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물소리였다. 졸졸 흐르는 소리. 그러나 실내였다. 고요했다. 조금 전 형을 따라온 너 댓 살 아이가 칭얼거린 이후로 에어컨이 바람을 내뿜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대체 이 물소리는 뭐지?
고개를 들어 살폈다. 나는 서가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들어오는 입구 옆에 사서 근무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들어오면서 보았을 테지만, 기억에 없다.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탐색하느라 흘려 버렸던 것이다. 이곳은 처음 온 곳, 우장산 숲속 도서관이다. 근처 도서관 탐방 중이다. 이번 여름, 작은 도서관 네 곳, 구립 도서관 네 곳을 가보았다.
여기에 온 것은 『대 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책 때문이다. 여러 도서관에 있지만 예약 중이거나 거리가 멀었다. 비교적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온 것이다. 『대 온실 수리 보고서』는 신수정의 『축적과 발산』이라는 책에 나온다. 그는 단 한 줄로 가볍게 언급했지만, 그건 그의 관점이다. 그가 다루는 것은 경영 비법 혹은 성공 비법이다. 당연히 그의 책에는 많은 이가 열광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책, 『대 온실 수리 보고서』는 한두 줄로 넘어갈 책이 아니었다.
나는 인간을 본다. 책에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고 그 인물들의 생생함을 감지하며 그 안에 있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본다. 시대와 환경, 조건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소설은 그런 것들을 그려내는 유일한 장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특히 약자를 들여다보므로. 역사는 늘 강자의 눈으로 쓰였다. 성공 비법 또한 강자의 시각으로 쓰였다.
줄거리는 복잡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석모도 출신으로 서울의 창경궁 가까운 낙원 하숙이라는 곳에서 한 시절을 보낸 주인공, 영두가 하숙집 주인인 한국인이자 일본인인 할머니의 과거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두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창경궁 대온실 수리라는 주인공 자신의 작업과 교차하는 것이다. 그러니 왜 할머니에 관해 그토록 길게 묘사했는지는 후에야 알게 된다. 일종의 추리소설이라고 할까.
첫 부분부터 저자가 엄청나게 공부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이 소설가야말로 축적과 발산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한 것을 소설에 사용한다. 제도, 소목, 창경궁, 대온실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정황, 6.25, 원서동의 풍경, 석모도의 모습, 그리고 석모도 사투리.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모두가 알지는 않은 일들이 책 속에 들어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지나간 모습을 알게 되는 일, 인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되는 일. 한강의 소설들이 우리 일상에 있는 일들의 비극적 과거를 파헤쳐 내려가고 있다면 이 소설 역시 그러했다. 다행히 착한 사람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말이 난다.
한창 몰두하던 중이었다. 필력이 만만찮았다. 모르는 내용, 전문적인 내용을 묘사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전문 영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문용어를 사용해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은 바로 그런 점이 매력이 아닐까. 인간을 말하므로.
빨간 초파리 한 마리가 얼쩡거렸다. 노트북 가장자리에 와서 앉았다가 걷다가 내가 바라보면 날아갔다. 초파리는 어디든 간다. 몇 번이고 잡으려다가 실패했다. 그러다가 물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 그 소리들은 곤두선 신경을 이완하게 한다. 인공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는 누구나 안다. 심지어는 찌개 끓는 소리도 그러하다. 빨래 소리, 다듬이 소리도 그러하다. 이른바 ASMR,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소리들이다. 그 효과를 노리고 실내에 물소리를 들인 것일까.
일어섰다. 내 얼굴보다 훨씬 큰 야자나무 잎사귀 세 장이 천장에 닿아 있었다. 감탄스러웠다. 실내에 저 정도로 큰 야자나무 잎사귀라니. 가까이 가보았다. 작은 동산, 그러했다. 나무들과 스킨 답서스가 가장 밑에서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 밑에 바로 물이 있었다. 물은 바위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는 작은 생태계였다. 도서관 이름에 주의가 미쳤다. 우장산 숲속 도서관,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은행나무실, 들어오는 고에 있던 공간은 소나무실, 그리고 느티나무실.
들어올 때는 의아했다. 아파트 단지 옆인데 왜 ‘숲속’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하고 의아해했던 것이다. 물론 옆에 우장산이 있었으므로, 이 도서관을 지을 때 숲속이었던 거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자치센터 건물 한 층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작은 도서관이라는 게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의구심도 품었다.
숲을 가져다 놓고자 했다면 옳았다. 물소리가 있었으므로. 그래서 더 집중이 가능했으므로. 들어올 때는 많이 비었던 좌석들이 찼다.
여섯 시가 넘었다. 일어섰다. 나는 인간을 본다. 소설은 결국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보는 것은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 또한 소리다. 물소리처럼.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오래된 연못
개구리가 뛰어든다
퐁당
바쇼
첫댓글 『대 온실 수리 보고서』, 소설의 제목치고는 참 어렵습니다.
서울엔 그래도 숲속도서관 같은 도서관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토목이야기인 줄 알았답니다. 책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의미를 내포한 모든 소리~~
바쇼의 시가 그냥 정겹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도서관은 언어가 있는 자리지요. 흘러가는 곳이기도하고요. 의미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지요~~
저도 책 속에 있는 책을 찾아 읽는 걸 자주 합니다만
솔직히 요즘 책을 읽은지가~~~
이 명 님이 올리신 글을 차근차근 읽으며
드문드문 공감하였네요.
바쇼의 하이쿠
명료하고 좋습니다.
넵. 바쇼는 모두들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며 이전의 나처럼 또 급해집니다
정독이 아니라 다독으로 나를 채우던 젊은 시절처럼.
지금은 흐릿한 눈이지만 무언가 뿌듯하던 그때처럼.
고맙습니다.
다독은 정독을 위한 방법입니다. 가치가 있으면 정독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