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나)에서 꿈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 지시문을 활용하여 설명하고 (가),(나), (다)를 참고 하여 꿈과 욕심의 차이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치시오.
※ 유의사항 ① 제시문을 활용하여 제시할 것. ② 구체적인 사례를 근거로 제시할 것. ③ 1600(±150)자 분량으로 할 것. ④ 시간은 120분임.
(가)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은전 한 닢을 지니고 진가(眞價)를 확인하는 거지.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치른 손바닥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아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으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 피천득, ‘은전 한 닢`
(나)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 버린 것은 네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때는 가만히 네 마음이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다)
[예시답안]대전괴정고등학교 3학년 2반 홍은빈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다이알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결국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는 인물로써, 가끔 우리에게 무리한 위상에 도전한 인간상으로써 무리한 욕심의 결과라고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의 지금 이 무리한 인간상은 다시 재해석 되어 긍정적 인물상으로써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를 바로 꿈을 향해 도전한 도전자의 인물로써, 새로운 해석으로써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욕심과 꿈과의 관계이다. 과연 우리는 이 이카로스라는 인물을 과하게 욕심을 부린 인물이라고 해석해야할지, 비록 실패하였지만 위대한 도전자라고 해석해야 할지, 이런 하나의 예에서도 이 욕심과 꿈과의 관계는 간단히 정의내릴 수 없다. 이 복잡한 이분법적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욕심과 꿈과의 관계, 과연 우리는 현대 사회 속 진정한 가치 정립을 위하여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희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속 이중생은 돈에 과한 욕심을 부려 결국 서류상 죽은 것이 되어버려 자살을 하게 되는 비참한 황금 만능주의적 사고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인물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돈에 대한 욕심을 ‘꿈을 위한 노력` 이라고 과연 볼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가 과거의 그가 가난한 생활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지를 다졌었다면 그 어렸을 적 의지는 꿈을 위한 다짐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으나, 그의 이러한 행색을 우리는 욕심이라고 부르지 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꿈과 욕심의 분리를 정리할 수 있다.
욕심을 가짐으로써 꿈이 이루어지고, 지나친 꿈이 욕심으로 변질한다. 둘은 상호보안 적으로 존재하며, 누군가의 행위에 대해서 행위의 사회에 대한 합목적성이 분명할 때 그것은 꿈으로써 존재한다. 즉, 욕심이라는 것이 사회의 정의에 맞아야하며,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범위 아래서 긍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이 비행하는 것은 욕심인가 꿈인가? 그의 비행은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그 자신에게서는 긍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생존을 위해서 물고기가 사회의 최고의 가치인 갈매기 사회 속에서는 그의 이 꿈은 욕심으로밖에 표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의 구분은 우리의 현대의 사회 속 지나친 다양성과 이 다양성의 오용으로 혼란스러워진 상황을 타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써 사용될 수 있다. 이 욕심이라는 것을 꿈이라고 착각하여 잘못된 정의로 나아가는 길의 생각은 배척해야만 한다.
아직 사회 속 많은 부분들은 이 불가분적인 성격을 이용하여 욕심을 꿈으로써 대체시켜 오용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의 합법적인 권리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하여 그것을 자신의 꿈을 위한 것 이였다는 많은 변명들, 이 변명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 속 욕심으로 치부되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야한다.
곧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는 우리 청소년들이 다양해진 인간관으로써 구분의 경계가 모호해진 꿈과 욕심의 관계, 우리는 이 둘을 획일성의 강조로 이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이 다양한 해석을 인정함과 동시에, 지나친 욕심과 꿈에 대한 정의에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엄연히 배척할 수 있는 어른으로써 성장해 나갈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일꾼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논제분석.출제의도 파악]
인용 문구의 적절한 사용 논제에 대한 세밀한 접근 필요
선생님이 교육 현장에서 해야 할 여러 가지 일 중 가장 가치 있고 우선시 되는 것은 학생들에게 꿈의 중요성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교사로서 가장 안타까울 일이 학교 현장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마다 성급한 마음에 무엇이든지 욕심을 가져보라고 충고 하지만 이 말이 과연 교육적으로 맞는 말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어 이 논제를 만들어 보았다.
막연하게 ‘꿈과 욕심`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동료 교사에게 물어 보았을 때 여러 답변이 있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뜻 대답하기에도 어려운 주제였다. ‘꿈과 욕심`을 단어 차원에서만 보았을 땐 분명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실생활 속에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제이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일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이 논제도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땐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를 알고 있는 교인이라면 닭이 먼저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닭은 이미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달걀을 먼저 창조했다면 그 달걀을 부화시켜줄 닭이 없어 달걀은 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 따라서 이 논제는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을 논제와 연관시켜 설정하여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느냐를 물어 보는 것이다. 제시문 (가)에서는 맹목적으로 은전 한 닢을 갖고 싶어 하였던 걸인의 모습에서 욕심의 특성을 찾고 제시문 (나)에서는 꿈의 특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의 유무, 실현의 유무, 도덕적 목적 등 그 조건을 들어 꿈과 욕심의 차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총평] 대전괴정고등학교 교사 박진호 로마 신화로 시작된 서론 탁월 제시문을 활용하여 논술 할 것
어린 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비밀경찰이라고 얼마 전까지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어제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단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변할 것이라 속으로 짐작하지만 아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꿈이 아이들을 성장케 하는 힘이니까. 어른이 된 지금 꿈을 이룬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 꿈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꿈을 위해 노력하라고 하지만 그 꿈이 정말 옳은 것일까? 어른이 되어 무엇이 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일까? 총선을 앞두고 한참 열을 올리는 저 거리의 후보자들의 모습이 꿈을 위해 달려가는 것일까? 대통령은 꿈을 무엇일까? 나는 꿈을 이루었는가? 몇 가지 생각하다 발견한 건 분명 꿈과 욕심이 다른 것이다. 어릴 적 꿈을 이루고도 그 꿈을 욕심으로 퇴색시켜 버리는 어른들이 있다. 욕심이 아닌 올바른 꿈을 키우자는 마음으로 이 논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학생은 이분법적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꿈과 욕심`의 특성을 이카로스라는 로마 신화를 통해 시작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탁월하다. 이카로스라는 인물에 대한 정의가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예를 통해 ‘꿈과 욕심`의 복합적인 의미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 점도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좋은 서론에 비해 본론 부분이 내용적으로 미흡하다.
본론에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와 조나단의 ‘갈매기의 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논지에 대한 예가 아니라 서론을 뒷받침 하는 예에 불과하여 내용적으로 본론이 미흡하며 결국 결론으로 자신의 생각을 맺고 말았다. 본론에서 서론을 뒷받침하는 예보다는 제시문의 내용을 활용하여 ‘꿈과 욕심`의 얽혀있는 관계를 명확한 조건을 들어 제시하였다면 서론이 돋보이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