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3,4)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3,5)
창세기 3장 3절에서 여자는 선악과를 먹거나 만질 경우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해서, 창세기 3장 4절에서는 3절의 여자의 말을 받아 뱀이 완강히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4절이 계속적 '와우'(wau; and)로 문장이 시작되지만,
앞선 3절과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기에 계속적 '와우'를 '그러나'
(but) 혹은 새 성경처럼 '그러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창세기 3장 4절의 '말하였다'에 해당하는 '아마르'(amar)는 기본적으로는 '이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지시하다'(창세22,3), '명령하다'(민수15,38), '맹세하다'
(예레16,14)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본문에서 이런 뉘앙스를 살려 보다 강조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해석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 중에 '결코'는 상당히 힘이 실린 권위적인 어투의
말이기 때문이다.
당시 뱀은 '결코'에 해당하는 부정사 절대형 '모트'(moth; surely)와 미완료형
'테무툰'(themuthun; you shall die)을 사용해서 동사의 개념을 강조하신 하느님을
흉내내어 마치 자신이 신적 권위를 지닌 것처럼 위장하고, 여자에게 강하게
지시하였음을 보여준다(창세2,16).
이처럼 사탄은 하느님의 위치에 서서 자신도 마치 신적 권위를 지닌 것처럼 위장하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다.
창세기 3장 4절에 나오는 뱀의 말은 선악과를 먹을 경우 '반드시 죽을 것이다'
('모트 타무트'; moth thamuth)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2,17)에 단지 '로'
(lo; not)라는 부정어만 붙인 형태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로'(lo)는 '아인'(ain)이나 '알'(al)이 다소 부드러운 부정을
나타내는 것과 달리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사탄이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탄은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부정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는
속이는 영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한8,44).
이 시대에도 사탄은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로마6,23)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슬러 마치 죄악이 큰 기쁨을 순간적으로 가져오는 것처럼 속여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그곳에 죽은
자들만 있음을, 그 여자('우둔함'을 지칭)의 손님들이 저승 깊은 곳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잠언9,17-18).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5)
원문의 '키 뻬욤 아콜르켐'(ki beyom akollkem; when you eat of it; the
instant you eat it)은 직역하면 '너희가 먹는 바로 그때에'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욤'(yom)은 일반적으로 '날'(day)로 번역되지만, 특별한 시점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으며, 더군다나 바로 앞에 나오는 '키'(ki)가 시간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여 '바로 그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뱀은 간교하고 사악한 동기를 가지고 선악과의 신통한 효험이 먹자마자 바로
나타난다고 말함으로써 여자의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속이는 거짓의 영 사탄은 각각의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극적인
미끼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멸망에 빠트린다.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2코린11,3)
한편 히브리어에서 '눈'('아인'; 'ain')은 단순히 보는 기능만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눈을 인간의 '외모'(1사무16,7)는 물론 인간의 마음속 여러가지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로 이해할 뿐 아니라(신명15,7; 잠언6,17; 시편18,28; 아가4,9)
때로는 지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창세29,17).
따라서 여기서 '눈이 열리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잘 볼 수 있게 된다는 기본적인
의미와 더불어 외모가 출중해지며 지력이 하느님처럼 향상된다는 다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열려'에 해당하는 '웨니프케후'(wenipqehu)는 단순히 '밝다'
(이사42,20)는 의미 뿐만 아니라 '열다'(2열왕6,17.20), '뜨다'(욥기27,19)는 뜻도
가지고 있는 '파카흐'(paqah)의 단순 재귀 완료형이다. 이것은 어둡던 눈이 밝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장님처럼 못보던 눈이 열려 보게 되는 새로운 차원을 말한다
(시편146,8; 이사42,7).
특히 여기서 수동의 뜻이 강한 재귀형이 사용된 것은 이러한 일이 전적으로 선악과의
효험에 의해 나타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먹는
순간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단정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뱀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때와 먹고 난 후의 상태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여자를 집요하게 유혹하고 있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5)
'하느님처럼'에 해당하는 '켈로힘'(kellohim; like God)에서 하느님의
이름 '엘로힘'(ellohim) 앞에 붙어 있는 '케'(ke)는 '~처럼'(as; like)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이다(욥기32,19).
당시 뱀이 계약을 맺으시는 하느님을 강조하는 '주 하느님'이 아닌, 단지 하느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하느님'(엘로힘)이란 명칭만을 사용한 것은 여자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약을 망각하게 하고 하느님의 권능을 자신도 가질 수
있다는 허영심을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탄은 단어 하나까지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오직 인간을 파멸에 빠트리는데
전념한다.
이러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승리할 수 없으며, 오직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한다(에페6,13).
한편 여기서 '선'(善)에 해당하는 '토브'(tob; good)는 단순히 착함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온갖 종류의 긍정적인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악'(惡)에 해당하는 '라'(ra; evil) 역시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yada)는 단순히 머리로 깨닫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속속들이 아는 것까지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는 이 단어가 남녀가 동침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며(창세4,1; 1열왕1,4) '익숙하다'(창세25,27; 1열왕9,27)라는
뜻으로도 번역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선과 악을 구별하는 정도의 지력만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선의 속성과 악의 속성을 깊이 알며, 또한 선과 악에 익숙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었을 때 이처럼 선과 악을 철저히 알게 될 것이라는 뱀의 장담은
완전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남자와 여자는 물론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선에는
오히려 무지하고 선을 행할 능력마저 퇴보된 반면에, 오히려 악을 알고 악을 행하는
능력만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고(창세3,7), 인류의 모든 비극은
이처럼 '알게 될 것'('yada')이라는 사탄의 달콤한 거짓 유혹에 넘어감으로써
발생하게 된 것이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아시고'에서도 '아시다'는 것은 앞의 '야다'(yada)동사와
같아서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 사탄은 여기서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분사형을
사용해서 하느님께서 이전부터 알고 계셨으며 현재로 알고 있다고 여자를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사탄은 마치 인간에게 큰 유익이나 줄 것처럼 웃으면서 다가오고, 어떤 일의
배후에 마치 큰 흑막이 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긴다.
그러나 사탄의 마음에는 온갖 부정이 가득하고 그 혀에는 간교함과 사악함이 가득하여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을 멸망에 이르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