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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아5部
운양집 제1권 / 시(詩) / 김윤식(金允植)
○격경집(擊磬集)
갑인년(1854, 철종5)에서 갑자년(1864, 고종1)까지 귀천(歸川) 천운루(天雲樓)에서 지었다.
돌아가는 제비 5수 〔歸鷰 五首〕
갓 태어난 새끼 키워 날개 깃 다 자라더니 / 養得新雛羽翼成
지지배배 가르쳐 그 소리 더욱 또렷해졌네 / 呢喃敎語更分明
그간 온갖 고생도 많기도 하더니 / 中間也有千般苦
품고 먹이던 그때 심정 모두 토로하네 / 道盡當時乳哺情
아름답게 조각한 들보 비취빛 늘인 휘장 / 文杏雕樑翡翠幃
봄날이면 날아와 옥인이 의지하네 / 三春來向玉人依
집주인에게 장강의 한 있지 않는데 / 主家不是莊姜恨
어이하여 석양에 아주 돌아가려 하는가 / 底意斜陽欲大歸
천만 마디 재잘대며 꽃 좋은 시절 다 보내니 / 千言萬語送芳菲
늙은이도 해오라기 따라 욕심 모두 잊었네 / 老大都隨鷺忘機
서릿발 속에 발 드리우고 수심 젖어 앉았으니 / 霜重簾帷悄悄坐
바람 처량한데 날갯짓하며 나직이 날고 있네 / 風凄毛羽低低飛
올 때는 외롭게 한 쌍이 오더니 / 來時孑孑但雙隨
돌아가는 길엔 가득 새끼가 넷이라네 / 歸路盈盈有四兒
다들 어르신네 집안이 대단하다 말하네 / 共說阿家門戶大
검은 관에 검은 띠로 위의를 갖췄으니 / 烏冠皁帶儼成儀
꽃 차고 물 스치던 일 마치 전생 일인듯 / 蹴花掠水似前生
뜰 오동잎 지는 소리에 꿈이 깨었네 / 一葉庭梧夢已驚
귀뚜라미는 내 심정 아는지 모르는지 / 蟋蟀不知儂意緖
밤새도록 시끄럽게 침상에 들어와 우네 / 終宵聒耳入牀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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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권 / 시(詩)○격경집(擊磬集)
귀천기속시 20수 〔歸川紀俗詩 二十首〕
두릉(斗陵)의 정소운(丁小耘)이 〈두릉기속(斗陵紀俗)〉 절구 20수를 지었는데, 매 편마다 《시경》과 《초사》에 넣을 만했다. 나에게 보여주며 화답을 구하기에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의 처소는 한 줄기 물로 떨어져 있을 뿐이라네. 두곡(杜曲) - 두릉을 두곡(杜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과 위곡(韋曲)은 풍토(風土)가 다르지 않고, 초계(苕溪) - 귀천(歸川)을 우천(牛川)이라고 섞어서 부르고, 소천(蘇川)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계(蘇溪)는 혹은 초계(苕溪)라고 바꾸어 부른다. - 와 삽계(霅溪)는 사람들의 풍상이 같을 것이네. 강가 삶의 빼어난 구경거리를 그대의 아름다운 시에서 다 표현했으니, 나는 농사짓고 양잠하는 일이나 대추와 밤 같은 농작물에 대해서 보완해보겠네.”
숲 저 멀리서 노래하고 달은 가득 찼는데 / 林外行歌月正圓
줄다리기 마치고 나니 들불이 이어지네 / 拔河戲罷野燒延
대보름 밤 줄다리기는 당나라 풍속 발하희(拔河戲)이다. 들불은 곧 옛날 당나라 때의 산등(山燈)이다.
늙은 농부는 총명주에 취해 드러눕고 / 老農醉臥聰明酒
웃으며 산봉우리 가리키고 풍년 든다 말하네 / 笑指峯頭說有年
마을 풍속에 대보름 밤의 음주를 총명주(聰明酒)라고 부른다. 노인의 귀가 다시 밝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대보름 밤 달이 상중하 세 봉우리 중 어디로 떠오르는가를 보고서 한 해의 풍흉을 예측한다.
위는 상원(上元)에 풍년 점치는 것을 읊은 것이다.
서쪽 개울서 캔 미나리 치마를 다 못 채우고 / 采芹西澗不盈襜
까마귀부리 같은 향그런 싹을 손으로 땄네 / 烏觜香芽入指尖
누이는 응당 시집살이 고통을 알 테니 / 阿妹應知新嫁苦
매운 고추인들 시집살이 엄함만 할까 / 辢椒爭似舅家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채근요(采芹謠)〉가 전하는데, 아래 2구는 곧 그 노래의 가사이다.
위는 봄날 여자가 나물 캐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우산의 봄비 속에 도끼로 나무 해다가 / 牛山春雨斧斤餘
엮어 만든 성근 울타리 노루 눈처럼 생겼네 / 編作疏籬麂眼如
우산(牛山)은 귀천(歸川)과의 거리가 20리인데 촌민들이 땔나무를 하는 곳이다.
반쪽 밭두둑이나마 씨 뿌릴 땅이 있어 / 猶有半畦栽種地
삼 할은 옥수수 심고 칠 할은 채소 심었네 / 三分玉秫七分蔬
위는 봄날 민가에서 울타리 엮는 것을 읊은 것이다.
곰방메 써레 종다래끼 메고 앞 두렁으로 가니 / 耰耙耬斗度前阡
여러 식구 먹고 살려고 돌밭을 빌렸네 / 數口生涯賃石田
봇도랑과 밭두둑 정리하며 일 쫓기 바쁘나니 / 整頓溝塍趨事急
부지런히 일해야만 주인집 동정을 얻으리 / 辛勤庶得主家憐
이 시골은 땅이 귀하고 백성들은 가난하여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다. 약간이라도 게으르면 주인이 땅을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준다.
위는 봄날 촌민들이 땅을 빌려 씨앗 뿌리는 것을 읊은 것이다.
빨래하고 돌아오니 점심밥 준비 급한데 / 洴澼歸來午饁催
젖은 땔나무에 불 붙여도 불 일지 않네 / 濕薪吹火不成灰
시집와서 농촌 아낙이 된 이후로 / 自從嫁作田家婦
허리둘레 가늘어져 옛 옷을 줄였네 / 瘦着圍腰減舊裁
인근 마을 어부 집의 여자가 처음에는 자못 예뻤는데, 이 마을로 시집오자 초췌해졌으니 농사일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위는 촌 아낙이 밭에 들밥 내가는 것을 읊은 것이다.
따뜻한 구름 분가루 같고 물은 넓게 펼쳤는데 / 暖雲如粉水平鋪
산새가 창에 날아와 옥호를 권하네 / 山鳥當窓勸玉壺
보리 철 조금이라도 늦으면 춘궁기가 닥치니 / 麥候差遲春窘迫
위소주(韋蘇州 위응물(韋應物))의 시에 “춘궁기가 절박한 탓에, 때를 놓치면 김매지 못하네.〔直以春窘迫 過時不得鋤〕”라고 했다.
작은 솥에 납가새와 줄풀을 삶아먹는다네 / 小鐺煑熟野茨菰
위는 봄의 끝에 전가(田家)의 굶주린 기색을 읊은 것이다.
쟁반에 쌓인 상추 쌈밥도 신선해라 / 盤堆萵苣菜包新
서진명(徐振明)의 〈궁사(宮詞)〉에 “흑미로 포아희를 만드네〔靑精飯作包兒戲〕”라는 구절이 있는데, 주(註)에 이르길, “4월에 상추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을 포아희반(包兒戲飯)이라 한다. 지금 도성에서는 속칭 타채포(打菜包)라고 한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 풍속에도 또한 상추로 밥을 싸먹는 일이 있다.
느릅 잎으로 떡을 찌니 초파일이로세 / 楡葉蒸餻浴佛辰
4월 8일을 욕불일(浴佛日)이라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서는 이날 등불을 매달아 놓고서, 콩을 삶고 느릅잎 떡을 쪄서 등불 매단 나무 아래 모여서 술을 마신다. 경성의 등불은 자못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시골은 새벽별처럼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울타리 밖에 짧은 장대를 기대놓고 / 扶起小竿籬落外
자원의 등불 파는 사람을 자주 부르네 / 頻呼瓷院賣燈人
위는 4월 초파일 촌가(村家)의 현등(懸燈)을 읊은 것이다.
누런 보리 다 베어낸 자리에 벼가 푸릇푸릇 / 黃雲割盡稻靑靑
여럿이 휘두르는 호미질에 힘도 들지 않네 / 百指揮鋤着力輕
마을 집엔 사람 없어 낮에도 적막한데 / 里舍無人晝涔寂
낮닭이 날아올라 지붕 끝에서 우네 / 午鷄飛上屋頭鳴
위는 한 여름에 김매는 것을 읊은 것이다.
갑자일에 부슬부슬 빗발이 어지럽더니 / 甲子濛濛雨脚迷
오장이 하룻밤 새 산과 나란해졌네 / 烏檣一夜與山齊
《조야첨재(朝野僉載)》에 “속담에 ‘여름 갑자우(甲子雨)에 배를 타고 시장으로 들어간다.’라고 했다.”라고 했다.
높이 올라 파도 잠든 것을 서로 축하하니 / 登高共祝波濤穩
척박한 땅이 이제부턴 진흙이 될 것이라고 / 瘠壤從今變淤泥
위는 여름날 강이 범람하여 촌마을 집이 잠긴 것을 읊은 것이다.
한씨 집 담배는 그 맛이 진귀해 / 韓家菸草味珍奢
사람들은 동릉 소씨의 오이에 견주네 / 人比東陵邵氏瓜
족맥청부를 한 아름 실어오니 / 足陌靑蚨輸一庹
비옥한 밭에 더 이상 뽕과 삼을 심지 않네 / 膏田無復種桑麻
위는 한씨가(韓氏家)의 담배 밭을 읊은 것이다.
오월은 지루하고 칠월은 바쁜데 / 五月支離七月忙
호미 걸어두고 시원한 버들 그늘에 한가로이 누웠네 / 掛鋤閑臥柳陰凉
전가(田家)의 속담에 “5월은 더디가고 7월은 바쁘다.”라는 말이 있다. 또 전가에서는 7월을 속칭 괘서절(掛鋤節)이라 한다.
산 옆으로 해 저무니 소 발걸음 어지럽고 / 山邊日暮牛蹄亂
쓸쓸한 안개비에 한 줄기 피리 소리 들려오네 / 煙雨蕭蕭一笛長
위는 초가을에 김매기 마친 것을 읊은 것이다.
명월암 앞에 달그림자 어지러운데 / 明月庵前月影紛
백중날 남녀가 함께 난분을 바치네 / 中元士女供蘭盆
아반제자 그 목소리 묘한데 / 阿潘弟子喉音妙
정성껏 주문 외며 세존에게 절하네 / 誦咒深深拜世尊
위는 백중날 밤에 암자의 비구니가 불사(佛事) 지내는 것을 읊은 것이다.
푸릇 누릇 들판에 참새 떼 많아서 / 野色靑黃鳥雀多
아이 시켜 웃배미 벼를 살피게 하네 / 敎兒去看上坪禾
쫓아도 가지 않으니 아이 마음 괴로워라 / 驅之不去兒心苦
종일토록 울며 소리친들 너희들을 어찌하랴 / 盡日啼號奈爾何
위는 가을 논에서 참새 쫓는 것을 읊은 것이다.
송편에 솔막걸리 팔월의 중순이라 / 葉餑松醪八月中
농촌에 가절이 찾아오니 풍년을 기뻐하네 / 稻鄕佳節喜成功
집집마다 제사상 차리느라 새벽 등불 푸른데 / 家家設祭晨燈碧
세속의 예법 성묘 풍속이 도리어 부끄러워라 / 俗禮還羞上墓風
8월 15일은 추석절(秋夕節)로, 농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떡과 대추와 밤 등으로 조상에게 제사 지낸다. 송편은 그 절기의 음식이다. 나라 풍속에 한식(寒食)과 추석에 모두 묘제(墓祭)를 지내는데, 이는 옛 제도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묘소에 올라서는 청소만 하는 것이, 도리어 옛 제도에 부합할 것이다.
위는 추석에 선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읊은 것이다.
두렁 위 목화밭에 석양이 차가운데 / 陌上棉田淨夕暉
가을 되어 다 따버리고 남은 꽃 드무네 / 秋來摘盡見花稀
때때로 남겨진 솜이 바람 맞아 나오면 / 時看遺絮臨風吐
남쪽 이웃 과부 베틀로 들어간다네 / 收入南隣寡婦機
위는 과부가 솜을 줍는 것을 읊은 것이다.
흰 구름 속 땔나무 밭에서 나무하여 돌아오니 / 白雲養裏採薪回
육구몽(陸龜蒙)의 시에 “푸른 벼랑 가에서 태어나서 흰 구름 속 땔나무 밭을 능히 아네.〔生自蒼崖邊 能諳白雲養〕”라고 했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산가(山家)에서는 땔나무 자라는 곳을 일러 ‘양(養)’이라 한다.”라고 했다.
강물 차고 가을 깊어 장삿배를 재촉하네 / 江冷秋深賈帆催
곧바로 어깨 붉어지고 나무 한 손가락 벗겨져도 / 直到肩頳樵指禿
올해엔 득전 받아오기에 충분하겠네 / 當年恰受得錢來
마을 사람들은 봄에 땔감 장수들에게 쌀과 돈을 꿨다가 가을에 땔나무를 베어다 갚는다. 그 중 부지런한 자는 빚 갚음을 이미 마치고 남는 것으로 값을 받는데, 이를 일러 ‘득전(得錢)’이라 한다.
위는 가을 겨울 즈음에 땔나무를 해다가 배에 나르는 것을 읊은 것이다.
촌가의 예속엔 경박함과 순박함이 뒤섞여서 / 村家禮俗雜澆淳
베껴온 의례문을 사방 이웃이 함께 쓰네 / 鈔寫儀文共四隣
대상ㆍ소상 돌아오면 서로 와 제사 돕고 / 每値祥朞來助祭
언변 좋은 공축은 글자 아는 사람일세 / 便便工祝解書人
촌가에서는 우리말로 상제(喪祭)와 혼의(昏儀)를 베껴두는데, 매번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 마을에서 빌려다가 사용한다. 또 언문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데려다가 축문을 읽게 하는데, 읽는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촌민들의 대상(大祥)과 소상(小祥) 때에는 온 마을 사람이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모여서 제사를 마치면 차례로 들어가서 조문하고, 주인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한다.
위는 촌가의 상제(祥祭)를 읊은 것이다.
어려서는 장난치며 놀다 어른 돼선 서로 친해 / 幼相戲狎長相親
한 집안에 계를 맺으니 의기가 새롭네 / 修稧同堂意氣新
양자를 맺어 그 위세 빙자하려 함 아니니 / 非爲假兒聲勢藉
이웃 긍휼히 여김은 한 동포로서의 인애일 뿐 / 恤隣自是共胞仁
당나라 말에 환관과 변방 장수들은 많은 양자를 들여 세력을 키웠는데, 많은 경우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 고을에 종부형제(從父兄弟) 계(稧)가 있는데, 부모가 죽으면 곗돈을 거두어 장례를 돕는다. 계를 맺은 사람들은 모두 흰색 관(冠)을 쓰고 베 허리띠를 두른 채 상여를 전송한다.
위는 겨울에 계(稧) 맺는 것을 읊은 것이다.
웅얼웅얼 겨울 공부 소리에 앞마을 시끄럽고 / 吚唔冬學閙前村
등걸불 타는 화롯가에서는 강설하느라 정신없네 / 榾柮爐頭講說煩
밤 깊어 자려는데 목이 바싹 타면 / 夜久欲眠喉吻燥
눈 속의 차가운 동치미를 씹어 먹는다네 / 雪中咬破冷虀根
눈 속의 동치미를 씹어 먹는 것은 소이간(蘇易簡)의 고사를 사용했다. 겨울밤 독서는 최고가는 상쾌한 맛이다.
위는 동쪽 이웃의 겨울 공부를 읊은 것이다.
초가 처마의 눈보라에 아이 추울까 근심인데 / 茅簷風雪念兒寒
어스름 저녁에 두미강 가에 낚시 드리웠네 / 薄暮垂綸斗尾干
영감 할멈 웃으며 만년의 복 칭송한다네 / 翁媼解頤稱晩福
왕상의 얼음 판 잉어가 소반에 오르리니 / 王祥氷鯉也登盤
위는 깊은 겨울에 두미(斗尾)에 가서 잉어 낚는 것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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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권 / 시(詩)○습유만음(濕遊漫吟)
협곡을 나서다 3수 〔出峽 三首〕
맑고 시원한 가흥 길 / 澹蕩嘉興路
행인은 저녁에도 외롭지 않아 / 行人夕不孤
푸른 산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 靑山來遠遠
마치 백미도를 그린 것 같구나 / 如寫百眉圖
한 달 뚫고 다닌 골짝 오솔길 / 三旬穿峽逕
오싹하지 않은 곳 없었지 / 無處不心寒
험난한 곳을 넘어 평지를 밟으니 / 度險履平地
지친 노새가 편안히 쉬네 / 疲騾沈宴安
좋은 시절 한창 아름다운데 / 佳辰正婉晩
나그네 마음 문득 슬퍼지네 / 遊子意飜傷
골짝 안은 아직 봄빛이건만 / 峽裏猶春色
밭엔 보리가 이미 누래졌네 / 野田麥已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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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권 / 시(詩)○송옥잡영(松屋雜詠) 을축년(1865, 고종2) 여름,
나는 중부(仲父)를 모시고 서원(西原 청주(淸州))의 관아 안에 있었다. 송하옥(松下屋)은 서원의 자사(子舍) 이름이다.
초가을 잡영〔初秋雜詠〕
작은 못에 바람 자고 이슬은 차가울 제 / 小塘風定露凉時
남쪽 처마에 조용히 앉아 하는 일 드무네 / 澹坐南榮少事爲
울타리 아래 맨드라미는 울긋불긋 피고 / 籬底鷄冠紅的的
시렁 옆 포도는 주렁주렁 익었네 / 架邊馬乳熟離離
가을 되니 교활한 파리 부(賦)로 읊을 만하고 / 秋來蠅狡眞堪賦
강가의 살진 농어 정녕 생각이 나도다 / 江上鱸肥正入思
해 저물녘 급한 다듬이소리 어디서 나는지 / 日暮急砧何處起
타향의 절기를 객이 먼저 느끼네 / 異鄕節候客先知
초가을 물색은 갠 날과 흐린 날이 다른데 / 新秋物色異晴陰
이곳에서 높은 곳에 올라 고금을 슬퍼하네 / 此地登臨悲古今
남석교는 저 멀리 방초와 이어지고 / 南石橋連芳草遠
전장비는 저 깊이 푸른 이끼에 묻혔네 / 戰塲碑沒碧苔深
서문(西門) 밖에 중봉 조헌 선생의 전장기적비(戰塲紀蹟碑)가 있다.
어량에서 횃불 돌아오니 새로 게를 맛보고 / 溪梁火返新嘗蟹
벼 들판에 바람 맑으니 석양에 새들이 모이네 / 野稻風淸夕聚禽
우연히 높은 누대에 올라 잠시 조망하자니 / 偶向高樓成小望
꼭 신선의 마음 얻어야 기뻐지는 것 아니네 / 欣然不是待仙心
관아 뒤에 망선루(望仙樓)가 있다.
장마가 갓 개이니 먼 모래밭 환한데 / 積霖初霽遠沙明
박 잎에 푸른 연기 서리고 저녁기운 일어나 / 匏葉靑煙薄暮生
가을 들자 숲과 동산 모두 그릴 만하니 / 秋後林園皆可畫
거울 속 얼굴과 머리에 놀랄 필요 없네 / 鏡中容髮不須驚
굽은 난간에 밤 고요해 연꽃 향기가 느껴지고 / 曲欄夜靜芰荷氣
거친 길에 사람 돌아오니 수수소리 들리네 / 荒徑人歸薥黍聲
만 줄기 파초 잎에 붓을 휘둘렀더니 / 萬本芭蕉揮灑盡
창 앞 먹물 비에 남은 줄기가 잠겨있네 / 窓前墨雨鎖殘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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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권 / 시(詩)○건재집(健齋集)
을축년(1865, 고종2) 12월에 나는 건침랑(健寢郞)에 임명되었는데 무진년(1868) 봄에 교체되어 돌아왔다. 이 시집은 당시 입직할 때 지은 것이다.
건재잡영 병인년(1866) 1월 〔健齋雜詠 丙寅 正月〕
게으른 성품 본래 늦게 일어나길 좋아해 / 懶性從來喜晏起
옷 걸치고 나면 늘 해가 중천에 떴지 / 披衣常及日三竿
창 앞에서 홀연 능에 아무 일 없다 보고하니 / 窓前忽報陵無事
연옹께서 황급히 관직 벗으신 일 떠오르네 / 却憶淵翁遽解官
세상에 전하기를, 삼연(三淵)선생은 본디 벼슬에 뜻이 없었는데, 침랑(寢郞)에 제수되어 입직했을 때 아침에 일어나 능지기 노복이 능이 무사하다 고하자 선생이 깜짝 놀라며, “만일 일이 있으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더니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삭망에 분향하고 닷새마다 올라가나니 / 朔望焚香五日登
새벽에 도포에 홀 들고 왕을 배알하네 / 淸晨袍笏詣喬陵
구부러져 도는 동작은 홍의가 이끌어주고 / 折旋却有紅衣導
비석 뒤와 전각 앞을 한 바퀴 돈다네 / 碑後殿前一匝行
가마 준비 재촉하여 매일 언덕으로 달려가서 / 促辦藍輿日走岡
나무꾼 길을 통하지 않고 절로 향하네 / 不由樵徑向禪房
도끼 자국 모두 파묻었지만 흐릿하게 보이기에 / 斧痕埋盡猶微露
임금 수레가 다닐 터이니 다리 놓으라 명하네 / 道是駕行敕備梁
나무꾼을 잡아들였으나 너무도 적으니 / 捉得樵人苦不多
한가한 관아의 공사가 또 몹시 바쁘게 됐네 / 閑曹公事又忙過
도끼와 낫을 동환의 예로 잘못 보고 / 斧鎌謬視銅鍰例
집으로 보냈으니 그것 또한 부끄럽네 / 寄送家中也愧他
선생의 장협이 어떠한지 물어보니 / 先生長鋏問何如
출타할 땐 가마 있고 식사엔 생선이 있다네 / 出有箯輿食有魚
한스럽게 비루한 유생 아직 빈곤을 못 보내나니 / 可恨腐儒窮未送
찬거리를 매일 돈으로 계산하고 줄였다네 / 盤饌日日計錢除
예전에는 능관에게 주는 음식이 풍족하여 생선과 고기가 다섯 접시였다. 그 후에 한 관리가 찬을 줄이고 값으로 대신 받았는데, 마침내 정례(定例)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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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2권 / 시(詩)
○북산집(北山集) 계유년(1873, 고종10)에서 정해년(1887, 고종24)까지이다.
소산 이 영공 응진 의 〈신거〉에 차운하다 30수 〔次素山李令公 應辰 新居 三十首〕
계유년(1873) 여름, 나는 양근(楊根)에서 한성 북산 아래 육상궁(毓祥宮) 옆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 소산(素山) 어른 역시 풍계(楓溪)로 이사했는데 〈신거잡절삼십수(新居雜絶三十首)〉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운에 의거해서 화답했다.
강호 십 년에 해오라기 꿈은 비고 / 十載江湖鷺夢空
지난날의 뜻은 상봉에 부끄럽네 / 向來志事愧桑蓬
어찌하여 만년에 기려객 되어 / 如何晩作騎驢客
아계의 낚시하는 노인을 그르쳤는가 / 誤了鵶溪一釣翁
여윈 뼈는 본디 절 방에 적합해서 / 瘦骨元宜丈室容
문사는 없어도 세 해 나기에 족하네 / 更無文史足三冬
오래된 벼루 하나와 너덜한 글 몇 장을 / 一方古硯殘書葉
몸에 잘 간직하며 열 겹으로 보호하네 / 藏弆隨身護十重
가는 곳마다 푸른 산이 북창과 마주하니 / 隨處靑山對北窓
이사 온 후론 전혀 쟁변할 일 없네 / 移來全不費擡扛
문 앞으로 난 한 줄기 양구의 길 / 門前一線羊裘徑
굽은 골목 서쪽으로 통해 작은 다리를 건너네 / 曲巷西通渡小杠
어린 여종 장에 가면 번번이 늦게 돌아오는데 / 小鬟赴市每回遲
떠들썩한 싸전 어전에서 배를 불리네 / 米鬨魚喧謾朶頤
밤이건 낮이건 산골 부엌엔 채소만 사들이니 / 日夕山厨惟買菜
선생이 장검을 퉁긴들 또 무엇 하리오 / 先生彈鋏亦何爲
높고 낮은 뭇별들 자미궁에 가깝고 / 列曜參差近紫微
영롱한 붉은 그물에 오색구름 높이 나네 / 玲瓏朱網霱雲飛
소슬한 띳집이 궐 담장 옆에 있으니 / 蕭然茅屋依墻住
종남산의 욕심 없어졌다 그 누가 말할까 / 誰信終南已息機
집이 경복궁(景福宮) 서쪽 담장 백 궁(弓)의 땅에 있다.
숲과 샘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 없어 / 林泉無處不宜渠
무속헌 옆에 작은 오두막 지었네 / 無俗軒傍置小廬
여기서 선인들 시를 주고받았으니 / 爲是先人酬唱地
아직도 옛날 이웃 석실이 그대로네 / 依然石室舊隣居
선조(先祖)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이 평구(平邱)에 있을 때 석실(石室) 김청음(金淸陰) 선생과 함께 어울려 노니면서 《석실수창집(石室唱酬集)》을 남겼다. 지금 우리 집은 무속헌 옆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청음의 고택이다.
한가한 거처 가꾸는 일 즐겁기도 해라 / 閒居經濟儘堪娛
부추 자르고 파 쪼개고 가지도 접붙이네 / 剪韭披葱嫁洛蘇
성 안에는 때 이른 매화비 내리는데 / 城裏梅霪時節早
옥수수는 익어서 알알이 명주구슬 / 玉高梁熟顆明珠
가지런히 배추와 아욱 자란 한 이랑의 밭 / 整頓菘葵一稜畦
아주까리 붉은 여뀌 담장과 나란하네 / 蓖麻紅蓼與墻齊
아이들도 시골 정취 기뻐하나니 / 兒童也喜鄕園趣
신풍에 풀어 놓은 개와 닭과 꼭 닮았네 / 恰似新豊放犬鷄
천 그루 아름드리가 서재에 그늘 드리우고 / 千章佳木蔭書齋
빗속에 풀 덮인 섬돌 찾아오는 이조차 없네 / 雨裏無人草上階
장막 젖히면 명사 있다고 말하지 마오 / 莫道披帷名士在
삭막한 곳 소슬 바람엔 회포조차 없다오 / 索居蕭颯不成懷
수풀 우거진 동산이 백 궁도 더 되겠네 / 林園賸得百弓恢
푸른빛이 저 멀리 경무대까지 이어졌구나 / 葱蒨迤連景武臺
저물녘 꾀꼬리 소리 맑고도 고우니 / 向晩鶯歌淸宛轉
새 악보를 훔쳐 뒤뜰로 가져와야겠네 / 應偸新譜後庭來
문회지당은 바로 어제일 같은데 / 文會池堂似隔晨
적막한 몇 년 세월에 평상 가득 먼지만 쌓였네 / 寥寥幾歲一牀塵
기문 감상하고 뜻 풀면 남은 생 만족이라 / 賞奇析義餘生足
한 마을엔 지금도 평소 뜻 지닌 이 많다네 / 同閈今多素志人
문회지당(文會池堂)은 봉서(鳳棲) 유 선생(兪先生)의 옛집이다. 직하(稷下)에 있는데,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후 당(堂)이 폐해진 지 이미 오래이다. 선생의 문하에서 좇아 노닐던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마을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느릿느릿 구리 징 불타는 구름 위에 걸렸고 / 冉冉銅鉦掛火雲
대낮 되자 낮은 처마엔 타는 듯한 열기 / 矮簷當晝熱如焚
때맞춰 쏟아진 소나기에 답답한 가슴 씻기니 / 霎時驟雨煩襟滌
지붕 샌다고 어찌 정 광문을 슬퍼하랴 / 屋漏何傷鄭廣文
도화원 입구가 선원에 접해있어 / 桃花洞口接仙源
봄이면 꽃잎 떨어져 흔적을 남기네 / 萬點春來落水痕
성대엔 본디 세상 피하는 객 없으니 / 聖代元無逃世客
그저 보통의 꽃 파는 마을일 뿐 / 尋常秖作賣花村
나의 집 뒤에 도화동(桃花洞)이 있는데, 거주민들은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키 큰 버드나무 매미 소리에 여름도 춥고 / 高柳蟬聲夏亦寒
바람을 이야기하고 이슬을 읊자니 석양이 지네 / 談風吟露夕陽欄
온 성 가득 메운 검은 먼지 속에 / 滿城滾滾緇塵裏
이곳만은 초연히 깨끗한 땅 차지했네 / 地位超然占淨乾
제관은 본디 청아하고 한가로운 자리라 / 祠官本是職淸閒
떠남과 머묾에 대한 근심은 신경 쓰지 않네 / 去住猶愁不自關
관단을 빌려왔으나 구유에 콩대가 없어서 / 欵段借來無棧豆
서늘한 틈을 타 풀꽃 사이에 짐짓 풀어놓았네 / 乘凉權放菜花間
나는 이때 경모궁령(景慕宮令)으로 있었다.
소년들 본떠 어깨 젖히고 가슴 치켜드니 / 肩反胷昂範少年
여남에선 예로부터 선현을 기억했지 / 汝南自古記先賢
전형은 비록 멀어졌으나 풍류는 남아 / 典型雖邈風流在
거문고 소리 글 소리, 집집마다 잠자지 않네 / 絃誦家家夜未眠
야사에 이르기를, 농암(農巖)과 삼연(三淵) 두 선생은 매번 문을 나설 때마다 어깨를 젖히고 가슴을 치켜들었는데, 장동(壯洞)의 인사들이 그것을 많이 본떴다고 하였다. 지금 마을에 글 읽는 소리가 많은 것은 선현들의 유풍(遺風)이다.
시편에다 마구 속요를 섞어놓고 / 謾與詩篇混俗謠
붉은 주묵에 푸른 점 찍어 표제를 시험하네 / 硯朱點碧試題標
꿈속에서 때때로 지당구를 얻었기에 / 夢中時得池塘句
시를 지을 때면 먼저 자수교를 찾아가네 / 韻事先尋慈壽橋
종형(從兄)인 학해(學海)가 가끔 자수교에 머물렀다.
뱁새는 나뭇가지 위 둥지에 만족하니 / 鷦鷯自足一枝巢
가슴속 두 마음의 싸움을 털어버리네 / 擺落胷中兩戰交
몹시도 어리석은 집사람 때문에 늘 괴로운데 / 常苦家人痴騃甚
또 쌀 가지고 가 점치며 좋은 점괘를 바라네 / 更將米卜祝佳爻
《영표록(嶺表錄)》에 “닭 점, 쌀 점, 소뼈 점 등의 풍속이 있다.”라고 했다. 우리 동국의 무녀 또한 쌀로 점을 친다.
한 가지 일도 못 이룬 채 반백이 되었으니 / 百事無成到二毛
우를 들고 제나라 문 찾은들 무슨 소용이리 / 齊門何用客竽操
근자에는 꽃 키우는 기벽까지 생겼으니 / 近來却有澆花癖
끙끙대며 물동이 드는 수고도 달게 여기네 / 搰搰猶甘抱甕勞
육상궁의 우물로 중병이 나았으니 / 毓祥宮井已沉痾
제호를 들이붓듯, 많아도 싫지 않네 / 灌似醍醐不厭多
벗이 준 송국 차를 맛보았더니 / 聊試故人松茗麴
일곱 잔을 마심에 몽환의 경지에 이르렀네 / 傾來七椀到無何
서경당(徐絅堂)이 송향국차(松香麴茶) 1포(包)를 주면서, 더위를 씻어내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고 했다.
반 이랑에 심은 무가 일찍 싹이 나왔기에 / 半畦蘆菔早生芽
뽑아다가 먼저 술파는 집에 나눠주네 / 挑取先分賣酒家
이상도 해라 번풍이 절기를 재촉하여 / 却怪番風催序急
가지 사이로 다시 사과꽃이 보이네 / 枝間再見月臨花
비온 후 새로 뜬 달이 장막을 훤히 비추니 / 雨餘新月鑒帷煌
반쪽 벽 무너진 담이라 빛 받아들이기 딱 좋네 / 半壁頹垣恰受光
연꽃과 마름만 뜰에 가득한데 인적은 드물고 / 荇藻滿庭人跡少
관사의 가을 소리는 띳집 안에 숨어있네 / 秋聲館裏隱茅堂
첨 찾아온 객들이라 얼굴마다 낯설지만 / 客子新來面面生
북산은 여전히 풍류와 정 넉넉하네 / 北山猶自欵風情
돌 형님과 우물 아우여 너무 탓하지 마오 / 石兄井弟休相怪
양주 땅을 걷어가는 것 아니라면 / 除是楊州捲地行
큰길에 종소리 파하자 시장 등불 훤해지고 / 九衢鍾罷市燈熒
드문드문 은하수에 별들 몇 점 보이네 / 寥落天河見數星
찍찍 울어대는 벌레소리 어디서 나는지 / 喞喞蟲聲何處起
가을소식 미리 가져다 간곡히 알려주네 / 預將秋信報丁寧
단비와 햇볕이 좋은 징조와 어우러지니 / 時雨時暘協庶徵
요 임금 시절 좋은 때 풍년이 거듭 이어지네 / 堯年幸際屢豊承
시정 아이들은 농가의 고통을 몰라 / 市兒不識田家苦
길거리 노래 대충 배워 곳곳에서 불러대네 / 謾學衢謠處處興
구구한 기장과 벼 기러기의 도모 비웃지만 / 粱稻區區笑鴈謀
신천옹은 본래 근심이 없다네 / 信天翁也本無愁
상자 속에 마침 잡힐 만한 조복이 있기에 / 篋中合有朝衣典
이웃 주막에 술 익었냐고 물어보네 / 爲問隣壚酒熟不
우뚝 선 벽오동 그림자 길이만 천 길 / 翠梧特立影千尋
소슬한 담 머리엔 반 무의 녹음 드리웠네 / 蕭灑墻頭半畝陰
늙어가며 품은 것은 오직 금 생각뿐 / 老去全含琴意思
시원한 비바람에 용의 신음 내네 / 泠然風雨作龍吟
세심대 아래 판교의 남쪽 / 洗心臺下板橋南
오색 그림 청계에 작은 암자 하나 있네 / 罨畫淸溪一小庵
그 속에 장엄한 시불이 있어 / 箇裏莊嚴詩佛在
향 사르고 공손히 소산에게 참배하네 / 瓣香敬爲素山參
숲 개구리 꽥꽥 울며 비를 먼저 점치고 / 林蛙閣閣雨先占
바람 불려 할 때면 소나무가 수염을 터네 / 風欲來時松拂髯
삽시간에 희뿌옇게 변한 남산의 나무들 / 片刻空濛南嶽樹
개울 북쪽을 넘어가면 이내 그치네 / 拖過溪北不同沾
대아의 봄 모습 소호와 함지 연주하고 / 大雅春容奏頀咸
신맛과 짠맛 적당한 국의 간 맞춤 다시 보네 / 和羹又見適酸醎
몇 번을 자세히 음미함에 뺨에서 향기 나니 / 數回細嚼香生頰
마른 창자의 허기를 구하기에 충분하네 / 充得枯膓可救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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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2권 / 시(詩)
빗속에 정회를 읊다. 노두의 〈자경부봉선현〉 50운을 차운하다〔雨中詠懷次老杜自京赴奉先縣五十韻〕
뱁새는 분수에 쉬이 만족하거늘 / 鷦鷯分易足
비둘기만은 성품이 어찌 그리 졸렬한가 / 維鳩性何拙
험난함과 우환을 적게 타고났건만 / 生少賦險釁
근심과 상처로 하릴 없이 슬퍼하네 / 憂傷徒契契
학문도 얕고 식견도 협소하며 / 學淺識窾啓
재주는 낮은데 뜻은 성그네 / 才短意疎闊
마흔에도 노쇠한 용모 지녀 / 四十有衰容
머리 희고 이도 다 빠졌네 / 鬚白齒更豁
권세가의 문을 들여다 본 적 없으니 / 未窺朱門裏
어찌 손대면 데일 정도의 뜨거움을 알겠는가 / 焉知炙手熱
외람되게 깊은 골짜기 난초와 짝하였을 뿐 / 猥比幽谷蘭
스스로 강한 향기 풍길 수 있는 사람 없다네 / 無人自芳烈
관적에 올라 분수를 넘었고 / 通籍踰涯分
옥당의 달 아래서 한 번 묵었네 / 一宿玉堂月
어찌 백성을 보호할 재목이나 된다고 / 豈是庇民才
고향의 논밭과 영영 이별을 했는가 / 便與畎畝訣
타관살이에 궁핍은 더욱 심해져서 / 僑居竆轉甚
한 소쿠리의 밥도 누차 걸렀네 / 簞食屢告缺
안빈낙도하면서 / 誰能貧而樂
욕망에 빼앗기지 않을 자 그 누구랴 / 不爲慾所奪
휘장 내리고 아이 글공부를 시키니 / 掩帷課兒讀
쓸쓸하기가 바위굴과도 같네 / 蕭然若巖穴
아는 이들은 모두 어진 분들이어서 / 所知皆長者
깊이 탐구하신 것 큰 바다처럼 터져나오네 / 搜討瀉溟渤
고생스럽게 나의 잘못을 잡아주시니 / 辛勤矯余枉
감히 청탁 따위 배우지 못하네 / 不敢學干謁
가마솥 안에는 먼지만 가득하고 / 釜中塵埃滿
문전은 쑥대로 파묻혔네 / 門前蓬蒿沒
하물며 오래도록 비가 내리더니 / 况乃天久雨
범람하여 마침내 통제할 길 없어졌네 / 浸淫遂無節
흐르는 빗물이 종횡으로 넘쳐나 / 流潦浩縱橫
나그네의 발걸음도 끊겼네 / 行旅亦斷絶
도랑물이 모두 부딪혀 터지고 / 溝瀆盡衝決
언덕과 골짜기가 모두 무너졌네 / 陵谷咸崩裂
충청도와 전라도엔 수재가 더욱 심하니 / 兩湖災尤甚
어찌 각 고을의 곳간 열기를 천천히 하는가 / 詎緩齊棠發
올벼도 늦벼도 모두 썩었으니 / 稙穉俱靡爛
기장인들 메벼인들 어찌 열매 맺을까 / 黍稌實豈結
재앙의 기운이 미원을 향하고 / 妖祲射微垣
자욱한 기운이 높은 산을 가두었네 / 蒙氣鎖嶻嵲
긴 여름에도 어둔 길을 가야하고 / 長夏過昏衢
희화의 수레바퀴는 허공에서 미끄러지네 / 羲輪走空滑
하늘에 맹세하며 재앙의 기운 쫓고자 하지만 / 誓欲驅氛霧
힘이 나약하여 그 어려움 근심하네 / 力孱愁戛戛
한 묶음의 땔나무와 한 됫박의 쌀이 / 束薪與升米
값이 뛰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이 났네 / 騰躍喧轇轕
채색 수놓은 벽에 사는 이들 괜찮지만 / 哿矣紋繡壁
짧은 갈옷 입은 이들만 애달파라 / 哀此被短褐
임금께서 밤낮으로 근심하시며 / 聖主宵旰憂
은혜로운 윤음을 시시때때로 내리시네 / 恩綸無時出
어찌 차마 주상 혼자만 수고롭게 할 수 있겠냐만 / 忍令獨勞上
부끄럽게도 재주가 없어 보좌할 길 없네 / 匪才慚補闕
하민들은 어리석고 몽매하여 / 下民愚且蒙
구차하게 아침저녁 생계만을 꾀하네 / 苟謀朝夕活
배부르고 따뜻해야 원망이 없으니 / 飽煖方無怨
어찌 교화를 알겠는가 / 豈識化中物
썩은 줄로 경계한 까닭 / 所以朽索戒
생각하면 항상 두렵고 떨리네 / 思之常凜慄
아, 늙고 야윈 사내가 / 嗟嗟枯項士
길게 울부짖으며 칠실에서 근심하네 / 長嘯憂漆室
밤비에 담장 갈라지더니 / 夜雨藩垣坼
중당이 추한 몸을 드러냈네 / 中堂露醜質
문을 여니 사방이 확 트이고 / 開戶曠四望
부녀자들은 숨죽이며 두려워하네 / 婦女屛縮瑟
집에 능금나무 있는데 / 家有林檎樹
강회의 귤에 비할 만하네 / 可比江淮橘
이웃 아이들 면전에서 훔쳐가 / 隣兒對面偸
늙은 나무엔 앙상한 줄기만 남았네 / 老樹餘榦骨
어린 아들 비틀대며 울부짖어 / 幼子踉蹌叫
괴로운 심정에 글 가르치는 것도그만 두었네 / 騷擾廢蛾述
관창의 관리노릇 하는 벗이 있어 / 故人官倉曹
서경당(徐絅堂)을 가리킨다.
한 말 쌀로 학철고어를 구했네 / 斗米救涸轍
생각해보니 그대 또한 가난하면 / 念子亦貧窶
궁벽한 해를 만나면 늘 고생했지 / 竆年恒兀兀
돈 생기면 곧 술을 사다가 / 得錢卽沽酒
그댈 불러와 간소하게 갚으리라 / 招邀以簡折
지붕 샌 자국은 북두칠성과 같고 / 屋漏如七星
사방 벽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나네 / 四壁聲窸窣
안색만은 여전히 늘 좋아서 / 顔色猶常好
장가를 부르면 저 멀리까지 울리네 / 長歌彌激越
소리를 가득 채워 상송을 읊고 / 聲滿吟商頌
곡조를 높여 영의 백설 곡에 화답하네 / 調高和郢雪
이 음악은 아는 자가 적지만 / 此樂知者少
굶주림과 갈증을 거의 잊게 한다네 / 庶以忘飢渴
지금 듣건대 어두운 비에 대비하여 / 今聞陰雨備
바다 지키는 병졸을 엄히 경계시킨다 하네 / 嚴警防海卒
태평시대에는 병사 보는 것 두려워하여 / 昇平畏見兵
거리의 의논이 분분히 목구멍에 가득하네 / 巷議紛闐咽
조정의 계책이 정해진 것을 안다면 / 固知廟筭定
번거롭게 볼기 치고 회초리 부러뜨릴 일 없으리 / 無煩笞箠折
조창이 잠겨 비축해놓은 식량이 비었으니 / 漕渰蓄積空
무엇으로써 갑작스런 사변에 대비할 것인가 / 何以備倉猝
사나운 놈은 힘으로 굴복시키지 못하니 / 獷悍匪力服
미리 처벌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네 / 所貴先謀伐
지난번에 노곤한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으니 / 疇能却勤師
담소로써 정처 없이 떠도는 이들을 진압했네 / 談笑鎭棲屑
한숨 쉬며 옛사람을 생각하니 / 慨然思古人
탄식이 그치지 않네 / 歎息意未卒
미친 듯 부르짖는 말 조리도 없어서 / 狂號言無倫
태사가 적기에 부족하네 / 太史不足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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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3권 / 시(詩)○비궁창수집(閟宮唱酬集) 계유년(1873, 고종10)에서 갑술년(1874)까지
고산 3칙 〔高山 三則〕
강겸산(姜謙山)이 〈담운(澹雲)〉 6장(章)을 읊어서 계운(溪雲)과 나에게 나누어주었다. 아마도 두 사람의 호에 모두 ‘운(雲)’ 자가 있기 때문인 듯한데, 〈정운(停雲)〉의 뜻을 붙인 것이기도 하다. 내가 〈고산(高山)〉 3편을 읊어서 화답했다.
험하고 가파른 고산 / 高山崒嵂
그 아래 고요한 곳 있네 / 其下有密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여 / 謙謙君子
하시는 말씀마다 내용이 있어 / 出言有物
패옥처럼 쟁그랑 울리고 / 有瑲琚瑀
보불처럼 찬란히 빛나네 / 有煌黼黻
말을 몰아 날로 매진하니 / 駕言日邁
아득히 멀어져 짝할 수 없네 / 邈矣難匹
나를 품어주는 훌륭한 풍도 / 懷我好風
덕음이 성하기도 하여라 / 德音秩秩
높고 아득한 고산 / 高山岧嶤
구기자와 산초가 있네 / 有紀與椒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여 / 謙謙君子
순서와 조리가 있네 / 有貫與條
드넓은 삼책으로 / 三策洋洋
조정에 명성을 드날렸네 / 名聞于朝
소과를 하찮게 여기며 / 薄言小試
봉록을 구하지 않았네 / 干祿不邀
지극한 다행이로다 / 幸甚至哉
우리 동료에게 모범 되었으니 / 式我同僚
고산의 높은 봉우리 / 高山有岑
교남에서 우러르네 / 嶠南所瞻
저기 저 흰 구름 / 爰有白雲
가파른 바위 위에 있네 / 依彼巉巖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나 / 崔崔雵雵
개다가 흐리다 하네 / 載陽載陰
군자께서 은혜를 베풀어 / 君子幸惠
나에게 아름다운 옥을 주셨네 / 貽我璆琳
무엇으로써 드려야 하나 / 何以贈之
녹기금을 드려야지 / 綠綺之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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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3권 / 시(詩)○비궁창수집(閟宮唱酬集) 계유년(1873, 고종10)에서 갑술년(1874)까지
오언고시 다섯 수를 지어서 강겸산이 화순현으로 부임하는 행차를 전송하다〔賦五古五首送姜謙山和順縣赴任之行〕
구름 속 세 마리 황곡 / 雲中三黃鵠
만 리를 함께 날지 않네 / 萬里不同飛
훨훨 궁궐 원림에 내려앉아 / 翩然下宮苑
뜻을 얻어 돌아감을 잊었네 / 得意共忘歸
서로 목을 감고 울며 화답하고 / 交頸鳴相和
너울너울 국의를 떨쳤는데 / 蹌蹌拂菊衣
한 마리 황곡은 남쪽으로 날아가 / 一鵠南飛去
하늘 끝 허공만 아련하네 / 天末空依依
그대는 남국의 선비로 / 夫子南國彥
도를 품고 횡포한 행동 끊었지 / 懷道絶畔援
계책을 바쳐 궁궐에서 이름 떨치니 / 獻策揚王庭
아침에 상주하면 저녁에 부르심 받았지 / 朝奏夕召見
적은 녹봉이라고 어찌 구애가 되랴 / 微祿豈絆人
성명한 시절의 정사만을 연모할 뿐 / 明時政堪戀
늙을수록 뜻은 더욱 견고해지니 / 到老志愈堅
상자 속엔 쇠 벼루가 담겨 있다네 / 篋裏有鐵硯
아득히 먼 여미현이여 / 迢迢汝湄縣
다섯 필 말로 엄숙히 길을 떠나네 / 五馬戒程嚴
울림에서 떠나갈 때 배에 돌을 실었고 / 鬱林行載石
산음에선 즐거이 주렴을 드리웠지 / 山陰好垂簾
복성이 백 리를 비출 것이니 / 福星照百里
아낙과 아이가 기쁘게 바라보리 / 婦孺欣共瞻
촉 땅의 다스림을 이제 곧 보리니 / 佇看治蜀化
관리로서 스승을 겸할 것이네 / 爲吏師道兼
한강 북쪽을 아침에 출발하여 / 朝發漢水陽
호남 고을로 가고 또 가네 / 去去湖南鄕
호남의 좋은 산과 물들이 / 湖南佳山水
그대의 금수장을 밝혀 주리니 / 照君錦繡腸
영가처럼 산행할 땐 나막신 수리하고 / 永嘉行理屐
습지에서 취할 땐 술잔을 권하겠지 / 習池醉傳觴
장부 따위 노고로울 것 무엇이랴 / 簿書何足勞
노년에 유유자적해도 무방하리 / 暮年可徜徉
노둔한 말이 천리마를 따르느라 / 駑馬追驥騏
땀 흘리다 그만 자빠지고 말았고 / 汗流且僵仆
한 치 막대기로 큰 종을 울려 / 寸筳撞巨鍾
소호를 얻어 들을 수 있기 바랐네 / 幸得聆韶頀
근자에 〈정운편〉을 드렸으나 / 頃贈停雲篇
삼탄의 뜻 깨닫지 못했네 / 三歎意未喩
사람 일이란 게 정해진 기약이 없어 / 人事無定期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구나 / 果如雲散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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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3권 / 시(詩 )○해서지부집(海西持斧集)
송경잡절 12수 〔松京雜絶 十二首〕
푸른 솔 울창한 팔선궁 / 蒼松鬱鬱八仙宮
송악의 본래 명칭은 부소(扶蘇)이다. 신라 감간(監干) 팔원(八元)이 말하기를 “소나무를 심어서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면 삼한(三韓)을 통합할 자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그로 인하여 소나무를 심고 이름을 송악이라 했다. 김관의(金寬毅)의 《통록(通錄)》에는 “당나라 숙종(肅宗)이 바다를 건너와서, 곡령(鵠嶺)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이곳은 참으로 팔선(八仙)이 거주할 곳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혹은 선종(宣宗)이라고도 한다.”라고 했다. ○ 목은(牧隱)의 시에 “가마 타고 곧장 팔선궁에 오르네.”라는 구절이 있다.
오부의 푸른 봄이 취몽 중에 있네 / 五部靑春醉夢中
고려 도성에 오부가 있다. 명나라 승려 부흡(溥洽)의 시에 “오부의 푸른 봄날 음악에 취하네.”라는 구절이 있다.
애끊게도 강남의 〈옥수가〉를 노래하니 / 腸斷江南歌玉樹
산에 모인 왕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구나 / 鍾山王氣黯然終
위는 송악이다.
옥호금포가 벽당에 비추는데 / 玉戶金鋪照壁璫
봄바람을 마암 옆에 고이 간직하였네 / 春風貯得馬巖傍
모든 게 지나가 버린 삼한 땅에서 / 不知事去三韓地
영당 부탁할 사람 없음을 아직도 한탄할까 / 猶歎無人付影堂
마암(馬巖)은 성균관 앞에 있다. 공민왕(恭愍王)은 노국공주(魯國公主)를 위하여 영전(影殿)을 크게 세우고 사치를 다했다. 왕이 우(禑)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뻐서 말하기를 “영전을 부탁할 사람이 있구나.”라고 했다.
위는 마암이다.
학 등에 탄 신선이 동천에 내려오니 / 鶴背銖衣下洞天
중화당 악부의 자하 신선들이여 / 中和樂府紫霞仙
지금도 노인들은 남겨진 풍속 전하는데 / 至今耆老傳遺俗
인간 세상의 병자년을 몇 번이나 보냈을까 / 幾度人間丙子年
자하동(紫霞洞)은 송악 아래에 있다. 고려 채홍철(蔡洪哲)이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로(國老)들을 초대하여 기영회(耆英會)를 열고는 직접 〈자하동곡(紫霞洞曲)〉을 지었는데, 대략 자하선인(紫霞仙人)이 내려와서 축수한다는 뜻을 실은 것이다. 지금 악부(樂府)에 악보가 전한다. 고려 조계방(曹繼芳)의 시에 “꿈속에서 학 등에 올라 하늘 나는 신선 보이더니, 우의 선악이 술동이 앞에 즐비하네. 훗날 멋진 일을 자랑하려거든, 반드시 인간 세상에서의 병자년을 말하리라.”라고 했다. 이로부터 마침내 송경(松京)의 옛 풍속이 되었다. 매번 기영회를 열면 곧 돌에 새겨서 기록했다.
위는 자하동이다.
읍비의 피 묻은 바위 탄식할 일이니 / 泣碑血石事堪吁
천추토록 혼백은 있는가 없는가 / 魂魄千秋有也無
해마다 부는 비바람도 마멸시키지 못해 / 風雨年年磨不得
오래도록 남은 핏자국 보은의 뜻 빼어나네 / 長留化碧報恩殊
선죽교(善竹橋)는 포은(圃隱) 선생이 살신성인한 곳이다.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 있어서 다리 옆에 비석을 세우고 포은이 충용(忠勇)을 세울 때의 일을 기렸다. 비석이 항상 젖은 채 우는 듯하여서 읍석(泣石)이라 이름 붙였다. 두 번째 구는 포은의 가사(歌辭) 중의 말을 사용했다.
위는 선죽교이다.
연복정 앞엔 녹음 가득 우거졌는데 / 延福亭前滿綠蕪
임금 탄 배 그 어느 때 맑은 호수에 띄웠던가 / 龍舟何日泛明湖
홍도 학사 중엔 경박한 자 많아서 / 鴻都學士多輕薄
권력을 모두 무인에게 맡겼네 / 盡把權綱屬武夫
연복정(延福亭)은 동문(東門) 밖에 있는데, 의종(毅宗)이 정자를 짓고 제방을 쌓아 호수를 만든 다음 배 띄우고 연회를 즐기며 문신(文臣)들과 시를 읊었다. 이에 호위군사들을 심히 미워하여 끝내 정중부(鄭仲夫)의 반란을 야기했다.
위는 연복정 옛터다.
구재에 책 나눠두고 검은 휘장 내리니 / 九齋分籍下緇帷
문헌공 옛터엔 아직도 비석 남아있네 / 文憲遺墟尙有碑
시 읊으며 돌아오면 산의 해는 저물었으니 / 洛詠歸來山日暮
앉아서 술잔 나누던 풍류 상상할 수 있네 / 風流猶想踞傳巵
고려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은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구재를 나누어 학자들을 거처하게 했는데, 옛터가 자하동에 있다. 무더운 달에는 귀법사(歸法寺)를 빌려서 하과(夏課)를 하면서 시를 읊고 독서를 했다. 관동(冠童)들이 좌우로 늘어서서 준조(樽俎)를 받들었고, 해가 저물면 모두 낙생영(洛生詠)을 하고 파했다. 이규보(李奎報)의 〈억구경(憶舊京)〉시에 “오직 일단의 관심처는, 귀법사 냇가에서 앉아서 술잔을 나누는 것이네.”라고 했다.
위는 최시중의 유허이다.
긴 여정 중 어느 곳이 가장 가슴 아픈가 / 長程何處最傷神
천수문 앞 풀밭이 자리처럼 펼쳐졌네 / 天壽門前草似茵
왕손들의 가무의 성대함은 보이지 않고 / 不見王孫歌舞盛
꾀꼬리 울음소리만 행인을 전송하네 / 一聲黃鳥送行人
천수원(天壽院)은 성 동쪽에 있는데, 천수사의 옛터다. 지금 원은 폐지되었으나, 고려 때 관리나 사대부들이 송영(迎送)하던 곳이었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천수사는 공자(公子)와 왕손들이 주취(珠翠)와 생가(笙歌)를 거느리고 전별하고 마중하던 곳이다.”라고 했다. 이인로의 시에 “객을 전송하려는데 객은 아직 오지 않았고, 중을 찾아가니 중 또한 없네. 오직 남은 것은 숲 너머 새소리, 종일토록 술병 들라 권하고 있네.”라고 했다.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이곳은 해마다 이별하던 곳, 객을 전송하는 것 아니라도 애간장이 끊기네.”라고 했다. 천수원은 옛날에 취적교(吹笛橋) 옆에 있었다.
위는 취적교이다.
황량한 삼성동에 저녁 까마귀 우는데 / 三省荒凉噪暮鴉
내원의 사람이 소평의 오이를 파네 / 內園人賣召平瓜
두문동 안 공후의 후예들은 / 杜門洞裏公侯裔
모두 평범한 백성들의 집이 되었네 / 盡是尋常百姓家
삼성은 동(洞) 이름이다. 지난날에는 삼성해서(三省廨署)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지되고 오이밭이 되었다. 왕조가 바뀐 후에 고려의 유신(遺臣) 70여 가(家)가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여 출사하지 않았다.
위는 삼성동이다.
말 나란한 봄놀이에 푸른 비녀 희롱했으니 / 竝馬春遊弄翠鈿
군왕의 환락과 웃음 가련함을 못 이기겠네 / 君王歡笑不勝憐
밤마다 장대에 뜬 달에 응하여 / 秪應夜夜粧臺月
둥근 패옥하고 칠점선과 함께 돌아갔다네 / 環佩同歸七點仙
신왕(辛王 우왕(禑王))은 총희(寵姬)인 연쌍비(燕雙飛)ㆍ칠점선(七點仙) 등과 함께 말을 나란히 타고 놀았다.
위는 화원 옛터이다.
사루에서 각촉하고 매괴화를 읊으니 / 紗樓刻燭賦玫瑰
한 시대의 맑은 사인들이 재주를 올렸네 / 一代淸詞供奉才
사람도 꽃도 모두 적막하고 / 人與名花俱寂寞
졸졸 흐르는 시냇물만 들판 다리를 맴도네 / 潺湲流水野橋回
고려 숙종(肅宗)은 누대에 올라 〈옥매괴(玉玫瑰)〉시를 읊은 후, 사신(詞臣)들을 불러서 화답해 올리게 했다. 예종(睿宗)은 누대에 올라 각촉하고 〈목단(牧丹)〉 6운(韻)을 읊었는데, 응제(應製)한 사람이 56인이었고, 안보린(安寶麟)이 일등을 했다.
위는 사루 옛터이다.
방의 이름으로 옛 서울을 알 수 있나니 / 坊名認得舊京華
제도가 신풍과 비교하여 별 차이 없구나 / 制度新豐較不差
어찌 이전에 현도관을 지났던 사람 있어 / 豈是玄都前度客
봄바람 속 연맥을 보며 복사꽃을 추억할까 / 東風鷰麥憶桃花
우리 태조가 한양에 도성을 정한 후 모두 송도(松都)의 옛 이름을 써 가방(街坊)의 이름을 지었다.
위는 옛 경사의 가방이다.
높은 산에서 백 번 굽이도는 개울의 물소리 / 崇岡百折一溪鳴
우물 속에서 하늘이 맷돌 위 개미처럼 도는 것 보네 / 井裏看天蟻磨行
예로부터 험한 지세 덕에 편안할 수 있었으나 / 自古宴安由恃險
차라리 두 산을 평평하게 깎는 게 나으리라 / 不如剗却兩山平
위는 청석진(靑石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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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4권 / 시(詩)○면양행음집(沔陽行吟集) 2 무자년(1888, 고종25) 7월부터 임진년(1892, 고종29) 계동(季冬)까지
《사암집》 운에 차운하다 4수 〔次思庵集韻 四首〕
가을바람에 낙엽 지니 허연 머리 느꺼워라 / 秋風搖落感華顚
뜻도 일도 꺾이고 무너져 젊은 시절과 다르네 / 志事摧頹異壯年
사방 벽 고요한데 벌레들만 울고 / 四壁無聲蟲戶語
구천에 난 길로 기러기들 날아가네 / 九天有路鴈家緣
파초의 몸 늙었으나 심지는 쌓이고 / 蕉身已老心猶積
단풍잎 반쯤 시들었으나 색은 더욱 곱네 / 楓葉半凋色愈姸
올 겨울 날 계책을 헤아려보아도 / 料理今冬生活計
상자 속엔 오직 좀먹고 남은 시뿐이네 / 篋中秪有蠹餘篇
가파른 산기슭에 자리한 몇 무의 절간 / 數畝琳宮倚峭峯
사립문은 단풍나무로 겹겹이 막혀있네 / 柴門紅樹隔重重
오래 살다보니 도리어 승려가 손이 되고 / 久居還看僧爲客
오래 누웠으니 병과 게으름 떼어내기 어렵네 / 長臥難分病與慵
구름 골짜기 소나무 옮기니 바위가 수척하고 / 雲壑移松山骨瘦
서리 내린 밭 채소 뽑으니 무 맛이 짙네 / 霜畦挑菜土酥濃
만 가지 나그네 시름을 누구에게 말할까 / 羇愁萬種憑誰說
지금 친구들 중엔 허맹용이 없구나 / 故舊今無許孟容
가을 정회에 매일같이 등고시를 읊고는 / 秋懷日日賦登高
유미를 다 갈아서 설도전에 적네 / 磨盡隃麋寫薛濤
땅이 궁벽하니 항상 서유의 탑상 매달아놓고 / 地僻常懸徐孺榻
바위가 기묘하니 자주 미전의 도포를 찾네 / 石奇頻索米顚袍
늘 찾아오는 마을 개 아침밥 먹으러 달려가고 / 慣來村犬趁朝飯
때때로 우짖는 산새 저녁 언덕에 깃드네 / 時叫山禽投夕臯
바닷가라 심히 황량하고 누추하다 말하지 마오 / 莫道海濱荒陋甚
남은 생 밭 갈고 옹기 구우며 늙는 것도 괜찮다네 / 餘年不妨老耕陶
어지러이 날리는 낙엽이 작은 집을 에워싸니 / 黃葉紛紛擁小堂
경 읽는 소리와 등불이면 긴 밤 보낼 만하네 / 經聲燈火耐宵長
백 년의 세상일 푸른 바다의 머리털이요 / 百年世事滄浪髮
시월의 산 모습 옅은 화장일세 / 十月山容淡泊粧
생각은 닭장 기웃거리는 닭과 한가지고 / 意思還同鷄睨柵
생계는 제 먹이 구하는 기러기에 부끄럽네 / 生涯多愧鴈謀粱
흥 날 때마다 옷 걸쳐 입고 가고 싶지만 / 興來每欲披衣往
바라다보이는 갈대는 물 저편에 있네 / 望裏蒹葭水一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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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4권 / 시(詩)○면양행음집(沔陽行吟集) 2
무자년(1888, 고종25) 7월부터 임진년(1892, 고종29) 계동(季冬)까지
황자천 수선가〔黃紫泉壽仙歌〕
천리의 황하 물 한 번 굽어 꺾이는데 / 黃河之水千里一曲折
자천은 황씨여서 자호를 자천이라 했다. 즉 황하를 고친 이름이다.
그 근원 하늘 위 은하수에서 나왔네 / 其源上自星漢出
아래로 서쪽 끝 반도 뿌리에 물을 대니 / 下漑西極蟠桃之根
삼천 년 만에 꽃피고 열매도 맺었네 / 三千年開花復結實
신선을 탐내 반도 훔쳤다가 천제의 진노 만나 / 饞仙偸桃逢帝嗔
그 이름 석실에 있고 그 호는 자천 / 名在石室號紫泉
난새 봉황이 정처 없이 떠돌다 하계에 왔으니 / 鸞漂鳳泊到下界
전생에 분명 황정견이었으리 / 前身應是黃庭堅
자천은 올해 나이 일흔 넷 / 紫泉今年七十四
방동수골의 기이한 모습 지녔네 / 方瞳秀骨形貌異
지상에서 때때로 금석의 소리 들리나니 / 地上時聞金石聲
말투엔 전혀 연화의 기운 없다네 / 口吻渾無烟火氣
눈앞에 가득한 자식 손자들 / 兒孫滿眼前
하나같이 옥기린들이네 / 箇箇玉麒麟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 今日是何日
땅으로 내려온 날이로구나 / 知是謫降辰
왼손엔 게 다리를 잡고 오른손엔 술잔 들고 / 左持螯右把酒
해마다 옥호춘에 늘 취해있네 / 年年長醉玉壺春
자천에게 〈옥호도(玉壺圖)〉시가 있다.
신선이 손짓하며 처음 옷으로 갈아입으라는데 / 仙侶招呼還初服
머리 흔들면서 속세 떠나려하지 않네 / 掉頭不肯辭塵寰
묻노니 무슨 미련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 借問緣何迷不返
귤 속의 즐거움이 상산보다 못하지 않다네 / 橘中之樂不減商山
옥호주만 늘 가득하다면 / 但得玉壺酒常滿
영원히 땅위의 신선 되는 것도 무방하다네 / 不妨永作地上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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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4권 / 시(詩)○면양행음집(沔陽行吟集) 2
무자년(1888, 고종25) 7월부터 임진년(1892, 고종29) 계동(季冬)까지
화정으로 옮겨 살다 9수 〔新寓花井 九首〕
평소 언덕과 골짜기의 본성을 지녔으나 / 素抱邱壑性
계책이 졸렬하여 일정한 거처 없었네 / 謀拙無定居
만년에 먼지 낀 굴레에 얽매어 / 晩來縶塵韁
넘어져 자빠지고 중도에 버림받았네 / 顚仆廢中途
버려져 바닷가로 쫓겨나고 보니 / 棄捐逐海濱
절간에 깃든 몸뚱이와 그림자 외롭네 / 蕭寺形影孤
아름답고 두터운 벗의 뜻으로 / 良厚故人意
집 한 구역을 빌려 주었네 / 僦與屋一區
방이 작아 겨우 사방 한 길이지만 / 室小僅方丈
병든 몸 편히 쉴 수 있어 좋다네 / 猶甘安病軀
동쪽 집에선 솥단지 빌려주고 / 東家借釜錡
서쪽 이웃에서 쌀과 채소 도와주네 / 西隣助米蔬
절굿공이소리에 밥 짓는 연기 일어나니 / 舂杵起炊烟
이것이 엄연한 나의 오두막이라 / 居然是吾廬
오봉이 구름 끝에서 날고 / 五鳳翔雲際
푸르름이 남녘땅에 접했네 / 蒼翠接南榮
그 서쪽에 있는 옥녀봉 / 玉女在其西
아름다운 모습 금병풍을 둘렀구나 / 窈窕出金屛
밭을 끼고 도는 한 줄기 물 / 一水護田繞
사방엔 너른 평야 펼쳐졌네 / 四圍綠蕪平
마을에 사는 대여섯 가호들 / 村中五六家
해 뜨면 김매고 밭가는 일을 하네 / 日出事耘耕
삿갓을 쓴 사람들만 보일 뿐 / 但見褦襶人
말 수레 소리 들리지 않네 / 不聞車馬聲
띠지붕이 울타리로 이어지고 / 茅茨連籬落
박 덩굴이 그 위를 덮었네 / 匏蔓覆其上
밤 깊으면 등불 반짝이며 / 夜深燈火照
웃음소리가 시골 노래와 뒤섞이네 / 笑語雜俚唱
단지 안에는 묵은 보리 있고 / 甁中有宿麥
항아리 속에는 새로 담근 술 있네 / 甕間有新釀
내일이면 남쪽 밭 김을 맨다고 / 明日南畝耘
농부는 아침밥을 재촉하네 / 農夫催晨餉
밭의 북소리는 어찌 그리 빨리 울리는지 / 田鼔何早動
닭은 울었어도 동 트지 않았네 / 鷄鳴天未亮
기장 심기에 남쪽 산이면 족하고 / 種穄南山足
콩 심으려면 서쪽 밭두렁이 있네 / 種豆西疇畔
비바람이 열흘마다 찾아오니 / 風雨浹旬至
풀도 무성하고 좋은 모들 잘 자랐네 / 草盛良苗爛
금년은 왜 그리 장마가 지는지 / 今年何苦霪
지난해엔 왜 그리 가물었는지 / 去年何苦旱
기후 고르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 / 天時諒難齊
운명에 맡긴 채 탄식할 필요 없다네 / 委命不須歎
사람들만 부지런히 힘쓴다면 / 苟用人力勤
가을에 반쯤은 수확할 수 있으리 / 秋來尙收半
오랜 객지생활에 갖옷 갈옷 헤지니 / 久客裘葛弊
동복은 나의 쇠락함을 한탄하네 / 僮僕歎式微
서울에는 벗들도 많건만 / 日下多故舊
소식도 도통 오지 않네 / 落落音書稀
믿을 건 시골의 순박한 풍속 / 所賴鄕俗淳
세태의 염랑으로 기대 어기지 않네 / 不以炎凉違
뜻 맞는 사람 둘 셋이서 / 同志數三人
밤낮으로 내 집 사립문을 찾아주네 / 日夕來欵扉
농사 이야기 들을 만하고 / 農話淡可聽
가져온 술은 기갈을 달래주네 / 持酒慰渴飢
점차 성정이 변해가는구나 / 漸覺情性移
시골에 안둔한 채 돌아갈 것조차 잊을 듯 / 安土欲忘歸
뱁새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히 깃드나니 / 鷦鷯棲一枝
다시 멀리 날아갈 것 무에 있으랴 / 何必更遠飛
동쪽 암자에 구담이 있어서 / 東庵有癯曇
서로 지켜주며 다섯 번 봄을 보냈네 / 相守五經春
의기와 자비를 겸했기에 / 義氣兼慈悲
교분을 맺은 후 힘든 날 함께 했네 / 契闊共苦辛
어찌 사방 유람의 뜻이 없을까마는 / 豈無雲遊志
길 막힌 이 사람을 염려해서였다네 / 念此窮途人
소 울음 들리는 곳으로 이사 오고 나니 / 移寓牛鳴地
자주 고개를 돌리게 되네 / 猶覺回首頻
이제야 옷 남긴 마음을 알겠노라 / 始知留衣情
참된 도를 연모해서가 아니었구나 / 非爲慕道眞
밭길 사이로 찾아온 객 / 客從田間至
떨어진 이슬에 옷이 다 젖었네 / 零露沾衣裳
문밖을 나가 기쁘게 맞이하니 / 出門喜相迎
구중과 양중이 아니겠는가 / 無乃裘與羊
가난해서 대접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 莫言貧無供
탁주가 옹기 잔에 가득하다오 / 濁酒盈瓦觴
상을 마주하고 거문고 뜯으니 / 對床撫枯桐
그 소리 맑고도 유장하네 / 音韻淸且長
계곡 물소리는 어찌 그리 시원한지 / 㵎水何泠泠
바다 산은 아득도 하구나 / 海山正杳茫
곡조를 마치고 한마디 말도 없으니 / 曲罷無一言
진정한 뜻을 얻고서 모든 것을 잊었네 / 眞意兩相忘
오랜 비에 추위 처음 감돌고 / 積雨新凉動
동쪽 봉우리에 달이 막 돋아났네 / 東峯月初生
또닥또닥 가을 다듬질 소리 울리고 / 歷歷秋砧響
자욱한 저녁연기 하늘을 비끼네 / 靉靉夕烟橫
들밭은 끝조차 보이지 않고 / 野田不見際
콩잎엔 이슬이 투명하네 / 荳葉露華明
어슬렁거리며 사념을 그치지 못하니 / 徘徊意未已
먼 길 떠나는 듯 아득하기만 하네 / 悠悠若遠征
돌아보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 回顧忽心省
띳집엔 등불 하나 맑게 비추네 / 茅屋一燈淸
천지는 하나의 거려이고 / 天地一遽廬
백 년은 손가락 한번 퉁길 순간이네 / 百年一彈指
물거품은 서로 일어났다 꺼지나니 / 泡漚互起滅
찰나가 어찌 믿을 만할까 / 須臾安足恃
거대한 집채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 大廈連雲起
아득한 성시를 굽어보네 / 縹緲俯城市
아침엔 위곽의 저택이었다가 / 朝爲衛霍第
저녁엔 김장의 마을에 속하네 / 暮屬金張里
차라리 봉조의 집만 못하나니 / 不如蓬藋室
마음만 편하다면 머물 곳 어딘 줄 알리라 / 心安知所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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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4권 / 시(詩)○면양행음집(沔陽行吟集) 2
무자년(1888, 고종25) 7월부터 임진년(1892, 고종29) 계동(季冬)까지
화정 칠영〔花井七詠〕
장대한 모습은 그릇 되기에 맞지 않고 / 磊砢不中器
오만한 모습은 거만한 사람 같네 / 偃蹇如傲人
누가 너를 버려두라 했는가 / 棄置誰令汝
이 적막한 물가에서 늙어가는구나 / 老此寂寞濱
위는 연봉(蓮峯)의 여윈 바위이다.
영탑에 봄이 오니 / 春來靈塔上
나무들 모두 붉은 옷 입었네 / 樹樹盡着紅
사람 없어도 제 혼자 폈다가 지니 / 無人自開落
봄바람을 원망할 필요 없으리 / 不須怨東風
위는 영탑(靈塔)에서 꽃을 감상한 것이다.
텅 빈 산엔 푸름이 쌓이고 / 山空蒼翠積
비추는 해에 고운 놀이 어지럽네 / 日照綺霞紛
나무꾼 노래가 숲속에서 울리고 / 樵歌響林樾
사람은 고개 구름 속에 있네 / 人在半嶺雲
위는 오봉산(五鳳山)의 맑은 이내이다.
씻은 듯 맑은 가을 하늘 / 秋空明如洗
만 리에 더러운 먼지 사라졌네 / 萬里滅氛埃
구불구불한 봉우리 끝에 달이 떠올라 / 宛轉峯頭月
굳이 어두운 이 찾아와 비추어 주네 / 偏照幽人來
위는 마산(馬山)의 가을달이다.
홰나무뿌리가 바위 구멍을 뚫고 / 槐根穿石竇
성근 별빛이 찬 샘물에 빠졌네 / 疎星落寒泉
쓸쓸히 서리 맞은 잎을 밟노라니 / 蕭蕭踏霜葉
서암엔 아침 안개가 일어나네 / 西庵起早烟
위는 칠천(漆泉)에서 새벽에 물을 긷는 것이다.
저물녘 바람이 눈을 불어 날리는데 / 日暮風吹雪
허공이 흐릿하여 앞 봉우리가 사라졌네 / 空濛失前峯
아침에 창을 밀치고 바라보니 / 朝來拓窓見
우뚝 높이 옥부용이 솟았네 / 突兀玉芙蓉
위는 옥봉(玉峯)의 저녁 눈이다.
밤이 추워서 마을에선 다듬이 소리 그치고 / 夜冷村砧息
종소리가 숲 사이에서 새어나오네 / 鍾聲出林間
노승이 불경 외길 마치니 / 老僧誦佛罷
구름 낀 바다 산에 동이 터오네 / 雲曙海上山
위는 야사(野寺)의 찬 종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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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5권 / 시(詩)○영도고(瀛島稿)
정유년(1897, 광무1) 12월부터 신축년(1901, 광무5) 5월까지이다.
제주잡영 22수 〔濟州雜詠 二十二首〕
삼혈에 신비한 자취 있으니 / 三穴留神蹟
천년 전 첫 터를 연 곳이라 / 千年闢肇基
어찌하여 숭보당에 / 奈何崇報地
향을 내리는 의식을 하지 않을까 / 不見降香儀
고(高)ㆍ부(夫)ㆍ양(良) 삼성혈(三姓穴)이 남쪽 성 밖에 있다. 본래 사전(祀典)에 들어 있었는데 갑자년(1864, 고종1) 이후에 폐지하였으니 실로 흠전(欠典)이라 하겠다.
신령한 구역 속세와 멀어 / 靈區隔世塵
풍속이 주진촌과 흡사하네 / 風俗似朱陳
어린아이들 말소리 활기차지만 / 童稺語音好
응당 세상 피해 온 사람 많으리라 / 應多避世人
읍지(邑誌)에 실린 선인들 제영(題詠)에는 제주(濟州)를 주진촌으로 일컬은 경우가 많다. 대개 세상 밖의 한가로운 구역이라 스스로 서로들 겹사돈을 맺는 것이 옛날의 주진촌과 같다. 근년엔 육지인이 어지러움을 피하여 와서 사는 경우가 많다.
촘촘한 그물로 초가지붕 덮었는데 / 密網羃茅屋
차가운 안개 돌담을 휘감네 / 寒煙縈石墻
종알종알 촌 아낙들 말을 하니 / 喃喃村婦語
풍기가 부상과 비슷하네 / 風氣近扶桑
토속어는 일본어와 발음이 서로 유사하다. 촌 아낙은 더욱 심하다.
산 북쪽은 맑은 바람 많은데 / 山北淸風足
산 남쪽은 습습한 비 내리네 / 山南瘴雨垂
서쪽 밭두둑 일찍 봄일 시작되니 / 西疇春事早
이월엔 노란 꾀꼬리 소리 들리네 / 二月聽黃鸝
이곳에는 꾀꼬리가 없는데, 토속민들이 제호(提壺)를 잘못 알고서 꾀꼬리라고 여긴다.
아스라한 영주산 위 / 縹渺瀛洲上
깊은 구름 속에 난새와 학 머무네 / 雲深鸞鶴停
어느 때에 꼭대기에 올라 / 何時登絶頂
노인성 굽어볼까 / 俯看老人星
멀리 동무산협 바라보며 / 遙望東巫峽
옛날 동천이라 서로 전하네 / 相傳古洞天
그늘진 등성이엔 흰 눈이 남아 있고 / 陰岡留白雪
단조에선 푸른 연기 흩어지네 / 丹竈散靑煙
설날에 그네 타러 모이니 / 元日鞦韆會
단장한 모습 나무 끝에 나타나네 / 靚妝出樹端
비단 저고리에 땀과 분 배이는데 / 羅襦沾粉汗
걱정 없이 추위 속에 노는구나 / 不怕弄輕寒
봄을 맞아 고각 부니 / 迎春鼓角發
먼저 목우 보내 밭을 가네 / 先遣木牛耕
먼 객지에서 좋은 계절 만나니 / 殊域逢佳節
문 너머엔 웃으며 얘기하는 소리 / 隔門笑語聲
물 지느라 여인의 어깨 무겁고 / 擔水香肩重
땔감 패느라 팔은 기울었네 / 揎薪玉腕斜
생각난다 일찍이 서울 아이가 / 憶曾京裏子
사흘 밤 내 집에 묵고 간 때가 / 三夜宿儂家
낭군은 조천포에 살고요 / 郞住朝天浦
저는 산 아래 물가에 살아요 / 妾居山底瀕
봄이 와 장삿배 모여들 때면 / 春來商舶湊
두 곳의 풍경이 새롭답니다 / 兩地物華新
삼여의 등불 아래 고생함이 / 三餘燈下苦
장사로 이익 거머쥠만 못하네 / 不及操奇贏
힘을 써서 조수 타고 나갔다가 / 努力乘潮去
돌아오면 오마의 영광 누린다네 / 歸來五馬榮
귤이 금색의 병과도 같은데 / 橘子如金甁
속에는 벽옥주 담겨 있을 듯 / 中藏碧玉酒
해마다 공물 꾸러미로 올려지나니 / 年年登貢包
삼가 성상의 장수 축원한다네 / 恭祝聖人壽
병귤(甁橘)
비취빛 소매 단훈에 비치니 / 翠袖映檀暈
낙비가 처음 반혼한 듯 / 洛妃初返魂
금옥에서 살지 못한 채 / 不逢金屋貯
초췌히 울타리 곁에 뿌리 내렸네 / 憔悴傍籬根
수선화(水仙花)
집집마다 많이들 방목을 하여 / 家家饒放牧
말들이 산림에 가득하구나 / 馬畜彌山林
천한의 동물이 아니건만 / 不是天閑物
몽골 사람 부질없이 애를 썼구나 / 蒙人枉費心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제주(濟州) 방성분야(房星分野)가 말을 기르기에 적합하다 하여 관리를 파견해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지금도 목축이 여전히 왕성하지만 모두 과하마(果下馬) 종류이다.
갖옷 입고 바위 언덕에 자며 / 皮服宿巖阿
밭에 들불 놓고 콩과 삼씨를 심네 / 熂田種菽麻
구름 헤치고 돌밭 갈면서 / 披雲耕白石
한 달이 넘도록 집에 가지 못하네 / 經月不歸家
균립과 종건 / 筠笠與鬃巾
모두 가난한 여자 손에서 나왔네 / 皆從寒女出
나라 사람 절반쯤이 / 遂令半國人
이에 힘입어 머리카락 갈무리하네 / 賴此藏頭髮
가련하구나 전복 따는 여자 / 可憐採鰒女
숨비소리 내며 깊은 물 헤엄치네 / 歌嘯游深淵
흡사 교인처럼 잠수를 하니 / 恰似鮫人沒
출렁이는 흰 파도 실로 아득하구나 / 雲濤正渺然
아궁이에 불 피우나 굴뚝은 없고 / 有竈煙無囱
관솔불 켜 밤에는 등잔을 대신하네 / 燃松夜代釭
인온으로 따스한 기운 생기면 / 絪縕生暖氣
온 방안에 노우향이라네 / 滿室老牛香
남편은 한가롭고 아내 홀로 바쁘니 / 夫閒婦獨忙
집안 살림 오직 여자에게 달려 있네 / 家政在閨壼
한 해 다하도록 거친 묵밭 매건만 / 終歲治荒畬
명절에나 미반을 먹는구나 / 良辰噉美飯
속칭 도미반(稻米飯 쌀밥)을 미반(美飯)이라 한다. 오직 세시(歲時) 영절(令節)에만 그것을 먹을 수 있다.
패랭이 갓을 쓰고 가죽 옷 껴입고 / 繩冠擁狗裘
스스로 청금자라 말하네 / 自道靑襟子
일생 동안 관아 문을 알지 못한 채 / 生不識官門
끝내 부리에게 빌붙음 부끄러워하네 / 終羞贅府吏
향교와 서원에 출입하는 선비를 일컬어 청금(靑襟)이라 하는데, 뭍에서 사대부를 지칭하는 말과 같다.
산과 계곡에는 흉악한 짐승 없고 / 山谿無惡獸
들 이랑에는 남은 양곡 있다네 / 野畝有餘糧
가무하며 신령의 마음 기쁘게 하고 / 歌舞神情悅
광양당에서 풍년을 빈다네 / 祈年廣壤堂
옛 현인들 중에 불우한 이 많았으니 / 昔賢多不遇
이 땅이 곧 상담이로구나 / 此地卽湘潭
남긴 발자취 빽빽하게 널렸으니 / 遺躅森羅在
그 풍류 두남을 비추네 / 風流映斗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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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5권 / 시(詩)○영도고(瀛島稿) 정유년(1897, 광무1) 12월부터 신축년(1901, 광무5) 5월까지이다.
피란 12절구 2월 〔避亂十二絶句 二月〕
온 성엔 눈보라와 울부짖는 귀신 소리 / 滿城風雪鬼呼聲
속임수로 민란 야기할 줄 누가 알았으랴 / 誰知譎計因民起
험지에 웅거해 끝내 발호하는구나 / 據險終看跋扈情
난민(亂民) 방갑(房甲)이 백성들의 원망을 바탕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켰다. 모두 모립(毛笠)에 백건(白巾)을 착용하고 소지한 방망이에 ‘남(南)’ 자를 써서 표식을 삼았으니 대개 남학당(南學黨)이다. 남학당이란 산에 제사를 지내 복을 구하며 배국신지(背國信識)하는 도당인데 고을의 성(城)을 빼앗아 근거지를 삼고 밤새도록 시끄럽게 외치니 그 소리가 귀신 소리 같았다.
조천포 의병들 기세를 보고 달아나니 / 朝天義旅望風奔
유배객 정신없어 마침내 무리를 잃었네 / 謫客蒼黃遂失群
이런 환난 함께 겪다 다시 혼자 가려니 / 同此患難還獨去
갈림길에서 돌아볼 제 눈물이 수건 적시네 / 臨歧回首淚沾巾
역적 방갑이 성(城)을 근거지로 모반하여 유배객을 협박해 함께 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유배객들이 밤을 타서 성 밖으로 도주해 조천포(朝天浦)에 이르러 전 판관(判官) 김응빈(金膺斌)과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백성을 모집해 역적을 토벌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적 방갑이 무리를 거느리고 이르자 의병들이 궤멸되었으므로 유배객들이 일시에 달아나 숨었다. 나는 이 대감과 더불어 동쪽 바닷가로 달아났다.
삭풍이 살을 에는 오경의 새벽하늘 / 朔風如割五更天
돌길 험하여 말이 나아가질 못하네 / 石逕崎嶇馬不前
막다른 길에서 완적처럼 통곡할 제 / 行到路窮成阮哭
망망한 바닷물 푸른 하늘과 맞닿았네 / 茫茫海水接靑天
밤에 70리를 가서 지미산(地尾山)을 지나니 제주의 지경이 끝났다. 앞으로 큰 바다에 임했으나 배가 없어 건널 수 없었다.
이르는 곳마다 도망자인가 의심하는데 / 到處皆疑畏約踪
주인은 의기로 파가를 각오하네 / 主人義氣破家容
비바람 친 열흘간 동쪽 집에 머무니 / 一旬風雨溪東屋
지치고 아픈 몸에 닭과 기장밥 권하네 / 鷄黍慇懃養病慵
연로(沿路)의 촌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수배자인가 의심하여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돌〔力堗〕 마을에 이르자 선달(先達) 부남규(夫南珪)가 강개하여 자기 집에 머물기를 청하며 “제가 파가(破家) 지경에 이르더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미치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서 열흘을 유숙하게 하고 음식을 제공하며 대접을 매우 정성스럽게 하였다.
바다 동쪽에 홀로 솟은 성산 / 城山獨立海門東
절반은 구름 끝에 절반은 물 속에 있네 / 半入雲端半水中
갓 솟은 아침 햇빛 석벽을 비추면 / 朝日初升光照壁
맑은 하늘에 옥부용이 솟은 듯 / 晴空擎出玉芙蓉
바닷가에 산 하나가 마치 부용화가 꽃받침을 펼친 듯한데, 온 산이 모두 바위이다. 그 꼭대기는 넓고 평평하고 석벽(石壁)이 사방을 에워쌌기 때문에 ‘성산(城山)’이라 부른다. 성산 일출은 제주 10경(景)의 하나이다.
박릉의 의사 단심을 맹세하여 / 博陵義士矢心丹
우부를 고장에서 갖고 놀았네 / 玩弄愚夫股掌間
요사한 뱀 꾀어 구멍 밖으로 나오게 했거니 / 已誘妖蛇輕出穴
어찌 굶주린 호랑이를 산으로 가게 놓아주랴 / 肯令餓虎縱歸山
유배객 최형순(崔亨淳)이 역적 방갑에게 거짓으로 기용되는 척하며 은밀히 진압을 도모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일에 들으니 최형순이 역적 방갑을 성 밖으로 나가도록 유인하고서 성문을 닫은 채 저항하다가 무리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방갑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방성이 어젯밤 도구리에 떨어졌으니 / 房星昨夜落塗邱
영웅의 운명 다한 것 어찌하리오 / 無奈英雄運盡秋
차고 다닌 도장 주머니 그대로 있으려나 / 肘下璽囊猶在否
어리석고 완악함이 죽어서야 끝이 났네 / 冥頑直到死方休
역적 방갑이 성(城) 서쪽 40리 도구리(塗邱里)에서 패배하여 죽었다. 항상 말하기를 “제주는 방성분야(房星分野)이고, 내 성이 방(房)이니 마땅히 제주의 성주(城主)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또 “국운은 이미 쇠하였으니 마땅히 교대하여 일어나는 진인(眞人)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죽은 후에 그의 주머니에서 목사인(牧使印)을 얻었다. 팔꿈치 아래의 옥쇄(玉璽)는 동한(東漢) 장풍(張豐)의 고사(故事)를 사용한 것이다.
열흘 위세 한바탕 꿈처럼 헛되어 / 十日威風一夢虛
가만 생각하니 우습고도 한숨 나오네 / 靜思堪笑亦堪歔
그에게 묻노니 무슨 수로 무리를 얻었는가 / 問渠得衆緣何術
수달이 깊은 못으로 물고기 몰았음을 알겠네 / 知有深淵獺驅魚
역적 방갑이 팔을 휘두르며 크게 호령하니 세 고을이 메아리치듯 호응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백성들이 그를 애석히 여겨 ‘방장군(房將軍)’이라 일컬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학정(虐政)에 시달리느라 순(順)과 역(逆)의 분간도 못해서 그런 것이다.
물가 마을 일대는 얕은 물굽이에선 / 浦村一帶淺河灣
갈매기며 어부 모두 돌아감을 잊었네 / 鷗鳥漁人共忘還
객지의 풍경 죄다 기록할 수 없는데 / 客裏光陰渾不記
숱한 말발굽에 산다화는 지는구나 / 山茶花落馬蹄殷
소금가마 연기 걷히고 물결 잔잔한데 / 煙消鹽竈浪汶平
전복 따는 마을 아낙 쌍쌍이 걸어가네 / 採鰒村娥兩兩行
맨발로 물결 타니 버선도 필요 없이 / 白足凌波不用襪
수정궁 속 발놀림 경쾌하구나 / 水晶宮裏步輕盈
위의 두 수(首)는 방적(房賊)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을의 성(城)으로 향하면서 길에서 본 것을 기록했다.
겁우와 남풍 한바탕 지나간 뒤 / 劫雨藍風過一塲
곳곳의 마을 집들 심히 황량해졌네 / 東隣西舍劇荒凉
주인집은 복도 두터워 불길을 넘기니 / 主家福厚超炎火
제비도 옛 들보에 돌아와 깃드는구나 / 客鷰還棲舊日樑
조천리는 지난날의 난리에 인가가 많이 불타고 훼손되었다. 다만 김 해미(金海美)는 평소에 민심을 얻어 온전할 수 있었으므로 일행이 다시 머물러 잤다.
난리 때 삼성 상성처럼 흩어진 사람들 / 亂時人事各參商
돌아와 다시 침상을 맞댈 줄 어찌 알았으랴 / 豈意生還復對牀
서로 축하하며 술 추렴해 크게 취하고 / 相慶醵錢謀一醉
무사한 지금부턴 봄 경치 완상하세나 / 從今無事賞春光
입성(入城)해 보니 여러 유배객들이 있었는데 각각 난리를 겪은 고통을 얘기했다.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지만 정말 처음 짐작대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드디어 술을 따라주며 서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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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6권 / 시(詩)○동둔고(東芚稿) 신축년(1901, 광무5) 7월부터 정미년(1907) 6월까지이다.
신추잡영 5수 〔新秋雜詠 五首〕
잠깐 비 개니 맑은 햇빛 좋고 / 乍霽晴光好
작은 뜰에 꽃과 나무 그윽하다 / 小庭花木幽
담장 가 풀벌레 소리 애절하니 / 牆邊蟲語切
맑은 가을 가까움을 알겠네 / 知是近淸秋
거미줄 친 약초를 점검하고 / 檢藥蛛絲滿
좀벌레 많은 서책 햇볕 쬐네 / 曝書蠧子多
힘없는 모기야 두렵지 않으나 / 殘蚊不足畏
저 쉬파리를 어이할까 / 其奈靑蠅何
풀이 무성하니 콩밭 매기 바쁘고 / 草盛荳耘忙
비가 잦으니 배추밭 습하네 / 雨頻菘地濕
그동안 어찌 그리 가물었던가 / 向來何苦乾
백성들 바람을 다 충족시키긴 어려우리 / 民望儘難洽
정원의 한 쌍 대추나무 / 園中雙棗樹
이쪽저쪽 가득히 열매 맺었네 / 結子滿東西
꾸짖어 지켜줄 힘이 없으니 / 無力能呵護
아이들이 채마밭 두둑을 밟는구나 / 兒童踏菜畦
갯가의 달 밀물 때면 / 浦月當潮滿
맑은 광채 특별히 많아지네 / 淸光分外多
앞마을 노랫소리 북소리 그치니 / 前村歌鼓歇
적막하게 물가 모래 비추는구나 / 寂寞照汀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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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6권 / 시(詩)○동사만음(東槎謾吟)
도쿄 잡절 10수 〔東京雜絶 十首〕
바다 굽이 동쪽 끝은 호수에 이어져 / 海灣東盡接湖沿
웅도를 에워싸니 억만 년의 터전이라 / 襟帶雄都奠億年
백만 가구가 해산물을 배 불리 먹고 / 百萬人家飽魚鼈
곳곳마다 누대가 거울 속에 걸린 듯 / 樓臺處處鏡中懸
동서로 두 줄기 물 날아오르는 봉황 모습 / 二溜東西起鳳凰
십 리 맑은 해자는 궁궐 담장 둘렀네 / 淸濠十里繞宮墻
구중궁궐에 심원하게 의상 드리웠으나 / 九重穆穆垂衣坐
나라 안엔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네 / 國內無人不着忙
얼굴을 때리는 검은 먼지로 낮에도 어둑한데 / 撲面緇塵晝亦昏
시가지 이르는 곳마다 풍경이 번화하네 / 市區到處物華繁
왕과 제후의 저택은 빗속에 차분한데 / 王侯第宅還涔寂
종일토록 수양버들 녹음만 문에 이르네 / 盡日垂楊綠到門
상아 찌와 황색 책갑과 거울을 쌓아놓고 / 牙籤緗帙積琅環
구경하는 사람들 맘껏 보도록 하네 / 一任遊人盡意看
문물에 여전히 천년의 자취 남아 있어 / 文物猶存千載跡
역대의 옛 복식이 엄연하구나 / 儼然歷代古衣冠
일본인은 빙람처럼 잘 배우지만 / 東人善學似氷藍
기묘한 솜씨로 능히 창조하는 데는 손색이 있네 / 終遜奇機刱造能
제일 가는 건 몸 가득한 충군애국의 혈기라 / 最是一腔忠愛血
창을 들고 진영에 나아가니 기세 늠름하구나 / 荷戈赴陣氣稜稜
해가 환히 떠오르면 북을 둥둥 울리어 / 徵鼓鼕鼕出日明
많은 청소년들 일제히 등교하네 / 升堂濟濟子襟靑
해마다 시험 쳐 꾀꼬리가 나무 옮기듯 진학하고 / 年年考藝鶯遷木
저마다 바람 타고 곤이 되어 바다로 가네 / 箇箇乘風鯤化溟
각종 생업에 힘쓰다 저물면 일을 멈추고 / 營營百業晩休勞
해 질 녘 공원에서 맘껏 산보하네 / 日暮公園散步驕
반관과 주루 마흔여덟 곳이라 / 飯館酒樓四十八
둥근 등 밤새 밝고 생황 퉁소 소리 들끓네 / 毬燈徹夜沸笙簫
도쿄는 큰 화로 같아 미칠 듯하니 / 京裏洪爐欲發狂
후지산 눈꽃도 녹아내린다 하네 / 已聞富岳雪花滂
귀인들 여름철엔 많이들 휴가가니 / 貴遊暑月多休沐
산속에 별장 두지 않은 사람이 없네 / 山澗無人不置庄
살아 있을 땐 죽이려 하다 죽으면 슬퍼하니 / 生前欲殺死傷之
하늘 그물 넓어도 사사로움 금치 못하네 / 天網恢恢不禁私
길가에 동상으로 서 있는 사람을 보라 / 請看街頭銅像客
누가 걸오하여 당시를 거스른 자 그르다하랴 / 誰非桀驁忤當時
도쿄의 여자들 꽃보다도 예뻐 / 東京兒女豔於花
곱게 화장하고 치마에 나막신 신고 사뿐사뿐 / 裙屐珊珊翠黛斜
신바시 아침 햇살에 낭군 맞이해 가는데 / 新橋朝日迎郞去
귤 가득한 수레에 향긋한 바람 일어나네 / 拂路香風橘滿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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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집 제1권 / 시(詩) / 오원(吳瑗)
어랑촌 8영〔漁郞村八詠〕
박사달(朴士達)이 살고 있는 어랑촌 8경을 위하여 시를 구하였다. 내가 예전에 듣건대, 마을의 그윽한 승경은 비록 동남방의 경치 좋은 곳이라 해도 우열을 논할 만하다고 하였는데, 사달의 말을 들으니 더욱 먼곳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 각기 제재로 하여 1장씩 지었다. 누가 알겠는가? 머나먼 변경 땅에서 다시 이 별천지를 얻을 줄을. 만약 내가 사방을 돌아다니다 다행히 사달을 끌고 함께 수중대(水中臺)로 올라가 술을 마신 후 이 시를 읊어서 주면 더욱 흥취가 있으리라.
고요한 강물 찬 모래에 날지 않고 모였는데 / 水靜寒沙集不飛
갈대꽃은 눈과 같이 저녁에 펄펄 내리네 / 荻花如雪晩霏霏
홀연히 울음소리 변경 산에 끊어지자 / 忽然叫斷關山響
앞 호수에 달 뜨고 사람은 밤에 돌아가네 / 月上前湖人夜歸
위는 갈대섬에 잠자는 기러기[蘆洲宿鴈]이다.
발랄하게 고기들은 녹조 그늘 속 노니는데 / 潑剌游魚綠藻陰
안개 낀 낚시터에 또한 무심히 내려 앉네 / 煙磯飛下亦無心
부용꽃들 맑디맑고 석양빛은 따스한데 / 芙蓉澹澹斜光暖
새하얀 털 한들한들 옥같은 물 깊었구나 / 搖漾霜毛玉溆深
위는 하담에서 목욕하는 해오라기[荷潭浴鷺]이다.
구슬 나무 차가운 빛 옥경은 아득한데 / 琪樹寒光杳玉京
바다 어귀 가는 눈발 새벽 되자 맑게 갰네 / 海門微雪曉新晴
펄럭펄럭 흰 비단 옷 분별되지 않은 채로 / 翩翩不辨縞衣影
끼룩끼룩 푸른 하늘서 두세 소리 들리네 / 搖戛靑霄三兩聲
위는 부서진 뗏목 위의 춤추는 학[斷槎舞鶴]이다.
가을 산 은은하고 물은 비단 같이 고운데 / 秋山隱隱水如紗
맑은 하늘 어린 노을 속 오리떼가 비치네 / 霞映晴空鶩映霞
석양에 안개 낀 포구에 날아오니 / 日暮飛來煙浦口
봄바람 불어 붉은 살구꽃을 흔드네 / 春風吹拂紅杏花
위는 저녁노을 속에 날아가는 오리떼[落霞飛鶩]이다.
물 남쪽은 향기론 풀 북쪽은 연기 어렸는데 / 水南芳草水北煙
한 곡조 유양하게 높은 언덕에 울리네 / 一曲悠揚響高原
푸른 소는 절로 봄바람 부는 길 밟는데 / 靑牛自踏東風路
한낮에 복사꽃 핀 마을은 보이지 않네 / 日午桃花不見村
위는 잔디 둑에 울리는 목동의 피리소리[莎堤牧笛]이다.
서풍 불어 이슬도 찬 여뀌꽃 핀 모래섬 / 西風露冷蓼花洲
뱃노래 가락 속에 저물녘에 배를 대네 / 欸乃聲中晩泊舟
달빛 비친 남쪽 배에 사람 말소리 고요한데 / 月照南船人語靜
흰 갈매기 날아오른 바다엔 가을 들었네 / 白鷗飛上海門秋
위는 여뀌꽃 핀 언덕에 울리는 고기잡이 노래[蓼岸漁歌]이다.
푸른 바윈 큰 호수 연기 속에 우뚝 솟았고 / 蒼巖逈出太湖煙
굽은 가지에 달 걸리고 하늘은 맑게 갰네 / 月在虬枝正霽天
금물결 출렁출렁 유리같이 싸늘하니 / 金波灧灧琉璃冷
물밑 잠자던 어룡이 놀라 일어나겠네 / 驚起魚龍水底眠
위는 송대 위에 뜬 갠 달[松臺霽月]이다.
물가 버들은 푸릇푸릇 늘어지려 하는데 / 水邊楊柳靑欲低
삿갓 쓴 사람이 끊긴 다리 저쪽으로 가네 / 篛笠人歸斷橋西
숲 가랑비는 저녁 되자 산빛 함께 그치니 / 林霏暮共山光歇
때때로 엷은 구름이 푸른 시내를 지나가네 / 時見微雲過綠溪
위는 유정에 내리는 성긴 비[柳亭疏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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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집 제2권 / 시(詩)
가야사영〔伽倻四詠〕
곡구부터 좋은 경치가 시작되어 / 谷口幽事初
숲 속 꽃에선 고운 새들이 우네 / 林花鳴好鳥
성근 소나무는 .붉은빛 단풍에 둘러싸이고 / 松疎蔭丹屛
청랑한 맑은 시내물 휘돌아 흐르는구나 / 泠泠淸澗繞
고색창연한 모래와 자갈의 빛깔 / 古色濯沙礫
천연스러워 작은 것도 꺼리지 않고 / 天然不嫌小
잔잔한 여울물에 저무는 산빛 일렁이니 / 微湍盪山暉
저녁 기운이 자못 고즈넉하구나 / 夕氣頗窈窕
바위에 걸터앉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 跂石不能去
맑은 풍경 소리 구름 너머에서 들려온다 / 淸磬來雲表
이상은 옥병계(玉屛溪)이다.
구불구불한 산속 계곡을 올라와 / 山溪多曲折
봄 나무에 타고 온 말을 매고 보니 / 春木繫遊驪
가파른 바위 좌우로 벌려 있고 / 危巖左右開
푸른 물이 그 사이로 내달린다 / 碧流中奔馳
그 물 떨어져 방원형 못이 되었으니 / 落爲方圓潭
앉아서 보는 것 온통 맑은 물결이라 / 坐弄皆淸漪
내가 거친 들판에서 와서 / 我來荒野中
이리 특별한 경치를 볼 줄 알았으랴 / 不謂得斯奇
창랑곡을 부르고 있노라니 / 仍歌滄浪曲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진다 / 山日落遲遲
이상은 석문담(石門潭)이다.
표연히 명아주 지팡이를 끌고 / 飄然負藜杖
물의 방향 묻지 않고 가노라니 / 不問水西東
바위의 광채 점점 선명해지고 / 巖光漸明鮮
물은 안개 속으로 떨어지는구나 / 水落煙靄中
높은 벼랑이 자꾸만 물을 뿜어내고 / 高崖屢噴薄
세차게 산바람 몰아치는데 / 颯沓來山風
흰구름은 사람을 쉬 혼미하게 하여 / 白雲易迷人
신령한 근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어라 / 靈源行不窮
봄옷을 푸른 나무에 걸어 놓고 있자니 / 春衣掛靑樹
석담이 맑게 허공을 비춘다 / 石潭澄映空
이상은 와룡담(臥龍潭)이다.
계곡에 이르니 돌이 길을 이루고 / 臨溪石爲徑
꽃에 맺힌 이슬 아직 마르지 않았네 / 花露濕未收
푸른 담쟁이 넝쿨 속으로 길을 잘못 들어 / 誤落靑蘿中
이내 푸른 연못을 만나 머물게 되었구나 / 仍逢碧潭留
폭포수가 옷을 온통 다 적시고 / 懸溜灑滿衣
가파른 절벽이 떡하니 다가서네 / 危壁立當頭
그윽하니 인간 세상이 아닌데 / 窈然非人境
숲 속 새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구나 / 林鳥下更幽
맑고 시원한 산수의 뜻은 / 淸泠山水意
눈과 귀하고만 대화를 한다네 / 獨與耳目謀
이상은 옥량폭(玉梁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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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집 제3권 / 시(詩)
잡영〔雜詠〕
닭 우는 소리에 마을을 나서니 / 鳴雞出籬落
숲 언덕에 새벽 햇살이 깨끗하네 / 初景淨林臯
시내 언덕에 나뭇잎 다 떨어지니 / 川原木葉盡
날이 갈수록 앞산이 높음을 깨닫네 / 日覺前山高
두 번째〔其二〕
맑게 갠 햇살이 앞 들창을 비추고 / 晴旭正前牖
그윽한 샘물 소리 작은 서재에 울리네 / 幽泉響小齋
깊숙이 들어앉아 주아를 읽으니 / 深坐讀周雅
마치 악기 연주와 어우러지는 듯하네 / 聲如金石諧
세 번째〔其三〕
겨울인데도 따뜻한 날씨에 / 冬日亦暄和
구름과 노을에 둘러싸인 그윽함이 어여쁘네 / 雲霞媚幽獨
물가 누각은 성긴 숲 속에 숨었는데 / 水閣隱疎林
지팡이를 옮겨 폭포 소리를 들으러 가네 / 移筇去聽瀑
네 번째〔其四〕
석양이 앞산에 반사되니 / 夕照返前山
바위 골짜기 또렷이 보이네 / 分明見巖谷
산 이내 아직도 엷게 남아 있는데 / 山靄澹仍在
숲에 사는 새는 돌아가 자려 하네 / 林禽歸欲宿
다섯 번째〔其五〕
냇가에 바람 소리 새벽 되자 크게 울리고 / 溪風曉多響
마을의 절구 소리는 서로 이야기하는 듯하네 / 村杵如相語
서리꽃이 창문을 뚫고 밝게 빛나니 / 霜華徹戶明
앞 봉우리에 동트는 것 아니라네 / 非是前峰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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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집 제3권 / 시(詩)
기러기〔鴈〕 이하 네 수의 시는 모두 월과(月課)로 지은 것이다.
변방에서 와서 강가로 내려가니 / 來從沙塞下江潭
날씨 따라 약속이나 한 듯 북으로 또 남으로 / 寒暖如期北又南
긴긴 밤 처량한 소리는 달과 함께 차갑고 / 夜永悽聲兼月冷
높은 바람에 성긴 행렬은 구름과 함께 어울리네 / 風高疎陣與雲參
규중 여인 비단 마르는 정이 어쩜 그리 지극한지 / 閨人裁錦情何極
귀양 온 나그네 옷상자 열며 한을 견디기 어렵네 / 遷客開籠恨未堪
아득하게 진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노라니 / 且看冥冥塵外擧
불안하게 곡식 낟알 다투는 부끄러움은 없으리 / 稻粱刺蹙得無慙
메뚜기〔蛩〕
텅 빈 뜰 그윽한 풀섶에 이슬 방울 차가운데 / 空庭幽草露華涼
찌륵찌륵 슬프게 긴 밤 내내 울어 대네 / 喞喞悲吟競夜長
가을 소리 불러일으키며 온갖 구멍에서 나오니 / 唱起秋聲生萬竅
서리 소식 알려 오며 외로운 침상에 밀려드네 / 報來霜信逼孤床
천기가 감격하니 만물은 무슨 생각일까 / 天機感激物何意
계절이 바뀌니 사람은 저 홀로 상심하네 / 節運推遷人自傷
문득 생각나네, 곤궁한 동네의 텅 빈 베틀에 / 却念窮閭空杼柚
잠 못 드는 가난한 아낙의 마음만 바쁠 것이 / 不眠寒女秪心忙
낙엽〔落葉〕
이끼 낀 오솔길에 어지러이 흩어져 사립을 막으니 / 紛披苔徑擁柴門
바스락바스락 우수수 소리 저녁에도 시끄럽네 / 摵摵蕭蕭暮響繁
서리에 시들어도 색깔을 드러낼 수 있고 / 霜悴却能呈色相
바람에 흩날려도 갑자기 동산을 떠나지 않네 / 風飄未遽別林園
피고 지는 이치 있어 물리를 미루어 볼 것이니 / 衰榮有理宜推物
무단히 열리고 닫히며 서로 뿌리를 이루네 / 翕闢無端互作根
네가 아니었으면 굳은 절개를 어찌 알았을까 / 微爾何由知勁節
곧은 소나무 눈에 뒤덮여도 푸른 가지 남아 있네 / 貞松飽雪翠柯存
새벽 서리〔曉霜〕
청량한 가을 기운 새로이 위세를 떨치니 / 淸商一氣布新威
겹겹의 원앙와 뚫고 냉기가 휘장에 밀려드네 / 瓦重鴛鴦冷逼幃
갈대밭서 보금자리 찾는 기러기 예전에 왔던 곳 찾아 헤매고 / 宿鴈蘆洲迷舊處
옥우에 뜬 달은 남은 빛을 사양하네 / 寒蟾玉宇讓餘輝
흐르는 세월이 아쉬운 지사는 거울 보는 것이 근심스럽고 / 惜年志士愁窺鏡
고향 그리는 나그네는 겨울옷 주는 꿈을 꾸네 / 懷土征夫夢授衣
단풍나무 숲에 가을 색태 더해 가고 / 獨看楓林增色態
온 산의 붉은 비단이 아침해에 비치는 것을 홀로 바라보네 / 滿山紅錦映朝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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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집 제5권 / 시(詩)
귀천잡영〔歸川雜詠〕
흰 모래 맑은 강물 지팡이 앞에 펼쳐지고 / 沙白江淸拄杖前
고깃배는 날 저물자 갈대꽃가에 정박하네 / 漁舟晩泊荻花邊
여느때처럼 〈도산곡〉을 애송하는데 / 尋常愛誦陶山曲
서너 촌가가 저녁 연기에 숨어버리는구나 / 三四村家隱夕煙
두 번째〔其二〕
긴 물가 버드나무 가을을 견디지 못하니 / 長洲楊柳不禁秋
호숫가 누각에서 꾀꼬리 소리 듣던 것 생각나네 / 憶聽黃鸝湖上樓
흘러가는 세월 저 가는 물과 다투든 말든 / 遮莫流年爭逝水
안개 낀 물결 속에 조각배 하나 자재로워라 / 煙波自在一扁舟
세 번째〔其三〕
출처에 대한 높은 뜻 원하던 것과 어그러졌는데 / 落落行藏與願違
전야에 머뭇거리는 것이 어찌 진정 돌아가는 것이랴 / 遲回田野豈誠歸
강호의 근심과 즐거움 한이 없는 일인데 / 江湖憂樂無窮事
백구는 내가 기심을 잊지 못했다 비웃는구나 / 白鳥嗤吾未忘機
네 번째〔其四〕
희디흰 강물고기 몇 자는 족히 되지만 / 白白江魚數尺强
끼니를 거르지 않을 만큼 돈이 있으니 / 有錢還不闕飯羹
앞개울 저녁 낚시 애오라지 흥만 불러일으키고 / 前溪暮釣聊牽興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어 방생을 하노라 / 旋付兒曹與放生
다섯 번째〔其五〕
서리 이슬 내린 강 언덕 해 저문 가을날 / 霜露江臯日夕秋
온 숲의 울긋불긋한 단풍 시냇물에 비치네 / 千林紫綠照溪流
청려장 짚고 발길 가는 대로 시내 다리 걷고 / 溪橋信步靑藜在
어슬렁어슬렁 호숫가로 나가 작은 배를 희롱하네 / 懶出湖邊弄小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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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권 / 삼사수창록(三槎酬唱錄) / 이정귀(李廷龜)
강선루(降仙樓)의 시에 차운하다. 7수
열두 봉우리가 한 시내를 에워싼 여기 / 十二峯巒繞一川
외로운 누대가 아득히 뭇 신선들 부른다 / 孤樓縹緲引群仙
봉래산은 찾기 어려운 곳이 아니거늘 / 蓬萊不是難尋處
무슨 일로 티끌 세상에 삼십 년 보냈느뇨 / 底事塵中三十年
금단(金丹)의 비결을 치천에게 물을 길 없으니 / 丹訣無緣問稚川
알지 못하겠어라 인간 세상에 신선 있는지 / 不知人世有神仙
행여 오늘 밤 이 누각에 묵지 않는다면 / 儻無今夜樓中宿
거의 덧없는 백년 평생을 그르치고 말리라 / 幾誤浮生此百年
무산의 밝은 달이 긴 시내에 잠기고 / 巫山明月浸長川
학의 등에 맑은 바람은 신선을 보낸다 / 鶴背泠風送羽仙
당시 누각 앞에서 젓대 불고 지났느니 / 當日樓前吹笛過
창오에 아침저녁 몇천 년이 흘렀는가 / 蒼梧朝暮幾千年
누각 앞 가을 물이 평평한 시내 뒤집으니 / 樓前秋漲倒平川
야밤에 물결 소리가 골짜기의 신선 깨운다 / 夜半波聲撼洞仙
외로이 굽은 난간 기대매 묽은 달빛 별빛 / 孤倚曲欄星月淡
나 사는 이 세상 어느 때인지도 모르겠어라 / 不知身世是何年
세월이 냇물보다 빠르다 매양 탄식했노니 / 每歎流光疾逝川
단사로 신선을 배워 이룰 길은 영영 없구나 / 丹砂無計學飛仙
지금에 와서야 삼생의 꿈 한번 깨었노니 / 如今一覺三生夢
인간 세상 세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노라 / 不數人間甲子年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고 물은 시내에 가득해 / 月滿高樓水滿川
가슴속이 몹시도 맑으니 바로 참신선이로세 / 胸襟淸澈箇眞仙
두건 젖혀 쓰고 낭랑히 시 읊으매 도무지 한가해 / 欹紗朗嘯無餘事
비로소 지난 이십구 년의 잘못을 깨달았노라 / 始覺前非卄九年
관서의 형승으로는 성천을 일컬어 왔고 / 關西形勝說成川
누대가 번화하기로는 이 강선루 제일일세 / 樓觀繁華是降仙
눈 들어 보면 산하는 옛날 그대로이건만 / 擧目山河渾昔日
여기 오르매 태평하던 시절과 같지 않구나 / 登臨不似太平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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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2권 / 무술조천록 상(戊戌朝天錄上)
〈주필산(駐蹕山)〉 시에 차운하다. 4수
사방 산들 읍하는 품이 용들과 같고 / 朝山拱揖似群龍
늙은 돌에는 어가(御駕)의 자취가 남았어라 / 老石猶留駐蹕蹤
천고에 비견할 이는 오직 한 무제라 / 千載比肩惟漢武
진 시황은 괜스레 동봉하였을 뿐이지 / 秦皇秖是謾東封
중원에서 곤욕스럽자 팔룡을 몰고서 / 志阨中州駕八龍
일 년 동안 먼 변방에서 괜히 머물렀구나 / 一年荒塞謾勞蹤
당시의 위감은 유직으로 일컬어졌는데 / 當時魏鑑稱遺直
이 지경 되도록 어이 충간 한 번 없었나 / 到此何無諫一封
우레처럼 질타하며 노룡을 채찍으로 쳤으니 / 叱咤雷霆鞭老龍
비록 헛수고라곤 해도 자취는 또한 호탕하여라 / 縱云勞費亦豪蹤
어이 알았으랴 천하를 모두 석권하려던 계획 / 何知席卷全隋業
도리어 이 조그만 나라에 의해 좌절될 줄을 / 却挫彈丸一小封
능연각의 장수들 모두 탁월한 신하였으니 / 凌煙諸將摠從龍
천고의 풍운이라 그 종적 상상할 만해라 / 千載風雲想舊蹤
이곳에서 하늘이 군대를 만류하지 않았다면 / 此地不緣天挽駐
중국 군대가 응당 우리나라를 뒤덮었을 테지 / 六師應是遍箕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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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3권 / 무술조천록 하(戊戌朝天錄下)
거울을 보고 스스로 탄식하다. 6수
거울 속에는 노쇠한 한 병든 사내 / 鏡裏龍鍾一病夫
그 어디서 왔관대 학처럼 여위었느뇨 / 來從何處鶴同癯
평생 시 읊느라 고심한 탓이겠지만 / 平生政坐吟詩苦
청허가 날로 몸에 있음에 외려 기뻐라 / 却喜淸虛日在軀
늙은 몸 볼품없고 머리엔 흰 눈 덮였으니 / 老形潦倒雪盈巓
기쁨이 지난해보다 줄었음을 문득 깨닫노라 / 陟覺歡悰減去年
이미 단공의 삼십육 숫자를 얻었으니 / 已得檀公三十六
지금은 전원으로 돌아가는 게 제일이로세 / 如今第一是歸田
나의 나이 올해 서른여섯 살이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보국과 귀향 둘 다 이루지 못했으니 / 報國歸田兩不遂
노년의 계책 장년의 일 아 모두 없구나 / 老謀壯事嗟俱無
인생 칠십 이제 반을 너머 지났건만 / 人生七十今强半
아직도 이름 없으니 이에 그만이로다 / 無聞焉斯已矣夫
소년 시절 놀이할 땐 나는 듯이 민첩해 / 少年遊戱捷如飛
날래다 자부하고 위험한 행동 곧잘 했었지 / 自負輕趫喜履危
지금에 와선 몸에 근력이 도무지 없건만 / 如今筋力都無在
그래도 아이들에게 옛날 자랑 늘어놓는다 / 猶向兒群詫舊時
풍정은 아니 줄었건만 마음 먼저 지쳤고 / 風情不減心先倦
호기는 아직 남았어도 흥이 이미 다했어라 / 豪習猶存興已闌
어찌하면 벼슬 마치고 일개 서생이 되어 / 焉得輸官作措大
장차 주름진 얼굴을 홍안으로 바꾸어 볼꼬 / 且將皺面變韶顔
세상사 이미 익숙하게 생각해 온 터 / 世事思之已爛熟
공명은 역시 술 취한 세계에 있더라 / 功名亦在醉鄕中
좋이 강산을 가지고 봉토 하사받아 / 好把江山錫茅土
공신이 되어 돌아가서 월사공이 되라 / 策勳歸作月沙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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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3권 / 무술조천록 하(戊戌朝天錄下)
연관(燕館)에서 회포를 적어 필운 상국(弼雲相國)께 바치다. 오십운(五十韻)
환하디환한 모습 요대의 저 학은 / 皎皎瑤臺鶴
서리 같은 깃털이 자소에 비치느니 / 霜毛映紫霄
시의 명성은 포사를 능가할 정도 / 詩名傾鮑謝
한아(閑雅)한 생각은 송교를 사모하였어라 / 閑想慕松喬
대대로 문장을 가업으로 전해 왔고 / 世業傳文彩
집안은 높은 벼슬로 명성 이어왔지 / 家聲繼珥貂
그 청담은 혼탁한 세상 깨우치고 / 淸談驚濁世
굳은 절개는 위태한 조정 부지했네 / 苦節拱危朝
만사를 뜬구름으로 보아 걸림 없고 / 萬事雲無累
처음 마음 순수하기 다듬지 않은 옥 / 初心玉不雕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고 / 和光破崖岸
시속에 따라서 분잡한 대로 버려두었지 / 應俗任紛囂
파란 바다는 원래 한량하기 어렵느니 / 碧海元難量
푸른 솔은 본디 뒤에 시드는 법이지 / 蒼松固後凋
천리마 발굽으로 길을 내쳐 달리고 / 霜蹄開道路
붕새의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았으니 / 冥翮壯扶搖
위사들은 사마라 우러러보았고 / 衛士瞻司馬
하인들은 정교라 칭송하였어라 / 輿人誦鄭僑
병무를 논하매 넉넉한 기량 보겠고 / 論兵見游刃
신발을 끌 제 높은 풍모를 상상하노라 / 曳履想風標
늘그막에 와서야 낭서가 되었더니 / 遲暮爲郞署
나라가 위태로울 때 막료에 들었어라 / 艱危備幕僚
마조에서 함께 홀로 턱을 고였었고 / 馬曹同拄笏
추부에선 몇 번이나 나란히 말 달렸던가 / 樞府幾聯鑣
나라의 운세가 아직도 어려운 터에 / 國步猶丁否
참소하는 자가 문득 요망한 짓을 했지 / 讒鋒遽作妖
가혹한 죄명 적은 글 아름답게 꾸며 / 深文巧貝錦
추한 비방으로 이 나라를 욕하였으니 / 醜詆辱宗祧
우리 백성들 모두 금수가 될 지경이라 / 民命皆禽獸
성상께서는 한창 근심에 여념이 없도다 / 宸衷正旰宵
중국이 우리와의 관계를 끊진 않았어도 / 縱云天未絶
장차 일이 예측할 수 없이 될까 두려웠지 / 將恐事難料
국량이 큰 상공 재상의 자리에 올랐고 / 雅量應台鼎
국가의 큰 근심 이 사행길에 맡겨졌는데 / 殷憂屬使軺
재주 없는 이 몸도 그 자리에 발탁되어 / 不才蒙奬拔
분수에 넘치게 높은 자리에 승진되었지 / 非據濫陞超
감격한 마음으로 성은을 입었던 그날 / 感激承恩日
창황하게 변무 주문을 가지고 가던 때 / 蒼黃拜奏朝
단지 재력이 얕은 것이 부끄러울 뿐 / 只慙材力淺
도로가 먼 것을 어찌 감히 꺼리리오 / 敢憚道途遙
성상의 옥좌에는 티끌이 자욱하고 / 宸極塵氛暗
나그네 옷깃에는 눈발이 흩뿌리더라 / 征衫雨雪瀌
들판의 객점에서 저녁밥 지어 먹고 / 晩炊依野店
산꼭대기 가까이서 아침 여물 먹였지 / 晨秣傍山椒
팔월이라 뗏목은 은하수로 통하고 / 八月槎通漢
천년의 학은 요동 땅을 지나갔느니 / 千年鶴度遼
산하에는 연 땅의 관새가 웅장하고 / 山河燕塞壯
아름다운 곳들은 계문에 많았었지 / 佳麗薊門饒
빼어난 경치에 시권은 늘어만 가고 / 勝賞添詩卷
번다한 시름일랑 술로써 씻었느니 / 繁愁借酒澆
맘껏 즐기는 터라 예절은 느슨했고 / 罄歡寬禮數
흥에 끌려 굳이 서로 불러서 모였지 / 牽興强招邀
그 의기는 서탑을 기울일 정도였고 / 意氣傾徐榻
관직 반열은 병길(邴吉)의 자리에 끼였어라 / 班聯厠邴腰
깃들어 쉬는 것 기러기 짝과 같건만 / 棲依同鴈侶
떠돌아다니는 건 바람에 나는 쑥대 / 流轉似蓬飄
민속을 묻고는 왕제에 깜짝 놀라고 / 問俗驚王制
풍속을 살피면서 나라 민요 채집했네 / 觀風採國謠
금마문의 의장 아래 반열로 달려갔고 / 趨班金馬仗
옥하관 다리에서 입조(入朝) 시각 기다렸지 / 待漏玉河橋
관대한 조서가 봄기운 따라 내려오니 / 寬詔隨春下
가득하던 음기가 햇살에 사라졌느니 / 窮陰見晛消
우리의 변치 않는 충성은 원래 밝고 / 丹衷元皦皦
천자의 밝은 해는 더욱 환하였어라 / 白日轉昭昭
세 마디로 범이라 현혹시킬 수 있으랴 / 虎豈三言惑
사람들이 숨으로 분다손 산이 표류할까 / 山寧衆喣漂
우리나라가 살아난 것 다시 보았으니 / 再看邦命造
애타는 성상의 마음 위안이 될 만해라 / 堪慰聖心焦
의로운 조처 조나라 보존한 것 같으니 / 義擧同存趙
천자의 어지신 은택에 그저 축요할 뿐 / 仁恩但祝堯
어찌 더러운 모함을 씻어 주셨을 뿐이랴 / 豈惟伸汚衊
외방의 이 나라를 안정시켜 주신 것을 / 況是奠荒要
남해에서 우리 군대가 처음 승첩 올리어 / 南海師初捷
흉악한 적도들의 머리를 이미 베었다네 / 兇渠首已梟
황상의 위엄을 바야흐로 크게 떨치시어 / 皇威方震暢
적들의 소굴을 모두 불태워 없애었다네 / 醜窟盡焚燒
위대한 공적은 채를 평정한 것보다 낫고 / 偉績優平蔡
신령한 공로는 삼묘(三苗)를 오게 한 것 같아라 / 神功類格苗
원문에서 노래할 젠 짚을 지팡이 있지만 / 轅門歌有杖
동주가 서 있는 바다에는 파도가 없어라 / 銅柱海無潮
아름다운 기운은 금장에 가로 비끼었고 / 佳氣橫金掌
내 끼인 꽃은 두표에 가까이 있도다 / 煙花近斗杓
기쁜 마음 스스로 진정키 어렵나니 / 喜心難自定
고국이 그리운 마음에 더욱 무료하여라 / 歸意轉無聊
물색은 바뀌어 시름에 머리털은 세고 / 物色催愁鬢
계절의 변화는 버들가지에 나타난다 / 年華變柳條
강호에는 봄기운이 막막하게 어렸고 / 江湖春漠漠
관새에는 고향 꿈이 아스라니 멀어라 / 關塞夢迢迢
객지에서 체류하는 신세가 슬프구나 / 行李悲淹泊
이내 생애는 적요해져만 가는구나 / 生涯向寂寥
쇠잔하여 구유에 엎드린 늙은 말 / 摧殘櫪下馬
슬피 울부짖는 갑 속에 든 칼이여 / 悲吼匣中刀
나라 회복하여 시절 한창 태평이니 / 恢復時方泰
염매를 솥에다 넣어 조리해야겠지 / 鹽梅鼎又調
병든 이 몸에게 관복(官服)이 편안하랴 / 病身寧紱冕
오활한 성품 초야에 묻히는 게 제격이지 / 迂性合漁樵
티끌 세상의 속박을 받고부터는 / 自被塵籠役
늘 계수의 부름에 부끄러웠다오 / 長慚桂樹招
국가의 안위 위해선 공들이 계시니 / 安危有公等
조만간 이 몸은 향리로 돌아가려오 / 早晩理歸橈
차운(次韻)
필운(弼雲)
조정에서 좋은 선비를 보았으니 / 朝著瞻佳士
구만리 붕새의 장도 기약하건만 / 鵬程仰九霄
원례를 만나 볼 길이 없는 탓에 / 無由御元禮
그저 왕자교(王子喬)만 사모하였을 뿐 / 只自慕王喬
사신 일로는 연벽에 부끄럽지만 / 使事慙聯璧
시단에서는 다행히 속초하였지 / 騷壇幸續貂
마침내 함께 길을 가게 되었으니 / 終然親躡踵
어찌 한 조정에 있는 것만 기쁘랴 / 豈但喜同朝
곤륜산 옥이야 조탁할 필요 있으랴 / 崑玉寧須琢
하늘의 꽃은 본래 꾸밈이 없는 법 / 天葩本去雕
풍근은 뭇 장인들을 내려다보고 / 風斤奴衆匠
대려는 세상 음악들을 압도하누나 / 大呂厭塵囂
여관에서 지은 시 천 편이나 되고 / 旅館千篇富
그동안 명의 잎 스무 개가 졌어라 / 堦蓂卄葉凋
깊은 바다는 소라 껍질로 못 재고 / 海深蠡不測
무거운 산은 개미가 흔들기 어렵느니 / 山重蟻難搖
시편으로는 가슴속 회포를 풀고 / 比興紓情素
우스갯소리로 객고를 달래었지 / 俳諧慰寓僑
명리를 좇는 나는 박복한 상이요 / 名場余薄相
시집이 있는 그대는 신선의 모습 / 詩集子仙標
지금 나란히 북쪽으로 말 달리고 / 北路今聯轡
서조에서는 옛적에 동료로 지냈지 / 西曹昔備僚
시국 위태할 때 감히 선비 천거했고 / 時危敢薦士
군주가 곤욕스런 지금 함께 말 달린다 / 主辱共揚鑣
해와 달이 바야흐로 다시 비칠 즈음 / 日月方廻照
여우와 살쾡이가 요사를 떠는구나 / 狐狸競舞妖
당초에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더니 / 初緣怒甲乙
마침내 이 나라 종묘를 무너뜨리려네 / 終欲陷宗祧
주문(奏文)을 짓고 또 사신으로 가게 돼 / 草奏仍專對
갈 길을 서둘러서 더러 밤을 낮 삼았지 / 貪程或犯宵
하늘의 마음은 원래 지극히 순한 법 / 天心元至順
사람의 일을 미리 헤아릴 수 있느니 / 人事可先料
평소에 주나라 관광 흥미가 있던 터 / 雅有觀周興
흔쾌히 수레를 타고 변방을 나섰어라 / 欣乘出塞軺
그대 정명하기로는 안자와도 같고 / 精明同晏子
응대 잘하기는 치초보다도 나았지 / 應對出郗超
여관에서 향을 사르던 그 밤이며 / 旅舘燒香夜
우정에서 채찍을 휘두르던 아침이여 / 郵亭振策朝
인가의 연기는 강을 건너자 적어지고 / 人煙渡江少
고향 생각은 구름에 들어 멀어진다 / 鄕思入雲遙
일은 급박한데 길은 오히려 멀고 / 事急途猶遠
하늘은 찬데 눈은 한창 흩뿌리누나 / 天寒雪政瀌
왜적의 마음은 험윤보다도 가혹하고 / 戎心劇玁狁
월나라 형세는 부초에 박두하였었지 / 越勢迫夫椒
나라 근심으로 눈썹을 늘 찌푸리고 / 憂國眉常斂
고국 생각에 마음은 더욱 아득해라 / 懷歸意轉遼
돈대에서 학야는 드넓게 펼쳐졌고 / 墩臺鶴野濶
거마가 많은 광녕 땅 풍요로웠느니 / 車馬廣寧饒
악비(岳飛)의 사당에서 향을 올림 직하고 / 岳廟香堪薦
관우(關羽)의 사당에서 술을 따를 만했지 / 關祠酒可澆
지은 시를 품평하매 때로 자신 부끄럽고 / 評詩時自愧
좋은 경치 만나면 문득 서로 초청했었네 / 遇景輒相邀
종횡하는 붓 아래 구슬이 떨어지는 듯 / 珠落縱橫筆
기운찬 허리에 금빛 띠를 둘렀어라 / 金橫偃蹇腰
외로운 나의 진부한 모습이 부끄럽고 / 陳容慚踽踽
초연한 그대 표일한 생각을 우러른다 / 逸想仰飄飄
옥 같은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 玉立千人看
시가 지어지면 만 사람들이 부르나니 / 詩成萬口謠
서리 찬 하늘에 송골매 날개 번득이고 / 霜天翻鶻翮
구름 낀 바다에 긴 다리가 걸리었어라 / 雲海架長橋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 뿐만이 아니라 / 不獨馨香襲
비루한 마음 참으로 사라지게 하누나 / 眞堪鄙吝消
고아한 담론에는 위개로 끼었지만 / 高談叨衛玠
졸렬한 작품은 장소에게 부끄럽구려 / 拙作愧張昭
늙은 몸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고 / 老矣飛蓬轉
가슴 아프게도 단경처럼 떠다니누나 / 傷哉斷梗漂
해를 지나도록 만리 타국 나그네 신세 / 經年客萬里
한 질병은 깊어서 삼초에 이르렀도다 / 一病到三焦
영광된 벼슬을 못난 내게 먼저 주시니 / 榮宦先糠粃
큰 성은이라 요순 같은 성상께 감사하오 / 洪恩荷舜堯
사람들을 향해서는 늘 부끄러움 있지만 / 向人長有愧
세상에 대해서는 이미 아무 요구 없도다 / 於世已無要
명리의 길에선 얼굴이 수치로 위축되고 / 名路顔羞縮
시문 짓는 자리에선 뜻이 크고 씩씩해라 / 詞場意傑梟
때때로 시 지으란 독촉을 받을 때에는 / 有時詩見促
참으로 불이 옮겨 붙듯이 다급하였지 / 眞若火延燒
그러나 싸움에 패해 늘 함벽을 하였고 / 戰敗長銜璧
재주 부족해서 알묘하고자 하였느니 / 才疏欲揠苗
서로 사귀는 정은 좋은 시구에 부치고 / 交情付傑句
고향 그리는 꿈은 돌아가는 조수 좇는다 / 鄕夢逐廻潮
내일은 대롱의 갈대 재를 부는 날인데 / 來日葭吹管
돌아갈 기약은 북두성 자루 돌 때이로세 / 歸期斗轉杓
친밀한 정이야 의탁할 데가 있지만 / 綢繆情有托
타국에 체류하자니 마음이 무료하여라 / 留滯意難聊
여관에서 석 달을 머물러 있는 동안 / 旅幌淹三月
맑은 얼음 한 가닥이 어리어 비쳤느니 / 淸氷映一條
우뚝한 그 풍모에 나는 흠복하였고 / 風儀欽矯矯
아스라이 뻗은 청운의 길을 보노라 / 雲路看迢迢
성상의 신임이 바야흐로 남다르니 / 注倚方殊異
그 명성이 어찌 적요하기만 하랴 / 聲名豈寂寥
사람들은 토봉의 붓을 우러러보고 / 人瞻吐鳳筆
나라는 숫돌에서 나온 칼을 기다렸지 / 國待發硎刀
만사를 잊고서 그저 술에 취할 뿐 / 萬事從吾醉
삼원은 그대가 조화해 주길 바라노라 / 三元要爾調
월사의 낚시터를 다시 찾기 어려우니 / 難尋月沙釣
고향 산 나뭇꾼이 될 기약 저버렸구려 / 應負故山樵
이고의 속박에 괴롭게 시달리노니 / 苦被伊臯累
대소초를 길게 읊조려 보지만 / 長吟大小招
한갓 양자강과 한수 가에 / 徒令江漢上
못 돌아가는 배만 헛되이 매여 있게 하누나 / 虛繫未歸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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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3권 / 무술조천록 하(戊戌朝天錄下)
〈어양잡제(漁陽雜題)〉 시에 차운하다. 4수
구슬 안장에 옥 굴레의 말을 탄 우림아여 / 珠鞍玉勒羽林兒
술 취해 오랑캐 여인 희롱하며 나란히 말 달린다 / 醉押胡姬竝馬馳
일생을 사냥이나 하면서 늘 유쾌하게 사니 / 遊獵一生長快意
이문에서 무엇 하러 굳이 슬픈 검가를 부르리오 / 夷門何必劍歌悲
병주에 한 검을 찬 도조의 영웅이여 / 一劍幷州屠釣雄
일찍이 표기를 따라 산융과 싸웠었지 / 曾隨驃騎戰山戎
아침에는 장성굴에서 말에 물 먹이고 / 朝來飮馬長城窟
어양교 물 동쪽에서 술을 사 마셨어라 / 買酒漁陽橋水東
금 병풍 수놓은 벽에 유소 휘장을 치고 / 金屛綉壁流蘇帳
향긋한 밥 봄 술에다 갈대순으로 끓인 국 / 香飯春醪蘆笋羹
곳곳마다 술집들 나그네 붙들어 취하게 하니 / 處處靑帘留客醉
행인들 이곳에서 도리어 갈 길을 잊는다오 / 行人於此却忘行
공동산 아래에는 석양이 막 잠기고 / 崆峒山下日初沈
계문(薊門) 들판 내 낀 꽃에 이는 저녁 어스름 / 薊野煙花生夕陰
등불 빛 성 가득 밝고 노래 소리 시끄러우니 / 燈燭滿城歌吹閙
몇 집에서나 행락하느라 황금을 뿌려 댈꼬 / 幾家行樂散黃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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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3권 / 무술조천록 하(戊戌朝天錄下)
춘별곡(春別曲) 5수.
산해관(山海關)의 우사(寓舍)에 한 협객이 술 파는 창기(娼妓)와 친압하여 며칠 머무는 동안 여색에 빠져 이별에 연연하는 태도가 자못 있기에 희롱삼아 읊었다.
나는 꽃 어지러워 춘심을 흔드는데 / 飛花撩亂漾春心
정 머금고서 이별주를 찬찬히 따른다 / 別酒含情細細斟
다시금 비파를 잡고 거울을 마주하고 / 更把琵琶向菱鏡
님을 위하여 〈백두음〉을 퉁기어 보누나 / 爲君彈作白頭吟
말없이 잔 멈추고 푸른 머리를 돌리니 / 脈脈停杯轉翠鬟
이별 시름 술과 함께 어여쁜 얼굴에 올라라 / 離愁和酒上嬌顔
취한 뒤에는 다시금 부용 장막에 들어가니 / 酣來更入芙蓉帳
종일토록 운총마는 버드나무에 매여 있구나 / 盡日雲驄繫柳閑
첩의 사랑은 여라 덩굴처럼 얽혔건만 / 妾意纏綿若女蘿
낭군의 마음은 가볍게 흔들리는 버들꽃 / 郞心飄蕩似楊花
이별 앞에 훗날의 기약을 맺고저 하여 / 臨分要結他時約
눈물 가리우고 천천히 금봉차를 뽑는다 / 掩淚徐抽金鳳釵
반월 모양 쇠잔한 화장에는 눈물 흔적 / 半月殘粧浥淚痕
매미 날개 같은 적삼은 구겨진 푸른 구름 / 蟬衫斜嚲蹙靑雲
정녕코 이별하는 천 겹의 한이여 / 丁寧離別千重恨
단지 양대의 하룻밤 은혜뿐이었지 / 只是陽臺一夜恩
이별길에서 은근히 다시 옷을 당기며 / 別路慇懃更挽衣
이르노니 지난 밤 언약을 저버리지 마오 / 謂言莫負前宵約
돌아오실 적 기둥에 기대 새로 단장하고 / 歸來倚柱理新粧
공후를 가지고 다시금 영랑곡을 지으리 / 箜篌又作迎郞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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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4권 / 갑진조천록 상(甲辰朝天錄上)
괴로운 비 8수. 6월 14일,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하니 큰비가 연일 내려 17일까지 머물렀다.
연 땅의 길에는 원래 비가 많더니 / 燕路元多雨
올해에는 다시금 장맛비가 내리누나 / 今年更積霪
황하를 거꾸로 지붕 위에서 붓는 듯 / 倒河懸屋溜
바다를 뒤집어서 제잠이 자취 잃었네 / 飜海失蹄涔
처마 갈라지매 띠 지붕 벗겨진 줄 알겠고 / 簷缺知茅捲
부엌이 차니 아궁이 물에 잠겼음 깨닫는다 / 廚寒覺竈沈
나그네 마음 괴로워 어이할 길 없으니 / 羈心苦無奈
초초히 앉아서 긴 노래나 불러 보노라 / 悄坐費長吟
나그네 여정 어언 몇 달이런고 / 客程今幾月
장맛비가 또 밤을 이어 내리도다 / 霖雨又連宵
수레와 말 통행이 완전 끊어지고 / 車馬行全斷
땔나무와 꼴 값은 더욱 비싸졌구나 / 薪蒭價益高
주린 까마귀는 옛 성에서 짖어 대고 / 飢烏喧古戍
비에 젖은 제비는 깊은 가지에 모인다 / 濕燕聚深條
시내 길은 참으로 건너기 어려우니 / 川路誠難越
멀리 바라보며 홀로 머리 긁적이노라 / 迢迢首獨搔
태양은 밝은 빛줄기를 거두고 / 朱明收赫照
물의 신은 더욱 기세를 부리누나 / 水帝助煩敲
떨치는 우레는 마구 하늘 치달리고 / 震電驅神御
교룡은 바다에서 파도를 쳐 일으킨다 / 蛟龍鼓海潮
응당 하늘의 집이 새는 것이려니 / 只應天宇漏
해 수레가 물에 빠질까 외려 걱정일세 / 飜恐日車漂
어찌하면 긴 바람을 얻어 쓸어서 / 焉得長風掃
짙은 구름장 사라지는 것 통쾌히 볼꼬 / 快看陰沴消
바람 거슬러 불어 정신 막 후련하더니 / 風逆魂纔豁
구름이 뒤덮으매 기운이 더욱 답답해라 / 雲埋氣轉蒸
진흙탕 뜰엔 지렁이가 가로질러 가고 / 泥庭橫斷蚓
따스한 벽에는 파리떼가 모여드누나 / 暖壁聚群蠅
가는 길에 때로 머리를 들어 보노니 / 去路時擡首
고국 그리워 그저 팔베개로 잠들 뿐 / 歸心但曲肱
고향은 멀리 시름 저편에 있느니 / 故鄕愁緖外
아득히 멀어 소식을 알 수가 없구나 / 消息杳難憑
이 좋은 날 비로 발길이 묶이어 / 令節仍關雨
빈집에서 그저 이불만 두르고 있다 / 虛齋只擁衾
그 누구와 더불어 하삭음 즐길거나 / 共誰河朔飮
속절없이 월인음을 부를 뿐일세 / 空作越人吟
산과 바다는 풍운으로 어둑하고 / 山海風雲暗
성과 못에는 초목이 우거졌도다 / 城池草樹深
후련히 트인 높은 정자가 그리워 / 高亭憶疏豁
쇠잔한 마음에도 올라 보고 싶어라 / 衰意欲登臨
유두일(流頭日)에 망해정에서 피서하려 했는데 비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그네 밤 정신이 맑아 잠이 없는데 / 客夜淸無睡
높은 처마엔 낙숫물 소리 더욱 길고나 / 高簷響更長
창을 뚫고 들어 벼루에 물 적시고 / 透窓沾硯水
휘장을 두들기고 향로의 향 적신다 / 撲帳濕鑪香
거문고 책 윤기 나는 것 싫지가 않고 / 不厭琴書潤
베개와 침구 서늘한 게 도리어 좋아라 / 還欣枕席涼
번거로운 시름 스스로 추스릴 길 없어 / 繁憂不自整
지팡이를 짚고서 회랑을 지나가노라 / 拄杖過廻廊
먼 곳 길손 먹을 것이 빈약하니 / 遠客庖廚薄
타향이라 살림살이가 가난하구나 / 他鄕活計貧
황금은 계수 태우듯이 바닥나고 / 黃金燃桂盡
백발은 거울에 들어서 새로워라 / 白髮入菱新
구름과 안개로 관새의 길 흐릿하고 / 雲霧迷關路
바람과 물결이 황성을 가로막았어라 / 風濤隔帝宸
성사는 좋이 불은 물을 탈 만하니 / 星槎好乘漲
곧바로 떠서 은하수 나루에 이를거나 / 直可泛天津
호올로 앉아서 하늘 뜻을 보아하니 / 獨坐看天意
날이 흐릴지 갤지 분간할 수 없어라 / 陰晴不可分
안개 걷히어 겨우 햇살이 새어 나오고 / 霧開纔漏日
산이 어둑하더니 이내 구름 치달린다 / 山暝旋奔雲
새 소리는 응당 기뻐서 지저귀는 것 / 鳥語應占喜
바람이 와서 분잡한 기운 풀려고 하네 / 風來欲解紛
물살을 보다가 모쪼록 기회를 틈타야지 / 觀濤須着便
삿갓을 쓰고 장차 그대를 따라가리라 / 簑笠且從君
오늘 조금 날이 갠 틈을 타서 망해정에 오르고자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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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4권 / 갑진조천록 상(甲辰朝天錄上)
천단기사(天壇記事)
푸른 허공이 펼쳐진 가을 낮 / 碧落褰秋晝
푸른 제단에는 석양에 빛난다 / 靑壇耀夕陽
모든 신령들은 옥좌를 향하고 / 百靈朝玉座
한 기운은 금당을 옹호하누나 / 一氣護金堂
북극 짝하여 현묘한 터전 웅장하고 / 配極玄基壯
복록을 받아서 성조(聖朝)의 운수 창성하리 / 承休聖曆昌
원구의 규모는 예부터 있어 왔고 / 圓丘規自古
대향의 예는 범상치가 않은 것 / 大享禮非常
흡사 천상의 음악을 듣는 듯 / 髣髴聞天樂
대궐의 향 사르는 연기 스며든다 / 薰蒿襲御香
푸른 솔은 한 가닥 길에서 나뉘고 / 蒼松分一逕
붉은 계수는 천 줄로 엄연히 섰네 / 丹桂儼千行
아름다운 기운 궁중 나무에 이어지고 / 佳氣連宮樹
옥 계단은 금원의 담장과 잇닿았다 / 瑤堦接苑墻
구름과 안개는 맑은 경계에서 걷히고 / 雲霞開淨界
해와 달은 신선의 세계 비추이누나 / 日月繞仙鄕
전각에서는 영지가 난다 축하하고 / 殿賀靈芝産
뜰에선 상서로운 봉황 춤추는 것 본다 / 庭看瑞鳳翔
무슨 인연으로 천자의 법가를 뫼실꼬 / 何緣陪法駕
먼 이역 사람인 것이 거듭 한스럽네 / 重恨局遐方
놀란 정신 숙연한 느낌으로 상쾌하고 / 肅肅驚魂爽
바라보는 시야 드넓게 펼쳐져 길어라 / 恢恢望眼長
중국 구경이 과연 기대 저버리지 않아 / 觀周知不負
예전에 지닌 뜻 지금 이루어서 기뻐라 / 夙志喜今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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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5권 / 갑진조천록 하(甲辰朝天錄下)
서반(序班) 등여주(鄧汝舟)는 강좌(江左) 상주(常州) 사람으로 등남양(鄧南陽)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말했는데 조정 사대부의 명류(名流)들과 자못 교유가 있었으며 또 글을 잘하고 글씨를 잘 썼다. 산해관(山海關)에 당도하자 그가 시를 부쳐 보내 화답을 요구하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주었다. 6수
황성 아침 조회에 빼어난 모습 처음 봤나니 / 昕庭初見秀鵷行
대대로 남양이라 옛 도읍에서 살았어라 / 家世南陽舊帝鄕
성명이 성서에서 추중된 줄 일찍 알았고 / 早識聲名推省署
시문이 풍상을 움직이는 것을 곧 보았노라 / 卽看詞藻動風霜
사신의 행차 요서 변새에서 가을이 가 놀라고 / 星軺遼塞驚秋盡
돌아가는 노는 오강에서 유장한 흥 느끼노라 / 歸棹吳江覺興長
서로 우정이 깊은 터에 강토를 따지지 말자 / 莫把交情恨疆土
외진 나라 비록 누추하지만 의관을 갖췄다오 / 偏邦雖陋亦冠裳
자새의 풍상 나그네 얼굴에 들어오고 / 紫塞風霜入旅顔
두 행차가 아스라이 유관을 나서누나 / 雙㫌迢遆出楡關
꿈에 검과 패옥 차고 대궐 섬돌 내려오고 / 夢隨劍佩瑤墀下
집은 내 낀 물결 아득한 한수 물가로세 / 家在煙波漢水灣
만리 밖 외로운 종적 그래도 멀리 바라보고 / 萬里孤蹤猶望遠
한 가을 병이 많은 몸으로 억지로 산 오른다 / 一秋多病强登山
시 읊는 곁에 물색은 자꾸만 저물어 가는데 / 吟邊物色催遲暮
무슨 일로 천애 벽지에서 돌아가지 않느뇨 / 何事天涯尙未還
객창은 쓸쓸하여 그윽한 은거지인 듯 / 客窓寥落似幽居
누른 잎새 성근 울에 가랑비가 내렸도다 / 黃葉疏籬小雨餘
계자의 흑초구는 죄다 낡아서 해졌고 / 季子黑貂裘盡弊
풍생의 긴 칼이여 음식에 고기가 없구나 / 馮生長鋏食無魚
쓸쓸히 시름에 머리털 천 올 눈처럼 희고 / 蕭蕭愁鬢千莖雪
초초히 돌아가는 여장 한 묶음 책뿐일세 / 草草歸裝一束書
어느 날이나 벼슬 던지고 고향에 돌아가 / 何日故園投紱去
거문고 타고 막걸리 마시며 띳집에 누울꼬 / 野琴村酒臥茅廬
갈석산 가을 물결에 천지가 휘도는 듯 / 碣石秋濤天地廻
교문에 해가 질 제 바람과 우레 시끄럽다 / 蛟門日夕殷風雷
성은 서쪽 땅끝으로부터 구름 밖에 걸쳤고 / 城從西極橫雲表
누각은 동해 바다 마주해 물가를 눌렀어라 / 樓對東瀛壓水隈
관자의 높은 자취라 배 띄우기를 생각하고 / 管子高蹤思泛海
원룡의 호방한 기개라 홀로 누대에 오르노라 / 元龍豪氣獨登臺
사행길에서 재차 예전에 노닐던 곳 지나지만 / 仙槎再度曾遊處
좋은 구경할 마음 지금은 싸늘한 재가 됐어라 / 勝賞如今念已灰
아득히 고인이 그리워도 따를 수가 없어 / 緬想高人不可從
늘그막에 티끌세상에 한 쓸모없는 몸일세 / 老來塵世一疏慵
고향 떠난 중선의 부를 아련히 생각하고 / 遙憐去國仲宣賦
뗏목을 탔던 박망의 자취는 속절없이 따른다 / 謾躡乘槎博望蹤
화답할 이 적은 새로운 시라 백설이 슬프고 / 寡和新詞悲白雪
늦게 시드는 곧은 지조는 찬 솔에다 부치노라 / 後凋貞操付寒松
객지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 한 해가 저무니 / 羈栖荏苒時將暮
꿈은 순채와 농어에 들어가 흥이 더욱 짙도다 / 夢入蓴鱸興轉濃
젊은 나이에 문장으로 벼슬길에 올랐나니 / 早歲文章忝省曹
몇 번이나 사액에서 술 취해 붓 휘둘렀던가 / 幾回詞掖醉揮毫
임금 은혜 갚지 못하여 두 줄기 눈물 흐르고 / 君恩未報有雙淚
세상사 다단하여 벌써 머리털 반이 세었어라 / 世事多端已二毛
만리라 나그네 여정 동해 바다는 드넓고 / 萬里客程東海濶
오경에 고향 돌아가는 꿈 북두성은 높아라 / 五更歸夢北辰高
관문의 자색 기운 아무도 묻는 이 없으니 / 關頭紫氣無人問
삼한 제일의 문호가 가는 줄 뉘라서 알리오 / 誰識三韓第一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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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황궁으로 돌아가는 군문 형개를 전송하며 20운 〔送邢軍門玠還朝 二十韻〕
동쪽 번방에 전쟁이 많아 / 東藩多戰壘
황궁의 천자께서 근심하시자 / 北極軫皇情
장군에 임명 되어 계주를 보전하고 / 受鉞仍全薊
관직은 바로 병부 상서라오 / 論官卽本兵
곤의를 입고 이역 땅에 왕림하여 / 袞衣臨異域
백우선으로 여러 군영 통솔하였네 / 羽扇摠諸營
뛰어난 책략 세워 승리를 얻었고 / 制勝憑長算
나누어 지휘하니 훌륭한 명성 드높았지 / 分麾仰盛名
지시에 따라 기지와 임기응변 발휘하여 / 機權隨指顧
종횡으로 다투듯이 운조진을 펼치니 / 雲鳥競縱橫
적의 소굴 쳐부순 건 정예병이요 / 搗窟還精銳
본거지를 휩쓴 깃발 번쩍였다네 / 搜原耀旆旌
둥우리의 새들은 막사로 막 모여들고 / 棲鳥纔集幕
굴속의 개미들도 목숨을 구하는데 / 穴蟻亦求生
파죽지세로 천자 군대가 떨쳐 일어나 / 破竹王師奮
고목 꺾듯 제압하니 섬 오랑캐 경악했네 / 摧枯卉服驚
수천 척의 배를 다투어 노획하여 / 千艘爭鹵獲
온 세상이 홀연히 말끔하게 되었으니 / 四路忽澄淸
다시는 여러 해 수자리 살 일 없어지고 / 無復頻年戍
참으로 한 번 북소리에 평화를 이루었네 / 眞成一鼓平
승전 소식을 황궁에 급히 전하자 / 捷書馳魏闕
기쁜 기색이 연경에 가득하였지 / 喜氣滿燕京
무기 내려놓자 변방 봉화도 조용해지고 / 戈偃邊烽晏
재앙 기운 사라지니 바다 달이 밝았어라 / 氛消海月明
초상화는 기린각에 빛날 것이고 / 丹靑麟閣煥
전공 기록은 역사가가 평가하리라 / 模寫史家評
일찍이 탐욕스런 왜적이 거듭 잠식했으나 / 荐食曾封豕
마침내 흉적을 베어 기이한 공 세웠다네 / 奇功竟剪鯨
산처럼 무거운 큰 은혜를 입었으니 / 丘山含惠重
가루가 된다 해도 몸은 가벼우리 / 糜粉覺身輕
길 가운데 수레바퀴 앞에 눕지 못하고 / 未臥途中轍
부질없이 야외에서 형초 깔고 이별하네 / 空班野外荊
요동 변방의 이별을 견디기 어렵지만 / 不堪遼塞別
다행히 영남의 정벌은 끝이 났으니 / 幸罷嶺南征
돌아가는 꿈은 방초에 아득하겠고 / 歸夢迷芳草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에 고향 생각 간절하리 / 鄕心惱亂鶯
삼한 땅은 다함께 편히 자게 되었으니 / 三韓俱奠枕
머나먼 만 리 땅에 정녕 명성 날렸구려 / 萬里正飛聲
더구나 새로 지은 사당이 있으니 / 更有新祠在
영원토록 보답하는 제사 정성스러우리라 / 終天報事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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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8권 / 경신조천록 하(庚申朝天錄下)
동관(東關)의 노상에서 입으로 불러서 읊다. 3수
들판의 빛도 쓸쓸한 저물녘 / 野色蕭蕭暮
성 위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 城頭風颭旗
가을비 내리는 길에 수레 몰고 / 驅車秋雨路
석양의 언덕에서 객점을 묻노라 / 問店夕陽陂
풀은 멀어서 안개 빛깔이 엷고 / 草遠煙光薄
하늘은 길어 기러기 그림자 더뎌라 / 天長鴈影遲
하늘과 땅 사이 해가 쓸쓸히 지니 / 乾坤日寥落
나그네 마음은 더욱 처연하여라 / 客意轉悽其
변방의 해는 구름 없이 어둑하고 / 塞日無雲暗
가을 하늘은 비 안 와도 흐릿해라 / 秋天不雨陰
홀로 선 나무 곁에 뵈는 몇 마을 / 數村依獨樹
거친 봉우리 옆에 선 외로운 절 / 孤寺傍荒岑
계절은 흘러 큰 몸이 노쇠하고 / 節序長身老
풍상은 쳐서 짧은 옷에 침노한다 / 風霜短褐侵
나그네 시름을 어디에다 쏟을꼬 / 羈愁何處寫
새로 지은 시구를 소리 높여 읊노라 / 得句自高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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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8권 / 경신조천록 하(庚申朝天錄下)
요양행(遼陽行)
요양이라 해자에는 해자 물 얼마나 질펀한가 / 遼陽壕壕水何壯哉
멀리 황하수 끌어 성 주위 둘렀구나 / 遠引長河繚城曲
긴 황하수 물은 흘러서 그치지 않으니 / 長河之水流不已
큰 물결 넓고 아득해 해자 외려 좁아라 / 洪波浩淼壕反窄
다시 겹으로 해자 만들어 물길 나누고 / 更作重壕分水勢
육지를 파헤쳐서 깊은 골짜기 만들었네 / 掘開平陸爲深壑
해 넘기도록 많은 인부 잠시도 못 쉬어 / 經年大衆不暫休
천 사람이 삽을 메고 만 사람이 팠으니 / 千人荷鍤萬人鑿
황하의 신 살 곳 잃고 땅의 신 놀랐으며 / 河伯失所地媼驚
햇빛 참담하고 시름겨운 구름 덮였어라 / 白日慘慘愁雲冪
금포 입은 장군 날마다 군사 감독하니 / 錦袍將軍日董師
둑 위에 누른 먼지가 두 눈을 가리웠지 / 堤上黃塵眯兩目
허리에 찬 보검은 휘둘러보지 않은 채 / 腰間寶劍不曾試
창날처럼 뻣뻣한 수염발만 쓰다듬었지 / 拂拭怒髥如長戟
삼변의 무사들은 육군에서 뽑은 정예 / 三邊技擊六郡良
모두 뛰어난 인재요 훌륭한 검객이라 / 盡是奇才與劍客
말 달려 적을 죽이는 것 잘할 뿐이니 / 但云走馬能殺賊
일생에 어찌 성 쌓는 일 할 줄 알리오 / 一生何曾識坂築
손은 굳은살 박여 활과 칼을 못 잡고 / 手胝不能執弓劍
힘이 지쳐서 적의 칼과 화살 못 막네 / 力疲不能當鋒鏑
성안에는 한 말 쌀이 만금의 값어치 / 城中斗米直萬錢
군량 많이 내려와도 병사들 배는 고파라 / 賜餉雖多士枵腹
옛날에 이목이 연대를 지키던 당시에는 / 昔時李牧守燕代
소를 잡아 병사들 먹이고 훈련시켰다지 / 擊牛響士習距躍
또 듣기로 진공이 회서를 정벌할 때엔 / 又聞晉公征淮西
병사는 배불러 노래하고 말은 날뛰었다지 / 士飽而歌馬騰櫪
그렇지만 이 역사는 사사로운 것 아니니 / 雖然此役非爲私
대장은 일편단심 나라 위해 일했을 뿐 / 大將赤心期報國
과거 관군이 적에게 깊이 쳐들어갔다가 / 往者官軍一深入
십만의 용맹한 군사가 선혈로 변했으니 / 十萬貔貅化爲血
해자 깊이 파고 안 싸운 게 좋은 계책 / 深溝毋戰是良圖
건괵은 비록 부끄럽지만 잘못은 아닐세 / 巾幗雖羞未爲失
비록 투편이라 백만 군대 있다고 한들 / 縱有投鞭百萬衆
이 해자의 물은 깊어서 건너기 어렵느니 / 其如壕水深難越
요동 백성들 반란할 뜻만 없도록 한다면 / 但使遼民無叛意
성에 물이 차 부엌이 잠긴들 무슨 걱정이랴 / 城浸竈沈亦何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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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8권 / 경신조천록 하(庚申朝天錄下)
청석령(靑石嶺)
들판 갈 때는 먼지에 진력이 나고 / 野行苦厭塵
변새 나오니 돌길이 몹시 괴롭구나 / 出塞苦厭石
낭자채를 지난 뒤로부터는 / 自過狼子寨
산이 휘돌아 길 더욱 나빴어라 / 山廻路轉惡
청석령은 어쩌면 그리 서렸는지 / 靑嶺何盤盤
게다가 가파른 길 기우뚱 위태했지 / 危逕更傾側
간신히 오르다가 자칫 실수하면 / 躋攀乍失勢
말은 넘어지고 수레바퀴 빠질 판 / 馬顚車脫輻
골짜기들은 늘 어둑한 기운 쌓였고 / 群壑積長陰
비좁은 협곡 위로 반쯤 뵈는 하늘 / 峽束半天窄
높은 벼랑은 위태해서 무너져 내릴 듯 / 懸崖危欲墮
겹겹 봉우리들은 서로 들쭉날쭉하나니 / 疊嶂相參錯
높은 산 꼭대기 하늘 구멍에 들어가고 / 巍峩陷乾竇
치달리는 산 줄기 땅의 굴대 누르누나 / 騰擲壓坤軸
한낮에도 우르릉 우레 소리 울리고 / 白日隱雷霆
풍운은 번갈아 힘차게 일어나도다 / 風雲替噴薄
바위 빛깔은 푸른 비단과 같은데 / 石色如綠綺
그 남은 자태 규각을 드러내누나 / 餘姿露圭角
구월이라 날씨는 아직 아니 찬데 / 九月天未寒
미미한 서릿발이 언뜻 뿌리었도다 / 微霜乍淅瀝
붉고 누른 빛으로 물든 저 잎새들 / 丹楓與黃葉
비단 수인 양 푸른 벼랑에 쌓였어라 / 錦繡堆靑壁
내 와서 좋은 경치 실컷 구경하노니 / 我來富觀覽
길 가기 수고로운 줄도 모르겠구나 / 不知勞行役
산길을 오르면서 숨을 헐떡이느라 / 登登仰脇息
가슴 답답해 멀리 조망하기도 잊고 / 偪塞忘遐矚
가장 높은 정상 위에 올라가서야 / 及上最高頂
후련히 트인 시야에 눈길 돌리노니 / 豁然騁遠目
지나온 곳 높은 줄 비로소 알겠고 / 始知所歷高
앞에 들판이 드넓어서 더욱 기뻐라 / 更喜原野廓
말을 멈추노니 길을 재촉하지 말라 / 征驂且莫催
이 유람도 또한 즐겁다 할 만하이 / 玆遊亦云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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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0권 / 동사록 하(東槎錄下)
석주(石洲)의 〈여사(旅舍)에서 회포를 적다〉 시에 차운하여 그에게 주다. 4수
먼 변방에서 한 해를 지내노니 / 絶域仍經歲
봄이 와도 아직 추위가 겁나누나 / 春來尙怯寒
겨울옷이 낡아서 이미 놀랐고 / 已驚裘褐弊
머리털 듬성함을 또 깨닫노라 / 還覺鬢毛殘
선비는 일찍 명성 얻는 게 안 좋은 법 / 士患聲名早
이 몸 지금은 진퇴양난의 처지로세 / 身今進退難
평소에 읊던 〈수초부〉를 / 平生遂初賦
오늘 그대에게 보여 주노라 / 此日與君看
변새에 석양은 흐릿하게 저물고 / 塞日荒荒暮
강 구름은 꽉 엉기어 차갑구나 / 江雲淰淰寒
방초는 철 따라서 좋건만 / 芳菲隨節好
근력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 筋力逐年殘
천지 사이에 나는 부질없이 있나니 / 天地吾徒在
풍진 속 이번 길은 참으로 힘들구나 / 風塵此道難
무단히 가는 해가 안타까워서 / 無端惜流景
백발로 술 취해서 바라보노라 / 白髮醉相看
늘 서책에 묻혀 지내는 신세 / 身世淹黃卷
그 명성은 대궐을 진동하였지 / 聲名動紫微
맑은 담론은 흐린 세상 놀라게 했고 / 淸談驚濁俗
평민의 복장으로 조복(朝服) 틈에 끼었어라 / 野服間朝衣
봉격으로 임금의 은혜 충분하거니 / 捧檄君恩足
관직에 매이면 본래의 뜻 어긋나지 / 縻官夙計非
인생은 오직 제 뜻대로 사는 게 좋나니 / 人生貴適意
돌아가고픈 흥이 산속의 사립에 있어라 / 歸興在山扉
권여장(權汝章)에게 뜻을 두고 지은 것이다.
짧은 꿈속 집에 돌아가기 쉽더니 / 小夢還家易
깨어보니 벽을 등진 희미한 등잔불 / 殘燈背壁微
관직 생활 중 늘 병석에 누웠나니 / 一官仍伏枕
세상만사 눈물로 옷깃을 적실 뿐 / 萬事獨霑衣
성은(聖恩)에 보답할 마음 부질없이 간절하고 / 報主心徒切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은 또 어긋났어라 / 歸田計又非
멀리 낙계 가의 내 집에는 / 遙應駱溪畔
어린 아들놈이 사립에서 기다릴 테지 / 稚子候荊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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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0권 / 동사록 하(東槎錄下)
대제가(大堤歌) 선성(宣城)의 호수 둑 위에서 태수(太守)가 술자리를 열어 나를 전별해 주었는데, 어린 기생이 시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대취(大醉)한 뒤 입으로 읊고 양만세(楊萬世)을 시켜 붓을 잡고 받아 쓰게 하고는 이름하여 대제가라 하였다.
석양이 잠기려 할 즈음 호수 물이 밝으니 / 落日欲沒湖水明
호숫가 버들의 빛 손으로 잡아 따겠어라 / 湖邊楊柳光堪摘
호숫가에는 봄빛이 그야말로 무르녹았고 / 湖上春光政澹蕩
호수 안에는 비취새가 쌍쌍이 목욕하누나 / 湖中翡翠雙雙浴
부들 싹은 막 돋고 갈대순은 짧은데 / 蒲芽始生蘆笋短
둑의 나무에 바람은 따스하고 뻐꾹새 울도다 / 堤樹風暄啼布穀
이러한 때 삼삼오오 고운 눈썹 여인들이 / 是時三五翠眉娘
화려한 누각에서 잠 깨어 구슬 발을 걷누나 / 粧樓睡起開珠箔
올 고운 새 옷은 푸른 깁으로 지은 것이요 / 蹙蹙新衫裁綠紵
부끄러운 몸짓 향기로운 머리털에 백옥 같은 피부 / 愁躱香鬟肌雪玉
호숫가에서 흰 손으로 물장난을 치고 / 臨湖水弄素手
봄볕을 밟으며 노래 한 곡을 부르누나 / 踏陽春歌一曲
교태 부리며 수줍어 말없이 춘심을 던지니 / 嬌羞無語擲春心
두구의 찬 가지 끝에 그윽이 향기가 이누나 / 荳蔲寒梢香脈脈
석양빛 등지고서 외로이 걷는 그 모습 / 伶俜轉步背殘暉
가녀린 허리를 겨우 한 번 숙이누나 / 束素纖腰纔一搦
무단히 이별의 한이 눈썹에 일더니 / 無端離恨上眉端
버들 다리 남쪽에서 새로 손님을 보낸다 / 柳橋南頭新送客
돌아와서 봄 하늘 보며 소매로 눈물 가리나니 / 歸來掩淚向春天
그녀의 집은 큰 제방 호수 북쪽에 있다오 / 家在大堤湖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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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0권 / 동사록 하(東槎錄下)
대제가(大堤歌) 선성(宣城)의 호수 둑 위에서 태수(太守)가 술자리를 열어 나를 전별해 주었는데, 어린 기생이 시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대취(大醉)한 뒤 입으로 읊고 양만세(楊萬世)을 시켜 붓을 잡고 받아 쓰게 하고는 이름하여 대제가라 하였다.
석양이 잠기려 할 즈음 호수 물이 밝으니 / 落日欲沒湖水明
호숫가 버들의 빛 손으로 잡아 따겠어라 / 湖邊楊柳光堪摘
호숫가에는 봄빛이 그야말로 무르녹았고 / 湖上春光政澹蕩
호수 안에는 비취새가 쌍쌍이 목욕하누나 / 湖中翡翠雙雙浴
부들 싹은 막 돋고 갈대순은 짧은데 / 蒲芽始生蘆笋短
둑의 나무에 바람은 따스하고 뻐꾹새 울도다 / 堤樹風暄啼布穀
이러한 때 삼삼오오 고운 눈썹 여인들이 / 是時三五翠眉娘
화려한 누각에서 잠 깨어 구슬 발을 걷누나 / 粧樓睡起開珠箔
올 고운 새 옷은 푸른 깁으로 지은 것이요 / 蹙蹙新衫裁綠紵
부끄러운 몸짓 향기로운 머리털에 백옥 같은 피부 / 愁躱香鬟肌雪玉
호숫가에서 흰 손으로 물장난을 치고 / 臨湖水弄素手
봄볕을 밟으며 노래 한 곡을 부르누나 / 踏陽春歌一曲
교태 부리며 수줍어 말없이 춘심을 던지니 / 嬌羞無語擲春心
두구의 찬 가지 끝에 그윽이 향기가 이누나 / 荳蔲寒梢香脈脈
석양빛 등지고서 외로이 걷는 그 모습 / 伶俜轉步背殘暉
가녀린 허리를 겨우 한 번 숙이누나 / 束素纖腰纔一搦
무단히 이별의 한이 눈썹에 일더니 / 無端離恨上眉端
버들 다리 남쪽에서 새로 손님을 보낸다 / 柳橋南頭新送客
돌아와서 봄 하늘 보며 소매로 눈물 가리나니 / 歸來掩淚向春天
그녀의 집은 큰 제방 호수 북쪽에 있다오 / 家在大堤湖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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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4권 / 폐축록 상(廢逐錄上) 계축년 이후에 지은 것이다.
감흥(感興) 11수
내가 이 집을 가진 지도 / 自吾有此廬
어언 열다섯 해가 되었건만 / 邇來十五秋
세상일이 어지러이 찾아드는 통에 / 世故莽相仍
오래도록 여기 물가에서 노닐지 못했지 / 久負濠梁遊
이제 화의 그물에 걸려들어서 / 及玆罹禍羅
갈림길에서 머뭇거리고 있노라니 / 踟躕歧路周
이 띳집이 마치 이때를 기다린 듯 / 蓬茨若有待
나의 근심을 후련히 틔워 주도다 / 曠然抒我憂
이런 한가한 날이 잠시일지라도 / 偸閑雖暫耳
이것이 곧 넉넉한 성은인 것을 / 卽此聖恩優
나의 동산은 날로 운치가 있느니 / 吾園日有趣
우거진 숲의 나무들이 맑구나 / 翳翳林木淸
사립문은 진종일 고요한데 / 柴門盡日靜
좋은 새들만 때로 울어댄다 / 好鳥時和鳴
어찌 벗하여 놀 사람이 없으랴만 / 豈無丘中伴
내가 병들어 손님을 사절하였지 / 吾病謝將迎
번잡한 일이 점차 멀어져 가니 / 喧紛覺漸遠
티끌 세상 생각도 절로 없어진다 / 自無塵慮營
홀연 이는 근심 주체할 수 없어 / 煩憂忽不整
다시금 멀리 도성을 바라보노라 / 却望終南城
흐르는 시냇물 아득히 끝이 없고 / 逝川渺不極
드넓은 들판엔 슬픈 바람이 많아라 / 曠野多悲風
저무는 석양이 높은 나무에 사라지니 / 頹陽滅高樹
어둑한 빛이 깊은 숲속에서 일도다 / 暝色生深叢
아름답던 봄꽃은 날 버리고 떠나고 / 春艶捨我去
뜨거운 여름 해가 허공에 이글댄다 / 朱火赫當空
낙엽이 지는 것 이로부터 시작되느니 / 搖落方自此
계절이 바뀌는 것 어느 때 다하리오 / 代謝何時窮
어리석어라 저 몽매한 자들은 / 嗤嗤彼昧者
싸우고 빼앗기 그칠 줄을 모르누나 / 傾奪迷所終
집 앞에 몇 그루 나무들 / 堂前數株樹
가지와 잎이 얼마나 무성한지 / 柯葉何葳蕤
옛날에 내가 손수 심었던 것 / 昔我手自種
그 누가 이렇게 길러 놓았느뇨 / 栽培誰所爲
꽃은 피어 햇살에 아양을 떨며 / 開花媚艶陽
환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 灼灼矜容姿
푸릇푸릇한 골짜기의 칡은 / 靑靑谷中葛
덩굴을 뻗어서 서로 얽혔어라 / 引蔓相因依
그저 걱정인 것은 대화가 날아서 / 只恐大火飛
잎은 지고 마른 가지만 남게 될까 봐 / 飄落成枯枝
둥둥 떠 있는 호수 위의 배는 / 汎汎湖上舟
아득히 보이느니 한 조각 잎이어라 / 窅然纔一葉
물결을 따라서 그칠 곳 잃고 / 隨波迷所止
바람이 크니 노를 그만 놓쳤구나 / 風大失其檝
어찌하면 백장의 밧줄을 얻어서 / 安得百丈纜
잡아당겨서 쉽게 물을 건너리오 / 纜之令利涉
시내가 넓어서 건널 수가 없으니 / 川廣不可越
서글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섰노라 / 悵望空佇立
뜨겁게 타오르는 먼 산의 불길 / 炎炎遠山火
처음에는 마치 한 점 등불 같더니 / 初如一點燈
광풍이 홀연히 세차게 불어오니 / 狂焱忽奔放
거센 불길이 구릉을 뒤덮는구나 / 烈焰遍丘陵
대지가 죄다 초토가 되어 버렸으니 / 厚地盡焦土
하늘 떠받치는 기둥 무너질까 걱정일세 / 却愁天柱崩
여우며 살쾡이들이 숲을 잃어버렸거니 / 狐狸失林莽
도깨비 두억시니는 어디에 깃들건가 / 魍魎安所憑
가련쿠나 저 바위 위의 소나무 / 可憐石上松
말라 죽은 채 높은 산에 서 있구나 / 枯死立崚嶒
어찌하면 단비를 흠뻑 부어서 / 安得澍甘霖
가득 모인 뜨거운 기운 씻어버릴꼬 / 一洗炎氛凝
강 안개는 늘 어둑어둑해 / 江霧常冥冥
정오가 돼서야 기운이 조금 흩어진다 / 亭午氣稍散
산들바람은 개구리밥 잎에서 일어나고 / 微風起蘋末
내리꽂히는 햇살은 하늘 반쪽에서 새누나 / 日脚漏天半
시골 밭둑은 멀리서 아련히 뵈나니 / 村陌遠依依
나무들은 그림자 어지러이 널렸어라 / 樹木影凌亂
시내 빛은 어쩌면 이리도 고운고 / 川光一何麗
물새들 울면서 서로 부르는구나 / 水鳥鳴相喚
도리어 걱정이 되노니 석양이 저물어 / 却愁頹景沒
두터운 어둠이 다시 밀려들까 봐 / 繁陰復滋漫
한밤에 초초히 잠 못 이루어 / 中宵悄不寐
일어나 앉아서 두꺼운 이불 덮노라 / 起坐披重衾
강 달은 나의 휘장으로 들어오고 / 江月入我幃
강바람은 나의 옷깃에 불어오누나 / 江風吹我襟
맑고 맑아서 온갖 상념 다 사라지니 / 泠泠萬慮息
곧 태곳적의 그 마음을 보겠어라 / 便見太古心
상 위에는 고서가 놓여 있고 / 床上有古書
상 앞에는 소금이 놓여 있느니 / 床前有素琴
내가 한 곡조 연주하고 싶지만 / 我欲奏一曲
온 세상에 지음을 아는 이 없으리 / 擧世無知音
천하에 참으로 옳은 것이 있나니 / 天下有眞是
성인께서 이미 정론을 남겨 주셨지 / 聖人垂定論
꽉 막힌 선비들이 혹 이를 어지럽혀 / 拘儒或亂之
내놓은 변설이 또한 번다하여라 / 辨說亦云煩
어찌하여 오늘날의 사람들은 / 奈何今之人
욕심에 골몰하여 본성을 잃고 마느뇨 / 汩汩喪其原
위치가 뒤바뀌고 거꾸로 뒤집히나니 / 易位又倒置
어찌 시비를 분간하지 못할 뿐이리오 / 奚但不能分
옳음은 옳음대로 그름은 그름대로 둔다는 / 因是復因非
칠원의 말이 그저 우언만은 아니로다 / 漆園非寓言
한 늙은이가 호숫가에 머물며 / 老翁住湖上
젊을 때부터 고기잡이 일삼았지 / 結髮事釣漁
그물을 싣고 물안개를 쫓아다녀 / 載網逐煙波
잘 먹고 편안히 살 수 있었는데 / 美食且安居
중년에 관가의 부역에 시달리다 / 中歲苦官役
그만 배도 팔고 집도 팔고 말았지 / 賣舟仍賣廬
동이 틀 무렵이면 저잣거리에 들어가 / 平明入城市
베를 가지고 가서 날마다 생선 사지만 / 抱布日貿魚
집에 돌아와서는 편안히 먹을 겨를 없어 / 歸來不遑食
닭 잡고 기장밥 차려 아전들 대접하네 / 雞黍供里胥
한밤중에 벽에 기대고 앉아서 / 中宵倚墻壁
눈물을 훔치며 홀로 한숨 쉬누나 / 掩淚獨欷歔
동이 틀 무렵 개들이 시끄러이 짖더니 / 平明群犬喧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달아나누나 / 里人爭相奔
관가의 공문이 밤새 또 내려와서 / 府帖夜又下
장정들 뽑아 가서 궁궐 담장 쌓는다네 / 簽丁築宮垣
채찍질은 성화보다도 급하고 / 鞭扑急於火
온 마을에 베틀은 텅텅 비었어라 / 機杼空一村
마을에 비록 남자들이 있었지만 / 村中雖有男
권세 있는 집에 몸 팔아 들어갔고 / 賣身入侯門
늙은 노파가 부역하러 나왔는데 / 老嫗出應役
다 해진 치마 입고 내몰려 가누나 / 驅去無完裙
사람들 만나도 감히 말하지 못하나니 / 逢人不敢語
삼척동자 어린 손주를 두고 떠나왔다고 / 自負三尺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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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5권 / 폐축록 하(廢逐錄下)
월선정 십영(月先亭十詠). 석양군(石陽君) 탄은(灘隱)을 위해서 짓다.
봄날이라 구십 일 풍광을 홀로 차지하셨나니 / 獨領靑春九十暉
촌락을 두른 울타리에는 죄다 화초들이로세 / 繞村籬落盡芳菲
산옹도 또한 호화로운 관상을 지녔나봐 / 山翁也有豪華相
무한한 좋은 꽃들로 기녀 삼아 둘러쳤구려 / 無限名花作妓圍
위는 〈초가집에 꽃이 핀 속에서〔白屋花開裏〕〉이다.
척박한 땅 화전밭에 봄날은 다 갈 제 / 瘦地燒畬春日闌
산허리에 놀란 불길 흡사 세찬 풍랑인 양 / 山腰驚焰似風湍
이것이 농가로서는 본래 고생스런 일이건만 / 田家自是辛勤事
한가한 사람에게는 한번 시원스레 보게끔 하누나 / 輸與閑人一快看
위는 〈봄 불이 다시 산을 태움〔春火更燒山〕〉이다.
엷디엷은 가을 구름이 아침저녁 흐릿하더니 / 薄薄秋陰隱曉晡
오늘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평원을 가리었구나 / 朝來宿霧罨平蕪
저편 들판 멀고 가까이 높고 낮은 나무들이 / 郊頭遠近高低樹
영구의 멋진 수묵도를 그려 내었어라 / 畫出營丘水墨圖
위는 〈안개가 평원의 나무들을 가림〔霧隱平郊樹〕〉이다.
하늘은 동남쪽으로 틔어 시야가 드넓으니 / 天豁東南眼界寬
먼 산이 아침저녁으로 난간에 들어오도다 / 遠山朝夕入凭欄
일말의 긴 눈썹이 구름 저편에 가로놓인 듯 / 脩眉一抹橫雲外
보일락말락 먼 허공에 점점이 찍힌 산들 / 隱見遙空點點巒
위는 〈긴 구름 속으로 점점이 보이는 산들〔雲長出斷山〕〉이다.
강 하늘에 가랑비가 가을빛을 씻어내니 / 江天小雨洗秋光
서리 소식이 막 오자 기러기 떼 바쁘구나 / 霜信初傳鴈陣忙
무리 잃은 외로운 그림자 새 물가가 싸늘해 / 孤影失群新渚冷
갈대꽃 떨기 속에서 한 소리 길게 우누나 / 蘆花叢裏一聲長
위는 〈기러기가 내려앉아 찬 물 위에 떠 있는 모습〔落鴈浮寒水〕〉이다.
눈 덮인 겹겹 봉우리 산길은 희미한데 / 雪暗重峯山逕微
차 달이는 연기 이는 곳이 바로 선방이로세 / 茶煙生處是禪扉
한 소리 맑은 경쇠가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오니 / 一聲淸磬諸天外
스님이 날 저물어 돌아왔으리 멀리서 짐작하노라 / 遙想居僧日暮歸
위는 〈외로운 연기 속에서 울리는 찬 경쇠 소리〔寒磬發孤煙〕〉이다.
농가는 쓸쓸한데 대낮에 닭 우는 소리 / 田家寥落午鷄鳴
저물녘 비 따스한 바람에 보리가 생기 돈다 / 晩雨暄風麥氣生
젊은 아낙 물 긷고 돌아와 절구질이 급하니 / 小婦汲回砧杵急
봄갈이하는 서쪽 들판에 밥 지어 가려나 보다 / 西疇應爲餉春耕
위는 〈빗속 저편에서 들리는 촌락의 급한 절구질 소리〔村舂雨外急〕〉이다.
눈발이 막 걷히자 숲의 나무들 술 취한 듯 / 滕六纔收萬木酣
푸른 솔은 그야말로 늙은 구담의 모습이어라 / 蒼髥渾似老瞿曇
아침 햇살이 솟아오를 제 산들바람이 이니 / 朝暾欲上微風起
옥 같은 눈꽃 떨어져 눈이 어지러워라 / 眩眼瓊葩落玉毿
위는 〈갠 날 높은 솔에서 떨어지는 눈〔晴雪落長松〕〉이다.
묏부리에서 서로 주고받는 노래 곡조를 못 이뤄 / 互答山椒不作腔
바람을 따라서 끊어질락 이어질락 창으로 들려온다 / 隨風斷續入軒窓
그 소리소리가 한가한 사람 듣기에 즐거우니 / 聲聲足快閑人聽
세상의 번다한 음악은 죄다 시끄러운 소음일 뿐 / 世上繁音盡是哤
위는 〈골짜기 어귀에서 나무꾼들이 부르는 노래〔谷口樵歸唱〕〉이다.
산허리 높은 누각 아스라이 물가를 굽어보니 / 山腰高閣迥臨汀
빈 헌함은 시원하여 밤에도 문을 아니 닫누나 / 虛檻泠泠夜不扃
밝은 달이 하늘에 떠서 그 빛이 방에 가득하니 / 明月在天光滿室
정자가 달보다 먼저가 아니라 달이 정자보다 먼저일세 / 亭非先月月先亭
위는 〈구름 낀 물가 헌함에 떠오르는 달〔雲汀月上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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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7권 / 권응록 중(倦應錄中)
이유지(李綏之)의 장사(莊舍)의 팔경(八景)
그윽한 거처 땅은 외져서 왕래가 끊겼나니 / 幽居地僻斷過從
한적한 집에서 잠 깨면 만사에 다 게을러라 / 睡起閑齋萬事慵
그래도 시국 근심하는 마음은 남아 있어서 / 猶有憂時心未已
석양에 지팡이 짚고서 앞산의 봉화를 보느니 / 夕陽扶杖看前烽
위는 ‘오성의 저녁 봉화〔烏城夕烽〕’이다.
포구 아득한 물결에 저녁 안개 자욱하니 / 浦漵微茫夕霧籠
어촌은 모두 은은하여 보일락말락 하여라 / 漁村都在有無中
황혼에 인적 고요하고 수많은 등불 나오니 / 黃昏人靜千燈出
원근에서 밝은 별빛들이 끝없이 찬란하구나 / 近遠明星爛不窮
위는 ‘어촌의 밤 등불〔漁村夜燈〕’이다.
십 리라 비탈에 서리가 갈대꽃을 피우니 / 霜綻蘆花十里陂
가을 창공과 찬 달이 서로 잘 어울리누나 / 秋空寒月正相宜
삼경이라 흰 달빛이 서재로 비치어 드니 / 三更皓色侵書幌
흡사 산음에 밤 눈 내리던 그때와 같아라 / 恰似山陰夜雪時
위는 ‘용당의 가을 갈대〔龍塘秋荻〕’이다.
손이 띳집에 와서 간소한 술자리 벌이노니 / 客到茅齋小酌開
저녁 식사는 우선 고깃배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 盤飱且待釣船回
홀연 창 밖으로 돛단배 그림자가 보이니 / 忽看窓外帆檣影
조수가 가까운 기슭으로 밀려왔음을 알겠도다 / 知是潮頭近岸來
위는 ‘금포의 봄 조수〔金浦春潮〕’이다.
세 가닥 솟은 옥산이 뜨락 비쳐 드나니 / 玉立三尖影戶庭
허공 떠받치고 만고에 홀로 청청 푸르구나 / 撑空萬古獨靑靑
아침이 되어 밤안개가 맑은 기운과 이어지니 / 朝來積氣連晴靄
담담한 수묵화런가 생생한 그림 병풍 펼쳤어라 / 淡墨新開活畫屛
위는 ‘삼각산의 맑은 산기운〔三角晴嵐〕’이다.
서남쪽으로 하늘이 툭 트여 시야가 후련하니 / 天豁西南眼界寬
구름 걷혀 멀리 보이느니 바닷가 산인 줄 알겠다 / 雲開遙記海邊山
부상에서 떠오르는 해 붉은 햇무리가 일어나니 / 扶桑旭日紅初暈
일말의 밝은 노을이 비단 무더기를 만드누나 / 一抹明霞錦作團
위는 ‘적안의 밝은 노을〔赤岸明霞〕’이다.
수양버들 드문드문 작은 물굽이에 서 있어 / 垂柳疎疎映小灣
긴 가지 보드라운 빛 참으로 잡아 꺾음직하여라 / 長條嫩色正堪攀
무엇보다 가장 좋기는 둑 아래 산보하노라면 / 最憐散步堤陰下
때로 서늘한 바람 취한 얼굴로 보내 주는 것일세 / 時送涼風入醉顔
위는 ‘긴 둑의 버들〔長堤楊柳〕’이다.
누에가 시렁에 오를 때는 뽕잎이 드물어지고 / 蠶箔登時桑葉稀
유구새 우는 곳에 주먹만 한 밤알이 드리워졌어라 / 乳鳩鳴處栗拳垂
농촌에는 만나는 일마다 그윽한 흥취가 많으니 / 田家觸事多幽興
이 산옹이 생계에 어리석다고 말하지 마오 / 莫道山翁契活癡
위는 ‘밭에 가득한 뽕과 밤〔滿園桑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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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8권 / 권응록 하(倦應錄下)
만소정 팔영(晩笑亭八詠) 한희익(韓希益)을 위해서 짓다.
강 달은 물보다도 희구나 / 江月白於水
물가의 정자는 서늘하여라 / 泠泠湖上亭
유인이 밤에 문 열어 놓으니 / 幽人夜開戶
솔 그림자가 앞뜰에 가득하네 / 松影滿前庭
위는 ‘송정의 맑은 달빛〔松亭霽月〕’이다.
강 어둑하여 비 뿌리는 줄 몰랐더니 / 江暝不知洒
깊은 대숲에 제법 빗소리 들리누나 / 竹深偏有聲
향로 연기는 습기에 젖어 일지 않고 / 鑪煙濕不起
성근 대자리에 앉으니 서늘하여라 / 疎簟坐來淸
위는 ‘죽림의 찬비〔竹林寒雨〕’이다.
아침에는 얕은 물에서 고기 잡고 / 朝漁淺渚淸
저녁에는 깊은 물에서 고기 잡는다 / 暮漁深潭淥
그물을 걷으매 고기가 잡혔는가 / 擧網得魚不
초당에 지금 손님이 와 계시다네 / 草堂方有客
위는 ‘장암에서 그물을 걷다〔場巖撒網〕’이다.
아득히 멀리서 떠오는 돛단배가 / 遠遠泛極浦
처음에는 물결 위 기러기 같더니만 / 初如波上鴻
잠깐 사이 가까운 기슭에 정박하자 / 須臾泊近岸
노 젓는 소리 속에 사람 소리 들려라 / 人語櫓聲中
위는 ‘왕포로 돌아오는 돛단배〔王浦歸帆〕’이다.
저무는 석양빛 울타리를 비추니 / 暉暉映籬落
내 낀 풀숲이 점점 흐릿해지누나 / 冉冉迷煙蕪
동쪽 비탈의 저 다소의 촌락은 / 東屯多少村
그야말로 〈망천도〉 그림과 같아라 / 渾似輞川圖
위는 ‘탄촌의 석양〔灘村夕照〕’이다.
강가의 관사는 진종일 고요하여 / 江館盡日靜
쓸쓸히 인간 세상 시끄러움 없구나 / 悄無人世喧
피리 소리 몇 가닥 바람 너머 들리니 / 數聲風外至
성에 가까운 마을인 줄 알겠도다 / 知是近城村
위는 ‘산성의 저녁 뿔피리 소리〔山城暮角〕’이다.
나루터에 풍랑이 높게 일어나니 / 渡頭風浪高
충혼의 노여움이 다하지 않은 게지 / 忠魂怒未已
저 깊은 물속에 있는 늙은 용은 / 潭下有老龍
당시의 그 일을 응당 알고 있으리 / 應知昔日事
위는 ‘백마의 옛 나루터〔白馬古渡〕’이다.
밤사이에 가랑비가 지나가자 / 微雨夜來過
물가 둑에는 푸르름이 덮였구나 / 綠遍湖上堤
무성한 풀밭이 끝없이 펼쳐져서 / 萋萋望不盡
동쪽인지 서쪽인지 분간할 수 없게 하네 / 迷却路東西
위는 ‘푸른 풀 우거진 호수〔靑草平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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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18권 / 권응록 하(倦應錄下)
평양 서윤(平壤庶尹)으로 부임하는 이백윤(李伯胤)을 보내며
기성은 옛날의 이름난 도읍지이니 / 箕城古名都
높고 높은 성벽에 번화한 거리이어라 / 頟頟繁華境
기자(箕子)의 법도가 남아 있는 까닭에 / 以有箕範遺
이 고장 사람들은 예교를 지키느니 / 其人禮敎秉
서북방은 원래 국가 방어의 요새라 / 西北本關防
병사와 말들도 날래고 강한 정예여라 / 士馬又精勁
생각노니 옛날 왜적의 침략 받았을 당초 / 念昔被賊初
이 성이 국가의 방패가 되었었지 / 玆城爲蔽屛
한 방면을 이에 힘입어 지킬 수 있어 / 一路賴安全
다행히도 지금껏 국가 보전할 수 있었네 / 于今國猶幸
지역은 크고 게다가 백성도 많으니 / 地大且民夥
예로부터 부서의 업무가 많은 곳이지 / 自昔煩簿領
소윤은 실로 백성 다스리는 일 맡으니 / 少尹實主理
이 자리에는 재능이 뛰어난 이 필요한 법 / 撫按須才穎
군후는 금옥과 같이 좋은 자품 타고나 / 君侯金玉姿
영특한 그 모습은 실로 하늘이 준 것 / 英雅實天挺
이제 청운의 길 높고 멀리 날기 전에 / 溟鵬雲路遠
선학이 흰 깃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셈 / 仙鶴霜毛整
백옥당이라 그 부서에 들여놓으니 / 盛之白玉堂
기상이 가득 서린 그 문장이 빛났고 / 藹藹其文炳
강직한 풍모로 청포에 서 있을 때는 / 侃侃立靑蒲
그 발론이 모두 충직한 직언이었으며 / 發論皆忠鯁
이조(吏曹)에서 인재 전형 맡았을 때는 / 天官秉銓筆
그 빼어난 기운이 대성을 누볐었지 / 秀氣橫臺省
그러다 중년에는 그만 운수가 나빠서 / 中歲竟坎坷
길 잃고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 됐지만 / 失路隨萍梗
오래 한가한 동안 학문이 더욱 진보하고 / 長閑學益進
좌절 자주 겪을수록 마음 더욱 고요했지 / 屢躓心愈靜
두 해 동안 쟁반의 목숙을 먹는 생활 / 二年苜蓿盤
유관으로서 가난을 실컷 맛보았었네 / 儒官飽寒冷
이번의 이 부임은 참으로 뜻밖의 일 / 玆行誠不意
또 관서로 가는 철령을 넘게 되다니 / 又踏西關嶺
청삼을 입고서 막부에서 근무할 제 / 靑衫趨幕府
백발은 머리에 드리워져 날릴 테지 / 白髮颯垂頂
벗들은 모두들 헤어지는 게 섭섭해 / 朋儕惜解携
노년에 이별의 회포는 더욱 슬프구나 / 別懷臨暮景
대동강 기슭에는 가을바람이 이는데 / 浿岸起秋風
아스라이 뻗은 시내와 길은 멀구나 / 迢迢川路永
어서 가시어 왕사에 힘쓰시라 / 行矣勉王事
관서의 백성이 기다린 지 오래라오 / 西民久延頸
아문에는 아전과 병졸들이 사나우니 / 牙門吏卒驕
관용과 위엄을 조절해서 다스리고 / 撫御調寬猛
길가에서 응접하느라 바쁠 테지만 / 傍路接應煩
백성들 시름도 부디 잘 살피시라 / 民愁宜察影
무엇보다 무비를 먼저 정비하고 / 武備最先飭
또 문교를 더욱 깊이 유념하시길 / 文敎尤深省
가시 숲은 봉황이 깃들 곳 아니건만 / 棘林非鳳棲
이러한 뜻을 뉘라서 임금께 아뢰리 / 此意誰上請
큰 그릇은 어려운 외직을 겪어야지 / 大器須外勞
장래 재상감이라 다들 기대하느니 / 公望期台鼎
그저 바라건대 건강에 부디 유념하오 / 但願加飱飯
이 마음은 늘 그대 잊히지 않으리 / 此心長耿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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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 윤근수(尹根壽)
황궁으로 돌아가는 군문 형개를 전송하며 20운 〔送邢軍門玠還朝 二十韻〕
동쪽 번방에 전쟁이 많아 / 東藩多戰壘
황궁의 천자께서 근심하시자 / 北極軫皇情
장군에 임명 되어 계주를 보전하고 / 受鉞仍全薊
관직은 바로 병부 상서라오 / 論官卽本兵
곤의를 입고 이역 땅에 왕림하여 / 袞衣臨異域
백우선으로 여러 군영 통솔하였네 / 羽扇摠諸營
뛰어난 책략 세워 승리를 얻었고 / 制勝憑長算
나누어 지휘하니 훌륭한 명성 드높았지 / 分麾仰盛名
지시에 따라 기지와 임기응변 발휘하여 / 機權隨指顧
종횡으로 다투듯이 운조진을 펼치니 / 雲鳥競縱橫
적의 소굴 쳐부순 건 정예병이요 / 搗窟還精銳
본거지를 휩쓴 깃발 번쩍였다네 / 搜原耀旆旌
둥우리의 새들은 막사로 막 모여들고 / 棲鳥纔集幕
굴속의 개미들도 목숨을 구하는데 / 穴蟻亦求生
파죽지세로 천자 군대가 떨쳐 일어나 / 破竹王師奮
고목 꺾듯 제압하니 섬 오랑캐 경악했네 / 摧枯卉服驚
수천 척의 배를 다투어 노획하여 / 千艘爭鹵獲
온 세상이 홀연히 말끔하게 되었으니 / 四路忽澄淸
다시는 여러 해 수자리 살 일 없어지고 / 無復頻年戍
참으로 한 번 북소리에 평화를 이루었네 / 眞成一鼓平
승전 소식을 황궁에 급히 전하자 / 捷書馳魏闕
기쁜 기색이 연경에 가득하였지 / 喜氣滿燕京
무기 내려놓자 변방 봉화도 조용해지고 / 戈偃邊烽晏
재앙 기운 사라지니 바다 달이 밝았어라 / 氛消海月明
초상화는 기린각에 빛날 것이고 / 丹靑麟閣煥
전공 기록은 역사가가 평가하리라 / 模寫史家評
일찍이 탐욕스런 왜적이 거듭 잠식했으나 / 荐食曾封豕
마침내 흉적을 베어 기이한 공 세웠다네 / 奇功竟剪鯨
산처럼 무거운 큰 은혜를 입었으니 / 丘山含惠重
가루가 된다 해도 몸은 가벼우리 / 糜粉覺身輕
길 가운데 수레바퀴 앞에 눕지 못하고 / 未臥途中轍
부질없이 야외에서 형초 깔고 이별하네 / 空班野外荊
요동 변방의 이별을 견디기 어렵지만 / 不堪遼塞別
다행히 영남의 정벌은 끝이 났으니 / 幸罷嶺南征
돌아가는 꿈은 방초에 아득하겠고 / 歸夢迷芳草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에 고향 생각 간절하리 / 鄕心惱亂鶯
삼한 땅은 다함께 편히 자게 되었으니 / 三韓俱奠枕
머나먼 만 리 땅에 정녕 명성 날렸구려 / 萬里正飛聲
더구나 새로 지은 사당이 있으니 / 更有新祠在
영원토록 보답하는 제사 정성스러우리라 / 終天報事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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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 윤근수(尹根壽)
기로연 계병에 쓰다 12운 〔題耆老宴禊屏 十二韻〕
화창했던 사월의 일 생각하노니 / 憶在淸和節
이원(梨園)에서 화려한 잔치 활짝 열었네 / 梨園敞綺筵
아름다운 날은 맑은 경치와 어울리고 / 佳辰當霽景
여러 재상들은 의젓하게 높은 나이였네 / 諸宰儼高年
향기로운 술을 대궐 주방에서 보내오고 / 芳醞天廚送
맛있는 음식을 내부시에서 내어오니 / 珍羞內府傳
쌍명재의 옛 행적을 다시 징험하고 / 雙明徵舊躅
악관들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였지 / 兩部奏危絃
멀리는 향산의 노래에 비견하고 / 遠擬香山詠
겸하여 낙사의 시편에 의거했으니 / 兼憑洛社篇
희끗한 눈썹은 서로들을 비추고 / 厖眉相照映
구장 짚고 함께 배회하였지 / 鳩杖共周旋
성대한 모임이 밝은 시대 만났으니 / 盛會逢昭代
남은 사람들 흡사 나이든 신선인 것 같고 / 餘生怳老仙
다시금 태평시대의 모습이 나타났으니 / 太平還有象
수역에 다행히 어깨를 나란히 했다네 / 壽域幸隨肩
그 좋았던 일 불현듯 돌아보자니 / 勝事俄回眄
가는 세월 아쉽게도 흘러가는 냇물 같아 / 流光嘆逝川
남은 꿈을 깨고 난 후 바람은 처량하고 / 風悽殘夢後
구부러진 난간 가에 달빛은 차가워라 / 月冷曲欄邊
영상은 저승으로 돌아가시고 / 上相歸冥漠
좌ㆍ우상은 산야로 숨어들어서 / 中台遯野田
즐거움을 누리던 일 이제는 그만이니 / 追歡今已矣
지난 일 생각하며 서글퍼하노라 / 撫迹一酸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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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연경에 조회 가는 이 승지양원 를 전송하며 8운 〔送李承旨 養源 朝京 八韻〕
동료로서 선대의 우의를 따르면서 / 僚寀追先誼
우리 그대는 더욱이 벗이 되었지 / 吾君更友生
몇 번이나 생사의 감회를 품었던가 / 幾回存沒感
더구나 다시 이별의 정을 느끼는구려 / 況復別離情
홀로 어머니 그리는 마음을 안고 / 獨抱萱闈戀
멀리 진기한 공물 바치는 길을 가니 / 遙將鳳匭行
산해관에서는 큰 바다를 지나게 될 것이고 / 雄關經大海
고죽국에서는 외로운 성에 조문을 하리라 / 孤竹弔孤城
아름다운 날씨는 천추절을 맞이하고 / 佳氣千秋節
가을바람은 팔월이라 맑게 불어주리니 / 金風八月淸
황성의 장관을 남김없이 볼 것이요 / 帝京窮壯觀
오만관에서는 새벽을 지내겠지 / 蠻館度殘更
가는 일은 먼 길이라 시름겹지만 / 征役愁長路
훌륭한 관리의 높은 명성 우러러본다오 / 循良仰重名
이별에 임하여 줄 만한 것 없으니 / 臨分無可贈
빨리 돌아온다는 기별이나 기다리겠소 / 遄返佇先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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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연경에 가는 사은 부사 한 참판덕원 을 전송하며〔送謝恩副使韓參判 德遠 如京〕
그대를 작별함에 선물을 주고 싶어도 / 別君欲有贈
내 오래도록 시를 방치했으니 어찌할까 / 奈我詩久廢
그대가 떠날 날을 손꼽아 상상하면서 / 屈指想君行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만 애태운다오 / 遙望勞肝肺
장차 길 떠나면 압록강을 건널 것이고 / 將行渡鴨水
장성의 요새를 모두 거쳐 가리라 / 歷盡長城塞
상국에는 아는 사람 없겠지마는 / 上國無相知
용만에서는 선정을 남겨 놓았다네 / 龍灣有遺愛
길이 요하의 어귀로 들어가게 되면 / 路入遼河口
의무려산이 멀리에 눈썹 같으리라 / 醫閭遠如黛
하나하나 예전에 지나간 곳이니 / 歷歷舊所徑
이번 행차는 지금이 실로 두 번째이지 / 此行今實再
어명을 띠었으니 어찌 한가할 수 있으랴 / 銜命敢自暇
얼음 먹던 옛날 사람이 우스워라 / 食氷笑前代
대궐에서 황제의 은혜에 절을 올리고 / 天門拜皇恩
붉은 섬돌에서는 패옥 울리며 분주하리라 / 丹陛鳴環珮
옥하관에서 잠시 머물다보면 / 玉河乍淹留
잠깐 사이에 해가 이미 바뀔 것이니 / 轉眄歲已改
육지와 바다에서 풍부하게 보고 들으며 / 陸海富聞見
낱낱이 주위 일을 채록하게나 / 一一左右採
상국을 유람하는 것이 어찌 한갓되리오 / 觀周豈徒然
훗날 임금 앞에서 아뢰어야지 / 異日前席對
다시금 시시를 찾아가게 되면 / 更向柴市傍
경건하게 문산에게 술을 올리리 / 敬爲文山酹
형경은 비장하게 역수를 건넜건만 / 荊卿渡易水
다 사라지고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 澌滅今何在
태평 시대는 밝은 때를 당하였는데 / 太平屬明時
금대는 스스로 천년토록 남아 있지 / 金臺自千載
돌아오면 건강함을 기뻐하면서 / 歸來喜強健
사신 간 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세 / 使事共僚寀
늙은 나는 갈수록 쇠약해지니 / 老我轉衰疾
반갑게 만나기를 오래도록 기다리리 / 靑眼長相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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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3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창사정 시첩에 쓴 시〔彰賜亭帖中詩〕
천리 길 연경에서 사신이 돌아왔는데 / 千里燕山使節廻
전대 안에 하사받은 금만 가지고 왔네 / 橐中唯有賜金來
빼어난 승경을 골라 새로 정자 지으니 / 林丘選勝亭新創
강과 바위 기이하여 눈이 번쩍 뜨이네 / 水石爭奇眼忽開
화려한 편액은 한 쌍의 봉황이 걸어놓았고 / 華額更從雙鳳揭
선영 곁에서 평생 동안 애모하리라 / 遺阡正抱百年哀
고상한 마음과 효성으로 훌륭한 명성 전하리니 / 高情孝思流芳譽
권축의 아름다운 시는 모두 뛰어난 솜씨라네 / 卷裏瓊詞摠俊才
난새처럼 태평성대에 문채를 드날려 / 明時揚彩似祥鸞
큰 날개 펄럭이며 문단을 배회하였네 / 藝苑翺翔振逸翰
의발 전해 받아 거듭 주문연(主文硯) 얻고 / 衣鉢待人重得硯
문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홀로 문단에 올랐네 / 文章驚世獨登壇
정자는 황제의 하사금으로 지었고 / 亭緣皇賜能開拓
편액은 문호의 솜씨라 모두가 바라보리 / 扁出詞宗競聳觀
나라를 빛낸 높은 명망으로 문단을 주도하니 / 華國望尊方柄用
그저 휴가 때나 잠시 난간에 기대어 보네 / 秪從休澣暫憑欄
한 구비 남계가 구름 덮인 숲을 돌아 흐르는데 / 南溪一曲遶雲林
새로 지은 태사의 집은 푸른 물결 굽어보네 / 太史新居俯碧潯
두터운 성은을 입어 은거할 계획 이루니 / 恩渥眞成丘壑計
벼슬길에서 도리어 은퇴할 마음 생기네 / 榮途還有退休心
꾀꼬리 소리는 약속이나 한 듯 정자로 들어오고 / 鶯聲每赴亭中約
소나무는 집 주위에 더욱 무성한 그늘을 드리웠네 / 松蓋偏分宅畔陰
어찌하면 함께 손잡고 세상 구속 벗어나 / 安得相携抛世網
온종일 여기 올라서 찌든 흉금 씻어낼까 / 登臨竟日滌塵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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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3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성 좌랑 진선 에게 주다〔贈成佐郞 晉善〕
만나서 담소하면 문득 속된 조건도 잊었는데 / 相逢談笑便忘形
다시 만나 같은 관청에서 함께 책을 엮었네 / 更値編摩共一廳
그저 고사에 따라 단사와 연분 잡았으니 / 謾把丹鉛追故事
오래된 우의는 성현이 남긴 경전에 있었지 / 從來情義在遺經
복희와 문왕이 역상(易象)을 만들어 세상에 남겼고 / 羲文著象留天壤
정자와 주자가 연역하여 일월처럼 분명히 보였네 / 洛建紬辭揭日星
은미한 말씀 베껴다 강해에 옮겨담으며 / 摹取微言歸講解
그대로 하여금 오묘한 뜻 찾게 한다네 / 煩君探索啓玄扃
듣자니 그대가 《주역》을 좋아한다는데 / 聞君嗜好在貞元
게다가 글을 논하며 본원을 찾아 기쁘다네 / 却喜論文得本原
북두성처럼 높은 명성 누가 짝할 수 있으랴 / 北斗名高誰竝駕
서경의 메아리 끊겼는데 홀로 근원을 찾네 / 西京響絶獨窮源
제나라 양나라의 고운 자태로 마음껏 글을 지으니 / 齊梁纖麗謾摛藻
장적과 황보식이 쫓아간들 근처도 못 간다네 / 藉湜追奔寧望藩
미친듯한 파도를 애써 막으며 담소하는 가운데 / 力障狂瀾談笑裏
먼 옛날 성인께서 남기신 도를 길이 보존하네 / 聖眞千古道長存
산과 개울에서 나는 차가 참으로 많기도 한데 / 溪茶山茗政紛紜
오나라와 월나라 땅에서 가져온 것이라네 / 來自吳門與越天
단봉은 예로부터 벌열가에서 아끼던 것이라는데 / 團鳳久聞矜閥閱
누가 감히 소룡과 맑고 아름다움 다투랴 / 小龍誰敢鬪淸姸
우리나라에서 피어난 꽃 이제 처음 보았는데 / 東方蓓蕾今新見
북쪽 나그네가 가져와 홀연 멀리 전하였네 / 北客携提忽遠傳
오늘 그대에게 한 마디 전하노니 / 此日寄君還一語
겨드랑이에 바람 불거든 신선 되어 날아보게 / 風生兩腋試登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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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아5部.끝.

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장문을 게재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 무더위를
오늘도 잘 견디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長篇 漢詩 좋은 자료들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원한 저녁시간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