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말하여라.”(10,9)
루카 복음사가의 축일을 축하하면서, 오늘 복음은 연중 26주간 목요일 복음과 같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소’로 표상하는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4,11)라고 언급한 것처럼 사도 바오로와 함께 2, 3차 전도 여행을 동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교회 초기부터 바오로가 로마에 체류하기까지의 복음 선포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분입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협조자(필레1,24)이자 의사(콜4,14)였습니다. 그리고 루카는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루카는 자신이 복음서를 집필한 동기를 복음서 서문에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사1,1~2) 복음사가 루카는 예수님의 직접 목격자가 아니었으며 다만 목격자들의 증언과 수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복음을 쓴 것이며, 이를 통해 단지 테오필로스 한 개인만이 아니라 새롭게 입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공적 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승천’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의 특징은 기도에 가장 좋은 길잡이이며, 선교사들의 지침서이고, 많은 병자의 병의 치유를 기록한 의료참고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과 달리 제 개인적으로 루카 복음이 전해주는 첫 울림은 지난 세월 동안 수도원에서 살면서 매일 아침 ‘즈가리야 노래’로 시작하여, 저녁 ‘마리아의 노래’로 끝맺는 일상의 반복 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하느님 자비의 역사하심’의 정선율定旋律입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구원 개입이 바로 이 노래의 조연이신 세례자 요한과 그 부모 그리고 주연이신 예수님과 성모님을 통해 아빠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반복해서 울려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 첫 운율의 시작은 말구유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예수님께서(2,1~20) 30년 동안 나자렛에서 은둔과 순종의 삶을 사셨고(2,41~52), 때가 되어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무엇을 실현하시길 원하시는지를 기도 가운데서 확인(4,1~14)하신 다음,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공생활 출사표(4,16~30)를 던지심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전해줍니다. 이렇듯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와 공생활 이전의 삶을 전해줌으로써 우리에게 인간 예수를 만나게 해 줍니다. 공생활의 주된 활동은 바로 나자렛 회당에서 언급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의사였던 자신의 특징을 살려 루카는 상처받은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질병으로 〔4,38의 열병을 앓은 베드로 장모; 5,12의 나병환자; 5,17의 중풍병자; 6,6 오그라든 사람; 7,3의 백인대장의 종; 8,40 야이로의 딸과 하혈병을 앓는 여자; 12,10 등 굽은 여자; 14,1 수종병; 17,11 나병환자 열 사람; 19,35 눈먼 이〕, 고통받고 살았던 이들의 치유를 통해서 그들의 육신적 고통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면서 그들과 연대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들(4,31; 9,30; 11,14:)을 더러운 영의 지배와 억압해서 해방시키시는 예수님을 보여 주십니다. 루카 복음의 예수님은 바로 상처받은 치유자이십니다.
또한 가난하게 태어나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나 특히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심으로 그들의 슬피 우는 얼굴을 닦아 주시고, 그들 곁에 머무르시며, 그들과 기꺼이 함께 즐겨 먹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먹보, 놀보라고 놀리면서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15,2)하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만큼 주님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아빠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 보이신 분으로 루카 사가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하고 가르치시고 자비를 실천하신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다양하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5,27 세리 레위 집에서 식사하심; 7,36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심; 14,12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 19,1 자캐오〕 이렇게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이 친구이며 죄인들의 벗으로 한 마디로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아울러 “늘 하시던 대로”(22,39) 하루를 마치신 다음 언제나 아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루카는 다른 어떤 복음보다 상세하게 소개하심으로 우리 역시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는 기도의 교과서와 같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11,12)라는 제자의 요구에 당신 기도의 삶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아빠 하느님께 기도하도록 본을 보여 주신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4,1.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심; 4,42 외딴 곳으로; 9,28 기도 중 변모하심; 11,1~13 주님의 기도, 끊임없이 기도하라; 22,39 겟세마니에서 기도; 23,46 아버지께 마지막 기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정의와 율법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로 인해 거부와 배척과 박해를 받으신 모든 예언자의 참된 표본이신 분이십니다. 루카는 특히 세례자 요한(3,1~20;7,18~30;9,7~9)에 관한 자료를 전해주며 예수님의 전형이자 예표로 요한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런 예수님의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되도록 독려하십니다. 〔5,33 단식논쟁; 6,1 안식일에 밀 이삭을 먹음; 6,6 안식일에 병자 치유; 11, 37~54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중; 14,1 수종병 환자를 안식일에 고침〕
루카 복음의 백미는 인생의 먼 길,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자기 마음의 자리로 돌아감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 돌아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서 새로운 길을 걷도록 용기와 희망을 불러 주는 인생의 길잡이라고 느낍니다. 특히 루카 복음 15,11~32절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저 자신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가장 아름답고 거룩함을 불러일으키는 이정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지난 안식년 동안 가장 가고 싶었던 곳 바로 러시아 생피터스부르그의 에르미타주 궁전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 앞에 한순간이나마 머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고 살면서 반복해서 다가오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는 10, 29~37절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인생 수업의 마지막 숙제인 듯싶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명쾌한 해답이지만, 우리에게 조금은 벅찬 해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선과 삶의 방향은 단 한 곳, 이웃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아빠 하느님을 바라보라고 인도합니다.
오늘 루카 복음사가의 축일을 맞아 다시금 루카 복음의 주요 메시지를 제 혼자 회상하면서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친밀하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복음사가들 덕분임을 강하게 느끼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 보렵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