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요한복음 21장 13-16절.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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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퇴 후에 한동안 강원도 예수원에 가서 지냈습니다. 거기서 오전에는 목공실에서 목에 거는 십자가를 제작하는 일을 거들었지만, 한 주간에 며칠은 오후에, 예수원을 방문한 손님들 몇 분과 더불어 ‘함께 나누는 QT’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본문 하나를 읽고, 함께 본문을 묵상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진행하는 방법은 “이 본문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서로 자기가 본문을 통해서 받는 가르침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출석자가 열 분 정도 됐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요한복음 21장)을 읽자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절씩 읽자고 하고선, 제 곁에 앉은 남자분에게 15절을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기다려도 그분이 읽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얼굴을 얼핏 보니까 울고 계셨습니다.
긴 호흡을 하고서 “그들이 …” 했지마는 더 읽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후에는 소리내어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진행을 위해서, 다른 분들이 대신 읽어 드리고, 성경봉독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QT를 하자고 할 때에, 다시 그분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냉수를 떠다 드리고 간신히 울음을 멈추게 하고 나서, 다시 진행을 시도했을 때, 그분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들려준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느 무슬림 국가에 선교사로 가서 14년을 사역하다 오신 분이었습니다. ‘안식’을 위해 돌아왔지만, 다시 돌아갈 의욕이 나지 않아서,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께 여쭈러 예수원에 왔다고 했습니다.
선교사 일을 아예 접고 싶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성과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정말 그토록 결실이 없는 ‘농사’(선교)를 거듭하고 있는 일만큼, 힘든 것은 더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역지를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10여 년을 허송한 마당에, 다른 선교지라고 무슨 방도가 있겠나 싶어서, 그럴 의욕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그 날) 이 본문을 펼치고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본문을 다시 읽자고 하기에, 들여다보니, 주님께서 생생하게 자신에게 묻고 계신 음성이어서, 차마 읽지를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문제의 정점에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지’ 를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걸려 있다면서, 더 도망칠 방도가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이 대답을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모든 참가자들은 함께 울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출발의 장소에 함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믿음의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기도> 주 예수님, 저희에게 때때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를 주시며, 예수님 사랑에 토대하여, 저희를 사명지로 재파송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희의 사명이 오래오래 즐겁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