산 밑으로 파고드는 빗발에 옷이 후줄근하게 젖었을 무렵, 나는 근처가 한눈에 내려다뵈는 어느 고개에 서 있었다.
해거름*인 데다 비가 와서 사방이 우중충했다. 그런데 건너편 등성이의 한곳이 시선을 끌었다. 거기에는 제법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꽃 한 그루 심을 자리도 없게 다닥다닥 엉겨 붙기만 한 집들 사이에 그렇게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 있는 게 무척 기이했다. 게다가 나무들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그 집의 모양새가 아주 특이했다. 나는 야릇하게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옷이 다 젖은 것도 아랑곳 않고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거기로 들어가는 문은 막다른 곳에 있었다. 나뭇조각을 덧붙여서 간신히 내려앉는 걸 면한 상태였는데 슬쩍 밀자 소리 없이 열렸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뜰은 잡초투성이었다. 비에 젖어 먹빛 일색인 아름드리나무들이 드문드문 거대한 기둥처럼 서 있었다. 워낙 고목이어서 줄기가 뒤틀리고 썩은 것도 있었지만 올려다보면 모두 높직이 솟아올라 무성한 잎사귀로 어두워가는 회색빛 하늘을 떠받들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옛날의 어느 곳, 출입이 금지된 성스러운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잡초 사이로 희미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질퍽거리고 침침한 나무들 밑을 몇 차례 지나자 희뿌연 건물이 저만치 보였다.
그 건물은 정말 서양의 무슨 고대 신전처럼 돌로 만든 네 개의 두리기둥* 이 입구를 떠받치고 있었다. 낡고 군데군데 부서지긴 했어도 처마라든가 모서리 따위가 섬세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고 모든 문이 홍예문*이었다. 그것은 그저 밥 먹고 자기 위해서만 지은 집들하고는 달랐다. 나는 옷이 젖어 추운 데다가 흥분까지 되어 진저리를 치면서 무슨 덩굴무늬가 정교하게 조각된 현관 손잡이를 당겨보았다. 문은 뜻밖에도 잠겨 있지 않았다. 마루가 깔린 널따란 공간으로 들어섰다. 천장이 아주 높았다. 창으로 흘러든 희미한 빛이 이 층으로 올라가는 활처럼 구부러진 계단의 난간 기둥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 무엇이 감겨 있었다. 나는 도둑처럼 눈을 사려 뜨며 가까이 다가갔다. 거기 감겨 있는 건, 커다란 한 마리 용이었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그래, 모든 게 그 집에 간 데서 시작되었음을 말하려다가 쓸데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거기 간 일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집에서 놀이판을 벌였다는 점이다. 아니, 계획한 놀이판을 벌이지는 못했으니까, 여러 날의 준비 끝에 놀이판을 벌이려 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것도 아니고, 학생주임선생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위험한데서 놀자판을 준비하며 놀았다’는 그 점이다.
나는 왜 그렇게 그곳이 좋았던지 모르겠다. 어른과 선생님들께(경찰서까지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알리지 않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알리지 말자는 약속이 있어서 더욱 즐겁게, 왜 저녁마다 거기를 드나들며 그런 일을 계획 했었는지 모르겠다.
잘 봐줄 테니 염려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면서, 형사는 거듭 물었다. 하필이면 그런 낡고 후미진 데서 보였느냐, 너희들 조직에 뭔가 감출 게 있거나 누군가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정해준 거 아니냐…… 모르는 걸 잘 아는 듯이, 그렇지 않은 것을 그런 듯이 말한다고 해서 반성을 더 잘하는 건 아닐 터이다. 내가 왜 그곳이 그렇게 좋았는지, 다른 애들도 처음 거기에 데리고 갔을 때 왜 하나같이 멋지다고 했었는지, 나는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역시 모르겠다. 조직 이라니, 우리는 조직 같은 걸 꾸민 적 없고, 다들 그저 장소가 좋고 친구들이 좋아서 모이곤 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라고 해도, 형사는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했다. 그런 건 이유가 못 돼. 딴, 이유가 있을 거야. 한 달 이상 저녁마다 모였고 그런 수상한 짓까지 하려고 했으면서 그 이유를 모른다니, 자기가 한 행동을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알지?
나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어쩌면 있지도 않을 이유를 댈 수는 없다. 다른 애들 가운데 누군가는 거기 사는 노인이 좋아서였다고 대답해버린 모양이었지만(그래서 일이 더 꼬였다. 왜 좋았느냐, 그 노인이 했던 말들을 각자 종이에 적어라, 내용이 서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전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그건 그리 중요한 이유가 못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 그 노인을 좀 꺼림칙하고 이상하게 여겼고 어찌 보면 조금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노인보다는 그가 사는 집이 좋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오늘은 이미 몇 번이나 했던 얘기를 되풀이한 셈인데, 무얼 회피하거나 변명하려는 뜻은 없다. 나로서는 너무도 엉뚱한 말들에 휩싸여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댔었기 때문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돌이켜보아 좀 더 사실에 가까워지고 싶었을 뿐이다. 열이 올라서 볼펜을 잡은 손이 떨리더라도, 그저 생각만 하기보다 이렇게 쓰다 보면 더 분명 해지고 정리가 되니까.
10월 12일
오늘도 몸이 아팠다. 그러나 약을 먹지는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침에 광식이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광식이 어머니가 그렇게 귀부인 같은 분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그렇다고 특별히 달리 생각한 적도 없지만) 무척 당황스러웠다. 부랴부랴 꾀죄죄한 베개를 감추고 이불을 개면서 들어오시라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글로 쓸 때는 제법 주워섬기면서 입으로 말할 때는 그런 경우에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움츠러들곤 하는지 모르겠다.) 광식이 어머니는 그냥 있으라면서 내 이마를 짚어보시며 열이 많다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방 안을 둘러보고는 음악을 좋아한다던데 책도 많이 읽는 모양이라고 하셨다. 나는 도무지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스럽다고 간신히 말했다.
“아니다. 너희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도 아니고.”
그런 말은 이번 일 터지고는 처음 들었다. 나는 왜 그러시는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저런 어머니가 계신데 광식이는 왜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광식이와 어떻게 해야만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걔가 식구들한테 점점 더 굳게 마음을 닫고 있어. 너하고는 잘 통하나 보던데, 혹시 걔가 여길 오면 좀 이야기해주렴. 걔 아버지와 내 잘못이 크다. 우리도 이젠 그걸 알고 있어. 형들은 잘 따라주었기 때문에 걔도 그럴 줄 알았는데, 여행 한 번 허락 안 해줬으니…… 광식이는 광식인데 말이다…… 부탁한다. 너는 텔레비전에셔 본 거나 흉내 내는 애들하고는 다른 것 같다. 광석이랑 다른 애들이 왜 너를 따랐는지 짐작이 가는구나. 네가 좀 도와주렴.”
그런 말씀을 하실수록 나는 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광식이 어머니가 가신 뒤에 나는 문득 공연장에 거저 들어가려고 입구에서 서성이곤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다리는 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 같은 애에게 표를 주어버리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그런 행운, 남의 불행을 틈탄 그런 행운을 잡기 위하여 나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시각에, 안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에 귀를 모은 채 서성이곤 했다. 아주 초라하면서도 순진한 모습이 되려고 한껏 애를 쓰면서. 그런 내 모습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광식이 어머니나 아버지의 표를 가지고 그 거목들에 둘러싸인 집에 저녁마다 입장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광식이 어머니가 가시고 혼자 남은 방에서, 나는 광식이 몫의 표를 들고 걔네 집에 입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이라도 약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다. 아니 더욱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나의 책임이고, 어찌해야 제대로 반성을 하는 게 될까?
10월 13일
살인자가 되고 싶어 살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살을 하기 위해 살아온 자살자가 없듯이. 나 역시 처벌을 받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불행한 결과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나는 자꾸 따지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한자리에서 맴돌며. 가난뱅이인 사람, 시험에 떨어진 사람,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 사람, 키가 작거나 얼굴이 못생긴 사람…… 그들 모두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원치 않았더라도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 또는 여럿의, 자기 힘으로 어째볼 수 없거나 있는, 불행을 가져온 그 어떤 원인이.
나는 지금 불행하다.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벌을 받은 까닭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다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순모 아버지의 말씀대로라면 “아직 어려서 보호받아야 하니까”이고, 취조 형사의 말로는 “질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불행은 키가 작거나 얼굴이 못생긴 경우처럼 그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들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있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는데도(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어라고 했기에 경찰이 거기까지 왔었는지를 여태 모르고 있다), 아직까지 내가 ‘보호’라든가 ‘질서’ 같은 말의 뜻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 읽은 「바비도」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일부러 죽음을 선택했다. 살 수 있었는데도 화형(火刑)이라는 벌을 택했다. 자기의 양심을 지키겠다는 뚜렷한 이유에서. 그래서 그의 행동은 힘이 있었고 그의 불행은 아름답고 장엄하였다. 그 사람한테 벌은 벌이 아니고 불행도 이미 불행이 아니다. 그 집에 사는 노인은 어떤가? 그분 역시 자기의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사는 것 같았다. 아름답고 장엄하다고는 못 해도 또 그분에게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그런 과거가 있다는 걸 몰랐던 때에는, 내가 보기에 그분은 불행하지 않았고 무슨 벌 따위를 받으며 사는 이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입만 열면 어떤 일과 사람에 대해 차갑게 비난을 해대며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분은 일부러 불행을 선택한 걸까, 어쩌다 불행해진 걸까? 아니 그분이 정말 불행을 느끼며 살지 않는다면, 나름대로의 행복을 선택한 셈일까?
도대체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는 게 오리무중이다. 일부러 선택을 했느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원인이라는 것도 그렇다. 키가 작거나 얼굴이 못생긴 결과를 놓고 부모가 그래서 그런게 아니고 하느님의 섭리 때문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따지면 따질수록 자신이 낯설고 세상이 낯설어진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반성이라면, 반성은 사람의 생각을 분열시키고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드는 듯하다.
10월 14일
판단이 자꾸 빗나간다.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된다. 정말 반성할 일이다.
오늘 누나하고의 다툼도 그렇다. 나는 누나가 요새 나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뒤로, 전과는 달리 아주 부드럽게 나왔으니까. 하지만 나는 틀렸다. 사실을 알았으면 그만일 텐데 싸움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누나는 항상 열한 시경이면 내 방을 순찰하곤 한다. 하루쯤 빼먹지도 않고. 가게 문을 닫는 게 그때여서 시간은 전이나 다름없었지만, 정학을 당한 뒤로 누나는 좀 변한 것 같았다. 소설책 나부랭이는 그만 좀 읽어라, 대학엔 어떻게 들어가려고 밤낮 그렇게 뭘 끼적거리기만 하냐,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공부가 되느냐 등등의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슬슬 눈치까지 보았다. 아까만 해도 그랬다. 누나는 가만가만 계단을 올라와 조심스레 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먹을 게 가득한 쟁반을 먼저 들여놓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으려고 애쓰는 이상한 음성으로 오늘은 뭘 하고 지냈느냐고 물었다. 나는 누나를 안심시켜주려고 집에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나는 무슨 공부를 했느냐, 공부가 잘 되더냐,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더냐 등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적당히 대꾸를 했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누나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누나는 한참 쏘아보더니 말했다. 너는 거짓말이 아주 몸에 밴 모양이로구나. 도서관에 다닌다면서 나 몰래 엉뚱한 짓을 하다가 된통 혼이 나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정신을 못 차리니 사람 되기는 그른 것 같다. 누나는 어느새 때꾼때꾼한 본래 자기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이란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오후에 광식이가 와서 둘이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나가 두어 시간 쏘다녔는데 그걸 말하지 않은 것이다. 누나는 쏘아댔다.
“너희들끼리 다시는 절대로 몰려다니지 말라고 한 선생님의 말씀을 벌써 잊었니? 게다가 광식이 걔는 머리를 박박 깎았더라며? 너도 곧 깎겠구나? 이왕 반항을 하겠으면 아예 학교를 그만두지 그러니?”
누나가 쓸데없는 걱정을 할까 봐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거짓말 운운하며 심한 말을 하는 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감시꾼들을 많이도 두었군, 옆집에도 누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지? 아니, 머리도 마음대로 못 깎나? 머리를 깎으면 꼭 반항하는 거고? 반성하는 뜻에서 깎았다면 어쩔 거야? 다른 사람을 무조건 그렇게 보지 말라구. 광식이는 마귀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야.”
“너 말솜씨 좋은 건 이번 참에 아주 잘 알았으니까 얘기를 딴 데로 돌리지 마. 내 말은, 몰려다니지 말라고 했으면 무조건 그걸 지키란 말야. 혐의 입을 짓은 아예 하지를 말라 이거야. 나나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구는지, 정말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니니? 그런데 너, 쓰라는 반성문은 꼬박꼬박 쓰고 있겠지?”
“몰려다닌다고 그러는데, 우린 몰려다닌 적 없어. 그냥 함께 다녔을 뿐이지. 세상을 모른다는 말도 우스워. 세상이 그렇게 무서워? 무섭기만 한 게 세상이면, 구태여 알려고 애쓸 필요가 어디 있담.”
“너 혼자 사는 세상이니까 맘대로 해라. 이상해지든 괴상해지든 상관하지 말고. 원 세상에 애가 띠앗머리*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이상한 게 뭐 어때서? 알고 보면 사람은 다 얼마간 이상한 거 아냐?”
누나가 나를 두려워했던 적은 없다. 누나는 단지 순찰과 감시의 방법을 조금 바꿨던 것뿐이다. 나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척하는 방식으로. 그건 아마도 내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를까 봐 그랬을 거다. 그러니까 누나는 내가 아니라 내가 지은 죄와 지을지도 모르는 죄들을 두려워하고 염려한 셈이다(하지만 누나가 오로지 죄 때문에 전전긍긍한다고, 죄가 두려워 아예 그에 조종당하다시피 행동한다고 말하는 건 좀 지나친 것 같다. 그러면 누나는 자기가 두려워하는 그 막강한 죄로부터 나를 지키려다가 실패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마니까). 어쨌든 어제오늘에 시작된 게 아닌 누나의 순찰에는 죄의 손 같은 게 한 가닥 연결되어 있다. 누나의 눈에는 부모 없이 키운 동생에 대한 사랑만 보일 것이다. 허나 내 눈에는 그 그림자, 거기에 비끄러매인 죄의 끈이 보인다.
무죄의 땅은 유죄의 땅 옆에 붙어 있는 모양이다. 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땅에 서 있게 되기도 하고, 가만히 있는데도 그 경계선이 제멋대로 자기를 타고 넘어 움직여버릴 수도 있다. 저 땅의 물로 이 땅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이 땅의 돈으로 저 땅의 열매를 사기도 한다. 그러므로 두 땅의 경계선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과연 그럴까? 이게 바로 이상한 사람이 돼가는 증상은 아닐까?
오늘은 누나의 두려움만 더욱 키워주는 행동을 했다. 자꾸 반성거리를 늘려가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반성하는 게 못 되고,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닌 성싶어 불안하다. 불안하다는 말이라도 이렇게 여기 적어놓아야 마음이 좀 가라앉을 것 같다.
10월 15일
이틀만 더 있었으면, 우리가 여러 날 준비하며 기다린 밤이 왔을 것이다. 그 밤은 보통 밤과는 아주 다른,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지새우는 밤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벌이고 싶었던 것은 ‘축제’였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그 말을 낯설어하였다. 그래서 낙착을 본 말이 ‘놀이판’이었다. 축제든 놀이판이든 ‘놀자판’이든 간에 계획을 세우고 준비만 했지 실제로 벌이지는 못했으니까 그 말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말이 더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말이야 어떻든지, 우리들이 의견을 모아 계획한 그것, 아니 적어도 내가 꿈꾼 그것이 무엇이었나를 지금이라도 낱낱이 살펴야겠다. 왜냐하면 그게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소홀히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건 나나 다른 애들 잘못이 아닌 듯하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기에도 바빴으니까.)
그날 밤, 예정대로 우리는 그 집에서 한숨도 자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이 제법 조용해지는 열 시가 되면, 먼저 각자 편한 자세로 앉아 한 시간쯤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는 동안은 물론이고 날이 밝을 때까지 모두가 정해진 시간을 빼놓고는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미리 짝 지어진 사람과 둘씩 어두운 뜰로 나가서 두 시간쯤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상대방에 대해, 혹은 상대방과 함께하려고 생각해두었던 얘기를 무엇 이든 솔직하게 주고받는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노인의 말씀을 듣는다. (학교
와 경찰서에서 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듯이, 그 순서는 노인이 요구해서 들어간 게 아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좋아하는 데다 우리 때문에 어차피 그날 밤은 주무시기가 어려울 터이기에, 아니 무엇보다도 수염이 마구 자란 그분의 얼굴과 번쩍이는 눈빛, 그리고 거리낌 없는 독설이 그 밤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성싶어 우리가 졸라서 넣은 순서다.)
이미 다 말하고 또 써서 냈듯이, 우리가 처음부터 여섯 명이었던 건 아니다. 내가 그런 짐이 있다는 결 처음 말한 것은 광식이와 성규한테다(정말 맨 먼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윤수였지만 끝까지 일부러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저번 왜냐 선생님 사건 때 항의한 일로 특히 담임선생님 눈 밖에 났으니까 무언가 불안해서 보호한다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거 하나만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놀이판 얘기는 우리 셋이 그 집에 자주 모인 지 두 주일쯤 지나서 나왔다. 내가 그것을 처음 제안했을 때는 명상의 시간이나 만남의 시간은 없었다. 중심은 음악과 춤이었다. 준태, 현석이, 순모 그 세 사람도 그걸 좋아했기 때문에 끼워 넣었다. 다른 순서는 나중에 덧붙은 일종의 준비 혹은 단련 과정이었다. 모두 하나가 되기 위한, 어쩌면 더욱 깨끗하고 경건해지기 위한.
노인의 연설이 끝난 뒤, 모두가 잠에 취한 그 시간에 우리는 드디어 딴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준태가 편집한 녹음테이프에서 연달아 흘러나오는 음악.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각자 내키는 대로 끊임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에 취한다. 날이 샐 때까지는 아무도 잠을 자거나 그 집에서 나갈 수 없다. 땀이 나고 배가 고파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열정 소나타」 「해 뜨는 집」 「세노야」 「봄비」 「월광」 재즈, 헤비메탈…… 곡들을 모아다 고르고, 조명 기구들을 설치하고, 소리와 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종이나 천으로 봉하던 시간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고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저금통을 털던 그 당시에 우리들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현석이는 야구나 태권도 같은 것에 빠지거나 여자애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애들을 비웃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음악과 춤은 제일 오래된 예술이야. 저번에 음악회 표를 주시려고 음악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을 때 들은 얘긴데, 원시인들은 춤과 음악으로 영혼을 불러냈다는 거야…… 그러나, 경찰서와 학교에서 거듭거듭 아주 작은 것까지 남김없이 말하고 적던 그때, 그 계획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초라
했던가. 축제라니, 그건 먹고 마시는 거 아니냐고 비웃었을 때, 수치심에 떨며 마음껏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나는 얼마나 실망했던가.
반성 (反省) :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돌이켜 살핌.
10월 16일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서인지 자꾸 현기증이 났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걸었는데 한참 가다 보니 의식적으로 그 집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 집에서 멀어지는 걸 목표로 걸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단 그랬다는 생각이 들자 그 집과 기기 사는 노인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를 가니 허름한 공장 건물들 너머에 강이 보이고 거기로 흘러드는 널따란 개천이 앞을 가로막았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나는 쓰레기가 널려 있는 둑을 따라 걷다가 물가로 내려갔다. 그 집과 노인은 계속 따라왔다. 나는 거품이 둥둥 떠 있는 검붉은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위로 갈수록 물은 더 더러웠고 악취도 심했다.
구부러지는 곳에서 갑자기 개천이 네모진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커다란 하수구였다. 나는 더 앞으로 갈 수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컴컴한 굴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거기에는 노인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몽땅 사기꾼들이야. 하도 거짓말을 하다 보니 인제는 진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게 된 허깨비들이라구. 말이야 번드르르하지. 하지만 속셈은 딴 데 있다구. 쿨룩쿨룩. 너희들, 너희들은 아직 모른다. 행세깨나 한다는 녀석들의 똥구멍이 얼마나 구린지 모를 거야. 허나 나처럼 오래 살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돼. 그러니까 알려고 애쓰지 말고 더군다나 닮으려고는 아예 하지 마라. 아니 너희들이 그러려고 한다는 게 아니라, 녀석들한테 속거나 겁을 먹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버리기 땜에 하는 소리다. 심약한 자들은 항용* 녀석들이 가진 무기 앞에서 벌벌 떨다가는 갑자기 미친 듯이 자기도 그걸 가지려고 들거든, 나도 다 겪어봐서 하는 소리다. 쿨룩쿨룩. 세상에는 말이야, 어떤 자들이 제일 많은지 아느냐? 바로 그 사기꾼 녀석들의 무기를 그게 흉기인 줄도 모르고 제 것인 양 휘두르는 멍텅구리들이지. 그게 바로 닮는 건데, 한번 닮아버리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어. 너희들도 그러기 쉬우니까 조심해라. 뭐라더라, 그래, 그게 몽유병 같은 거니까 말야……
그 커다란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 것만 같아 다리에 힘을 주면서,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고 바닥에 쓰러졌을 때, 요란하게 무엇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거나 받아라, 이 새대가리들아! 여기가 어딘데 너희들 마음대로 들어와 애들을 못살게 구는 거야? 경찰이라구? 여긴 경찰하고 사돈 맺은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걔들을 도둑놈 취급하지 말고 어서 냉큼 꺼져버려!
10월 17일
내가 죄인이 된 것은, 교무실을 나와 교문으로 향하던 길 거기서였다. 무기정학을 알리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말을 들은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애들이 팔을 늘어뜨린 채 책가방을 챙기러 교실로 갈 때 나만은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교문이 바라보이는 하아얀 시멘트길, 수업 중이라 텅 빈 그 길에서 나는 죄인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무슨 졸가리* 진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무어랄까, 실이 툭 끊어진 연, 혹은 길바닥에 구르는 휴지 조각이나 철사 도막이 돼버린 느낌, 감당키 어려운 허전함, 어쩌면 그냥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릴 듯한 무력감 따위들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교문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그 모두는 갑자기 격렬한 미움이 되고 수치심이 되고 눈물이 되었다. 그것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아니 전혀 상상도 못 해본 그런 상태였다.
나는 『죄와 벌』을 읽었지만, 그 소설의 주인공이 죄를 느꼈을 적의 심정과 그때의 내 심정이 비슷한지 어쩐지 잘 가늠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학생주임 선생님은 말했다. 너희는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벌은 죄의 대가이다. 그러니까 잘못은 곧 죄이다. 나는 죄 때문에 그런 것이다. 죄 때문에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실을 나서야 했고, 그 텅 빈 길에서 실신하여 주저앉아 버릴 뻔한 것이다.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나 화단 가득 숨 막히게 붉은 꽃들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서 바로 나 하나만이 죄 때문에.
학생주임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지금 곧 돌아가 집에서 공부하며 반성해라. 지도실에 나와 있게 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일기장용 공책을 한 권씩 마련해서 오늘부터 거기에 일기를 쓰듯 반성문을 써라. 명심해라. 하루에 공책 한 쪽 이상을 반드시 반성하는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그때 광식이가 말했다. 오해는 다 풀렸습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토록 꾸지람을 듣고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니?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짓을 해서 불필요한 소란을 일으킨 잘못이 있다고 결정이 났다. 내가 금세 반성을 하라고 했는데, 첫마디가 겨우 그거냐? 도대체 반성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너희들은 이참에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나는 그날 그 교정길에서부터 죄인이 되었다. 그 이전의 내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죄인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죄는 예전부터,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있었고, 그 대가를 치르는 법과 용서받는 법까지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니 우리들은 미처 그걸 알지 못했었다. 어느 시간에, 우리들이 그 집으로 발을 옮기던 어름의 어느 순간인가에, 그 죄와 법은 철컥, 차꼬*처럼 우리의 발목에 채워졌다.
우리한테 잘못이 없다는 항의에 대해 학생주임 선생님 (어쩌면 그분이 이 반성문을 읽으실지도 모르겠다)께서는 이렇게 대답한 셈이다. 항의를 하는 행동 자체가 반성할 줄 모른다는 증거다. 그 항의 행동까지가 반성의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면, 그분이 바라는 반성이란 입을 꽉 봉하고 오로지 뉘우치기만 하는 것이다. 여러 선생님께, 그분들 모두가 참석한 회의의 결정에, 그 결정을 떠받치는 학칙 몇 조에, 경찰서에서 온 공문에, 학생의 도리와 분수라는 것에, 집회신고 규정에…… 오직 따르고 복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는, 그것들에 따르지 않을 때 짓는 것이다. 그런 게 죄라고? 이렇게 나를 옥죄고 있는 죄가 바로 불복종의 결과란 말인가?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저 누나한테 도서관 간다고 거짓말하면서 축제를 준비했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죄 될 일이고 그 경계선은 어디며, 누가 그것을 결정했나? 그건 반성 안 하나? 내 발목에 죄의 차꼬를 채우는 행동 자체는, 누가 언제 반성하지? 그건 반성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태풍이나 지진 같은 건가? 무슨 죄이든 찾아낸 다음, 그저 잘못했으니 노여움 푸십시오 하고 가라앉기를 빌
수밖에 없는 태풍이나 지진 같은 것인가?
내가 해야 한다는 반성이 단지 복종일 뿐이라면, 그것처럼 쉬운 게 없다. 아니 그것처럼 어려운 게 없다. 날마다 같은 말을 공책 한 바닥씩 되풀이해야 하니까.
10월 18일
……등교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임을 양지하시고 반성문 작성에 협조하시어,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일벌백계 차원의 처벌 대상이 되지 않도록……
양지 하시고, 협조하시어, 되지 않도록.
반성문 법(法). 생활기록부 또는 생활감시부. 너는 이렇게, 아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법(法).
당신, 나를 째려보는 당신.
10월 22일
나는 반성한다. 사라져버렸던 성규가 며칠 전에 나타났다. 광식이와 준태를 불러내어 함께 몰려다녔다. 그동안 성규가 지낸 곳은 어느 변두리 술집의 주방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거기서 일하며 지냈다고 했다. 걔가 술을 내놓아서 같이 마시며 그야말로 놀자판을 벌였다. 나도 제법 취했는데,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가 축제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려 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리는 그 집에서 그러지도 않았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나는 또 반성한다. 어제 그 집에 갔었다. 어느새 누렇게 죽어가는 풀 위로 낙엽 이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잎이 떨어져 늙은 가지가 드러난 고목들이 을씨년스러웠다. 대낮이라 그런지, 그 집은 너무 낡고 구저분해 보였다. 우리가 창에 쳐놓았던 천의 무늬가 참혹하도록 얼룩덜룩했다. 노인은 만나지 못했다. 기거하던 이 층 구석방에 가보니 냄비 속의 먹다 남은 밥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 가지 말라고 한 걸 어겨서가 아니라, 가지 않았으면 남아 있을 그 무언가를 갔기 때문에 잃어버린 성싶기 때문이다.
광식이에 관해서는 별로 반성할 게 없다. 걔 어머니의 부탁도 있고 해서, 나는 달래기도 하고 설득도 해보았다. 하지만 광식 이는 형제들 뿐 아니라 부모님까지도 남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이 다 있어 좋겠다는 내 말에, 저는 오히려 자유로운 네가 부럽다고 했다.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면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게 좋다는 성규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에 그건 자살 같은 거라고 했더니, 정학을 당하더니 아주 겁보가 돼버렸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고자질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지만, 오히려 걔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므로 적어둔다.)
오늘 어떤 선생님 (성함은 밝히지 않는다)께서 찾아오셨다. 그분은 우리 민요가 실린 테이프를 선물로 주시면서 안색이 좋지 않은데 이런 기회에 음악회랑 전람회나 실컷 다니지 무얼 하고 지냈느냐며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나도 따라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 중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우리의 처벌은 교무회의에서 결정 된 게 아니었다. 왜냐 선생님께서 노동조합 때문에 쫓겨 나간 사건 이후로 교무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10월 24일
결과도 중요하지만, 동기나 과정도 중요하다.
모든 잘못이 다 죄는 아니다.
우리는 허가받아야 할 일을 한 적 이 없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일보다 없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 글이 반성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고 당신이다.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이 글을 읽어 ‘당신’이 될 사람이 정말 있기는 있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쓰지 않겠다. 다른 애들은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쓰고 있는 한 당신한테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당신이 요구한다면 나는 제출할 것이다. 지금까지 쓴 이것을.
『문학과 사희』 20호(1992년 겨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1996)
최시한(崔時漢)
1952년 충남 보령 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 1 호에 「낙타의 겨울」 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세계와 인간 존재의 의미 불투명성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90년대 이후 십 대 후반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예민한 사고와 방황,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성찰 등을 담은 성장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집 『낙타의 겨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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